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2013-03-3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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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22:23~33)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22:23~3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처음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인사가 있습니다. “평안하냐?” 또 안식일날 저녁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있는 현장에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하고 말씀했습니다. 주님 주신 그 평강함으로, 편안함으로 옆의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평안하십시오! 예, 다시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할 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증인되십시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즉, 마태복음을 지금 같이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보고 있는 가운데서 오늘 때마침 부활주일에 맞이하게 된 본문이 23절부터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고요. 그래서 천사들이나 사단의 영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영혼은 사멸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부활에 대해서 믿고 잊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부활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24절부터 28절에 보면 신명기 25장 5절~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대 결혼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내용이 뭐냐 하면 맏이가 장가들었는데 아내가 아이가 없으면, 상속자가, 후사가 없으면, 후사 없이 맏이가 죽으면 그 아내는 둘째에게 가게 됩니다. 그리고 또 둘째도 후사가 없으면 그 다음 셋째에게 가게 되고. 그 이야기를 지금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이야기하면서 “일곱 아들까지 다 죽었는데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나중에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그런 질문이 오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사실 율법에 나와 있는 부분들 가지고 궤변론적인 그런 질문을 예수님 앞에 지금 사두개인들이 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2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들의 지성과 경험을 가지고 성경을 오해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30절부터 부활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부활은 세상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30절에 보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은, 부활 이후의 삶을 이 땅에서의 삶의 틀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이후에는 천사와 같이 변화되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제한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천사와 같은 신령한 몸을 입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모두가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한 가족으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부활하면 육신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에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2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출애굽기 3장에 모세를 부르실 때에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도 살아 있고, 이삭도 살아 있고, 야곱도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실제적인 증명을 하고 있는, 실제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고 이삭을 축복하셨는데 한해 농사지은 것의 백배나 얻도록 하시고 아무리 샘을 양보해도 샘 근원을 얻는 축복을 누리게 되고 야곱을 변화시킨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실제적으로 지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체험하느냐? 그 부분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붙잡고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 시대마다 - 부활의 역사를 공격한 사단의 방해
먼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시대시대마다 악한 사단은 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부활의 역사를 공격해 왔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에 대한, 시대시대마다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공격들이 늘 있어왔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부활하신 사건이 믿어지고 이 사실이 붙잡아지게 될 때 거기에 사단의 역사들이 완전히 깨어지는 역사가 부활사건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하든 악한 사단은 이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모략과 궤계, 간계를 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대시대마다 늘 그러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고 난 이후에 바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빌라도에게 요청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 파수꾼을 파송해 달라, 그리고 황제의 도장으로 인봉을 찍어서 아무도 무덤을 열지 못하도록 해 달라 했어요. 빌라도에게 요청했어요. 파수꾼을 보내서 무덤을 지키도록.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해서 그렇게 했다고 했어요. 27장 63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힘을 합하여 빌라도에게 요청하는데 그 요청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했어요. 그게 27장 63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살아나리라한 이 말씀을 기억하여,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빌라도에게 파수꾼을 파송해서 무덤을 지킬 수 있도록 요청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무력과 권력을 통해서 부활을 막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1절부터 10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 20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활을 증거할 제자들로, 증인으로 파송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10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16절부터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말씀하시면서 그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파송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마태복음 28장을 죽 읽어 보면 그 사이에 11절부터 15절 말씀에 끼어 있는 말씀이 있어요. 대조해서 나오는 말씀인데 예수님은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파송했는데 여기에 대제사장들은 거짓사도, 군인들을 동원해서 이 부활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파송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12절에 이 군인들에게, 무엇을, 돈을 주며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15절에 보면 정치적인 힘으로 군인들의 신변을 보호해 줄 것을 이야기하죠. 그래서 그 당시 유대 사회에 퍼뜨려진 소식이 뭐냐 하면 13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시체 도난설이 전체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28장 1절에서 20절, 그 전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를 파송하는 반면에 대제사장들도 부활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파송했다는 이 부분들이 대조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늘 진리와 함께 비진리가 같이 공존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늘 진리와 함께 비진리가 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들의 힘과 권력을 통해서 부활을 막고자 하였으나 부활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그 부활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 땅에서 잠시잠간 비진리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결국은 진리가 이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저와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왜냐?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역사이기 때문에 아무도 막으려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 이 부활의 역사를 막으려고 시체 도난설을 만들어내서 결국 부활의 다른 소식들을 증거하도록 하셨다는 사실들을 증거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 부활의 역사는 누가 만드신 사건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사건이기에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1:3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 긍휼하심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역사 속에서도 이 부활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 사탄이 일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이 역사 속에 합리주의, 이성주의 같은 좋은 것들로 결국 부활의 신앙을 믿지 못하도록 공격해왔습니다. 인간의 합리와 이성으로는 부활을 믿을 수 없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한 번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적이 없고, 인간은 부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합리주의 적이고 이성주의적인 생각과 지식들을 인간에게 퍼뜨려가지고 진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인 이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게 사탄의 역사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폴 틸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인데 신학사상 속에서 자유주의의 거대한 한 획을 그었던 사람입니다. 책을 보니까, 이 분이 어느 날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열심히 강의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적의 역사를 안 믿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들을 다 빼버리고 성경을 읽습니다. 이분이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거짓이라는 명제를 전제로 해서 강의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연세 많으신 노인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답니다. 사과를 하나 꺼내더니 그 자리에서 아작아작 씹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가만히 앉아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는 자체만으로 주변의 시선을 다 집중케 합니다. 그런데 연세 있으신 이 분이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교수도 당황했습니다. 학생이 한참 강의를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과를 들고 먹고 있으니까. 그런데 사과를 거의 다 먹은 노인 이 분이 한참 강의를 하고 있던 박사님께 물었답니다. “제가 지금 먹은 이 사과가 달까요, 실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신 사과인지 단 사과인지 물었답니다. 갑작스럽게 사과를 먹고 단지 신지 물으니까 당황했습니다. 교수가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사과를 먹어보지 못해서 신지 단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이 노인이 한 마디 하고 앉았답니다. 그러자 그 자리의 신학생 모두가 웃었답니다. 그 말이 뭐냐고 하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신학교도 부활에 대해 안 믿는 곳이 있고요,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신학자들조차 부활에 대해서 안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합리주의 이성주의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부활이고, 또 믿어지는 것이 부활입니다. 차이가 뭐냐? 인간 편에서 보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믿어지는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으로서 부활이 믿어지는 이 자체가 은혜 중 은혜고 축복 중 축복입니다. 이 부활의 역사만 무너트리면 사탄이 승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지 이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의 전파하는 이 복음도 헛것이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은 어떻게 하던지 이 신분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도록, 또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완전히 깨트리신 그 승리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지금도 우리에게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눈들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왜 축복하느냐? 왜 축복하는지 아십니까? 이 땅에 모든 것 다 있지만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서 우리 성도들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 부활의 능력의 역사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일에 증인되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를 세우신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 이 약속 가지고 그 어떤 핍박과 환란까지도 승리하고 로마를 복음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이 부활의 역사들을 알게 하신 것은, 그리고 그 부활의 역사들이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믿음 주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이 한 시대에 유일한 부활의 증인되기 우해서 주신 축복인 줄 믿습니다.
왜 성도들이 힘이 없는 줄 아십니까? 부활에 대해서 안 믿기 때문입니다. 진짜 부활의 역사를 믿으면 지금 내 삶 속에 사탄 꺾을 수 있는 축복된 권세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 믿으니까 권세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 믿으니까 환경과 문제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놓쳐버리고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사탄의 궤계에 속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복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 사실이 믿어지는 그 은혜 가운데서 세상을 정복하는 귀한 증인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왜 예수님이 부활하셨는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낸 게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생겨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수백 년 수천 년 전부터 성경에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분명히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전15:3-5에 보면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성경대로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냥 우연히 생겨난 이야기가 아니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부활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사건도 부활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16, 22편, 사52-53장 전체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냥 누가 훌륭한 사람이 말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믿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기독교의 핵심적인 이 부분들은 반드시 성경대로 되어진 사실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하는가?
우리 인생의 문제는 경제, 건강, 자리, 직장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물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뿌리 뽑힌 나무가 살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 떠난 것 자체가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 세계에 저주와 재앙의 역사가 계속해서 물밀듯 밀려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것 같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숨겨놓고 있어서 그렇지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돈, 건강, 좋은 옷, 좋은 차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만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존재가 영혼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단섬기는 사람은 죽어서도 사단 마귀 가두는 지옥가운데 영원한 고통 받게 됩니다. 이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우리를 위해서 보내시사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니면 죄, 저주, 재앙을 해결할 수 없고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어떤 이 땅위의 종교에는 부활 사건이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부활 사건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차별하기 위해서 부활 사건을 만들어서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의 근본 문제, 영원한 죽음의 문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이루신 일이 부활 사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에게 이뤄진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나는 최고로 축복받은 사람임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32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다" 이 본문과 똑같은 부분이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마가복음에는 산 자의 하나님이라 누가복음에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20:36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살아있느니라" 귀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이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겠다 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 부활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축복인 성령 내주, 성령 인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성령의 내주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 계획, 동기, 기준, 방법 등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내려놓아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원하고 있는 기도제목까지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때에 성령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내가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복음화 했던 비밀 중 비밀이 갈라디아서 2:20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내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려놓는 것이 바보입니다. 진짜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 모든 기준을 내려놓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동기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내 모든 것 내려놓는 것이 성령내주를 누리는 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누리기 위해서는 여러분 모든 일의 시작과 진행, 결론을 맺을 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고민하고 근심하면 됩니다. 고린도후서 4: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 근심은 결국 영육 간에 죽게 됩니다. 모든 문제, 사건, 일 앞에 진짜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맞는지 고민할 때 성령인도 받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빌립보서 1:10 말씀처럼 지극히 선한 것들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것에 급급해서 판단하지 마시고 멀리 내다보시고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근심하고 계속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문제와 사건 당하면 당장 하나님의 뜻과 인도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상관없이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22 보면 인간관계에서 승리하는 비밀을 말씀하시고 세계복음화하는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악을 이기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으라 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은 이러해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특별히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조금만 도와줘도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합니다. 어려울 때 어렵게 만들면 평생 원수가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는 중요한 답들을 말씀하시면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잘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나와 함께하는 이 사람을 위해서도 피 흘리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으로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는데 그러지 마시고 진짜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보면 성령 인도받게 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세계복음화 못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을 때 이유 없는 삶이 되고 말씀이 성취되는 삶, 전도가 되어지는 삶이 되고 질병까지 치유되는 증거를 주십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특별히 성령 충만함을 받기 이전과 이후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 성령의 역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력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 성령의 역사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와 사건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지만 반대로 악한 사단도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고 모든 일을 열심히 노력하되 배후에 성령의 역사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이 축복의 비밀들을 이번 한 주간 모든 현장에서 누리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전도자들에게 주신 중요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58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환경, 자신, 질병도 이기지 못하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이긴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 일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이 때 승리와 기쁨을 주시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한 주간 체험됨으로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3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22:23-33)
서론: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 후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는 다릅니다. 육신을 입고 제한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천사와 같이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고전15:42-44) 또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하나님, 지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1. 시대마다 부활 사건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1) 부활 사건만 무너뜨리면 다 무너지는 것이기에 사탄은 간계와 모략으로 공격합니다.
1) 군인들을 돈으로 회수(마28:13)하고, 정치적으로 군인 신변을 보호(마28:15)하며 부활을 은폐하려고 함
2) 역사적으로 합리주의, 이성주의와 같은 많은 사상과 학문 등으로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공격함
(2) 하지만 부활 사건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이기 때문에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어지는 은혜를 주신 것은, 이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임
2)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믿고 사탄 앞에 권세를 사용하면 됨
2. 예수님이 왜 부활하셨는가?
(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에 이미 예언 된 사건입니다.
1) 성경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임 (고전15:3-5)
2) 성경에 예언된 구원자의 자격 - 사탄을 이김, 사람의 몸 입음, 죄가 없음, 죽고 다시 살아야함
(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1)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① 선지자 -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이름
② 제사장 -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이름
③ 왕 - 지금도 멸망 길로 끌고 가는 사탄의 세력을 꺾어버린 유일한 이름
2)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신 완전한 축복임
3.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살아있는 하나님을 누리는 길)
(1) 성령의 내주를 체험해야 합니다.
내 계획, 기준, 방법, 동기, 심지어 기도제목 까지도 내려놓아야 함 (갈2:20)
(2) 성령의 인도를 체험해야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과 진행과 결론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고민하고 질문하면 됨 (고후4:7, 빌1:10)
(3) 성령의 충만을 체험해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세계복음화를 감당 (이유 있는 인생, 말씀의 성취, 치유의 역사, 되어지는 전도)
결론: [고전15:55-58]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며 자신조차 이길 수 없는 존재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도 생명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과 증거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승리와 기쁨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여 참된 승리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22:23~33)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22:23~3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처음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인사가 있습니다. “평안하냐?” 또 안식일날 저녁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있는 현장에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하고 말씀했습니다. 주님 주신 그 평강함으로, 편안함으로 옆의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평안하십시오! 예, 다시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할 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증인되십시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즉, 마태복음을 지금 같이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보고 있는 가운데서 오늘 때마침 부활주일에 맞이하게 된 본문이 23절부터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고요. 그래서 천사들이나 사단의 영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영혼은 사멸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부활에 대해서 믿고 잊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부활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24절부터 28절에 보면 신명기 25장 5절~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대 결혼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내용이 뭐냐 하면 맏이가 장가들었는데 아내가 아이가 없으면, 상속자가, 후사가 없으면, 후사 없이 맏이가 죽으면 그 아내는 둘째에게 가게 됩니다. 그리고 또 둘째도 후사가 없으면 그 다음 셋째에게 가게 되고. 그 이야기를 지금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이야기하면서 “일곱 아들까지 다 죽었는데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나중에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그런 질문이 오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사실 율법에 나와 있는 부분들 가지고 궤변론적인 그런 질문을 예수님 앞에 지금 사두개인들이 하고 있는 것이죠.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2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들의 지성과 경험을 가지고 성경을 오해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30절부터 부활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부활은 세상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30절에 보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은, 부활 이후의 삶을 이 땅에서의 삶의 틀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이후에는 천사와 같이 변화되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제한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천사와 같은 신령한 몸을 입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모두가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한 가족으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부활하면 육신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에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2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출애굽기 3장에 모세를 부르실 때에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도 살아 있고, 이삭도 살아 있고, 야곱도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실제적인 증명을 하고 있는, 실제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고 이삭을 축복하셨는데 한해 농사지은 것의 백배나 얻도록 하시고 아무리 샘을 양보해도 샘 근원을 얻는 축복을 누리게 되고 야곱을 변화시킨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실제적으로 지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체험하느냐? 그 부분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붙잡고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 시대마다 - 부활의 역사를 공격한 사단의 방해
먼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시대시대마다 악한 사단은 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부활의 역사를 공격해 왔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에 대한, 시대시대마다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공격들이 늘 있어왔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부활하신 사건이 믿어지고 이 사실이 붙잡아지게 될 때 거기에 사단의 역사들이 완전히 깨어지는 역사가 부활사건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하든 악한 사단은 이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모략과 궤계, 간계를 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대시대마다 늘 그러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고 난 이후에 바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빌라도에게 요청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 파수꾼을 파송해 달라, 그리고 황제의 도장으로 인봉을 찍어서 아무도 무덤을 열지 못하도록 해 달라 했어요. 빌라도에게 요청했어요. 파수꾼을 보내서 무덤을 지키도록.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해서 그렇게 했다고 했어요. 27장 63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힘을 합하여 빌라도에게 요청하는데 그 요청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했어요. 그게 27장 63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살아나리라한 이 말씀을 기억하여,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빌라도에게 파수꾼을 파송해서 무덤을 지킬 수 있도록 요청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무력과 권력을 통해서 부활을 막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1절부터 10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 20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활을 증거할 제자들로, 증인으로 파송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10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16절부터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말씀하시면서 그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파송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마태복음 28장을 죽 읽어 보면 그 사이에 11절부터 15절 말씀에 끼어 있는 말씀이 있어요. 대조해서 나오는 말씀인데 예수님은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파송했는데 여기에 대제사장들은 거짓사도, 군인들을 동원해서 이 부활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파송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12절에 이 군인들에게, 무엇을, 돈을 주며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15절에 보면 정치적인 힘으로 군인들의 신변을 보호해 줄 것을 이야기하죠. 그래서 그 당시 유대 사회에 퍼뜨려진 소식이 뭐냐 하면 13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시체 도난설이 전체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28장 1절에서 20절, 그 전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를 파송하는 반면에 대제사장들도 부활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파송했다는 이 부분들이 대조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늘 진리와 함께 비진리가 같이 공존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늘 진리와 함께 비진리가 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들의 힘과 권력을 통해서 부활을 막고자 하였으나 부활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그 부활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 땅에서 잠시잠간 비진리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결국은 진리가 이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저와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왜냐?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역사이기 때문에 아무도 막으려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 이 부활의 역사를 막으려고 시체 도난설을 만들어내서 결국 부활의 다른 소식들을 증거하도록 하셨다는 사실들을 증거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 부활의 역사는 누가 만드신 사건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사건이기에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1:3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 긍휼하심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역사 속에서도 이 부활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 사탄이 일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이 역사 속에 합리주의, 이성주의 같은 좋은 것들로 결국 부활의 신앙을 믿지 못하도록 공격해왔습니다. 인간의 합리와 이성으로는 부활을 믿을 수 없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한 번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적이 없고, 인간은 부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합리주의 적이고 이성주의적인 생각과 지식들을 인간에게 퍼뜨려가지고 진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인 이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게 사탄의 역사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폴 틸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인데 신학사상 속에서 자유주의의 거대한 한 획을 그었던 사람입니다. 책을 보니까, 이 분이 어느 날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열심히 강의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적의 역사를 안 믿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들을 다 빼버리고 성경을 읽습니다. 이분이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거짓이라는 명제를 전제로 해서 강의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연세 많으신 노인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답니다. 사과를 하나 꺼내더니 그 자리에서 아작아작 씹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가만히 앉아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는 자체만으로 주변의 시선을 다 집중케 합니다. 그런데 연세 있으신 이 분이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교수도 당황했습니다. 학생이 한참 강의를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과를 들고 먹고 있으니까. 그런데 사과를 거의 다 먹은 노인 이 분이 한참 강의를 하고 있던 박사님께 물었답니다. “제가 지금 먹은 이 사과가 달까요, 실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신 사과인지 단 사과인지 물었답니다. 갑작스럽게 사과를 먹고 단지 신지 물으니까 당황했습니다. 교수가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사과를 먹어보지 못해서 신지 단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이 노인이 한 마디 하고 앉았답니다. 그러자 그 자리의 신학생 모두가 웃었답니다. 그 말이 뭐냐고 하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신학교도 부활에 대해 안 믿는 곳이 있고요,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신학자들조차 부활에 대해서 안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합리주의 이성주의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부활이고, 또 믿어지는 것이 부활입니다. 차이가 뭐냐? 인간 편에서 보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믿어지는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으로서 부활이 믿어지는 이 자체가 은혜 중 은혜고 축복 중 축복입니다. 이 부활의 역사만 무너트리면 사탄이 승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지 이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의 전파하는 이 복음도 헛것이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은 어떻게 하던지 이 신분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도록, 또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완전히 깨트리신 그 승리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지금도 우리에게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눈들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왜 축복하느냐? 왜 축복하는지 아십니까? 이 땅에 모든 것 다 있지만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서 우리 성도들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 부활의 능력의 역사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일에 증인되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를 세우신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 이 약속 가지고 그 어떤 핍박과 환란까지도 승리하고 로마를 복음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이 부활의 역사들을 알게 하신 것은, 그리고 그 부활의 역사들이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믿음 주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이 한 시대에 유일한 부활의 증인되기 우해서 주신 축복인 줄 믿습니다.
왜 성도들이 힘이 없는 줄 아십니까? 부활에 대해서 안 믿기 때문입니다. 진짜 부활의 역사를 믿으면 지금 내 삶 속에 사탄 꺾을 수 있는 축복된 권세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 믿으니까 권세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 믿으니까 환경과 문제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놓쳐버리고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날 사탄의 궤계에 속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복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 사실이 믿어지는 그 은혜 가운데서 세상을 정복하는 귀한 증인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왜 예수님이 부활하셨는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낸 게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생겨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수백 년 수천 년 전부터 성경에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분명히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전15:3-5에 보면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성경대로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냥 우연히 생겨난 이야기가 아니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부활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사건도 부활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16, 22편, 사52-53장 전체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냥 누가 훌륭한 사람이 말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믿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기독교의 핵심적인 이 부분들은 반드시 성경대로 되어진 사실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하는가?
우리 인생의 문제는 경제, 건강, 자리, 직장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물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뿌리 뽑힌 나무가 살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 떠난 것 자체가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 세계에 저주와 재앙의 역사가 계속해서 물밀듯 밀려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것 같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숨겨놓고 있어서 그렇지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돈, 건강, 좋은 옷, 좋은 차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만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존재가 영혼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단섬기는 사람은 죽어서도 사단 마귀 가두는 지옥가운데 영원한 고통 받게 됩니다. 이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우리를 위해서 보내시사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니면 죄, 저주, 재앙을 해결할 수 없고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어떤 이 땅위의 종교에는 부활 사건이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부활 사건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차별하기 위해서 부활 사건을 만들어서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의 근본 문제, 영원한 죽음의 문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이루신 일이 부활 사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에게 이뤄진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나는 최고로 축복받은 사람임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32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다" 이 본문과 똑같은 부분이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마가복음에는 산 자의 하나님이라 누가복음에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20:36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살아있느니라" 귀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이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겠다 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 부활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축복인 성령 내주, 성령 인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성령의 내주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 계획, 동기, 기준, 방법 등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내려놓아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원하고 있는 기도제목까지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때에 성령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내가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복음화 했던 비밀 중 비밀이 갈라디아서 2:20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내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려놓는 것이 바보입니다. 진짜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 모든 기준을 내려놓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동기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내 모든 것 내려놓는 것이 성령내주를 누리는 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누리기 위해서는 여러분 모든 일의 시작과 진행, 결론을 맺을 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고민하고 근심하면 됩니다. 고린도후서 4: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 근심은 결국 영육 간에 죽게 됩니다. 모든 문제, 사건, 일 앞에 진짜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맞는지 고민할 때 성령인도 받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빌립보서 1:10 말씀처럼 지극히 선한 것들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것에 급급해서 판단하지 마시고 멀리 내다보시고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근심하고 계속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문제와 사건 당하면 당장 하나님의 뜻과 인도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상관없이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22 보면 인간관계에서 승리하는 비밀을 말씀하시고 세계복음화하는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악을 이기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고,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으라 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은 이러해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특별히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조금만 도와줘도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합니다. 어려울 때 어렵게 만들면 평생 원수가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는 중요한 답들을 말씀하시면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잘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나와 함께하는 이 사람을 위해서도 피 흘리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으로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가는데 그러지 마시고 진짜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보면 성령 인도받게 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세계복음화 못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을 때 이유 없는 삶이 되고 말씀이 성취되는 삶, 전도가 되어지는 삶이 되고 질병까지 치유되는 증거를 주십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특별히 성령 충만함을 받기 이전과 이후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 성령의 역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력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 성령의 역사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와 사건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지만 반대로 악한 사단도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고 모든 일을 열심히 노력하되 배후에 성령의 역사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이 축복의 비밀들을 이번 한 주간 모든 현장에서 누리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전도자들에게 주신 중요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58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환경, 자신, 질병도 이기지 못하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이긴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 일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이 때 승리와 기쁨을 주시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한 주간 체험됨으로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3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마22:23-33)
서론: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 후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는 다릅니다. 육신을 입고 제한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천사와 같이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고전15:42-44) 또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하나님, 지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1. 시대마다 부활 사건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1) 부활 사건만 무너뜨리면 다 무너지는 것이기에 사탄은 간계와 모략으로 공격합니다.
1) 군인들을 돈으로 회수(마28:13)하고, 정치적으로 군인 신변을 보호(마28:15)하며 부활을 은폐하려고 함
2) 역사적으로 합리주의, 이성주의와 같은 많은 사상과 학문 등으로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공격함
(2) 하지만 부활 사건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이기 때문에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어지는 은혜를 주신 것은, 이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임
2)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믿고 사탄 앞에 권세를 사용하면 됨
2. 예수님이 왜 부활하셨는가?
(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에 이미 예언 된 사건입니다.
1) 성경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임 (고전15:3-5)
2) 성경에 예언된 구원자의 자격 - 사탄을 이김, 사람의 몸 입음, 죄가 없음, 죽고 다시 살아야함
(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1)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① 선지자 -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이름
② 제사장 -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이름
③ 왕 - 지금도 멸망 길로 끌고 가는 사탄의 세력을 꺾어버린 유일한 이름
2)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신 완전한 축복임
3.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살아있는 하나님을 누리는 길)
(1) 성령의 내주를 체험해야 합니다.
내 계획, 기준, 방법, 동기, 심지어 기도제목 까지도 내려놓아야 함 (갈2:20)
(2) 성령의 인도를 체험해야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과 진행과 결론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고민하고 질문하면 됨 (고후4:7, 빌1:10)
(3) 성령의 충만을 체험해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세계복음화를 감당 (이유 있는 인생, 말씀의 성취, 치유의 역사, 되어지는 전도)
결론: [고전15:55-58]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며 자신조차 이길 수 없는 존재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도 생명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과 증거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승리와 기쁨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여 참된 승리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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