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되는 계명
2013-04-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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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첫째 되는 계명”
(마22:34~40)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슬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4~40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우리 찬양대 찬양 불렀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할렐루야!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연약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 사랑하시고 오늘도 그 사랑으로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셨고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의 응답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오늘도 마음껏 누리는 최고의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에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서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 앞에 논쟁하려고 부활에 대해서 질문을 했죠. 그런데 거기에 지혜로운 말로써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의 답변을 물리친 사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또 그 전주에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연합해서,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 되어서,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넘어뜨리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예수님께서 지혜로운 말로써 그들의 시험을 물리친 사건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난주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시험을 걸어 왔는데, 오늘은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들이 거기에 대한 답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마찬가지로 예수님 앞에 시험을 걸기 위해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데 그 질문이 정당한 질문이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고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질문만 제대로 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 아닌가?’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오늘 본문과 똑같은 본문이 마가복음 12장에 나와 있는데 마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붙였어요. 그게 뭐냐 하면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그렇게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만 제대로 해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바리새인들이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는데 그 시험이 뭐냐 하면 36절에 나오죠.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거기에 대한 대답이 37절부터 40절에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또한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계명과 선지자의 강령이 바로 ‘사랑’이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사람 사랑하는 것을 같은 대열에 놓고 말씀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한 하나님의 첫째 계명이 무엇이냐?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오늘 본문 3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한 번 따라합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렇습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네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지는 것이죠.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가 중심을 가지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을 가지고 사랑하게 되면 거기에서 행동이 나오게 되고 그 행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한다 할지라도 이 첫째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첫째 계명이 안 되면 백번, 천 번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외식에 불과한 것이고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말하는 그런 외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거짓된 사랑이 아니라, 형식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진짜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형식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바람에 교회에서 나오는 사랑이 어떻게 흘러갔느냐, 사회봉사로, 또 종교로 빠져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 좋은 것을 가지고 그것이 진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안 되어지니까 이게 종교가 되어서 좋은 것을 가지고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된 사실을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그냥 말로만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다해서 우리의 삶 전체가 연결되어지는 이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행이 있다면 이 사랑이 결핍되어진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불행도 여기에 있는 것이고 교회의 불행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만큼 사랑에 대해서 흔하게 말하는 시대가 없잖아요. 사랑이라는 말, 우리가 너무 쉽게 하고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한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노래도 있잖아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런 노래가 있는데 진짜 여러분,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정말 우리의 중심을 가지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가 쉽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보면 그렇게 사랑에 대해 많이 말을 하지만 세상은 점점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세의 특징이,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보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그렇게 말씀했고요, 디모데후서 3장에도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뭐냐 하면 엉뚱한 것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기는 하되 엉뚱한 것을 사랑하고요, 또 가면 갈수록 정말로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에 이 땅에 문제들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할 때에 사랑은 어떤 사랑을 말하느냐? 친구간의 사랑도 있고, 또 이성간의 사랑, 또 부부간의 사랑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요, 그것을 뛰어넘어서 바로 생명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그 사랑 때문에 자녀들을 부모들이 다 용납하고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부모 된 입장에서 다 수용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잖아요.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무리 빗나간다 할지라도 부모는 오히려 빗나가는 자녀들을 위해서 더 기도하고, 그게 부모의 심정 아닙니까? 그만큼 사랑이 더욱더 연약한 자녀들에게 행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을 뛰어넘어서 생명 관계 속에서 오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께서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십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을 전제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십계명, 두 계명, 크게 두 가지로 나오죠. 하나님에 대한 것과 사람에 대한 것이 나오는데 출애굽기 20장에 나오고 신명기 5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신명기 5장 6절, 또 출애굽기 20장 2절에 보면 하나님에 대한 계명 1계명에서 5계명, 사람에 대한 계명 6계명에서 10계명을 말씀하기 이전에 그것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생명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라야 참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들이 풀리게 되어 있어요. 이것도 안 되면 전부 다 거짓이 되는 것이고 전부 다 외식이 되는 것이고, 결국 이것이 안 되어 가지고 고통과 괴로움만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에서 오는 이 축복의 비밀을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명 관계가 이루어졌을 때에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여기에 연결되는 이 바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성도님들을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주의 종들을 정말로 좋아하십니까? 생명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게 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된 응답이 따라오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을까? 두 가지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 함
먼저 첫째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 받았다 할 때 구원이 무엇입니까? 죄와 저주와 재앙과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해방되는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롬8:2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합니다. 내 개인이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죄로 말미암은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 합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행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할 때, 모든 문제와 사건과 일들 당할 때, 거기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야 합니다. 그게 구원 받은 겁니다.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롬10:13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 구원 속에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다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 이게 나와야 합니다. 그게 바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특히 구원 받았다 할 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생명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들로 부르셔서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생명관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15-17에 보면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과의 생명관계가 이루어졌다면, 우리 안에 저절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아들이라고 자녀라고 부르시며,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자녀의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여러분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고백이 되십니까?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 받지 못하고 생명관계에 있지 않으면 아버지라고 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한 번 받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기도할 때마다 많은 기도제목 가지고 있다가도 너무 답답한 일들 당하면 기도제목보다 그냥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주여!”라고 합니다. 너무 편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너무나 평안함이 내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감싸주시는 것 같은 그런 역사들을 느낍니다. 생명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아버지가 아닌데 어떻게 아버지라고 합니까. 학생들, 렘넌트들이 길 가는 아저씨를 보고 아버지라고 한다면, 아버지라고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보고 ‘이게 돌았나?’라고 할 겁니다. 진짜 생명관계에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 우리가 구하지 못한 것 까지도 다 아시고 응답하시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을 누리는 길이 생명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때 저절로 나옵니다. 애쓰지 않아도 나오는 것입니다.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죠. 힘들고 어렵고 앞이 안보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아버지로 다가오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특별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주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잖아요. 그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더불어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흑암이 꺾이고, 그 이름으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지금도 왕, 제사장,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축복이요, 생명 가진 자의 축복입니다. 늘 항상 이 구원의 확신들을 회복하고 늘 항상 확인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내가 생명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 된 이 구원의 축복은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2:8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내 노력과 지식과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니 이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내가 구원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흔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 될 때는 구원 받은 거 같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구원 안 받은 것 같고, 뭔가 잘 될 때는 천국 삶을 누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지옥 삶을 누립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흔들리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선물로 주신 거니까 감각이 없이 멍하게 살아가는 게 많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었다면, 돈을 한 십 억, 일 억 주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 가치를 깨달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니까 여기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어떨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어떨 때는 구원 받지 못한 것 같고, 늘 흔들립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방언하게 했잖아요. 왜냐? 그나마 방언을 하게 되면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구원의 역사는 비록 감각이 없고 느낌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영접했다면 하나님의 자녀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고 하며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구원 받은 증거 중 증거입니다. 믿습니까?
특별히 무엇보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왔다는 건,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가 맞습니다. 생명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올래야 올 수도 없습니다. 지금 신앙생활 잘 인도 받고 계신 어떤 분이 예수를 영접하고 이제 남은 생을 신앙생활 잘 하고 인도 받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데, 교회 오는 첫 날에 교회 마당에서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습니다. 매번 교회에 오기로 결단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사고가 일어나고 어려움을 당하고, 한동안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믿는 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요즘 너무나 인도를 잘 받으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생명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악한 사탄이 교회에 가지 못하도록 막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신을 받고 무당하다 돌아오신 분이 계시잖아요. 이분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 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예수 영접하고 교회에 오는 주일마다 너무 힘들고 시달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살아있다면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명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요6:44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이 자리는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서 온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축복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생명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맞기 때문에 흔들리지 마시고 구원의 확신 가져도 됩니다. 주일날 한번 빠지면 불안해하고 한 달에 한번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주어지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내게 이뤄진 구원의 역사들이 확인 되어지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이 확인 되어지는 만큼 저주와 멸망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저주와 멸망가운데 있는 사람을 볼 때 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저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웃을 향해 기도해주게 되고,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하게 됩니다. 한 주간 생명관계 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을 누림으로 모든 관계 속에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을 찾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원의 체험이 되어야 함
구원의 확신이 왔다면 구원의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체험이라 하면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굳이 체험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구원의 체험은 다른 말이 아니라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에 대한 체험이 되어져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주동안 날마다 성취하시는 사실을 보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뿌리내리게 됩니다. 나무에 물을 주고 빛을 주고 바람이 불 때 굵은 뿌리와 잔뿌리가 땅에 협착되어 더욱 뿌리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문제, 사건 때마다 하나님 영광 속에 점점 뿌리내리는 응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 듣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고, 우리 영혼 속에 뿌리내려지고, 우리 삶속에 체험되어지는 것을 보고 구원의 체험이 되어진다고 합니다. 전도가 된다 안된다고 하는 배경은 말씀에 대한 뿌리, 복음에 대한 뿌리가 얼마나 내려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의 성취를 맛보지 못하면 교회 와서도 이런 저런 부분들 때문에 시험 들어 불평하게 됩니다. 말씀의 성취를 정말 아는 사람은 주일 말씀이 기다려 \집니다. 그 말씀이 기다려지는 사람은 한 주간 현장에서 분명히 말씀대로 인도받음으로 속지 않고 승리하는 응답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예배시간이 늘 기다려집니다. 주일날 받은 말씀 붙잡고 현장에 들어가니까 말씀대로 현장이 보여지고 속지 않고 말씀 성취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수요예배, 금요 전도학교 드리면 또 기대가 되어집니다." 응답받는 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들려지려면 영적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가슴에 담겨있지 않으면 보통 문을 나가는 순간 까먹습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뿌리내리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 말씀이 담기고 기도제목이 되어지고 내 안에 잘못 각인된 부분들이 말씀으로 치유되어지면서 삶이 변화되는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예배 성공한다는 것이 모든 것입니다. 예배 성공이 신앙생활의 성공, 인생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취를 맛보고 말씀을 기다리는 삶이 예배성공입니다. 여기에 모든 축복이 따라오게 됩니다. 진짜 예배를 기다리는 사람, 말씀의 성취를 현장에서 맛보는 사람은 예배드리는 자세도 다릅니다. 진짜 예배의 가치를 알면 늦을 일이 없습니다. 말씀의 성취를 알면 예배의 귀중함을 알기에 자세가 달라지게 됩니다. 또 생명을 걸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워낙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주무시는 분이 없는데 진짜 말씀이 기다려지면 눈이 반짝거리게 됩니다. 렘넌트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예배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전화를 받기 위해서 뛰쳐나가는 것은 예배드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1시간 예배 집중 속에 현장의 승리하는 비밀이 있음을 알면 자세가 달라집니다. 정말 회복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구원에 대한 체험, 말씀에 대한 뿌리입니다. 이 때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일 강단 말씀을 새벽예배, 지역다락방, 수요예배, 각 현장 모임 때 마다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속에 뿌리내려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때 모든 축복이 따라오기 때문에 주의 종, 사역자들이 주일 강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녹취가 매주 바로 나오는 이유가 말씀 성취를 현장을 통해서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뿌리 내리고 체험할수록 이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되어집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되어집니다. 가족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니까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파마나 갔을 때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이 파나마 현지에 있으면 강단을 듣지 못하니까 하나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녹취된 것을 뽑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유를 여쭤봤더니 하나교회 강단에서 나온 메시지를 오늘 확인하고 붙잡아야 한국 하나교회에 있는 성도들과 기도가 소통되고 구역식구들과 소통된다고 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을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 주간 주신 말씀가지고 어떤 자리에서든 포럼 합니다. 또 조용히 계신 분들에게는 가서 말씀으로 돕습니다. 그것이 힘과 능력으로 나타나 삶과 생각을 바꾸는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짜 구원에 대한 체험, 말씀에 뿌리내리는 만큼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지고 가정, 자녀, 산업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능력이 그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과 뜻과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모든 축복의 응답이 일어나게 됩니다. 진짜 중심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뿌리. 복음에 대한 뿌리가 우리에게 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뿌리내려진 정도가 아니라 첫 번째 계명인 "사랑합니다" 고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들, 연약한 자들을 볼 때 마다 기도가 나오고 귀중하고 사랑스럽고 이유 없이 좋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정말 내가 교회가 좋은지, 교회가 사랑스러운지, 옆에 있는 성도와 주의 종들이 사랑스러운지' 자신들을 점검해보시고 그렇지 않다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생명관계를 누림으로 말씀이 들려지게 되고, 말씀이 들려지는 만큼 우리 가운데 뿌리내려지고, 뿌리내려지는 만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도 이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는 구호에 불가합니다. 또 이 비밀을 회복하지 않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생활 자체가 피곤해집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정, 이웃, 인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과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한주간 아니 평생에 생명관계를 날마다 누림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 서시고 그 가운데 말씀이 들려짐으로 말미암아 영혼 깊숙이 뿌리내려져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013년 4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첫째 되는 계명
(마22:34-40)
서론: 하나님의 첫째 되는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결과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랑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성경은 말세에 점점 사랑이 식을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생명관계에서 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관계에서 오는 축복(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함
(1) 구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1) 죄와 저주, 사탄의 운명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만 주어짐(행4:12)
2) 구원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생명관계(아버지라 부를 수 있음)가 된 것임(롬8:15-16)
(2) 내가 하나님과 생명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1)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과 능력이자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이루어진 것임(엡2:8)
2) 하나님을 아버지라 말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온 것이 모두 구원의 증거임(요6:44)
(3)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구원의 체험이 되어야 함
(1) 구원에 대한 체험은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1) 주일 강단말씀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면 복음이 뿌리를 내리게 됨
2) 복음이 뿌리내리는 만큼 말씀이 마음에 담기고 각인된 게 치유되며 삶이 변화됨
(2) 그러기에 말씀을 받는 예배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생명을 거십시오.
1) 말씀의 성취를 체험하면 예배가 기다려지고 예배를 드리는 자세 또한 달라짐
2)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말씀 잡고 기도하게 되면 그 속에서 능력이 나타남 (가정, 직장)
(3) 말씀에 뿌리내리는 만큼(구원의 체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1) 삶과 생각을 바꾸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능력이 나타남
2) 주의 종과 성도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어렵고 힘든 일도 없어짐
3) 참된 사랑이 우리의 이웃에게 연결되어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도 성취됨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 다음 사람(가정, 이웃, 인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도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관계를 날마다 누림으로 ¹구원의 확신 속에 서 있으시길 바랍니다. 또 생명관계를 누림으로 ²말씀이 들려지고 영혼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길 바랍니다. 한주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되는 계명”
(마22:34~40)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슬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4~40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우리 찬양대 찬양 불렀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할렐루야!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연약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 사랑하시고 오늘도 그 사랑으로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셨고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의 응답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오늘도 마음껏 누리는 최고의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에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서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 앞에 논쟁하려고 부활에 대해서 질문을 했죠. 그런데 거기에 지혜로운 말로써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의 답변을 물리친 사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또 그 전주에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연합해서,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 되어서,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넘어뜨리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예수님께서 지혜로운 말로써 그들의 시험을 물리친 사건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난주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시험을 걸어 왔는데, 오늘은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들이 거기에 대한 답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마찬가지로 예수님 앞에 시험을 걸기 위해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데 그 질문이 정당한 질문이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고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질문만 제대로 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 아닌가?’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오늘 본문과 똑같은 본문이 마가복음 12장에 나와 있는데 마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붙였어요. 그게 뭐냐 하면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그렇게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만 제대로 해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바리새인들이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는데 그 시험이 뭐냐 하면 36절에 나오죠.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거기에 대한 대답이 37절부터 40절에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또한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계명과 선지자의 강령이 바로 ‘사랑’이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사람 사랑하는 것을 같은 대열에 놓고 말씀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한 하나님의 첫째 계명이 무엇이냐?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오늘 본문 3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한 번 따라합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렇습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네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지는 것이죠.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가 중심을 가지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을 가지고 사랑하게 되면 거기에서 행동이 나오게 되고 그 행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한다 할지라도 이 첫째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첫째 계명이 안 되면 백번, 천 번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외식에 불과한 것이고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말하는 그런 외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거짓된 사랑이 아니라, 형식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진짜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형식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바람에 교회에서 나오는 사랑이 어떻게 흘러갔느냐, 사회봉사로, 또 종교로 빠져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 좋은 것을 가지고 그것이 진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안 되어지니까 이게 종교가 되어서 좋은 것을 가지고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된 사실을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그냥 말로만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다해서 우리의 삶 전체가 연결되어지는 이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행이 있다면 이 사랑이 결핍되어진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불행도 여기에 있는 것이고 교회의 불행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만큼 사랑에 대해서 흔하게 말하는 시대가 없잖아요. 사랑이라는 말, 우리가 너무 쉽게 하고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한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노래도 있잖아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런 노래가 있는데 진짜 여러분,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정말 우리의 중심을 가지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가 쉽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보면 그렇게 사랑에 대해 많이 말을 하지만 세상은 점점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세의 특징이,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보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그렇게 말씀했고요, 디모데후서 3장에도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뭐냐 하면 엉뚱한 것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기는 하되 엉뚱한 것을 사랑하고요, 또 가면 갈수록 정말로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에 이 땅에 문제들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할 때에 사랑은 어떤 사랑을 말하느냐? 친구간의 사랑도 있고, 또 이성간의 사랑, 또 부부간의 사랑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요, 그것을 뛰어넘어서 바로 생명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그 사랑 때문에 자녀들을 부모들이 다 용납하고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부모 된 입장에서 다 수용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잖아요.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무리 빗나간다 할지라도 부모는 오히려 빗나가는 자녀들을 위해서 더 기도하고, 그게 부모의 심정 아닙니까? 그만큼 사랑이 더욱더 연약한 자녀들에게 행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을 뛰어넘어서 생명 관계 속에서 오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께서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십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을 전제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십계명, 두 계명, 크게 두 가지로 나오죠. 하나님에 대한 것과 사람에 대한 것이 나오는데 출애굽기 20장에 나오고 신명기 5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신명기 5장 6절, 또 출애굽기 20장 2절에 보면 하나님에 대한 계명 1계명에서 5계명, 사람에 대한 계명 6계명에서 10계명을 말씀하기 이전에 그것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생명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라야 참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들이 풀리게 되어 있어요. 이것도 안 되면 전부 다 거짓이 되는 것이고 전부 다 외식이 되는 것이고, 결국 이것이 안 되어 가지고 고통과 괴로움만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에서 오는 이 축복의 비밀을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명 관계가 이루어졌을 때에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여기에 연결되는 이 바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성도님들을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주의 종들을 정말로 좋아하십니까? 생명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게 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된 응답이 따라오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을까? 두 가지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 함
먼저 첫째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 받았다 할 때 구원이 무엇입니까? 죄와 저주와 재앙과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해방되는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롬8:2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합니다. 내 개인이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죄로 말미암은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 합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행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할 때, 모든 문제와 사건과 일들 당할 때, 거기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야 합니다. 그게 구원 받은 겁니다.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롬10:13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 구원 속에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다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 이게 나와야 합니다. 그게 바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특히 구원 받았다 할 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생명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들로 부르셔서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생명관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15-17에 보면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과의 생명관계가 이루어졌다면, 우리 안에 저절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아들이라고 자녀라고 부르시며,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자녀의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여러분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고백이 되십니까?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 받지 못하고 생명관계에 있지 않으면 아버지라고 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한 번 받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기도할 때마다 많은 기도제목 가지고 있다가도 너무 답답한 일들 당하면 기도제목보다 그냥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주여!”라고 합니다. 너무 편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너무나 평안함이 내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감싸주시는 것 같은 그런 역사들을 느낍니다. 생명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아버지가 아닌데 어떻게 아버지라고 합니까. 학생들, 렘넌트들이 길 가는 아저씨를 보고 아버지라고 한다면, 아버지라고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보고 ‘이게 돌았나?’라고 할 겁니다. 진짜 생명관계에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 우리가 구하지 못한 것 까지도 다 아시고 응답하시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을 누리는 길이 생명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때 저절로 나옵니다. 애쓰지 않아도 나오는 것입니다.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죠. 힘들고 어렵고 앞이 안보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아버지로 다가오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특별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주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잖아요. 그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더불어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흑암이 꺾이고, 그 이름으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지금도 왕, 제사장,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축복이요, 생명 가진 자의 축복입니다. 늘 항상 이 구원의 확신들을 회복하고 늘 항상 확인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내가 생명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 된 이 구원의 축복은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2:8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내 노력과 지식과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니 이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내가 구원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흔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 될 때는 구원 받은 거 같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구원 안 받은 것 같고, 뭔가 잘 될 때는 천국 삶을 누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지옥 삶을 누립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흔들리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선물로 주신 거니까 감각이 없이 멍하게 살아가는 게 많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었다면, 돈을 한 십 억, 일 억 주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 가치를 깨달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니까 여기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어떨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어떨 때는 구원 받지 못한 것 같고, 늘 흔들립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방언하게 했잖아요. 왜냐? 그나마 방언을 하게 되면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구원의 역사는 비록 감각이 없고 느낌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영접했다면 하나님의 자녀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고 하며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구원 받은 증거 중 증거입니다. 믿습니까?
특별히 무엇보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왔다는 건,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가 맞습니다. 생명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올래야 올 수도 없습니다. 지금 신앙생활 잘 인도 받고 계신 어떤 분이 예수를 영접하고 이제 남은 생을 신앙생활 잘 하고 인도 받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데, 교회 오는 첫 날에 교회 마당에서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습니다. 매번 교회에 오기로 결단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사고가 일어나고 어려움을 당하고, 한동안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믿는 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요즘 너무나 인도를 잘 받으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생명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악한 사탄이 교회에 가지 못하도록 막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신을 받고 무당하다 돌아오신 분이 계시잖아요. 이분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 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예수 영접하고 교회에 오는 주일마다 너무 힘들고 시달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살아있다면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명관계에 있지 않고서는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요6:44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이 자리는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서 온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축복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생명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맞기 때문에 흔들리지 마시고 구원의 확신 가져도 됩니다. 주일날 한번 빠지면 불안해하고 한 달에 한번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주어지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내게 이뤄진 구원의 역사들이 확인 되어지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이 확인 되어지는 만큼 저주와 멸망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저주와 멸망가운데 있는 사람을 볼 때 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저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웃을 향해 기도해주게 되고,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하게 됩니다. 한 주간 생명관계 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을 누림으로 모든 관계 속에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을 찾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원의 체험이 되어야 함
구원의 확신이 왔다면 구원의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체험이라 하면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굳이 체험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구원의 체험은 다른 말이 아니라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에 대한 체험이 되어져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주동안 날마다 성취하시는 사실을 보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뿌리내리게 됩니다. 나무에 물을 주고 빛을 주고 바람이 불 때 굵은 뿌리와 잔뿌리가 땅에 협착되어 더욱 뿌리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문제, 사건 때마다 하나님 영광 속에 점점 뿌리내리는 응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 듣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고, 우리 영혼 속에 뿌리내려지고, 우리 삶속에 체험되어지는 것을 보고 구원의 체험이 되어진다고 합니다. 전도가 된다 안된다고 하는 배경은 말씀에 대한 뿌리, 복음에 대한 뿌리가 얼마나 내려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의 성취를 맛보지 못하면 교회 와서도 이런 저런 부분들 때문에 시험 들어 불평하게 됩니다. 말씀의 성취를 정말 아는 사람은 주일 말씀이 기다려 \집니다. 그 말씀이 기다려지는 사람은 한 주간 현장에서 분명히 말씀대로 인도받음으로 속지 않고 승리하는 응답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예배시간이 늘 기다려집니다. 주일날 받은 말씀 붙잡고 현장에 들어가니까 말씀대로 현장이 보여지고 속지 않고 말씀 성취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수요예배, 금요 전도학교 드리면 또 기대가 되어집니다." 응답받는 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들려지려면 영적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가슴에 담겨있지 않으면 보통 문을 나가는 순간 까먹습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뿌리내리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 말씀이 담기고 기도제목이 되어지고 내 안에 잘못 각인된 부분들이 말씀으로 치유되어지면서 삶이 변화되는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예배 성공한다는 것이 모든 것입니다. 예배 성공이 신앙생활의 성공, 인생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취를 맛보고 말씀을 기다리는 삶이 예배성공입니다. 여기에 모든 축복이 따라오게 됩니다. 진짜 예배를 기다리는 사람, 말씀의 성취를 현장에서 맛보는 사람은 예배드리는 자세도 다릅니다. 진짜 예배의 가치를 알면 늦을 일이 없습니다. 말씀의 성취를 알면 예배의 귀중함을 알기에 자세가 달라지게 됩니다. 또 생명을 걸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워낙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주무시는 분이 없는데 진짜 말씀이 기다려지면 눈이 반짝거리게 됩니다. 렘넌트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예배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전화를 받기 위해서 뛰쳐나가는 것은 예배드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1시간 예배 집중 속에 현장의 승리하는 비밀이 있음을 알면 자세가 달라집니다. 정말 회복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구원에 대한 체험, 말씀에 대한 뿌리입니다. 이 때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일 강단 말씀을 새벽예배, 지역다락방, 수요예배, 각 현장 모임 때 마다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속에 뿌리내려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때 모든 축복이 따라오기 때문에 주의 종, 사역자들이 주일 강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녹취가 매주 바로 나오는 이유가 말씀 성취를 현장을 통해서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뿌리 내리고 체험할수록 이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되어집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되어집니다. 가족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니까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파마나 갔을 때 선교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이 파나마 현지에 있으면 강단을 듣지 못하니까 하나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녹취된 것을 뽑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유를 여쭤봤더니 하나교회 강단에서 나온 메시지를 오늘 확인하고 붙잡아야 한국 하나교회에 있는 성도들과 기도가 소통되고 구역식구들과 소통된다고 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을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 주간 주신 말씀가지고 어떤 자리에서든 포럼 합니다. 또 조용히 계신 분들에게는 가서 말씀으로 돕습니다. 그것이 힘과 능력으로 나타나 삶과 생각을 바꾸는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짜 구원에 대한 체험, 말씀에 뿌리내리는 만큼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지고 가정, 자녀, 산업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능력이 그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과 뜻과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모든 축복의 응답이 일어나게 됩니다. 진짜 중심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뿌리. 복음에 대한 뿌리가 우리에게 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뿌리내려진 정도가 아니라 첫 번째 계명인 "사랑합니다" 고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들, 연약한 자들을 볼 때 마다 기도가 나오고 귀중하고 사랑스럽고 이유 없이 좋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정말 내가 교회가 좋은지, 교회가 사랑스러운지, 옆에 있는 성도와 주의 종들이 사랑스러운지' 자신들을 점검해보시고 그렇지 않다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생명관계를 누림으로 말씀이 들려지게 되고, 말씀이 들려지는 만큼 우리 가운데 뿌리내려지고, 뿌리내려지는 만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도 이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는 구호에 불가합니다. 또 이 비밀을 회복하지 않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생활 자체가 피곤해집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정, 이웃, 인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과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한주간 아니 평생에 생명관계를 날마다 누림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 서시고 그 가운데 말씀이 들려짐으로 말미암아 영혼 깊숙이 뿌리내려져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013년 4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첫째 되는 계명
(마22:34-40)
서론: 하나님의 첫째 되는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결과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랑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성경은 말세에 점점 사랑이 식을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생명관계에서 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관계에서 오는 축복(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함
(1) 구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1) 죄와 저주, 사탄의 운명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만 주어짐(행4:12)
2) 구원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생명관계(아버지라 부를 수 있음)가 된 것임(롬8:15-16)
(2) 내가 하나님과 생명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1)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과 능력이자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이루어진 것임(엡2:8)
2) 하나님을 아버지라 말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온 것이 모두 구원의 증거임(요6:44)
(3)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구원의 체험이 되어야 함
(1) 구원에 대한 체험은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1) 주일 강단말씀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면 복음이 뿌리를 내리게 됨
2) 복음이 뿌리내리는 만큼 말씀이 마음에 담기고 각인된 게 치유되며 삶이 변화됨
(2) 그러기에 말씀을 받는 예배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생명을 거십시오.
1) 말씀의 성취를 체험하면 예배가 기다려지고 예배를 드리는 자세 또한 달라짐
2)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말씀 잡고 기도하게 되면 그 속에서 능력이 나타남 (가정, 직장)
(3) 말씀에 뿌리내리는 만큼(구원의 체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1) 삶과 생각을 바꾸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능력이 나타남
2) 주의 종과 성도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어렵고 힘든 일도 없어짐
3) 참된 사랑이 우리의 이웃에게 연결되어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도 성취됨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 다음 사람(가정, 이웃, 인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도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관계를 날마다 누림으로 ¹구원의 확신 속에 서 있으시길 바랍니다. 또 생명관계를 누림으로 ²말씀이 들려지고 영혼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길 바랍니다. 한주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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