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제자의 결산
2013-12-2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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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제자의 결산”
(행9:36~42)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행9:36~4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2013년 마지막 주일, 우리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까지 주님의 은혜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시간시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셨고 또 그 은혜가 주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최고의 그 축복된 은혜, 예비된 은혜를 찾아 누리는 귀하고 복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전도제자의 결산’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013년 마지막 주일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 대한 부분을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결산해야 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고 제목을 ‘전도제자의 결산’으로 잡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반드시 결산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진짜 실제적인 성령의 힘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누리고 있는가입니다. 실제적인 성령의 그 힘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누리고 있는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여러분이 이 해가 가기 전에 결산해야 할 부분입니다. 지금 많은 종교들이 상상 외로 실제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사람들이 어렵고 힘이 드니까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가지고 산 속으로 불러 들이고 있고, 또 템플 스테이(temple stay) 같은 것들을 통해서 초월하는 힘들을 가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또 마약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 연예인들이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타락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또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집중하면 엄청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스도 없이, 결국은 초능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많은 역사를 일으키는데, 결국은 영적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종교들이 실제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는데, 이런 세상 현장 속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이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성령충만함입니다. 무아지경에 이르지 않고 초능력에 이르지 않아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 능력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성령 충만함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시시한 것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 가장 필요한 것, 그리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성령의 실제적인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실제적인 축복, 충만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느냐? 실제적으로 누리고 있느냐? 이 부분에 대해 여러분,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결산해야 합니다.
왜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가 확인하고 결산해야 하느냐? 여러분, 믿음이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 믿음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소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신앙 생활에 승리했던 사람들을,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 가지고 승리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게 히브리서 11장에 증인들을 세워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하면서 믿음으로 신앙 생활에 승리했던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하고 열심히 산다 할지라도, 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대단한 역사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반드시 실패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했습니다.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실상이 뭐냐? 믿음입니다. 증거가 뭐냐?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가지게 될 때 분명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데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그 믿음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데 여러분, 우리가 한 해를 지나면서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단했던 것들, 당장 응답이 없다고 보일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역사, 구원받은 뒤에 그 믿음의 역사들을 우리가 어떻게 유지하느냐? 그 믿음의 역사를 유지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저와 여러분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할 것, 결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정말로 성령충만함 속에 있었는가입니다.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게 되면 담대함이 나오게 됩니다. 성령충만함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만 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많은 열매들이 맺혀질 뿐만 아니라 결국 성령충만함 속에서 세상을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이 한 해도 이틀 남았지 않습니까? 오늘 지나고 내일 모레가 지나면 이 한 해는 또 역사 속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사라진다 할지라도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 받기 위해 몸부림쳤고 믿음의 역사 가운데 선택했던 것들은 두고두고 열매가 오는 줄 아시고 이제까지 믿음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다 할지라도 오늘 이 시간 믿음 회복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령 내주, 함께, 충만
그러면 오늘 본문은 사실은 성령충만함 가운데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병들어 죽은 다비다가 베드로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본문을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었습니다만, 이 본문은 성령충만함 속에서 일어난 역사인데 이 성령의 충만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함께하심,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 또 함께하심, 또 충만함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함께하심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내주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내주하심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상태, 그것이 바로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내주가 어떤 상태이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상태, 그걸 가지고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성전삼고 계시는 것, 그 상태를 가지고 성령의 내주라고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의 내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함께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내주와 함께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 성령의 함께하심인데 성령의 함께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함께하심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성령의 함께하심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이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을 성령의 함께하심이라고 말씀했는데 그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함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내 안에 하나님이 사는 것을 가지고 성령의 충만함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심지어 내 생각, 내 감정마저도 주님 안에서 조절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특별히 나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관념과, 내 사상들,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성령의 충만한 삶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생활과 성령의 충만함의 삶은 다르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종교생활은 뭐냐?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필요한 일에 “하나님 도와 주십시요” 하고 기도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의 기도가 그런 기도가 아닙니까? 주님이 내 주인이라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마음의 주인은 나요, 나예요.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살아가는데 이것 필요하고, 저것 필요하니 하나님 이것 채워주시옵소서. 저것 채워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 유익을 위해서..그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한 삶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믿고 그 속에 들어가서 100% 주님을 의존하고 100% 주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면서 성령의 이끌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삶. 내가 하나님을 끌고 다니는 삶이 아니고 내가 완전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가서 100% 그를 의존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그분의 이끌림을 받는 삶. 그게 바로 성령의 충만함의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의 비유를 잘 설명한 것이 에베소 성경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술 취함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옛날 술 드신 분들 술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술 취한 그 기분으로 살아 가쟎아요. 성령 충만함을 거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완전히 그 분의 역사 속에 들어가서 그 분을 의존하면서 그 분에게 이끌려서 살아가는 삶. 그게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시면 다비다가 죽었다 살아났으니까..대단하다. 그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사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니까 다비다의 생각과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전도와 함께 복음이 증거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42절에 보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더라.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복음이 증거 되어지고, 전도가되어지는 역사와 함께 그런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죽은 사람도 살아나는 역사 그리고 온 지역이 성령 충만한 이 역사 가운데에서 바뀌어지는 이런 응답의 역사들이 일어났더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면 필요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한 지역이 순식간에 바뀌어지는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 속에 들어가면 되느냐? 기적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정확하게 인도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기도하면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게 되어 있는 것이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길들을 정확하게 인도하시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참된 기쁨과 참된 평안과 확신을 주시고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서? 성령충만함 속에서 ....
여러분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한해 마지막 마무리 하시면서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시는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현장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현장에 가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나가게 될 때에 그 현장에 필요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때문에 종교재판 가운데 섰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시대적인 메시지가 선포되어집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니라 ” 시대적인 메시지가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메시지 였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성령 충만함 가운데서 순교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 모습을 의사 누가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돌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이 천사와 같을 수가 있습니까? 이 말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충만함 가운데 그 유대인들에게 정확한 복음들을 선포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도 보면 아나니아가 성령충만함 가운데 한 지역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시대적인 일꾼 사울을 돌아오게 하셨고,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8년동안이나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사람에게 성령충만한 가운데 일어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고요.
오늘 본문에 보면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죽었다 살아났으니까 대단하다..거기에 우리의 모든 시선이 있는데 죽으면 안 되는 시간표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비다를 살리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필요하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 현장에 성령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못 이루실 역사가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주여 성령충만함을 주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면 살리실 것을 약속하고 있고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역사가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여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할 때에 역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우리가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걸음 속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제의 역사와 똑같은 오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역사와 완전 180도 다른 오늘의 새로운 은혜의 역사, 응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홍해가 계속 진행되어 오다가 끊겼습니까? 아니잖아요. 한순간에 멈추었습니다. 그 강대국 바벨론이 무너지고 앗수르가 무너지고 애굽이 무너졌습니다. 한 순간에 무너진 거예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제와 180도 완전 다른 오늘,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응답의 역사가 성령 충만함 속에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실패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어제 가운데 문제 있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일으킬지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그마한 일이라 할지라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그 적은 일이 적은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큰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여러분,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작은일 가지고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오병이어를 보세요. 한 소년이 가지고 있는 오병이어 가지고 얼마나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가난한 초대교회가 세계를 복음화 했어요. 무식하고 아무 배경 없는 갈릴리 사람들이 세계복음화 했습니다. ‘가진 것 없다고, 내가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아닙니다. 내가 언약 속에 들어가면,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작은 것과 가진 것 없는 그것도 하나님이 크게 쓰신다는 사실. 왜냐, 여러분, 이 땅에 언약만큼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큰 것을 가지고 ‘그릇이 커야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 아니냐, 넓은 인격을 가져야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적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갈 때 큰 것으로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 왜냐, 언약 그 자체가 큰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환경들, 배경들 가지고 원망하고 그것 가지고 주저앉아있지 마시고요. 정말로 우리는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그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언약이 큰 만큼 우리의 적은 것도 크게 쓰임 받게 되어진다는 사실이에요.
오늘 본문에 다비다가 바느질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사실은 다비다가 성령 충만함 가운데서 자기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 치유 받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비다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 울었습니다. 속옷과 겉옷을 보이면서 울었잖아요. 이 말은 다비다가 자기 자신이 복음으로 치유 받고 참된 답을 가지고 만남의 축복 가운데서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다비다를 살리셨어요. 왜냐? 성령 충만함 가운데 죽을 시간표가 아니기 때문에 다비다를 살리셨어요. 그리고 다비다가 한 작은 일을 가지고 하나님은 큰 증거의 역사를 나타냈는데 그것 가지고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어지는 그 축복된 증거의 역사를 나타냈다는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다비다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36절에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으니.” 무슨 말입니까? 복음과 함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어요. 일이 크고 적고가 아니에요. 일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의 모든 삶은 다 중요한 것이고, 언약 안에 있는 적고 큰일들은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현장을 살리는 전도제자예요. 오늘 다비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으니.” 무슨 말입니까? 이 다비다라는 여제자는 현장에 복음가진 영적인 대사로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영적인 대사로 이 지역 속에 서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복음과 함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는 것.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 일에 전문성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절로 전도의 문을 하나님이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맡고 있는 내 일에 최고로 그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적고 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이것 가지고 최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겠다고 하면 그것 통해서 엄청난 전도의 문을 열어가시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다비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적은 일이 적은 일이 아니다.” 아무리 적은일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 속에 들어가면 큰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냐, 언약 자체가 큰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로 저와 여러분이 이 한해 마지막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 있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 한해 그냥 실패하는 인생으로 보내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내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 있었는가?’ 이 사실을 살펴보시면서 남은 시간들만이라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절대적인 것 - 복음전파
둘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를 통해서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기적 아닙니까? 우리는 죽었다 살아났으면 모든 시선이 여기에 모여질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느냐? 대단하다. 나에게도 그런 기적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나아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절대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전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복음 전파 때문에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다라는 것.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약에 히스기야왕 아시죠? 히스기야왕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15년 동안이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히스기야왕의 그 생명을 허락하셨는가? 왜 15년 동안에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는가? 그 시대에 우상 흑암 꺾는 일에 앞섰던 사람이 히스기야왕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복음전파 이 일을 위해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비다도 그냥 죽었다가 살았다는 이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죽었던 사람도 살리는 이 역사가 복음 전파 속에 담겨져 있다라는 것.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 살고 있다라는 것, 생명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그냥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생명주신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해야 될 사명 즉, 복음전파에 절대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 연세가 있으십니까? 그래도 아직 살아 있잖아요. 살아있다는 것은 복음전파 그 절대적인 사명 때문입니다. 이 사명 다하는 날 하나님이 불러가시게 되어있어요. 내가 늘 하던 대로 나를 불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음전파 중심으로 해서 내 생애를 연장시키기도 하시고 불러가기도 하신다는 사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어디 속에 들어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 복음전파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이냐? 디모데후서 4:1-2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복음전하는 일을 항상 힘쓰라 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1절에 보면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놓고 또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걸고. 그리고 그가 나타나실 재림의 역사와,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했습니다. 복음 전파가 이처럼 중요한 것이고, 이처럼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 저와 여러분을 세워주셨습니다. 축복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정말 절대적인 것이 복음전파라면 여러분의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복음을 증거하는 이 일, 전도자의 나의 전도를 찾는 여기에 우리의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데 진짜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삶의 현장 속에서 나의 전도를 찾아내는 거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나의 전도를 찾아내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복음전파가 절대적인 것이냐? 인생이 당하고 있는 이 땅의 12가지 인생의 문제. 그 시작이 창세기 3, 6, 11장입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 창세기 3, 6, 11장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아예 미신, 점술, 우상의 문화로 뿌리내려져 있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개개인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마음이 병들어있고 육신이 병들어있고 후대들에게도 그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면서 결국 지옥 같은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3,6,11장이 문제의 시작이라면, 그것이 미신, 점술, 우상의 문화로 깊이 뿌리내려져있고 그것이 개인의 멸망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 죄 문제, 사단의 문제를 결국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요한일서 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여러분, 정말로 이 부분에 대한 눈이 열려지면 교회, 현장, 가정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했죠. 누가복음 10:19에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를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고 했어요. 마가복음 3:15에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 또 마태복음 12:28-29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보면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에 사단의 역사 이 사실의 비밀을 제대로 알면 우리 교회와 가정과 현장에 하나님의 응답을 제대로 보게 되어있어요. 이 문제 절대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죠.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그리스도)을 주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참 왕으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셨고, 참 제사장으로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하셨다는 사실. 이 복음(그리스도) 증거하는 이 일이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 다비다가 죽었는데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 복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얼마나 이 땅에 절대적인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4:14에 “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된 이후에야 끝이 오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복음 전파에 방향 맞추어 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이 한 시대에 가장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의 걸음 속에 허락하시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한 해를 살아오시면서 기도 속에서 진행된 모든 것은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염려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죽을 위기가 왔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도 괜찮아요. 기도 속에 진행되었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두고두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고요.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망할 수가 없어요. 로마서 8:2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로마서 8:12-15에 하나님이 우리를 아예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셨어요. 그리고 로마서 8;31-39에 보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했어요. 여러분,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망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내 삶의 방향을 복음전파에 방향 맞추게 될 때 거기에서 모든 응답들이 따라와요. 오늘 42절 한번 봅시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여기에 모든 응답이 따랴오게 되어있습니다. 참된 전도자의 삶으로 여러분이 결산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지 붙잡고 남은 시간들을 바르게 인도받고, 또 2014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2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제자의 결산
(행9:36-42)
서론: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실제적인 성령의 힘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가?”를 결산해야 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실제적인 것(무아지경, 템플스테이, 마약, 초능력)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성령충만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며,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비밀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기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행한 것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실패를 가져옵니다(히11:1 실상과 증거는 믿음). 이 믿음을 어떻게 유지해나가느냐? 비밀은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정말로 성령충만한 가운데 있는가?” 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회복하고,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내주하심・함께하심・충만하심
(1) 성령의 내주하심과 함께하심, 충만하심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1) 성령의 내주하심: 구원받은 상태 (롬8: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상태, 고전3:16 성령이 내 안에 성전삼고 계신 상태)
2) 성령의 함께하심: 성령의 충만함이 나의 삶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
3) 성령의 충만하심: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 (롬6:11)
a. 인간 능력의 부족함과 무능력을 발견하고, 전적으로 성령의 동행하심 믿고 인정하며 따라가는 삶 (종교생활과 다름)
b. 우리의 감정과 생각, 계획과 관념, 사상까지 주님 안에서 조절 받는 것 (100% 주님 의존, 인도를 인정)
(2) 성령충만한 가운데 거하면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오늘,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 성령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정확하게 인도・응답하시고 기쁨과 평안, 확신과 힘을 주심 (자신・세상・사탄을 이길 능력)
2) 현장에 필요한 메시지와 증거도 하나님이 직접주심 (베드로, 스데반, 아나니아, 애니아, 다비다, 홍해건넘, 애굽・바벨론・앗수르 무너짐)
3) 우리는 기적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성령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함. “주여,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3)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는 우리의 “작은 일도 큰 일”이 될 수 있습니다.
1) 작은 일(바느질)을 하는 다비다를 통해 욥바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큰 증거를 봄
2) 현장에 복음 가진 영적인 대사로 서 있는 한사람(여제자 다비다)을 통해 엄청난 전도의 문이 열림
3) 복음과 함께 자기가 하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한 소녀의 오병이어, 가난한 초대교회,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
2. 절대적인 것 - 복음전파
(1) 복음전파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1) 복음전파(흑암, 우상세력을 막는 일)를 위해, 하나님께선 필요하다면 죽은 자도 살리심 (다비다, 생명 15년 연장된 히스기아왕)
2)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 생명 주신 이유를 알아라!! (복음전파의 절대적 사명 때문에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 것, 딤후4:1-2)
(2) 나의 전도를 찾아라!!
1) 우리의 참된 행복은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일 가운데 나의 전도를 찾는 것”임
a. 복음은 인생의 12가지 문제 (창3,6,11장의 영적문제, 미신・점술・우상 파고듦, 개인의 멸망으로 나타남)를 해결하는 것
b.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의 문제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짐 (요일3:8, 눅10:19 막3:15, 마12:28-29)
2) 우리의 모든 삶이 복음 전파에 맞춰질 때, 가장 귀한 역사가 우리의 걸음걸음 속에 임함
결론: 한 해를 돌아보며 기도 속에서 진행된 모든 것은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고민과 갈등, 사고나 심지어 죽음까지도 기도 속에 진행되었다면 모든 것은 축복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절대 망하지 않고, 복음 전파에 우리 삶의 방향 맞추면 모든 응답 따라오기 때문입니다(42절). 한 주간 참된 전도자의 삶으로 결산할 것을 붙잡고 2014년도 맞이하길 기도드립니다.
“전도제자의 결산”
(행9:36~42)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행9:36~4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2013년 마지막 주일, 우리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까지 주님의 은혜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시간시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셨고 또 그 은혜가 주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최고의 그 축복된 은혜, 예비된 은혜를 찾아 누리는 귀하고 복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전도제자의 결산’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013년 마지막 주일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 대한 부분을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결산해야 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고 제목을 ‘전도제자의 결산’으로 잡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반드시 결산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진짜 실제적인 성령의 힘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누리고 있는가입니다. 실제적인 성령의 그 힘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누리고 있는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여러분이 이 해가 가기 전에 결산해야 할 부분입니다. 지금 많은 종교들이 상상 외로 실제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사람들이 어렵고 힘이 드니까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가지고 산 속으로 불러 들이고 있고, 또 템플 스테이(temple stay) 같은 것들을 통해서 초월하는 힘들을 가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또 마약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 연예인들이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타락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또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집중하면 엄청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스도 없이, 결국은 초능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많은 역사를 일으키는데, 결국은 영적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종교들이 실제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는데, 이런 세상 현장 속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이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성령충만함입니다. 무아지경에 이르지 않고 초능력에 이르지 않아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 능력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성령 충만함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시시한 것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 가장 필요한 것, 그리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성령의 실제적인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실제적인 축복, 충만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느냐? 실제적으로 누리고 있느냐? 이 부분에 대해 여러분,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결산해야 합니다.
왜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가 확인하고 결산해야 하느냐? 여러분, 믿음이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 믿음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소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신앙 생활에 승리했던 사람들을,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 가지고 승리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게 히브리서 11장에 증인들을 세워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하면서 믿음으로 신앙 생활에 승리했던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하고 열심히 산다 할지라도, 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대단한 역사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반드시 실패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했습니다.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실상이 뭐냐? 믿음입니다. 증거가 뭐냐?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가지게 될 때 분명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데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그 믿음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데 여러분, 우리가 한 해를 지나면서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단했던 것들, 당장 응답이 없다고 보일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역사, 구원받은 뒤에 그 믿음의 역사들을 우리가 어떻게 유지하느냐? 그 믿음의 역사를 유지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저와 여러분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할 것, 결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정말로 성령충만함 속에 있었는가입니다.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게 되면 담대함이 나오게 됩니다. 성령충만함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만 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많은 열매들이 맺혀질 뿐만 아니라 결국 성령충만함 속에서 세상을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이 한 해도 이틀 남았지 않습니까? 오늘 지나고 내일 모레가 지나면 이 한 해는 또 역사 속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사라진다 할지라도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 받기 위해 몸부림쳤고 믿음의 역사 가운데 선택했던 것들은 두고두고 열매가 오는 줄 아시고 이제까지 믿음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다 할지라도 오늘 이 시간 믿음 회복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령 내주, 함께, 충만
그러면 오늘 본문은 사실은 성령충만함 가운데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병들어 죽은 다비다가 베드로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본문을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었습니다만, 이 본문은 성령충만함 속에서 일어난 역사인데 이 성령의 충만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함께하심,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 또 함께하심, 또 충만함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함께하심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내주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내주하심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상태, 그것이 바로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내주가 어떤 상태이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상태, 그걸 가지고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성전삼고 계시는 것, 그 상태를 가지고 성령의 내주라고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의 내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함께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내주와 함께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 성령의 함께하심인데 성령의 함께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함께하심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성령의 함께하심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이 내 삶에 나타나는 것을 성령의 함께하심이라고 말씀했는데 그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함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내 안에 하나님이 사는 것을 가지고 성령의 충만함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심지어 내 생각, 내 감정마저도 주님 안에서 조절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특별히 나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관념과, 내 사상들,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성령의 충만한 삶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생활과 성령의 충만함의 삶은 다르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종교생활은 뭐냐?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필요한 일에 “하나님 도와 주십시요” 하고 기도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의 기도가 그런 기도가 아닙니까? 주님이 내 주인이라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마음의 주인은 나요, 나예요.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살아가는데 이것 필요하고, 저것 필요하니 하나님 이것 채워주시옵소서. 저것 채워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 유익을 위해서..그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한 삶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믿고 그 속에 들어가서 100% 주님을 의존하고 100% 주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면서 성령의 이끌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삶. 내가 하나님을 끌고 다니는 삶이 아니고 내가 완전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가서 100% 그를 의존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그분의 이끌림을 받는 삶. 그게 바로 성령의 충만함의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의 비유를 잘 설명한 것이 에베소 성경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술 취함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옛날 술 드신 분들 술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술 취한 그 기분으로 살아 가쟎아요. 성령 충만함을 거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완전히 그 분의 역사 속에 들어가서 그 분을 의존하면서 그 분에게 이끌려서 살아가는 삶. 그게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시면 다비다가 죽었다 살아났으니까..대단하다. 그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사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니까 다비다의 생각과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전도와 함께 복음이 증거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42절에 보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더라.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복음이 증거 되어지고, 전도가되어지는 역사와 함께 그런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죽은 사람도 살아나는 역사 그리고 온 지역이 성령 충만한 이 역사 가운데에서 바뀌어지는 이런 응답의 역사들이 일어났더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면 필요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한 지역이 순식간에 바뀌어지는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 속에 들어가면 되느냐? 기적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정확하게 인도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기도하면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게 되어 있는 것이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길들을 정확하게 인도하시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참된 기쁨과 참된 평안과 확신을 주시고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서? 성령충만함 속에서 ....
여러분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한해 마지막 마무리 하시면서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시는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현장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현장에 가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나가게 될 때에 그 현장에 필요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때문에 종교재판 가운데 섰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시대적인 메시지가 선포되어집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니라 ” 시대적인 메시지가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메시지 였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성령 충만함 가운데서 순교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 모습을 의사 누가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돌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이 천사와 같을 수가 있습니까? 이 말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충만함 가운데 그 유대인들에게 정확한 복음들을 선포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도 보면 아나니아가 성령충만함 가운데 한 지역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시대적인 일꾼 사울을 돌아오게 하셨고,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8년동안이나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사람에게 성령충만한 가운데 일어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고요.
오늘 본문에 보면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죽었다 살아났으니까 대단하다..거기에 우리의 모든 시선이 있는데 죽으면 안 되는 시간표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비다를 살리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필요하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 현장에 성령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못 이루실 역사가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주여 성령충만함을 주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면 살리실 것을 약속하고 있고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역사가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여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할 때에 역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우리가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걸음 속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제의 역사와 똑같은 오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역사와 완전 180도 다른 오늘의 새로운 은혜의 역사, 응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홍해가 계속 진행되어 오다가 끊겼습니까? 아니잖아요. 한순간에 멈추었습니다. 그 강대국 바벨론이 무너지고 앗수르가 무너지고 애굽이 무너졌습니다. 한 순간에 무너진 거예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제와 180도 완전 다른 오늘,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응답의 역사가 성령 충만함 속에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실패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어제 가운데 문제 있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일으킬지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그마한 일이라 할지라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그 적은 일이 적은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큰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여러분,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작은일 가지고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오병이어를 보세요. 한 소년이 가지고 있는 오병이어 가지고 얼마나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가난한 초대교회가 세계를 복음화 했어요. 무식하고 아무 배경 없는 갈릴리 사람들이 세계복음화 했습니다. ‘가진 것 없다고, 내가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아닙니다. 내가 언약 속에 들어가면,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작은 것과 가진 것 없는 그것도 하나님이 크게 쓰신다는 사실. 왜냐, 여러분, 이 땅에 언약만큼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큰 것을 가지고 ‘그릇이 커야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 아니냐, 넓은 인격을 가져야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적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갈 때 큰 것으로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 왜냐, 언약 그 자체가 큰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환경들, 배경들 가지고 원망하고 그것 가지고 주저앉아있지 마시고요. 정말로 우리는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그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언약이 큰 만큼 우리의 적은 것도 크게 쓰임 받게 되어진다는 사실이에요.
오늘 본문에 다비다가 바느질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사실은 다비다가 성령 충만함 가운데서 자기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 치유 받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비다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 울었습니다. 속옷과 겉옷을 보이면서 울었잖아요. 이 말은 다비다가 자기 자신이 복음으로 치유 받고 참된 답을 가지고 만남의 축복 가운데서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다비다를 살리셨어요. 왜냐? 성령 충만함 가운데 죽을 시간표가 아니기 때문에 다비다를 살리셨어요. 그리고 다비다가 한 작은 일을 가지고 하나님은 큰 증거의 역사를 나타냈는데 그것 가지고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어지는 그 축복된 증거의 역사를 나타냈다는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다비다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36절에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으니.” 무슨 말입니까? 복음과 함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어요. 일이 크고 적고가 아니에요. 일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의 모든 삶은 다 중요한 것이고, 언약 안에 있는 적고 큰일들은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현장을 살리는 전도제자예요. 오늘 다비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으니.” 무슨 말입니까? 이 다비다라는 여제자는 현장에 복음가진 영적인 대사로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영적인 대사로 이 지역 속에 서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복음과 함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는 것.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 일에 전문성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절로 전도의 문을 하나님이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맡고 있는 내 일에 최고로 그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적고 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이것 가지고 최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겠다고 하면 그것 통해서 엄청난 전도의 문을 열어가시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다비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적은 일이 적은 일이 아니다.” 아무리 적은일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 속에 들어가면 큰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냐, 언약 자체가 큰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로 저와 여러분이 이 한해 마지막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 있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 한해 그냥 실패하는 인생으로 보내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내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 있었는가?’ 이 사실을 살펴보시면서 남은 시간들만이라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절대적인 것 - 복음전파
둘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를 통해서 다비다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기적 아닙니까? 우리는 죽었다 살아났으면 모든 시선이 여기에 모여질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느냐? 대단하다. 나에게도 그런 기적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나아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절대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전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복음 전파 때문에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다라는 것.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약에 히스기야왕 아시죠? 히스기야왕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15년 동안이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히스기야왕의 그 생명을 허락하셨는가? 왜 15년 동안에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는가? 그 시대에 우상 흑암 꺾는 일에 앞섰던 사람이 히스기야왕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복음전파 이 일을 위해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비다도 그냥 죽었다가 살았다는 이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죽었던 사람도 살리는 이 역사가 복음 전파 속에 담겨져 있다라는 것.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 살고 있다라는 것, 생명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그냥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생명주신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해야 될 사명 즉, 복음전파에 절대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 연세가 있으십니까? 그래도 아직 살아 있잖아요. 살아있다는 것은 복음전파 그 절대적인 사명 때문입니다. 이 사명 다하는 날 하나님이 불러가시게 되어있어요. 내가 늘 하던 대로 나를 불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음전파 중심으로 해서 내 생애를 연장시키기도 하시고 불러가기도 하신다는 사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어디 속에 들어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 복음전파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이냐? 디모데후서 4:1-2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복음전하는 일을 항상 힘쓰라 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1절에 보면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놓고 또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걸고. 그리고 그가 나타나실 재림의 역사와,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했습니다. 복음 전파가 이처럼 중요한 것이고, 이처럼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 저와 여러분을 세워주셨습니다. 축복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정말 절대적인 것이 복음전파라면 여러분의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복음을 증거하는 이 일, 전도자의 나의 전도를 찾는 여기에 우리의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데 진짜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삶의 현장 속에서 나의 전도를 찾아내는 거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나의 전도를 찾아내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복음전파가 절대적인 것이냐? 인생이 당하고 있는 이 땅의 12가지 인생의 문제. 그 시작이 창세기 3, 6, 11장입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 창세기 3, 6, 11장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아예 미신, 점술, 우상의 문화로 뿌리내려져 있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개개인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마음이 병들어있고 육신이 병들어있고 후대들에게도 그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면서 결국 지옥 같은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3,6,11장이 문제의 시작이라면, 그것이 미신, 점술, 우상의 문화로 깊이 뿌리내려져있고 그것이 개인의 멸망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 죄 문제, 사단의 문제를 결국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요한일서 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여러분, 정말로 이 부분에 대한 눈이 열려지면 교회, 현장, 가정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했죠. 누가복음 10:19에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를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고 했어요. 마가복음 3:15에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 또 마태복음 12:28-29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보면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에 사단의 역사 이 사실의 비밀을 제대로 알면 우리 교회와 가정과 현장에 하나님의 응답을 제대로 보게 되어있어요. 이 문제 절대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죠.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그리스도)을 주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참 왕으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셨고, 참 제사장으로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참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하셨다는 사실. 이 복음(그리스도) 증거하는 이 일이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 다비다가 죽었는데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 복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얼마나 이 땅에 절대적인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4:14에 “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된 이후에야 끝이 오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복음 전파에 방향 맞추어 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이 한 시대에 가장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의 걸음 속에 허락하시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한 해를 살아오시면서 기도 속에서 진행된 모든 것은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염려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죽을 위기가 왔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도 괜찮아요. 기도 속에 진행되었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두고두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고요.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망할 수가 없어요. 로마서 8:2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로마서 8:12-15에 하나님이 우리를 아예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셨어요. 그리고 로마서 8;31-39에 보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했어요. 여러분,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망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내 삶의 방향을 복음전파에 방향 맞추게 될 때 거기에서 모든 응답들이 따라와요. 오늘 42절 한번 봅시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여기에 모든 응답이 따랴오게 되어있습니다. 참된 전도자의 삶으로 여러분이 결산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지 붙잡고 남은 시간들을 바르게 인도받고, 또 2014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2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제자의 결산
(행9:36-42)
서론: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실제적인 성령의 힘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가?”를 결산해야 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실제적인 것(무아지경, 템플스테이, 마약, 초능력)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성령충만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며,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비밀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기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행한 것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실패를 가져옵니다(히11:1 실상과 증거는 믿음). 이 믿음을 어떻게 유지해나가느냐? 비밀은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정말로 성령충만한 가운데 있는가?” 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회복하고,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내주하심・함께하심・충만하심
(1) 성령의 내주하심과 함께하심, 충만하심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1) 성령의 내주하심: 구원받은 상태 (롬8: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상태, 고전3:16 성령이 내 안에 성전삼고 계신 상태)
2) 성령의 함께하심: 성령의 충만함이 나의 삶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
3) 성령의 충만하심: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 (롬6:11)
a. 인간 능력의 부족함과 무능력을 발견하고, 전적으로 성령의 동행하심 믿고 인정하며 따라가는 삶 (종교생활과 다름)
b. 우리의 감정과 생각, 계획과 관념, 사상까지 주님 안에서 조절 받는 것 (100% 주님 의존, 인도를 인정)
(2) 성령충만한 가운데 거하면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오늘,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 성령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정확하게 인도・응답하시고 기쁨과 평안, 확신과 힘을 주심 (자신・세상・사탄을 이길 능력)
2) 현장에 필요한 메시지와 증거도 하나님이 직접주심 (베드로, 스데반, 아나니아, 애니아, 다비다, 홍해건넘, 애굽・바벨론・앗수르 무너짐)
3) 우리는 기적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성령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함. “주여,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3)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는 우리의 “작은 일도 큰 일”이 될 수 있습니다.
1) 작은 일(바느질)을 하는 다비다를 통해 욥바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큰 증거를 봄
2) 현장에 복음 가진 영적인 대사로 서 있는 한사람(여제자 다비다)을 통해 엄청난 전도의 문이 열림
3) 복음과 함께 자기가 하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한 소녀의 오병이어, 가난한 초대교회,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
2. 절대적인 것 - 복음전파
(1) 복음전파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1) 복음전파(흑암, 우상세력을 막는 일)를 위해, 하나님께선 필요하다면 죽은 자도 살리심 (다비다, 생명 15년 연장된 히스기아왕)
2)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 생명 주신 이유를 알아라!! (복음전파의 절대적 사명 때문에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 것, 딤후4:1-2)
(2) 나의 전도를 찾아라!!
1) 우리의 참된 행복은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일 가운데 나의 전도를 찾는 것”임
a. 복음은 인생의 12가지 문제 (창3,6,11장의 영적문제, 미신・점술・우상 파고듦, 개인의 멸망으로 나타남)를 해결하는 것
b.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의 문제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짐 (요일3:8, 눅10:19 막3:15, 마12:28-29)
2) 우리의 모든 삶이 복음 전파에 맞춰질 때, 가장 귀한 역사가 우리의 걸음걸음 속에 임함
결론: 한 해를 돌아보며 기도 속에서 진행된 모든 것은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고민과 갈등, 사고나 심지어 죽음까지도 기도 속에 진행되었다면 모든 것은 축복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절대 망하지 않고, 복음 전파에 우리 삶의 방향 맞추면 모든 응답 따라오기 때문입니다(42절). 한 주간 참된 전도자의 삶으로 결산할 것을 붙잡고 2014년도 맞이하길 기도드립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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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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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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