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흐름을 바꾸는 전도자
2014-04-06 00:00:00
관리자
조회수 52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4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영적흐름을 바꾸는 전도자”
(행13:4~12)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 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행13:4~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도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그 축복의 역사를 최고로 누리는 가장 축복된 시간들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울 종로 인사동에 성동교회라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약 120년이 넘었습니다. 1893년에 사무엘 무어라는 선교사가 성동교회를 세워서 교회를 섬겨 나갔는데 그 성동교회 제 1호 장로가 어떤 분이냐 하면 박성춘이라는 백정이었습니다. 우리 렘넌트들, 백정 아십니까? 우리 어르신들은 백정이라 하면 다 아시겠습니다만 우리 렘넌트들은 백정이 무슨 말인가 할 것같은데 조선시대에 소잡고 돼지잡고 하는 그런 천직에 해당하는 아주 천민 중의 천민입니다. 그 당시에 무당이나 기생들보다 더 낮은 하류 계층에 속한 사람이 백정입니다. 그런데 그 백정이 그 교회 1호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은 양반들이 그 교회를 떠나가서 다른 교회를 세우고 했다고 하는데 일단 백정이 장로가 되고 나니 그 당시에 수원 쪽에 백정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러니까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원 쪽에서 그것도 걸어서 인사동까지 예배 드리기 위해 오고 하는 그런 광경들이 교회사 속에 있었던 사실들을, 여러분들 교회사를 보면 나와 있습니다. 사실 그 박성춘이라는 1호 장로, 백정의 아들이 조선의 첫 번째로 양의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이 백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느 정도로 백정이 천민으로 대접을 못 받았느냐? 여러분, 인구 숫자를 조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구 숫자에 들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게 백정 직업입니다. 그리고 백정들은 어디를 가면 거리적인 제한을 둡니다. 거리로, 한 마디로 제한을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백정입니다. 그만큼 천대 받던 직업이 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정이 장로가 되었으니까 그 당시에 백정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고 기쁨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먼 길을 마다 않고 수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일날이 되면 서울 인사동에 예배 드리기 위해 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냥 제가 이 부분을 말씀 드린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양반과 상놈, 양반은 무조건 잘못해도 양반이고 상놈은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상놈은 상놈입니다. 그런데 그 신분을 타파한 것이 뭐냐,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양반과 상놈, 그 역사 속에, 수천 년, 아니 이조 오백 년 동안 계속해서 흘러내려오던 그 신분에 대한 것이 완전히 타파되는데, 한국의 기독교가 복음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신분이 타파되었습니다. 흐름을 바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곳이든지 그런 흐름들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 물질도, 돈도 돈의 흐름이 있지 않습니까? 돈을 잘 버는 사람은 그냥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본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은 그 남편 되시는 분이 어디 투자하면 돈이 될 것이다 하는 그 흐름을 읽기 때문에 거기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돈의 흐름을 봐야 돈을 벌게 되어 있습니다. 이 흐름을 읽지 못하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 돈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는 사람도 저는 낚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봐야 합니다. 옛날 저희들이 어릴 때는 반도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낚시도 아니고 반도라고 있는데 그 그물 가지고 고기를 훑습니다. 훑어서 고기를 모아서 건져내는 반도라고 있는데 그것도 물의 흐름을 봐야 고기가 그 흐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도 그렇습니다. 운동을 제가 참 좋아합니다. 운동을 참 좋아하는데 지면 괜히 신경질이 나서 저는 쉽게 포기를 해 버립니다. 하다가 지면 신경질이 나서 쉽게 포기해 버리는데 운동도 가만 보면 흐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내게 될 때는 쉽게 쉽게 점수를 냅니다. 그런데 그 흐름을 끊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운동하는 경기를 잘 지켜보면 물론 감독이 여러 가지 작전을 가지고 타임을 겁니다. 작전 타임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그 흐름을 꺾기 위해서, 계속 지고 있으면 그 흐름을 끊기 위해서 작전 타임을 걸기도 합니다. 그만큼 흐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지역에도 흐름이 있고 우리 가정에도 흐름이 있고 우리 교회에도 흐름이 있고 또 문화도 시대마다 흐름이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삶이 체계화된 것을 가지고 문화라 하는데 이 문화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삶이 체계적으로 되어 문화가 되는데, 힘이 있는데 지금 어느 누구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같이 삶의 문화를 보면 타락한 문화, 퇴폐 문화를 누구나 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든지 마약이나 타락, 음란, 도박 이런 쪽으로 문화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따라서 경제도 같이 타락의 경제로 흐르고 있고, 이 흐름들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흐름이 있습니다. 교회도 신비주의를 따라가는 교회가 있고 율법주의를 따라가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정말 우리 하나교회는 지난 주일에도 말씀주신 것처럼 오직 복음, 오직 말씀, 오직 전도가 우리 하나교회의 흐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가 되어지고 그 속에 제자, 후대, 세계복음화, 이게 교회의 흐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교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이 너무 중요한 것인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어떤 영적인 흐름이라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결론으로 붙잡으십시오. 여러분, 정치인들이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또 여러분, 과학자들이 많은 훌륭한 것을 새롭게 개발해서 발전을 시킵니다. 또 교육학자들도 많은 것들을 통해서 사람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영적인 흐름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과학자, 정치인들, 많은 훌륭한 분들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사람은 교육받는 대로, 교육되어지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만큼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들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 영적인 흐름은 바꿀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흐름, 그 흐름을 바꾸는 오직 유일한 길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짜 복음을 제대로 알면 우리가 우리의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대물림을 바꾸는 귀한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 흐르는 모든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능력이 어디 있느냐? 복음 안에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흐름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복음 안에 있습니다. 왜냐?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했습니다. 복음은 바로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면 그 어떤 가정과 가문의 영적인 대물림도 끝납니다. 지역의 영적인 흐름도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복음 가진 사람이 직장에 들어가면 그 직장이 달라지게 되어 있고 교회에 들어가면 그 교회가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결론적으로 붙잡을 것은 하나님은 나를 그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한 사람의 전도자로 부르셨다, 이 확신 가지고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번 따라합시다. 나를! 하나님께서!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로! 부르셨다! 이걸 붙잡으십시오.
1. 바꾸어야 할 영적문제의 흐름
그러면 이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바뀌어야 할 현장의 영적인 흐름이 어떤 것인가하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바꾸어야 할 현장의 영적 문제의 흐름이 어떤 것인가 이 부분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을 만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 안에서 모든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함 받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 인간은 영적인 사망 상태에 이르렀고 인간이 영적인 문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행복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누릴 때 행복하도록 지은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그 어떤 행복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뿌리가 뽑힌 나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법칙이고 창조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사망과 영적인 문제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 근본에 뭐가 있느냐?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원죄 문제가 있습니다. 이 원죄 문제, 이것은 우리가 나면서부터 가지고 온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당연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뭐, 누구나 다 죄가 있지 않느냐,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원죄는 그런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겪는 것이 바로 이 원죄 때문이고,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사단의 운명에서 죽어가는 것이 바로 이 원죄 때문이고, 그뿐만 아니라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 빠지게 된 것이 바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원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이 지옥의 배경, 사망의 권세 아래 매여서 종노릇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2장 1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 무슨 말입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원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 지옥의 권세 아래 붙잡힌바 되어서 한평생 매여서 종노릇한다 했습니다.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원죄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단의 그 권세 아래서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재앙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과 가문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가정과 가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계속적인 실패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한 번 두 번 실패하는 것은 실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대를 이어서 계속 실패하고 또 가난도 계속 대를 이어서 가난하다면 그 무언가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부분을 제대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가정은 단명하는 가정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떤 가정에는 또 이상한 질병 가운데, 동일한 질병 가운데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게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흐름들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또 우리가 원죄 가운데서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그런 상황들, 영적인 문제들 가운데 우리가 자라나면서 우리가 가진, 자라면서 가진 잠재의식 속에 많은 상처들, 과거들, 상한 감정들, 분노와 원한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좋은 말로 인격이지,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자존심을 누가 건드리면 우리가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비뚤어진 그런 자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걸 건드리면 우리가 사실 참지를 못합니다. 이게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원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 가운데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문제들 가운데 자라면서 당했던 모든 사건들, 경험들, 상처들, 과거들, 그게 모두 우리 자존심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만 건드리면 거기에 우리는 폭발하게 됩니다. 부부싸움도 큰 것 때문에 싸우는게 아닙니다. 결국 잠재의식 속에 있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뭔가 모르게 화가 나고 싸우게 되요. 틀린 비뚤어진 자아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니까 자녀들이 탈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 가지고 그대로 교회에 와서 이런 저런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전부 문제들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런 부분들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우리에게 습관화 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계속적으로 반복적인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잖아요. 내가 왜 이럴까? 우리 가정은 왜 이럴까? 몇놈 안되는 우리 자녀들은 왜 이럴까? 이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반복되어지는 습관 속에서 나오는 문제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부분들 속에서 통제하지 못하고 억누르지 못하고 그래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난폭해집니다. 지금 사회의 문제들 가운데 “묻지마 범죄”가 그냥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통제가 안 되니까 터져 나오는 겁니다. 억누르지 못하는 겁니다. 거기서 결국은 온갖 사회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뭐냐?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원죄문제로 시작되었다는 것.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마귀의 자녀로서 우상숭배할 수밖에 없고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 자녀의 문제, 후대의 문제, 내세의 문제등 온갖 문제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 우리가 복음을 알면 알수록 지금 바꾸어져야 될 현장의 영적문제가, 아니 내게 있는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가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영적인 문제들이 치유함 받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저와 여러분이 복음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진짜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보는 눈들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우리는 속아요. 많은 경우 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사탄에게 속고 결국은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실패하는 인생, 손해보는 인생을 살아가요. 그래서 복음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나와 우리와 우리 가정과 가문에 또 현장에 바뀌어져야 할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봄으로 말미암아, 이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보면 거기에는 오직 복음 밖에 없구나 하는 답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정말 이 눈이 열려짐으로 여러분이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를 살려라.
그러면 먼저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바꾸기 이전에 나를 살려야 합니다. 나를 살리면 됩니다. 나를 살리면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 살게되고 가문이 살게되고 나를 살리면 내가 들어가 있는 직장이 살게되고 교회가 살아나게 되어 있어요. 나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복음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래서 복음(그리스도)을 나를 살리기 위해서 주신 겁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메시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말하면 Message of the Cross, 결국은 복음 메시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도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속(원)의 역사 그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구속의 역사를 주셨느냐? 나를 살리기 위해서,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넉넉히 나를 살릴수 있습니다. 복음은 넉넉히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것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게 복음이에요. 나를 바꾸지 못하는건 복음이 아닙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지 못하는 그건 복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복음은 나를 살릴 수 있고 나를 바꿀수 있고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복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한번 보세요. 모세가 80년 동안 헛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레위지파로서 언약을 듣고 언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헛된 인생을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날 찾아냈어요. 아 유월절 어린양의 피, 그 피의 능력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 할수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겁니다. 그 약속을 붙잡았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400년 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빠져 나오도록 하는 그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약에 보면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예수에 대해서 무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바울은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갔어요. 바울의 기도제목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어떻게 하든지 간에, 어떤 상황 속에 있던지 간에 자기는 이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맛을 봤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능력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이 복음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붙잡혀 있는 죄와 죄로 인한 저주에서 해방되어지는 그 축복의 이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 이름으로 복음을 주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2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어요. 요한복음 5:24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사망의 문제를 완전히 십자가에서 끝내버린 것입니다. 누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 했습니다. 인생은 해결 할 수없는 절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탄을 이길 수가 없어요. 사탄은 세상임금입니다. 세상 신입니다. 이 악한 사탄이 끝까지 추격해 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홍해 바다에 들어설때에도 애굽 군대가 그들을 추격해 왔던 것처럼, 끝까지 추격해 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뭐냐? 오직 그리스도 이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요한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 그리스도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그래서 성경 66권 전체는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이 성경 66권은 다른 것을 이야기 하고 다른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다락방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갔을 때에 2:9-11에 15개 나라에 전도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 현장에 서서 베드로가 메시지 한 내용이 뭡니까? 사도행전 2:36에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 5:42에 보면 초대교회가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3에 보면 바울을 비롯한 전도팀들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들어가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딴 것 말하지 않았어요.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해야 될 그 당위성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 전체가, 전도자가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베드로가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딴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다. 이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복음의 역사, 이 그리스도의 능력들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복음,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면 분명히 나를 살리게 됩니다. 그 어떤 영적인 상태라 할지라도 그 상태가 바뀌어 지게 되요. 그리고 이 복음,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면, 여러분 주일날 와서 강단의 말씀을 받는데 그 말씀이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하나 응답으로 체험됩니다. 그냥 들은 말씀인데 그 말씀이 내게 응답이 되어져요. 그 속에서 또한 말씀의 흐름이 보여집니다. 이래야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있고 나를 살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는데 그냥 열심히 예배드리고 뭔가 은혜 받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진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응답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그 말씀 속에서 말씀의 흐름을 붙잡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말씀의 흐름을 놓치면 아무리 신앙생활해도 응답 없어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뭐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흐름을 제대로 붙잡는 겁니다. 이렇게 성도들 보면 뭔가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하고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말씀의 흐름을 놓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시는 것을 봐요 그 사람은 분명히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뭐냐? 우리가 말씀의 성취를 보고 그 말씀 속에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세요.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창세기 1장에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요한복음 1:1에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고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3에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설명하시는데 무엇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데 언제 일어난 지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흐름을 놓쳤을 때 이 땅에 전쟁들이 일어났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교회 와서 예배드린다고 하면서도 말씀의 흐름을 붙잡지 못하고 놓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응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뭔가 교회에 대해 우리가 일하기 전에 먼저 붙잡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강단 말씀을 매주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주십니다. 또 우리의 전체 메시지가 있고요. 현장에 가면 현장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말씀의 흐름만 제대로 타도 신앙생활이 되어지게 되어있어요. 여러분, 뭔가 모르게 말씀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데 일이 잘된다면 일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어느 날 얼마 못가서 실패가 찾아오고 엄청난 손해들이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내가 말씀의 흐름 속에 있는데 뭔가 일이 안된다면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의 흐름을 붙잡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의 성취를 주시면서 분명히 큰 응답의 문들을 여시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가 정말로 이것은 양심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자로서 근본이고 양심입니다. 말씀의 흐름을 붙잡읍시다. 이것은 설교를 잘 들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의 흐름을 놓친다면 이 예배시간에 예배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실은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흐름을 붙잡는 것이 바로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복음을 통해서 말씀을 듣게 된다면 그것이 응답으로 와집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말씀의 흐름이 보여져요.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나를 살리는 비밀이 뭐냐? 말씀의 흐름이 보여지면서 그 말씀 속에서 정확한 기도제목이 보여지게 됩니다. 내가 기도제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흐름을 보게 되면 그 속에서 주어지는 기도제목들.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 나와요. 그 사실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가지고 우리는 어디에 들어가느냐? 말씀을 실현시키는 실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는 비밀이에요. 사도행전 1:14에 보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에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20명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 속에 들어갔어요. 그 현장이 어떤 현장이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그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인 현장이 마가다락방 현장이에요. 그 자리에 모이면 안 됩니다. 죽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감람산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마가다락방에 모인거에요. 거기에 어떤 응답이 일어났느냐? 사도행전 2:에 보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교회사에 가장 큰 응답, 바로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 있는 현장이 어떤 현장이냐? 여러분,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말씀을 붙잡는 그 현장에 하나님이 가장 관심 있는 현장이라는 사실. 여러분, 성경에 보세요. 기적이 언제 일어났느냐? 출애굽기 3:16-18에 이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장로들을 세우라 할 때 거기에 장로를 세워서 이 말씀이 전달되어질 때 출애굽 기적이 일어났어요. 수3,6장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그 기적이 언제 일어났느냐? 언약궤를 붙잡은 제사장 중심으로 그 요단강을 건너고 언약궤를 붙잡은 제사장 중심으로 여리고성을 돌게 될 때 거기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어요.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가는 그 걸음 속에 하나님은 기적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가 중에 한 제자인 가롯유다 죽자마자 바로 빨리 맛디아라는 제자를 세웠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각 제자에게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지역을 맡겼습니다. 그 지역을 맡은 기룟유다가 죽으니까 빨리 그 지역을 감당할 사람을 세워야 되잖아요. 그래서 빨리 맛디아를 세운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내가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주역으로 서야겠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기적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이 축복의 문들을 여신다는 사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속에서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주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단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현장에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흘러가게 할 것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새가족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강단 말씀을 붙잡고 하는 것은 쉽잖아요. 그것만 해도 하나님이 거기에 역사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을 실현시켜야겠다는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이면 한사람, 두 사람이면 두 사람 괜찮아요.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정말 주어진 말씀을 가지고 내가 그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축복 속에 들어가야겠다. 그때 하나님은 모든 응답의 문을 여시는데 정확한 기도제목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있어요. 말씀을 바르게 정리하고 말씀의 흐름을 붙잡고 그 속에서 참된 말씀을 작은 것이라도 내가 실현시켜야겠다는 결단하고 나갈 때 거기에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정확한 기도제목이 보입니다. 여러분, 정확하고 확실한 기도제목이 보여지면 기도를 계속하게 되어있어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면 왜 기도를 하다 말다 하느냐? 기도제목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도 하다말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고민이 확실하면 계속 고민합니다. 기도제목도 확실하면 계속 기도하지 말라 해도 계속 하게 되어있어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이 정확하면 그 사실을 두고 기도하지 않아도 응답 주시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마가다락방 교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감람산의 언약, 하나님의 나라를 응답으로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여서 는 안 되는 그 현장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얼마만큼 기도제목이 확실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실은 생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에서 끝나느냐?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여시는데 이것은 전도의 문과 함께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들을 다 여시게 되어있어요. 가정과 직장과 지역에 들어가면 그 속에서 영적인 흐름이 바뀌어지는 그 응답이 있게 되어있어요. 오늘 본문에 보세요. 영적인 흐름을 바꾼 현장입니다. 구브로 섬이라고 있었어요. 이 구브로 섬에 정치적 지도자가 누구냐? 바로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영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냐? 6절에 보면 바로 바예수라 하는 박수무당입니다. 그가 그 지역의 영적 흐름을 주도하는 있는 것입니다. 실질적 정치 지도자는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인데, 그 배후에서 영적으로 흐름을 주고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은 누구냐? 바예수라는 박수무당입니다. 다른 말로 엘루마라 했어요. 바예수라는 말은 예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라는 말이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시몬아는 시몬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예수(다른 말로 엘루마)라는 사람이 그 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6절에 보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8절에 "이 마술사 엘루마는 (그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10절에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여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는지라." 오늘 구브로 섬에 실제적인 영적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은 박수무당이에요. 지금 우리 현장과 똑같잖아요. 지금 이 시대 뿐 아니라 지금 우리 현장과 똑같아요. 지금 우리 현장을 보면 선거철입니다. 선거철 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용하다는 점쟁이한테는 돈을 싸들고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대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그 배후에 관상 보는 사람들을 두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심지어 법관들조차도 법과 양심에 따라서 재판해야 하는데 너무 길흉한 재판들은 범과 양심에 공정하게 생각해서 마지막에는 무당들에게 점쟁이들에게 가서 묻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장과 같은 현장입니다. 이런 현장에 결국은 복음의 비밀 가진 바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에 영적인 흐름이 바뀌어졌는데 12절 보세요.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완전히 영적인 흐름이 바울 전도자 팀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제대로 말씀의 흐름을 붙잡고 그 속에 나오는 제대로 실천해야 될 부분을 붙잡고 말씀을 실현시키면서 정확한 기도제목들을 붙잡고 나가는 모든 현장 속에 하나님께서 문들을 여시는데 어떤 문들을 여시느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이 체험한 그 현장에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그 응답의 문들을 우리 현장에 열어주신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정말 하나님의 비밀을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의 비밀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간다면 그 현장의 영적 흐름이 바뀌어집니다. 가정의 영적 흐름이 바뀌어지게 되어있어요. 그 축복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축복이 바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말씀의 흐름을 붙잡고 진짜 그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 말씀을 실천하는 속에 들어가서 정확한 기도제목 붙잡고 나갈 때 문을 여시는데 그 문은 전도의 문과 함께 전도의 문만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경제, 산업, 교회 부흥의 문들을 다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조금만 실천합시다.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마시고요. 특별히 해외에 나가는 렘넌트들 있는데 어떤 현장이든지 말씀의 흐름만 안 놓치면 결국은 그 현장의 영적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들이 되어져요. 이 사실을 붙잡으시고 말씀흐름 속에 실천할 메시지를 내가 붙잡고 그 속에 분명한 기도제목들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는데 그 문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모든 현장을 바꿀 수 있는 영적 문제 있는 현장들을 바꿀 수 있는 그 축복의 힘이 그 속에서 나올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결국은 오늘도 결론은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말씀입니다. 오직 기도입니다. 오직 전도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시대를 바꾸는, 흐름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대표적으로 요셉을 보세요. 보잘 것 없고 힘이 없어 보이는데 그 요셉 한 사람이 애굽의 모든 법을 바꾸었어요. 창세기 47장에 보면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하는 땅에 기근이 들어서 황폐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에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에 토지법이 세워지게 되는데 창세기 47:26에 보면 애굽의 토지법이 요셉으로 세워지고 그것이 오늘날 까지 되어졌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그 시대의 흐름을 요셉이 바꾼 거예요. 그 뿐만 아니죠. 중세시대에 1500년 동안에 가톨릭 천주교가 우습게 여기면서 한 사람을 짓눌렀는데 그 한사람이 중세시대 1500년 동안 흘러오는 흐름을 바꿨어요. 누구입니까?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복음을 붙잡은 루터 한 사람. 힘없고 연약해 보이는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1500년 동안 흘러오는 천주교의 흐름을 바꿔놓았어요. 400년 동안에 완전히 무기력함 속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 언약 붙잡은 모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그 흐름을 바꿔 놓았어요. 다니엘과 세 친구, 그 시대의 저주와 재앙과 흑암의 세력을 완전히 꺾었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 그 지역의 영적 흐름을 바꿨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마시고 그 말씀의 흐름 속에서 내가 실천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 붙잡으시고 정확한 기도제목들 붙잡고 기도함으로 응답받음으로 여러분 통해서 여러분의 모든 현장의 영적 흐름이 바뀌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4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영적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
(행13:4-12)
서론: 복음은 시대와 신분,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한국 기독교 역사 - 승동교회). 어느 곳이든 흐름(경제, 물, 운동, 문화, 교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교회의 흐름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로 제자를 세우고 세계복음화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정치인, 과학자, 교육학자들이 사회에 많은 일들을 하고 영향을 주지만, 근본적인 영적인 흐름은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복음을 알면 가문에 흐르는 영적 되물림이 끊어지고, 지역과 교회와 직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고전1:18 하나님의 능력, 롬1:16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바꾸어야 할 영적문제의 흐름
(1)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인 사망상태가 되어 영적문제에 빠졌습니다.
1) 원래 인간은 창조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축복을 받는 존재였음
2)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나면서부터 근본적으로 원죄문제를 가지고 태어남
(2) 원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재앙이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가정과 가문의 흐름).
1) 잠재의식 속의 상처와 상한 감정, 분노와 원한이 인격(자존심)을 만듦 : 삐뚤어진 자아를 가지게 됨
2) 습관화되면 반복적인 문제(자녀 탈선, 교회안 시험)가 되고, 통제하지 못해 사회적 문제(난폭해진 사람들)로까지 이어짐
(3) 정말 복음 속에 들어가면, 나(가문)와 현장의 영적문제를 보는 눈이 열리고 치유 받습니다.
2. 나를 살려라!!
(1) 복음은 나의 영적상태와 상관없이, 넉넉히 나를 바꾸고 살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셨음(고전1:18 십자가의 도 = 복음 메시지)
2) 복음만이 - 죄, 저주, 재앙에서 해방(롬8:2, 요5:24), 하나님 만나는 길(요14:6) 사탄의 문제 해결(요일3:8)
3) 이 복음을 전하라 - 15나라 향한 베드로의 설교(행2:14-40), 초대교회(행5:42), 데살로니가의 바울(행17:2-3)
(2) 말씀의 흐름을 놓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1) 말씀의 흐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자신을 보여주시며 설명하심(창1장, 요1:1, 요1:14, 계1:3)
2) 실천함으로 실현시키는 축복: 하나님의 가장 관심 있는 곳(행1:14, 출3:16-18, 수3,6장, 맛디아를 세움)
3) 정확한 기도제목: 말씀 흐름 속에 기도제목이 나오면 지속됨(방향이 정확하면 기도하지 않아도 응답)
4) 전도: 영적인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지는 전도 가운데,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행13:6,8,10 → 행13:12)
5) 문을 여심: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축복의 힘으로 현장을 살림
결론: 오늘도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말씀, 오직 기도, 오직 전도입니다. 여기에 시대 흐름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요셉: 애굽의 토지법이 생김 / 모세: 400년 동안 무기력에 빠진 이스라엘이 출애굽함 / 루터: 중세시대 가운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다니엘과 세친구, 바울: 그 지역에 영적 흐름 바꿈). 이제 복음 안에서 말씀의 흐름 놓치지 말고 실천하시면 됩니다. 정확한 기도제목 붙잡고 응답 받음으로 한주간 현장의 모든 흐름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나를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원죄문제로 영적인 사망상태의 가문과 현장 가운데, 영적문제를 보는 눈이 열리고 치유받게 하옵소서. 복음은 나의 영적인 상태와 상관없이 넉넉히 나를 바꾸고 살리심을 믿습니다. 말씀의 흐름을 타는 가운데 실천함으로, 정확한 기도제목을 붙잡고 나의 전도를 찾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여시는 문을 보는 한주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흐름을 바꾸는 전도자”
(행13:4~12)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 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행13:4~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도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그 축복의 역사를 최고로 누리는 가장 축복된 시간들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울 종로 인사동에 성동교회라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약 120년이 넘었습니다. 1893년에 사무엘 무어라는 선교사가 성동교회를 세워서 교회를 섬겨 나갔는데 그 성동교회 제 1호 장로가 어떤 분이냐 하면 박성춘이라는 백정이었습니다. 우리 렘넌트들, 백정 아십니까? 우리 어르신들은 백정이라 하면 다 아시겠습니다만 우리 렘넌트들은 백정이 무슨 말인가 할 것같은데 조선시대에 소잡고 돼지잡고 하는 그런 천직에 해당하는 아주 천민 중의 천민입니다. 그 당시에 무당이나 기생들보다 더 낮은 하류 계층에 속한 사람이 백정입니다. 그런데 그 백정이 그 교회 1호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은 양반들이 그 교회를 떠나가서 다른 교회를 세우고 했다고 하는데 일단 백정이 장로가 되고 나니 그 당시에 수원 쪽에 백정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러니까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원 쪽에서 그것도 걸어서 인사동까지 예배 드리기 위해 오고 하는 그런 광경들이 교회사 속에 있었던 사실들을, 여러분들 교회사를 보면 나와 있습니다. 사실 그 박성춘이라는 1호 장로, 백정의 아들이 조선의 첫 번째로 양의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이 백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느 정도로 백정이 천민으로 대접을 못 받았느냐? 여러분, 인구 숫자를 조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구 숫자에 들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게 백정 직업입니다. 그리고 백정들은 어디를 가면 거리적인 제한을 둡니다. 거리로, 한 마디로 제한을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백정입니다. 그만큼 천대 받던 직업이 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정이 장로가 되었으니까 그 당시에 백정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고 기쁨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먼 길을 마다 않고 수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일날이 되면 서울 인사동에 예배 드리기 위해 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냥 제가 이 부분을 말씀 드린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양반과 상놈, 양반은 무조건 잘못해도 양반이고 상놈은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상놈은 상놈입니다. 그런데 그 신분을 타파한 것이 뭐냐,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양반과 상놈, 그 역사 속에, 수천 년, 아니 이조 오백 년 동안 계속해서 흘러내려오던 그 신분에 대한 것이 완전히 타파되는데, 한국의 기독교가 복음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신분이 타파되었습니다. 흐름을 바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곳이든지 그런 흐름들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 물질도, 돈도 돈의 흐름이 있지 않습니까? 돈을 잘 버는 사람은 그냥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본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은 그 남편 되시는 분이 어디 투자하면 돈이 될 것이다 하는 그 흐름을 읽기 때문에 거기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돈의 흐름을 봐야 돈을 벌게 되어 있습니다. 이 흐름을 읽지 못하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 돈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는 사람도 저는 낚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봐야 합니다. 옛날 저희들이 어릴 때는 반도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낚시도 아니고 반도라고 있는데 그 그물 가지고 고기를 훑습니다. 훑어서 고기를 모아서 건져내는 반도라고 있는데 그것도 물의 흐름을 봐야 고기가 그 흐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도 그렇습니다. 운동을 제가 참 좋아합니다. 운동을 참 좋아하는데 지면 괜히 신경질이 나서 저는 쉽게 포기를 해 버립니다. 하다가 지면 신경질이 나서 쉽게 포기해 버리는데 운동도 가만 보면 흐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내게 될 때는 쉽게 쉽게 점수를 냅니다. 그런데 그 흐름을 끊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운동하는 경기를 잘 지켜보면 물론 감독이 여러 가지 작전을 가지고 타임을 겁니다. 작전 타임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그 흐름을 꺾기 위해서, 계속 지고 있으면 그 흐름을 끊기 위해서 작전 타임을 걸기도 합니다. 그만큼 흐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지역에도 흐름이 있고 우리 가정에도 흐름이 있고 우리 교회에도 흐름이 있고 또 문화도 시대마다 흐름이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삶이 체계화된 것을 가지고 문화라 하는데 이 문화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삶이 체계적으로 되어 문화가 되는데, 힘이 있는데 지금 어느 누구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같이 삶의 문화를 보면 타락한 문화, 퇴폐 문화를 누구나 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든지 마약이나 타락, 음란, 도박 이런 쪽으로 문화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따라서 경제도 같이 타락의 경제로 흐르고 있고, 이 흐름들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흐름이 있습니다. 교회도 신비주의를 따라가는 교회가 있고 율법주의를 따라가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정말 우리 하나교회는 지난 주일에도 말씀주신 것처럼 오직 복음, 오직 말씀, 오직 전도가 우리 하나교회의 흐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가 되어지고 그 속에 제자, 후대, 세계복음화, 이게 교회의 흐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교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이 너무 중요한 것인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어떤 영적인 흐름이라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결론으로 붙잡으십시오. 여러분, 정치인들이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또 여러분, 과학자들이 많은 훌륭한 것을 새롭게 개발해서 발전을 시킵니다. 또 교육학자들도 많은 것들을 통해서 사람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영적인 흐름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과학자, 정치인들, 많은 훌륭한 분들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사람은 교육받는 대로, 교육되어지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만큼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들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 영적인 흐름은 바꿀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흐름, 그 흐름을 바꾸는 오직 유일한 길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짜 복음을 제대로 알면 우리가 우리의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대물림을 바꾸는 귀한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 흐르는 모든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능력이 어디 있느냐? 복음 안에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흐름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복음 안에 있습니다. 왜냐?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했습니다. 복음은 바로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면 그 어떤 가정과 가문의 영적인 대물림도 끝납니다. 지역의 영적인 흐름도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복음 가진 사람이 직장에 들어가면 그 직장이 달라지게 되어 있고 교회에 들어가면 그 교회가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결론적으로 붙잡을 것은 하나님은 나를 그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한 사람의 전도자로 부르셨다, 이 확신 가지고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번 따라합시다. 나를! 하나님께서!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로! 부르셨다! 이걸 붙잡으십시오.
1. 바꾸어야 할 영적문제의 흐름
그러면 이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바뀌어야 할 현장의 영적인 흐름이 어떤 것인가하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바꾸어야 할 현장의 영적 문제의 흐름이 어떤 것인가 이 부분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을 만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 안에서 모든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함 받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 인간은 영적인 사망 상태에 이르렀고 인간이 영적인 문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행복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누릴 때 행복하도록 지은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그 어떤 행복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뿌리가 뽑힌 나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법칙이고 창조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사망과 영적인 문제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 근본에 뭐가 있느냐?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원죄 문제가 있습니다. 이 원죄 문제, 이것은 우리가 나면서부터 가지고 온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당연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뭐, 누구나 다 죄가 있지 않느냐,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원죄는 그런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겪는 것이 바로 이 원죄 때문이고,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사단의 운명에서 죽어가는 것이 바로 이 원죄 때문이고, 그뿐만 아니라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 빠지게 된 것이 바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원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이 지옥의 배경, 사망의 권세 아래 매여서 종노릇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2장 1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 무슨 말입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원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 지옥의 권세 아래 붙잡힌바 되어서 한평생 매여서 종노릇한다 했습니다.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원죄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단의 그 권세 아래서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재앙의 문제들이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과 가문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가정과 가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계속적인 실패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한 번 두 번 실패하는 것은 실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대를 이어서 계속 실패하고 또 가난도 계속 대를 이어서 가난하다면 그 무언가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부분을 제대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가정은 단명하는 가정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떤 가정에는 또 이상한 질병 가운데, 동일한 질병 가운데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게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흐름들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또 우리가 원죄 가운데서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그런 상황들, 영적인 문제들 가운데 우리가 자라나면서 우리가 가진, 자라면서 가진 잠재의식 속에 많은 상처들, 과거들, 상한 감정들, 분노와 원한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좋은 말로 인격이지,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자존심을 누가 건드리면 우리가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비뚤어진 그런 자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걸 건드리면 우리가 사실 참지를 못합니다. 이게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원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 가운데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문제들 가운데 자라면서 당했던 모든 사건들, 경험들, 상처들, 과거들, 그게 모두 우리 자존심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만 건드리면 거기에 우리는 폭발하게 됩니다. 부부싸움도 큰 것 때문에 싸우는게 아닙니다. 결국 잠재의식 속에 있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뭔가 모르게 화가 나고 싸우게 되요. 틀린 비뚤어진 자아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니까 자녀들이 탈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 가지고 그대로 교회에 와서 이런 저런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전부 문제들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런 부분들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우리에게 습관화 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계속적으로 반복적인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잖아요. 내가 왜 이럴까? 우리 가정은 왜 이럴까? 몇놈 안되는 우리 자녀들은 왜 이럴까? 이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반복되어지는 습관 속에서 나오는 문제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부분들 속에서 통제하지 못하고 억누르지 못하고 그래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난폭해집니다. 지금 사회의 문제들 가운데 “묻지마 범죄”가 그냥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통제가 안 되니까 터져 나오는 겁니다. 억누르지 못하는 겁니다. 거기서 결국은 온갖 사회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뭐냐?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원죄문제로 시작되었다는 것.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마귀의 자녀로서 우상숭배할 수밖에 없고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 자녀의 문제, 후대의 문제, 내세의 문제등 온갖 문제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 우리가 복음을 알면 알수록 지금 바꾸어져야 될 현장의 영적문제가, 아니 내게 있는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가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영적인 문제들이 치유함 받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저와 여러분이 복음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진짜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보는 눈들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우리는 속아요. 많은 경우 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사탄에게 속고 결국은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실패하는 인생, 손해보는 인생을 살아가요. 그래서 복음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나와 우리와 우리 가정과 가문에 또 현장에 바뀌어져야 할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봄으로 말미암아, 이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보면 거기에는 오직 복음 밖에 없구나 하는 답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정말 이 눈이 열려짐으로 여러분이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를 살려라.
그러면 먼저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바꾸기 이전에 나를 살려야 합니다. 나를 살리면 됩니다. 나를 살리면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 살게되고 가문이 살게되고 나를 살리면 내가 들어가 있는 직장이 살게되고 교회가 살아나게 되어 있어요. 나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복음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래서 복음(그리스도)을 나를 살리기 위해서 주신 겁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메시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말하면 Message of the Cross, 결국은 복음 메시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도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속(원)의 역사 그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구속의 역사를 주셨느냐? 나를 살리기 위해서,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넉넉히 나를 살릴수 있습니다. 복음은 넉넉히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것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게 복음이에요. 나를 바꾸지 못하는건 복음이 아닙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지 못하는 그건 복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복음은 나를 살릴 수 있고 나를 바꿀수 있고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복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한번 보세요. 모세가 80년 동안 헛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레위지파로서 언약을 듣고 언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헛된 인생을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날 찾아냈어요. 아 유월절 어린양의 피, 그 피의 능력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 할수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겁니다. 그 약속을 붙잡았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400년 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빠져 나오도록 하는 그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약에 보면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예수에 대해서 무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바울은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갔어요. 바울의 기도제목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어떻게 하든지 간에, 어떤 상황 속에 있던지 간에 자기는 이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맛을 봤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능력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이 복음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붙잡혀 있는 죄와 죄로 인한 저주에서 해방되어지는 그 축복의 이름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 이름으로 복음을 주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2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어요. 요한복음 5:24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사망의 문제를 완전히 십자가에서 끝내버린 것입니다. 누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 했습니다. 인생은 해결 할 수없는 절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탄을 이길 수가 없어요. 사탄은 세상임금입니다. 세상 신입니다. 이 악한 사탄이 끝까지 추격해 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홍해 바다에 들어설때에도 애굽 군대가 그들을 추격해 왔던 것처럼, 끝까지 추격해 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뭐냐? 오직 그리스도 이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요한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 그리스도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그래서 성경 66권 전체는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이 성경 66권은 다른 것을 이야기 하고 다른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다락방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갔을 때에 2:9-11에 15개 나라에 전도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 현장에 서서 베드로가 메시지 한 내용이 뭡니까? 사도행전 2:36에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 5:42에 보면 초대교회가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3에 보면 바울을 비롯한 전도팀들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들어가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딴 것 말하지 않았어요.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해야 될 그 당위성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 전체가, 전도자가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베드로가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딴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다. 이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복음의 역사, 이 그리스도의 능력들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복음,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면 분명히 나를 살리게 됩니다. 그 어떤 영적인 상태라 할지라도 그 상태가 바뀌어 지게 되요. 그리고 이 복음,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면, 여러분 주일날 와서 강단의 말씀을 받는데 그 말씀이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하나 응답으로 체험됩니다. 그냥 들은 말씀인데 그 말씀이 내게 응답이 되어져요. 그 속에서 또한 말씀의 흐름이 보여집니다. 이래야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있고 나를 살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는데 그냥 열심히 예배드리고 뭔가 은혜 받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진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응답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그 말씀 속에서 말씀의 흐름을 붙잡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말씀의 흐름을 놓치면 아무리 신앙생활해도 응답 없어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뭐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흐름을 제대로 붙잡는 겁니다. 이렇게 성도들 보면 뭔가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하고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말씀의 흐름을 놓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시는 것을 봐요 그 사람은 분명히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뭐냐? 우리가 말씀의 성취를 보고 그 말씀 속에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세요.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창세기 1장에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요한복음 1:1에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고요. 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3에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설명하시는데 무엇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데 언제 일어난 지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흐름을 놓쳤을 때 이 땅에 전쟁들이 일어났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교회 와서 예배드린다고 하면서도 말씀의 흐름을 붙잡지 못하고 놓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응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뭔가 교회에 대해 우리가 일하기 전에 먼저 붙잡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강단 말씀을 매주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주십니다. 또 우리의 전체 메시지가 있고요. 현장에 가면 현장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말씀의 흐름만 제대로 타도 신앙생활이 되어지게 되어있어요. 여러분, 뭔가 모르게 말씀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데 일이 잘된다면 일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어느 날 얼마 못가서 실패가 찾아오고 엄청난 손해들이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내가 말씀의 흐름 속에 있는데 뭔가 일이 안된다면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의 흐름을 붙잡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의 성취를 주시면서 분명히 큰 응답의 문들을 여시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가 정말로 이것은 양심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자로서 근본이고 양심입니다. 말씀의 흐름을 붙잡읍시다. 이것은 설교를 잘 들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의 흐름을 놓친다면 이 예배시간에 예배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실은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흐름을 붙잡는 것이 바로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복음을 통해서 말씀을 듣게 된다면 그것이 응답으로 와집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말씀의 흐름이 보여져요.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나를 살리는 비밀이 뭐냐? 말씀의 흐름이 보여지면서 그 말씀 속에서 정확한 기도제목이 보여지게 됩니다. 내가 기도제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흐름을 보게 되면 그 속에서 주어지는 기도제목들.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 나와요. 그 사실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가지고 우리는 어디에 들어가느냐? 말씀을 실현시키는 실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는 비밀이에요. 사도행전 1:14에 보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에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20명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 속에 들어갔어요. 그 현장이 어떤 현장이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그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인 현장이 마가다락방 현장이에요. 그 자리에 모이면 안 됩니다. 죽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감람산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마가다락방에 모인거에요. 거기에 어떤 응답이 일어났느냐? 사도행전 2:에 보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교회사에 가장 큰 응답, 바로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 있는 현장이 어떤 현장이냐? 여러분,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말씀을 붙잡는 그 현장에 하나님이 가장 관심 있는 현장이라는 사실. 여러분, 성경에 보세요. 기적이 언제 일어났느냐? 출애굽기 3:16-18에 이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장로들을 세우라 할 때 거기에 장로를 세워서 이 말씀이 전달되어질 때 출애굽 기적이 일어났어요. 수3,6장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그 기적이 언제 일어났느냐? 언약궤를 붙잡은 제사장 중심으로 그 요단강을 건너고 언약궤를 붙잡은 제사장 중심으로 여리고성을 돌게 될 때 거기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졌어요.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가는 그 걸음 속에 하나님은 기적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가 중에 한 제자인 가롯유다 죽자마자 바로 빨리 맛디아라는 제자를 세웠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각 제자에게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지역을 맡겼습니다. 그 지역을 맡은 기룟유다가 죽으니까 빨리 그 지역을 감당할 사람을 세워야 되잖아요. 그래서 빨리 맛디아를 세운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내가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주역으로 서야겠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기적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이 축복의 문들을 여신다는 사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속에서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주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단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현장에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흘러가게 할 것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새가족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강단 말씀을 붙잡고 하는 것은 쉽잖아요. 그것만 해도 하나님이 거기에 역사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을 실현시켜야겠다는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이면 한사람, 두 사람이면 두 사람 괜찮아요.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정말 주어진 말씀을 가지고 내가 그 말씀을 실현시키는 그 축복 속에 들어가야겠다. 그때 하나님은 모든 응답의 문을 여시는데 정확한 기도제목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있어요. 말씀을 바르게 정리하고 말씀의 흐름을 붙잡고 그 속에서 참된 말씀을 작은 것이라도 내가 실현시켜야겠다는 결단하고 나갈 때 거기에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정확한 기도제목이 보입니다. 여러분, 정확하고 확실한 기도제목이 보여지면 기도를 계속하게 되어있어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면 왜 기도를 하다 말다 하느냐? 기도제목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도 하다말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고민이 확실하면 계속 고민합니다. 기도제목도 확실하면 계속 기도하지 말라 해도 계속 하게 되어있어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이 정확하면 그 사실을 두고 기도하지 않아도 응답 주시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마가다락방 교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감람산의 언약, 하나님의 나라를 응답으로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여서 는 안 되는 그 현장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얼마만큼 기도제목이 확실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실은 생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될 때 거기에서 끝나느냐?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여시는데 이것은 전도의 문과 함께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들을 다 여시게 되어있어요. 가정과 직장과 지역에 들어가면 그 속에서 영적인 흐름이 바뀌어지는 그 응답이 있게 되어있어요. 오늘 본문에 보세요. 영적인 흐름을 바꾼 현장입니다. 구브로 섬이라고 있었어요. 이 구브로 섬에 정치적 지도자가 누구냐? 바로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영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냐? 6절에 보면 바로 바예수라 하는 박수무당입니다. 그가 그 지역의 영적 흐름을 주도하는 있는 것입니다. 실질적 정치 지도자는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인데, 그 배후에서 영적으로 흐름을 주고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은 누구냐? 바예수라는 박수무당입니다. 다른 말로 엘루마라 했어요. 바예수라는 말은 예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라는 말이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시몬아는 시몬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예수(다른 말로 엘루마)라는 사람이 그 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6절에 보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8절에 "이 마술사 엘루마는 (그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10절에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여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는지라." 오늘 구브로 섬에 실제적인 영적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은 박수무당이에요. 지금 우리 현장과 똑같잖아요. 지금 이 시대 뿐 아니라 지금 우리 현장과 똑같아요. 지금 우리 현장을 보면 선거철입니다. 선거철 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용하다는 점쟁이한테는 돈을 싸들고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대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그 배후에 관상 보는 사람들을 두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심지어 법관들조차도 법과 양심에 따라서 재판해야 하는데 너무 길흉한 재판들은 범과 양심에 공정하게 생각해서 마지막에는 무당들에게 점쟁이들에게 가서 묻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장과 같은 현장입니다. 이런 현장에 결국은 복음의 비밀 가진 바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에 영적인 흐름이 바뀌어졌는데 12절 보세요.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완전히 영적인 흐름이 바울 전도자 팀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제대로 말씀의 흐름을 붙잡고 그 속에 나오는 제대로 실천해야 될 부분을 붙잡고 말씀을 실현시키면서 정확한 기도제목들을 붙잡고 나가는 모든 현장 속에 하나님께서 문들을 여시는데 어떤 문들을 여시느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이 체험한 그 현장에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그 응답의 문들을 우리 현장에 열어주신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정말 하나님의 비밀을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의 비밀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간다면 그 현장의 영적 흐름이 바뀌어집니다. 가정의 영적 흐름이 바뀌어지게 되어있어요. 그 축복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축복이 바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말씀의 흐름을 붙잡고 진짜 그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 말씀을 실천하는 속에 들어가서 정확한 기도제목 붙잡고 나갈 때 문을 여시는데 그 문은 전도의 문과 함께 전도의 문만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경제, 산업, 교회 부흥의 문들을 다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조금만 실천합시다.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마시고요. 특별히 해외에 나가는 렘넌트들 있는데 어떤 현장이든지 말씀의 흐름만 안 놓치면 결국은 그 현장의 영적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들이 되어져요. 이 사실을 붙잡으시고 말씀흐름 속에 실천할 메시지를 내가 붙잡고 그 속에 분명한 기도제목들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는데 그 문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모든 현장을 바꿀 수 있는 영적 문제 있는 현장들을 바꿀 수 있는 그 축복의 힘이 그 속에서 나올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결국은 오늘도 결론은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말씀입니다. 오직 기도입니다. 오직 전도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시대를 바꾸는, 흐름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대표적으로 요셉을 보세요. 보잘 것 없고 힘이 없어 보이는데 그 요셉 한 사람이 애굽의 모든 법을 바꾸었어요. 창세기 47장에 보면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하는 땅에 기근이 들어서 황폐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에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에 토지법이 세워지게 되는데 창세기 47:26에 보면 애굽의 토지법이 요셉으로 세워지고 그것이 오늘날 까지 되어졌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그 시대의 흐름을 요셉이 바꾼 거예요. 그 뿐만 아니죠. 중세시대에 1500년 동안에 가톨릭 천주교가 우습게 여기면서 한 사람을 짓눌렀는데 그 한사람이 중세시대 1500년 동안 흘러오는 흐름을 바꿨어요. 누구입니까?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복음을 붙잡은 루터 한 사람. 힘없고 연약해 보이는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1500년 동안 흘러오는 천주교의 흐름을 바꿔놓았어요. 400년 동안에 완전히 무기력함 속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 언약 붙잡은 모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그 흐름을 바꿔 놓았어요. 다니엘과 세 친구, 그 시대의 저주와 재앙과 흑암의 세력을 완전히 꺾었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 그 지역의 영적 흐름을 바꿨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마시고 그 말씀의 흐름 속에서 내가 실천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 붙잡으시고 정확한 기도제목들 붙잡고 기도함으로 응답받음으로 여러분 통해서 여러분의 모든 현장의 영적 흐름이 바뀌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4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영적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
(행13:4-12)
서론: 복음은 시대와 신분,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한국 기독교 역사 - 승동교회). 어느 곳이든 흐름(경제, 물, 운동, 문화, 교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교회의 흐름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로 제자를 세우고 세계복음화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정치인, 과학자, 교육학자들이 사회에 많은 일들을 하고 영향을 주지만, 근본적인 영적인 흐름은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복음을 알면 가문에 흐르는 영적 되물림이 끊어지고, 지역과 교회와 직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고전1:18 하나님의 능력, 롬1:16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바꾸어야 할 영적문제의 흐름
(1)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인 사망상태가 되어 영적문제에 빠졌습니다.
1) 원래 인간은 창조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축복을 받는 존재였음
2)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나면서부터 근본적으로 원죄문제를 가지고 태어남
(2) 원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재앙이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가정과 가문의 흐름).
1) 잠재의식 속의 상처와 상한 감정, 분노와 원한이 인격(자존심)을 만듦 : 삐뚤어진 자아를 가지게 됨
2) 습관화되면 반복적인 문제(자녀 탈선, 교회안 시험)가 되고, 통제하지 못해 사회적 문제(난폭해진 사람들)로까지 이어짐
(3) 정말 복음 속에 들어가면, 나(가문)와 현장의 영적문제를 보는 눈이 열리고 치유 받습니다.
2. 나를 살려라!!
(1) 복음은 나의 영적상태와 상관없이, 넉넉히 나를 바꾸고 살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셨음(고전1:18 십자가의 도 = 복음 메시지)
2) 복음만이 - 죄, 저주, 재앙에서 해방(롬8:2, 요5:24), 하나님 만나는 길(요14:6) 사탄의 문제 해결(요일3:8)
3) 이 복음을 전하라 - 15나라 향한 베드로의 설교(행2:14-40), 초대교회(행5:42), 데살로니가의 바울(행17:2-3)
(2) 말씀의 흐름을 놓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1) 말씀의 흐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자신을 보여주시며 설명하심(창1장, 요1:1, 요1:14, 계1:3)
2) 실천함으로 실현시키는 축복: 하나님의 가장 관심 있는 곳(행1:14, 출3:16-18, 수3,6장, 맛디아를 세움)
3) 정확한 기도제목: 말씀 흐름 속에 기도제목이 나오면 지속됨(방향이 정확하면 기도하지 않아도 응답)
4) 전도: 영적인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지는 전도 가운데,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행13:6,8,10 → 행13:12)
5) 문을 여심: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축복의 힘으로 현장을 살림
결론: 오늘도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말씀, 오직 기도, 오직 전도입니다. 여기에 시대 흐름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요셉: 애굽의 토지법이 생김 / 모세: 400년 동안 무기력에 빠진 이스라엘이 출애굽함 / 루터: 중세시대 가운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다니엘과 세친구, 바울: 그 지역에 영적 흐름 바꿈). 이제 복음 안에서 말씀의 흐름 놓치지 말고 실천하시면 됩니다. 정확한 기도제목 붙잡고 응답 받음으로 한주간 현장의 모든 흐름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나를 영적인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원죄문제로 영적인 사망상태의 가문과 현장 가운데, 영적문제를 보는 눈이 열리고 치유받게 하옵소서. 복음은 나의 영적인 상태와 상관없이 넉넉히 나를 바꾸고 살리심을 믿습니다. 말씀의 흐름을 타는 가운데 실천함으로, 정확한 기도제목을 붙잡고 나의 전도를 찾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여시는 문을 보는 한주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