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그 위로의 말을 기뻐하더라
2014-06-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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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 위로의 말을 기뻐하더라”
(행15:22-35)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26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 행15:22~35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우리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참된 주님을 만나고 누림으로 기쁨을 회복하는 축복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두 주간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중남미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잘 보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감사를 드리고, 특히 월요일 출발해서 화요일 파나마 현장에 도착해 화요일 저녁부터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또 목회자들, 또 각 교회의 준비하신 사역자들을 포함해서 120여 명이 매일 저녁에 모여서 창세기, 사도행전, 또 다락방 운동에 대한 부분들을 가지고 새롭게 말씀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고, 또 낮시간에는 목회자와 신학생들 가운데 리더들이 있는데 그 리더들 중심으로 해서 말씀 운동에 대한 부분을 함께 나누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진행하고 토요일 주일을 파나마에서 예배까지 진행하고 월요일 새벽에 일찍 출발해서 코스타리카에 들어가서 목회자 한 가정을 만나고 그 가정을 통해서 코스타리카 복음 운동의 문을 여는 팀사역이 진행되는 귀중한 걸음들이었습니다. 비록 한 사람으로 시작되는 코스타리카 지역이지만, 어느 곳에서나 복음 가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배후에 교회가 있고 나라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자가 세워진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넉넉히 코스타리카 뿐 아니라 중남미 살릴 귀중한 제자들이 그곳에 일어나게 됨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만남이 너무 귀중한 만남으로 우리에게 누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코스타리카에 목회자 한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파나마에서 선교사님과 또 파나마에 준비된 우리 사역자들이 순회로 들어가서 사역을 함으로 계속적인 코스타리카 복음 운동이 일어나는 시작이 되는 그 문들을 보고 확인하고 열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집회 중에 베네수엘라의 평신도 한 가정을 만났는데 목회자 자녀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베네수엘라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분 한 가정이 우리에게 만남이 되어져서 미국 선교로 말미암아 중남미 복음이 증거되었는데 사실 미국 선교는 지금 실패한 선교였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질, 돈 가지고 들어와서 선교를 했는데 결국은 한계를 맞이하게 되고 실패하는 선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이 성경적인 다락방 운동, 이 복음 운동, 이미 메시지를 죽 들어왔던 분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 성경적인 다락방 운동이 베네수엘라에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해서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베네수엘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좀 전해 주십사하는 그런 문들이 열리는 현장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귀중한 만남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서 또 무너졌던 다윗의 장막들이 회복되는 축복을 확인하는 걸음들이 되었음을 먼저 여러분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중남미 사역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느끼는, 또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진짜 복음이 필요한 현장이고, 복음이 상실되어버린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이미 완전 미신, 또 잡신들로, 혼합종교들로 완전히 물들어 있고 교회는 힘이 다 상실되어버린, 그래서 목사님들조차도 사실은 목회 일에만 전념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입니다. 너무 어렵다 보니까, 교회가 힘이 없고 어렵다 보니까 목회자들조차도 일의 전선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그런 상황들입니다. 그나마 다락방 운동에 인도받은 우리 목회자들, 참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분들도 원래 투잡을 하면서 목회를 해오셨던 분들인데 복음 운동하면서 이 복음만 전해야 하겠다, 복음만으로 살아날 길이 있고 우리 나라가 살 수 있다는 결론을 가지고 말씀 운동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벽기도 운동도 하고 있고, 그러면서 자기들도 일하고 있던 부분들을 다 정리하고 목회만 전념하게 되는, 그런 가운데서 제자들이 세워지는 그런 사실을 체험하게 되는, 맛보는 파나마 현장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전혀 힘이 없고, 특히 신학교조차도 문을 닫습니다. 학생들이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중남미 서른일곱 개 나라가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는 거의 좌파의 영향을 받고 있는, 그래서 한 70~80% 정도가 좌파 정치가 영향을 주고 있는 그런 실정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좌파의 영향을 받게 되니까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그런 실정들이 중남미 현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상실되는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각 나라들마다 준비해 놓은 제자들을 통해서 이 한 시대 무너졌던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그런 시간들이 되었음을 보고를 드립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행전 15장은 세 번째로 우리가 같이 살펴보고 있는 현장인데, 사실 그냥 세 번째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이 본문을 보면 볼수록 이게 지금 세계선교 현장의 문제이고, 오늘 우리들의 현장, 교회 현장의 문제이고 오늘 우리 자신의 싸움이 바로 이 싸움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많은 일들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사단이 완전히 승리한 현장, 그게 바로 중남미 현장입니다. 악한 사단의 마지막 전략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단의 전략에 완전히 속아서 중남미 현장에서 교회가 완전히 힘을 잃고 있는 그런 현장에, 하나님은 복음 가진 제자를 준비해 놓으시고 새롭게 문들을 열어가시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이 현장이 중남미 그 현장에도 있는 것이고 오늘 우리의 현장에 있는 것이고 우리의 싸움인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이미 우리가 지난 시간들까지 살펴보았습니다만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 내려왔는데, 안디옥에 돌아오니 안디옥 안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느냐? 바리새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음으로 개종한 자들이 일어나서 이방인들 중 예수 믿는 사람들, 그들은 모세가 받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율법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모세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안디옥 교회에 다툼이 일어나니까 그것을 가지고 그러면 이것을 우리 지역, 여기 안디옥에서 의논할 것이 아니라 총회에 보내서 총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자,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서 예루살렘 총회로 올려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총회로 올려보내니까 예루살렘 총회 안에도 바리새인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일어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떻게 예수만 믿어서 되느냐, 모세의 할례를 행해야 할 것이 아니냐, 바로 이방인 가운데 예수께로 돌아온 자들을 일컬어서 한 말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지난 날 자기가 경험한 사실들을 이야기하면서 아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받음을 믿노라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거기에 지난 두 주 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가 일어나서 15장 19절~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이런 부분들은 그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일에 있어서 방해가 되어 지니까 그것을 멀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그렇게 편지를 보낼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20절에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메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여기에 말하는 것은 이것이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기준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구원받는데 있어서 귀중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받는 것인데 그런데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해야될 것이 있다면 이런 이런 삶을 멀리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서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마치 여러분 거지로 생활하던 사람이 동냥하며 빌어먹고 살다가 거지의 삶을 벗어버리면 동냥하며 빌어먹는 삶을 벗어버려야 되지요.
그런데 여전히 거지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빌어먹고 동냥하며 산다면 그것은 아닌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이런 이런 삶에 대한 부분들은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어지니까 당연히 이런 부분들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냐? 구원받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들이 우리의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일에 대해서는 방해되는 것이니까 이런 이런 일은 멀리하라고 우리가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읽은 28~29절에 보면 다시 예루살렘 총회에서 글과 말로써 다시 결론을 반복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8~2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 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반복해서 말과 글을 통해서 알려주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본문 속에서 오늘 주제로 삼고 같이 인도받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할례라는 부분들입니다. 지금 안디옥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문제가 모세의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 이것 때문에 예루살렘 총회까지도 이 주제가 올려가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할례는 무엇입니까? 할례는 언약백성 되었다는 것의 상징으로써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된다는 사실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과 내 의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다 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그런데 이 할례가 모세와 아브라함과 창세기 17장의 아브라함 때부터 할례가 나왔는데 아브라함과 모세 때를 지나면서 이 할례가 율법화 되었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행해야 구원받는다라는 ,,,자동적으로 할례하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 라는 이런 식으로 율법화 되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형식적으로 몸에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 오늘 사도행전에 와서는 할례 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흐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 할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라는 상징으로 주어진 할례인데 이 할례를 행함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형식만 남게 되어지는, 내용은 다 상실해 버리고... 사실 중남미 현장이 그런 현장입니다. 내용들은 다 상실해 버리고 형식만 남아있고, 이것이 중남미 현장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한국교회 현장이고, 세계교회 현장입니다. 형식만 남아있고 내용은 없어요. 모든 종교의 위기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형식화되어지고 교리화 되어지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중요하게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내면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속에 정말로 그리스도가 있느냐 그 사실을 보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그 내용들을 놓쳐버리니까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식화 되어 지고, 교리화 되어 지고,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흐를 수 있게 되어진 것입니다.
오늘 예루살렘교회에 일어난 일들이 이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일어나는 문제이고, 전 세계교회에 일어나는 일들이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교회에서 일어났던 일, 바로 이 문제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은혜이냐 행위냐 입니다. 여러분, 무엇입니까? 은혜입니까? 행위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은 안하고 있지만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 그래도 그렇지 열심히 주일성수하고 열심히 십일조 해야 하지 않느냐? 그것이 내용을 가지면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부분이지요. 여러분 내용을 가진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은혜 받고, 힘을 얻고 현장을 살릴 수 있는 주일 성수, 당연하게 중요하게 여기고 따라오는 것이지요. 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예요. 내용을 다 놓쳐버리고 형식화 되어지고, 교리화 되어진 그 속에 내가 뭔가 행위로 잘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인도받고 있다는 거예요.
파나마에서 미국을 거쳐서 나오는데 미국의 공항에 잠시 다음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 쉬는 시간에 신문에서 잠시 보았는데 미국의 2만명 넘는 교회의 목사님 한분이 교인들에게 제안을 했어요. 당신들이 낸 십일조를 90일만에 하나님이 그대로 축복하지 않으시면 교회에서 환불해 주겠다고..그러면서 거기에 그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교회가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90일안에 십일조를 하나님이 다시 축복으로 되돌려주지 않으면 환불해 주겠다는 것. 좋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교회가 형식화 되어지고, 교리화 되어지고, 뭔가 행위를 중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것 했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열심히 헌신도하고, 봉사, 구제하는 일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은혜 가운데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은 이것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이런 행위를 중심으로 해서 나오는 신앙생활의 열심들이 많다는 사실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은혜냐? 행위냐? 이천년전에 예루살렘 총회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고 이것이 쭉 흘러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미래에도 이 싸움입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로 점점 복음이 복음 됨을 상실하는, 복음이 복음 되어져 가는 역사들을 상실되어져가는 이런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복음을 붙잡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서 복음 붙잡은 한 사람, 복음 붙잡은 한 교회, 복음 붙잡은 한 나라를 통해서 이 시대의 역사를 바꾸어 가는 그 축복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음을 믿습니다.
복음이 상실되어져 가는 이 현장 속에 저와 여러분을 복음 붙잡은 사람으로, 우리교회가 복음 붙잡은 교회로, 이 민족이 복음 전하는 민족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어요. 그래서 여러분 먼저 복음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알고 누림으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에 쓰임 받는, 이 복음이 상실되어져 버린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주역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어떤 사람, 환경, 사단도 막을 수 없는 복음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이 복음은 어떤 사람도, 어떤 환경도, 심지어 사단이 다 할 수 있지만 이 복음은 막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람도, 환경도, 사단도 이 복음은 막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전도자들로서 여기에 대한 결론을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행전 15: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오늘 본문에 사도행전15장 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안디옥에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예루살렘 총회에 그 의견을 묻기 위해서 보내는데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은 사람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복음인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4-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4절에 보면 이 복음이 증거 되어지는 일들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막을 수 없는 복음의 역사 속에 그 복음을 듣고 기뻐한 사람들, 그게 바로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어떤 사람도, 복음을 막을 수 없다라는 사실. 그러면서 예루살렘 총회가 일어났을 때에 거기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7절부터 보면 자기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말하게 되죠. 그 중심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이방인 중에 준비된 고넬료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 사실을 간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것을 우리는 믿노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복음의 역사가 이방인에게 증거 된 사실들을 베드로가 증거 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 후에 야고보도 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무너졌던 다윗의 장막, 말씀대로 성취되어지는 것이 아니냐! 막을 수 없는 복음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어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 만민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겠다는 그 약속이 지금 이루어진 그 현장이 아니냐! 막을 수 없는 복음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특별히 25-26절에 보면, 이 복음 때문에 생명을 건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이 복음을 막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여기에 가치를 깨닫고 생명을 건 사람이 일어났다라는 것. 복음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아는 생명 건 사람이 일어났다는 것. 그러면서 예루살렘에 내린 결론이 뭐냐? 이 복음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라는 것. 이방인들이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 그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환경도, 복음은 막을 수가 없어요.
지난 주간에 강단을 통해서 우리 원로목사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칼빈. 여러분, 창세기 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은 완전히 멸망가운데 빠지게 되었고 우리 인생이 창세기 3장 사건에 빠져가지고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가지고 찾아오셨다라는 것. 그리고 이 복음 가진 자는 절대 망할 수가 없고 복음의 역사를 막을 수가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이 복음 가진 자를 끝까지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라는 사실. 지난 주간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속에서 말씀을 붙잡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칼빈이 성경을 본 눈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 버렸다라는 것. 그래서 인간 스스로 하나님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우리에게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구원)하셨다는 사실. 그 선택 받은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제한적으로 속죄를 이루시고 그 복음의 역사들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거하게 되었다라는 사실. 그리고 이 복음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기어코 끝까지 승리토록 하신다라는 성도의 견인.이것이 복음을 가장 정확하게 말씀하는 것이고 성경 66권을 가장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가진 복음을 막을 수 없다라는 것. 여러분, 그 축복 가운데 여러분이 있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복음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 복음 붙잡고 우리가 기도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께서 복음 붙잡은 자들에게 역사하시게 되어 있어요.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그 다음의 일은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 속에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복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루터가 이야기 했잖습니까? 성전을 기어오르면서 엄청난 고행가운데 있으면서 루터가 한 이야기입니다. 이것(고행) 가지고 구원 받는게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그 막강한 중세 교황(카톨릭)의 세력 앞에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이야기를 하고 루터가 나중에 죽었지만, 그 복음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라는 것.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번에 코스타리카에 가니까 거기에 4백년이 넘는 성당, 백년이 넘는 성당들을 가봤습니다. 성당들이 거의 다 광장을 끼고 있는데 거기에 중세시대의 루터가 했던 그모습, 그대로 진행이 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광장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 안까지 기어서 들어와요. 우리 중남미 선교팀이 2년 전에 멕시코와 파나마에 갔을 때 거기서 본 장면들입니다. 똑같은 현장, 그 당시에 루터, 지금도 사람들이 오면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안에 저 끝에서 앞에까지 나와요. 저 사람이 루터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으로 산다는 것을 잘 모르니까 뭔가 자기들의 행위를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은 지금까지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시대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붙잡는 자들을 쓰시고 지금까지 이 복음은 계속되고 있다라는 것.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복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승리한 믿음의 영웅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들이 한결 같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다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히브리서 11장 38절에 그 믿음의 영웅들을 결론 지으면서 하는 말이 뭐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느니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복음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요. 환경도 복음을 막지는 못해요.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바리새인들, 유대사상들, 모세의 할례를 행해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고 나왔잖아요.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그 어떤 환경도 그 자기들의 의견들 때문에 교회 안에 다툼과 내분이 일어났잖아요. 그런데 그것들 조차도 결국은 복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환경도 복음을 막지 못해요. 심지어 사탄이 창세기 3장, 6장, 11장을 가지고 우리를 멸망시키고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을 가지고 세상을 모두 무속과 점술과 우상으로 끌고 가고 또 우리 후대들까지도, 개인과 가정도 불신자 상태 6가지 가지고 멸망시킬 수 있지만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복음 가지고 있으면, 복음은, 막을 수 없다라는 사실이에요.
그 복음을 붙잡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문이 열려지는 귀한 축복을 누리시고 천군천사 동원되어지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 이루어지는 이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알기만 해도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 안에 하나님은 모든 것 다 주셨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우리의 모든 현장에 흑암이 무너지고 여러분 통해서 이 복음이 복음 됨이 증거 되어 지는 그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한번 받아합시다. 어떤 사람도, 어떤 환경도, 사탄도,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막을 수 없다! 이 결론을 딱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2. 하나님이 주신 복음 외에 참위로, 참기쁨은 없다.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복음 외에 참 위로와 참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안디옥 지역에 일어난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 총회에 의견을 올렸는데 그 예루살렘 총회에서 다시 결론을 가지고 사람과 글을 보냈는데 그 글을 안디옥지역에서 31절에 보면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여기에서 그 위로한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복음. 예수로만 구원 받는다라는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기뻐했다 말씀했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기쁨이 필요하구나! 하고 깨닫게 되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참 심각한 위기를 당하고 있구나 그냥 사람들을 모함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지..우리가 참 안타깝고 참담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완전히 모함에 빠뜨리고 말들을 만들어 내고 무너뜨리고...어떻게 이렇게 되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 정말로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닌가? 여러분 이 땅에 위로와 기쁨이 필요한 세상인데 그 위로와 기쁨은 분명히 기억하세요.
복음만이 우리 인생에 참된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고, 복음만이 우리 인생에 참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가진 저와 여러분은 복음으로만 위로받을 수 있고, 복음으로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에게 진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복음으로만 기뻐할 수 있어요. 물고기가 물속에 있어야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것처럼,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참된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 주시는 위로와 하나님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그 속에 있을 때에 참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복음 안에 있을 때만 위로하심과 기쁨이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을 드렸어요. 1부 찬양 때도 그렇게 찬양 드렸습니다마는 2부 찬양대.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 해결 받은 저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정말 기뻐할 수 있는 그 축복이 정말 우리에게 회복되어지는 그 축복의 약속들을 신앙의 고백으로 선포한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위로 줄 수 있고요, 하나님 만이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모함하고 헐뜯고 무너뜨리느냐? 그들에게 참된 기쁨이 없고 위로함이 없기 때문에 상한 심령을 가지고, 영적인 상태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여러분!저와 여러분이 참된 복음 안에 기쁨과 위로를 아는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필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알게 하시고 이 복음 안에 참된 위로와 기쁨을 알게 하시고 이 일을 전달하는 자로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안디옥에 그 위로의 말을 기뻐하더라 했어요. 복음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에게 로마서 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습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인생은 알든 모르든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 버렸어요. 이 악한 사단이 인생들을 장악해서 어떻게 속이고 몰고 가느냐? 점술로, 미신으로, 우상숭배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종교로 우리 인생을 몰고 가고 결국은 사단이 속이면서 멸망의 길을 걸어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자들 조차도 이 복음 안에 있는 참된 위로와 기쁨을 알지 못하니까 내가 주인 되어지고, 세상기준이 주인되어지고, 육신적인 것이 주인 되어져서 똑같이 사단에 속아서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요.
그런데 이 사단의 속임수에 분명히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사단의 역사에 대해서 믿지도 않고 있고요, 이야기를 해도 농담으로 여기고 있고요. 그래서 잘사는 것 같지만,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사단의 손에 의해서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죄와 재앙과 지옥의 배경을 바꾸는 유일한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내 인생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예요. 우리 가정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예요. 우리의 산업현장에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예요.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바로 알면 우상 숭배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 그리스도면 충분하니까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인생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에요. 우리 가정의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에요. 우리의 산업 현장에 모든 답으로 주신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바르게 알면 우상 숭배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 그리스도로 충분하니까요. 그리스도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린 왕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재앙의 문제를 해결한 제사장이십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 언제? 에베소서 1:3-5에 보면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언제? 로마서 16:25-27에 보면 "영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9:30에 "다 이루었다."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뭐라 했습니까? 누가복음 10:19에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 이루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말씀했습니다. 마가복음 3:13-15에 보면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로 누리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요한복음 1:4,9에 보면 생명이요 빛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참된 생명과 빛이 나타나게 됩니다. 거기에 어두움은 물러가게 됩니다. 어두움으로 인한 모든 절망과 모든 슬픔과 모든 죄악의 역사들은 물러가게 됩니다. 생명으로, 빛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그 그리스도 그 이름가지고 계속해서 기도하게 되면, 골로새서 1:27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다" 했습니다. 어떤 절망의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소망이 생기는데 그냥 소망이 아니라 영광의 소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6:24에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우리 안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기쁨이 충만케 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맛본 전도자 바울의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4:4에 "너희는 기뻐하라 또한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어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바울의 고백이죠. 그러니까 감옥 안에 있는 상황인데 감옥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기뻐하라 또한 기뻐하라. 빌립보서 4:10에 내가 기뻐한다 말씀하면서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씀하시면서 4:13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된 위로와 기쁨이 넘쳐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4:7-8에 오늘 묵상하면서 읽었던 말씀인데요. 거기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 보다 더하니이다."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한 것 기쁜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8절에 보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지금 쫓겨 다니는 도망자로 살고 있고 죽음의 위협과 어려운 환경들이 처해있는 속에서도 평안히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왜냐, 내 안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 마음에 두신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 말씀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이 누려야 될 축복.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기쁨. 당연한 것을 여러분이 누리시고 이번 토요일 행복나눔축제입니다.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이 전도대상자를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특별히 하나님의 참된 위로와 하나님의 기쁨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귀중한 기회가 되어지심으로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체험되어지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6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 위로의 말을 기뻐하더라
(행15:22-35)


서론: 오늘 본문은 세계 선교현장과 오늘날 교회의 싸움,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의 마지막 전략은 바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바울팀이 1차 선교여행 마치고 안디옥에 내려왔을때 다툼이 있었습니다(할례-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상징). 할례는 내 능력과 내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모세를 지나면서 이 할례가 율법화 되었습니다(할례받으면 구원받는다). 형식만 남아있고 내용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과 세계교회의 현장입니다(형식화, 교리화). 복음이 은혜입니까? 아니면 행위입니까? 비록 헌신과 봉사를 하고 있더라도 이것으로 나중에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복음됨을 상실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복음 붙잡은 교회, 오직 복음 전하는 교회입니다.

1. 어떤 사람, 환경, 사탄도 막을 수 없는 복음
(1) 복음(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행15:3,4,7,25-26).
(2)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복음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도하라!!
1) 칼빈: 성경을 보는 눈 -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2) 루터: 막강한 중세 교황의 세력 앞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3) 믿음의 영웅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11:38)

2. 하나님이 주신 복음 외에 참 위로, 참 기쁨은 없다!!
(1)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기쁨이 필요합니다.
1)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위로되고 기쁨이 됨
a. 사탄의 머리를 깨뜨린 왕 b. 죄 문제 해결하신 제사장 c. 하나님 떠난 우리를 하나님 만나게 하신 선지자
2)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는 충분하고 완전하며 모든 것입니다.
a. 그리스도면 충분하기에, 정말 알면 모든 것은 끝난 것임 : 우상숭배를 할 필요가 없음
b.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기 때문에 갈 길을 보여주심 : 습관처럼 점술에 의지할 필요가 없음
c.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 : 세상을 이기고 살릴 수 있음
(2)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 우리를 세우시고, 이 위로와 기쁨을 세상에 전달하게 하십니다.
1) 창세전(엡1:1-3), 영세전(롬16:25-27)에 우리를 부르시고(요15:16) 다 이루심(요19:30)
2)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시고(눅10:19), 함께 전도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심(막3:13-15)
3) 생명과 빛이 되사 어두움과 절망, 슬픔과 죄악의 역사는 물러가고(요1:4,9) 영광의 소망이 되심(골1:27)
4) 구하고 받음으로 기쁨이 충만하고(요16:24) 다시 기뻐하며(빌4:4,10,13)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을 누림(시4:7-8)

결론: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복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복음 안에 서 있는 것을 알기만 해도 사탄은 결박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은 오직 복음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정말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로만 힘을 얻고 기뻐하는 자입니다. 한주간 이 기쁨의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이 복음 됨을 상실한 시대에 오직 복음 붙잡은 교회, 오직 복음 전하는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복음 가운데 자신을 발견하고 세우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이외에 참된 위로와 참된 기쁨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한주간 이 위로와 기쁨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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