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2014-09-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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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행19:10-20)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19:10~20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도 흠모하는 일인데, 바로 화목케 하라는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이 말씀의 증인되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20절에 보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여기에 나오는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라는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른 교회도 훌륭한 교회들이 많지만 우리 하나교회가 하는 일이 있다면 말씀운동하는 교회입니다. 특별히 말씀운동하는 교회로 훗날에 기억될 교회로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말씀운동하는 교회의 모델적인 응답이 어떤 것인가, 그게 오늘 본문에 잘 나와 있는 부분입니다. 말씀운동하는 교회의 모델적인 응답의 축복, 바로 에베소 지역에 일어났던 이 응답입니다. 바로 우리가 받을 응답이고 우리 개개인, 우리 교회가 받을 응답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말씀운동을 하면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2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가르쳤는데 10절에 보면 “아시아에 사는 자는... 다 듣더라.” 말씀했습니다. 2년 동안 제자를 말씀 운동 때문에 따로 세워, 그 제자들에게 집중했는데 그 결과가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말씀운동을 통해서 일어난 역사가 무엇인가? 그 다음에,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부분들입니다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이 다 증거되니 치유가 일어났는데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복음 증거하는 말씀운동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니 결국은 사이비 신앙들이 다 떠나게 되고 사이비 신앙, 폼을 잡고 흉내내는 사람조차 이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기적을 일으키니 그 바울을 모양 삼아 자기도 해 보겠다고 나서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질치게 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이후에 또한 지금까지 자기가 의지하고 살았던 귀신 섬기던 일들, 마술을 하면서 살았던 삶을 정리하면서 나왔는데 그게 바로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높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그런 문화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 지역에 일어났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운동하는 우리 교회, 말씀운동하는 교회 속에 몸담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응답이 이 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로 그냥 말씀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일으킬 것인가하는 모델을 우리가 붙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 약속의 말씀을 붙잡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역의 흑암의 세력을 꺾고 말씀이 확장되는 이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냥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흑암의 역사들을 다 꺾어 버리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말씀운동이 확장되는 이 일에 저와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목을 그래서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여기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흑암 세력이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세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이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흑암의 세력이 꺾였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지교회 운동을 한다, 말씀운동을 한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헌신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나의 현장에 말씀이 세력을 얻을 수 있도록 말씀이 흥왕하는 일에 내 인생이 쓰임 받는다는 것, 이것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한 번뿐인 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들로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참 행복을 가진 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말씀이 흥왕하는 이 일에 내 인생이 쓰임 받게 될 것인가? 정말로 한 번 뿐인 내 생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헌신해야 하는데 이 일을 위해서 먼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하는가?
그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운동이 왜 일어나야 하는가 그 이유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말씀운동이 끊어졌기 때문에 꿈도 비전도 사라지고 이 시대 자체가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은, 언약을 나의 말씀으로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자들의 생과 일과 모든 것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언약을 성취하는 그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게 성경 전체의 기록입니다. 성경 전체의 기록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은 사람들이 어떤 응답을 받았는가, 그것을 증거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은, 이 약속을 언약의 말씀으로 붙잡은 주의 종들, 일과 생과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능력 있고 지식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돈 있고 훌륭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쓰시게 되어 있고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생, 모든 삶에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는 마가다락방, 초대교회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초대교회를 쓰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하다, 연약하다, 상관없었습니다.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졌는데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초대교회의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행전 9장 15절에 보면 이 바울에게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약속의 말씀을 자기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약속의 언약의 말씀을 바울이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붙잡힌 이 바울은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쓰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보면 또 바울이 위기 가운데 새로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약속을 붙잡은 바울을 하나님은 쓰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수준을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의 모양을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의 환경과 형편들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그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그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 우리 인생이 이 땅에 어떻게 해서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로 말미암아 일어난 상태가 어떤 상태이고 그 결과가 어떠하고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귀중한 답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축복이 무엇인가 이미 말씀을 통해서 다 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내게 주신 언약으로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시는데,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신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말씀을 붙잡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냥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손해 보는 것입니다.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지금 대구지회 집중 합숙이 계속 되어지고 있습니다. 내일 집중집회가 대구지역, 또 전체 사명자 중심으로 해서 우리 하나교회에서 집회가 진행됩니다만 이를 앞두고 금요일부터 집중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메시지와 함께 시간시간 간증자로 섰던 사람들, 하나같이 받은 응답들이 무엇이냐? 사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자기 수준과 상관없이 많은 전도의 문을 열어 가셔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역이 살아나고 직장이, 산업 현장이 복음 증거됨으로 말미암아 많은 응답들이, 문들이 열려진 사실을 간증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자들의 한결같은, 하나같은 공통적인 간증이 무엇이었냐? 여러분, 뭐라고 들렸습니까? 참여하신 여러분들, 뭐라고 들었습니까? 한 분 한 분 하나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자세히 내게 주신 약속으로 붙잡고 실현 속에 들어가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이런 문들을 여셨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것들을 우리가 다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내게 주신 언약의 말씀으로 붙잡게 될 때 누가 그 언약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느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취시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과 내 생을 통해서, 나의 모든 것을 통해서 그 말씀을 성취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맛보게 된다면 세상의 그 어느 곳에서도 올 수 없는 참된 행복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에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참된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말씀 안에 모든 답을 주셨는데 문제는 이 말씀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고 이 말씀을 우리 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로 세상에 어려움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위기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잠언서 29장 1절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했습니다. 여러분, 방자히 행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닌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묵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좌충우돌하면서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기준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땅의 문제는 다른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그 언약을 놓쳐 버렸기 때문에 지금 세상은 흔들리고 있고 저주 가운데, 재앙 가운데 빠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 빠지는 것은 세상에 대한 책임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왜 인생의 문제가, 이 땅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 모릅니다. 그래서 어려움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속에 말씀을 통해서 이 귀중한 답들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귀중한 말씀에 대한 축복을 놓치고 있으니까 세상이 저주와 재앙 가운데 결국 백성들이 방자히 행하면서 실패하는 삶 속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놓쳐 버렸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땅에 결과가 저주와 재앙과 실패의 역사가 이 땅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말세 때 일어나는 일들을 마태복음 24장, 25장, 디모데후서 3장, 계시록에 죽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장에 보면 말세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 적그리스도가 일어나서 많은 영적인 문제가 올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말세 때에 자연계에도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적으로 자연계에 일어나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을 보십시오.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은 다 시험에 들어서 무너지고 결국은 핍박받는 일에 있어서 완전히 잡혀가는 ,죽게 되는 어려움까지 처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24장에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말세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교회 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염소들이 들어와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일컫는 것이지요.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분열시키고,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중요한 생명운동을 놓쳐버리고 다른 것 한다고 거기에 모든 시간과 모든 돈들을 다 소비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마지막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세 때에 일어날 일들로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오늘날이 말세 때이고,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일이고, 세상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회가 놓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저주와 재앙 가운데 ...심지어 교회 안에조차도 어려움들이 올 수 밖에 없는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시대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세상적이 되었고, 육신적이 되었고 타락에 빠졌습니다. 거기에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말씀을 무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 고모라 시대에 롯이 자기의 가족들에게 다 이야기 했습니다. 곧 멸망 받을 것이다고.. 그런데 창세기19장을 보면 롯의 사위들은 그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니까 결국은 시대가 어려움에 빠지고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요즘 복음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말씀을 계속 붙잡으면서도, 너무 이 귀한 말씀을 귀한 말씀으로 보지 못하는 제 마음의 영적사실을 보게 되요. 아! 내가 이 엄청난 축복의 메시지를 갖고 있음에도 이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뭔가 이 복음의 메시지 앞에서 우리가 자꾸 너무나 귀하고 좋은 메시지인데, 진짜 시대에 없었던 원색적인 복음 메세지를 우리가 받고 있고, 또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자신도 모르게 점점 무디어 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자신을 보면서, 제 자신을 보면서, 저는 제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답을 말씀에 주셨는데 그 말씀을 놓쳐버리게 될 때에, 그 말씀에 무지하고, 농담으로 여기고 그 말씀에 무디어지게 될 때에 우리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저주와 재앙입니다. 실패의 역사입니다. 디모데후서3:1절에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 했습니다. 그 고통 하는 때에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진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말씀을 놓쳐버리니까 관심이 달라지는 거예요. 어떻게 관심이 달라지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이것이 세상 밖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의 모습 이예요. 우리도 모르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갈급해요. 또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 갈급하고, 쾌락에 대해서 갈급해요. 그것이 말세의 특징 이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놓쳐버리니까, 말씀을 모르니까, 그러면서 디모데후서3:5절에 보면 말세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은 능력은 부인한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짜 말씀을 내게 주신 언약으로 붙잡게 될 때에 그 속에 참된 능력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다 놓쳐 버리니까 모양은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경건의 모양으로 저주와 재앙의 문제, 사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아십니까? 천만에요. 그 어떤 모양으로도 사탄의 세력을 꺽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경건의 모양을 갖춘다 할지라도 사탄은 여러분 모양 앞에 쫓겨 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을 꺽을 수 있는 엄청난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다 놓치고 있으니까 모양만 가지고 살아가요. 이것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닌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런 결과로 결국 디모데후서3:6절에 보면 어떻습니까? 교회 구석구석에 거짓의 영이 자리 잡아서 진리를 진리 아닌 것으로 바꾸어 버리고, 완전히 교회에 힘을 다 빼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말세 때에 일어날 일들이 지금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것.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인데...그렇잖아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고요, 이것은 모든 것 다 가진 것이고, 다 되어질 수 밖에 없는 축복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뭐냐? 그것이 구원 받은 것이고, 복음 아는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사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리도 모르게 영적인 힘이 전혀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생활, 종교생활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원받았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확실히 차이가 나게 되어 있어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세상 속에서 합리적이고, 뭔가 좀 객관적이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이 옵니다. 그런데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들의 거기에는 한계가 오게 되어 있어요. 왜 한계 올 수 밖에 없느냐? 성경에 로마서3: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다고 했어요.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로마서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어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그 죄의 값으로 로마서6:23에 바로 사망이 왔다 말씀 했습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인생에서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는 신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도, 모든 사람이 예외 없어요. 하나님을 떠나 있다면 분명히 한계가 오고 그 한계 속에 영적문제 올 수 밖에 없고, 나름대로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성공하고 훌륭한 자리를 가집니다마는 그러나 결국은 악한 사탄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멸망입니다. 사탄이 하는 짓이 그래요. 아무리 지금 잘 되어도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결과는 뭐냐? 멸망입니다. 요한복음10:10절에 뭐라 했습니까? 바로 악한 사탄의 정체를 말씀하고 있지요. 죽이는 것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빠져 나왔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을 가졌어요. 복음을 가졌다는 말은 복음 그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에 결국 그 복음이 우리를 변화 시키게 되어 있어요. 나의 모든 삶을 변화 시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빌립보1:6절에 “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지마는 저와 여러분은 달라요. 시간가면 갈수록 결국은 생명으로, 구원의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생명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멸망 받게 되어 있지마는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되고, 생명을 누리게 되어 있어요. 혹이나 이 자리에 오늘 처음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주인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멸망 속에서 빠져 나와서 생명 얻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졌다, 구원을 받았다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축복을 놓치고 이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교회를 다녀도 그냥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하고요.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고요. 이 구원의 엄청난 축복을 놓치고 영적인 힘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이 어마어마한 줄 알면서 왜 못 누리는 줄 아십니까? 영적인 힘이 없으니까 그래요. 왜 영적인 힘이 없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분명히 사탄을 꺽는 권세가 있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왜 우리가 기도하면 모든 문제 기도 통해서 응답 받는 줄 알면서도 기도가 안 되느냐? 영적인 힘이 없어서 그래요. 영적인 힘이 있어야 기도도 하게 되어 있고,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도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영적인 힘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힘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응답도 받지 못한 체, 응답 없는 열심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 나중에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이 땅은 점점 흑암가운데 빠져버린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먼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인생에게 문제가 오게 되었고요. 그래서 성공해도 성공이 아닙니다. 결국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 서 있게 되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말세 때 일어날 모든 문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부분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말하는 말씀운동, 복음운동이 현장에서 일어나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현장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말씀운동, 복음운동이 저와 여러분의 현장 속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옥의 배경을 바꾸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말씀운동, 그것이 현장 속에 일어나야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로 나타나면서 거기에 흑암이 꺽여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저주와 재앙이 떠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이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가 이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었어요. 비록 보잘 것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마는 여러분 성경에 초대교회를 보면 집에 대해서 나오지요. 지역이 나오고, 제자가 나옵니다. 성경을 보세요. 무엇 했다는 말입니까? 그 집 중심으로 해서 제자들이, 지역 중심으로 제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말하는 복음운동, 말씀운동을 했다라는 사실이예요. 그러니까 그 지역 지역마다 역사하는 흑암이 꺽여지고 큰 복음의 문들이 열려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리라.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어떤 사람으로 축복 받길 원하시느냐? 현장에서 여러분 때문에, 하나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이 힘을 얻는, 세력을 얻는 역사들로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 받는다 가장 귀중한 축복된 역사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락방 한다, 지교회한다. 딴게 아닙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우리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할 때 우리의 모든 것 책임져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말씀이 세력을 얻는 그 축복된 증거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운동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두 번째입니다. 말씀운동과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우리가 이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알게 되어 있어요. 말씀운동을 할 때 일어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 성경에 사도행전을 보면 전부 그 역사를 말씀하고 있죠. 사도행전 1장 1절 그리스도, 3절에 하나님나라, 8절에 성령충만함, 이 약속을 붙잡은 초대교회가 1장 12-14절에 보면 전혀 오로지 기도 속에 들어갔어요. 그때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바람 같은 불 같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된 것이죠. 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초대교회가 사도행전 2장 42절에 무엇을 했느냐? 거기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교제하며 떡을 떼며..” 무슨 말입니까? 또 말씀운동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그 결과로 47절에 보면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졌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이죠. 어떤 현장에?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하는 그 말씀운동이 일어나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운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현장에 일어나기를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다른게 아닙니다. 이미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모든 유대인들은 다 아는 사람입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이미 이 사람이 누구였던가를 다 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많은 유대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 하나님의 역사죠. 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때문에 베드로가 종교법정에 서게 되었어요. 사도행전 4장입니다. 거기에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게 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베드로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이 베드로가 뭐라고 했느냐? 사도행전 4장 29절에 보면 베드로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핍박을 없애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보시고 이 사건을 통해서 주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였습니다. 이미 베드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안 것이죠. 그러니까 사도행전 4장 31절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했습니다. 여기에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의 역사속에 세워지게 된 것이죠. 사도행전 5장에 교회 안에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 말씀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회에 시험이 오게 되어 있고 그 시험이 오게 될 때 복음의 비밀을 가지지 못하면 거기에 걸려들게 되어 있어요. 정말 여러분 성령으로 복음으로 충만한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 안에 시험이 들어왔을때에 복음에 결론 내리지 않고 복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기에 걸려든 거에요 그래서 하루아침에 같이 죽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초대교회에 부부가 같이 죽게 되었다, 엄청난 큰 일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말씀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초대교회는 큰 일이 큰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말씀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안 일어나고 있다, 그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교회 안에 말씀운동이 일어나면 일이 일어나도 문제가 터져도 일이 일이 안되고 문제가 문제가 안 되어져요. 그런데 교회 안에 말씀운동이 사라지면 일이 아닌 것도 일이 되고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가 되어가지고 교회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라는 사실이에요. 진짜 말씀운동이 교회 속에 일어날 때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안되어지는 축복이 바로 초대교회 안에 있었어요. 2명이 동시에 죽는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문제가 안 되었어요. 왜냐? 이미 초대교회는 말씀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교회 안에 파당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제 문제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인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죠. 그때 사도들이 눈치채고 오히려 이 말씀운동을 더욱 더 증거하기 시작했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느냐?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하나님의 역사죠. 여러분 제사장 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어떻게? 말씀운동이 일어나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거기에 제사장들의 무리가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7장에 스데반이 순교했습니다만, 그 순교로 말미암아 전도자 바울이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고 8장에 빌립으로 말미암아 전혀 문들이 닫혀 있던 사마리아성에 문이 열리게 되고 말씀운동이 일어나니까 다메섹에서 핍박자 사울이 대전도자로 바뀌는 이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메섹에서 핍박자 사울을 꺾기 위해 기도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말씀운동이 계속 일어나니까 그 핍박자 사울이 그 자리에서 꺾어지고 전도자로 바뀌어 지는 그 응답을 주셨다는 것. 우리 가정에 우리 지역에 말씀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거기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 일을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사탄의 역사를 겁낼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역사하기 때문에 큰 문들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 17장에 데살로니가, 18장에 고린도, 19장에 에베소 지역에 말씀운동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에 가장 중요한 응답의 모든 문들이 다 열려졌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 어떤 역사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를 위해서 내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내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 어떻게 누릴 것인가?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시고요, 또 된다면 말씀을 암송해 보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기록해 보십시오. 시편 1편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했어요.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느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하는(시편 1:3) 그 응답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말씀 묵상 속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잘못 각인된 부분들을 치유하면서 영육 간에 병든 부분들을 치유하는 그 증거를 주시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말씀에 대한 암송, 류광수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복음성구 30가지가 저절로 외워 졌는데 그때부터 모든 응답의 문들이 다 열려졌다고 하셨어요. 성경구절 가운데도 복음의 핵심적인 성구가 있잖아요. 그게 저절로 어쩌다보니까 외워졌는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응답의 문들을 하나님께서 다 여셨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 대한 암송, 이 말씀에 대해서 암송할 때 우리도 모르게 우리안에 큰 영적인 힘들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시편의 150편 가운데 다윗이 기록한 시가 73편입니다. 거의 절반 가량이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시편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냐? 다윗은 이미 말씀에 대한 많은 암송들이 되어졌다라는 것. 그 속에 나온 것이 시편이었어요. 여러분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로스비, 어릴 때 잘못 치료를 해서 실명이 되어버렸잖아요. 너무 가난하니까 부모님은 자녀를 놔두고 돈벌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주말마다 올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할머니가 크로스비에게 어릴 때 하나님 말씀을 계속 암송시킨 겁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와서 또 그 부분을 확인하고.. 그런데 크로스비에게서 지은 찬송, 시대를 한번 보세요. 많은 영혼들을 오고오는 세대속에서 가장 귀중하게 불려지고 있는 찬양이 뭐냐? 크로스비가 지은 찬양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이 모든 찬양들 우리에게 가장 은혜를 주는 찬양 중에 하나가 바로 크로스비가 지은 찬양입니다. 그게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암송 속에서 나온 시들이었어요.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된다면 여러분 조금 기록하세요. 저는 집회에 가면 말씀 들을 때에 어떻게 하든지 한 자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다 씁니다. 다른 분들이 제 노트를 보면 못 봅니다. 전부 지렁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어요. 그러나 저는 보면 압니다. 왜 그렇게 빨리 쓰느냐? 사실 제가 어려울 때 말씀을 녹취를 했었어요. 테이프를 계속 들으면서 녹취를 한 동안 계속 했어요. 심지어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차를 세워놓고 계속 녹취했어요.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설교를 하면, 다른 분들이 타이핑 치면 5백타, 7백타를 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만큼은 안 되지만 거의 다 빠뜨리지 않고 다 적어요. 그때 녹취하는 그 습관이 되어가지고 그냥 쓴다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쓰면서 그 녹취된 부분들을 보면서 동그라미 치면서 또 말씀에 대한 은혜를 받고 또 말씀을 각인시키고 그런 가운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모든 부분들이 치유되어지는 것을 체험했어요.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기록하고 암송하고 묵상하게 될 때 이 말씀자체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 안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여러분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기록하는 부분을 조금 연습들 해보세요. 그러면 그것들을 통해서 내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끝나는게 아닙니다. 내 개인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면 그것이 내 사업과연결되어지고 내 현장과 연결되어지고 내 하는 일과 연결되어지고 학생들은 학업과 연결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거기서 나오는 성공이 진짜 성공이고 거기서 나오는 응답이 유일성의 응답이에요. 그러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은 바벨탑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가운데서 그 속에서 여러분 사업이 연결되어지고 그 속에서 여러분 직장이 연결되어지고 그 속에서 여러분 학업이 되어지고 그게 유일성의 응답으로 가는 길이고 거기에서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서는 길이 되어진다는 사실이에요.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여러분 우리가 다락방 하는 것도 내 자신에게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고, 현장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이고 지교회를 하는 것도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입니다. 왜 우리가 후대, 렘넌트를 자꾸 이야기 합니까?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역사를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말씀운동을 하라고 하시느냐? 이 말씀운동은 그냥 성경 공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이 말씀운동, 오직 그리스도 증거 하는 말씀운동 복음운동,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축복하시고 책임 지시는데 사실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 말씀운동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될 때 그때부터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산업에 모든 응답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와 함께 여러분 평생 동안에 삶의 현장에서 말씀이 여러분 때문에 세력을 얻는 역사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이 일에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9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행19:10-20)
서론: 하나교회는 훗날의 기억될 교회로 말씀운동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운동을 하는 교회의 모델적인 응답이 어떤 것인지 증거할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 지역에 일어난 응답은 우리 개개인과 교회가 받을 응답입니다. 말씀의 증거되니 치유가 일어나고 사이비 신앙이 무너지며 예수 믿는 문화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말씀 운동하는 것 아니라 모델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는 지역의 흑암세력 꺾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말씀 운동이 확산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나의 현장에 말씀이 흥왕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한번 뿐인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응답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하는가?
(1) 말씀운동이 끊어지면 꿈과 비전이 사라지고, 시대 자체가 흑암 가운데 사로잡힙니다.
1)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잡은 자의 생과 일, 모든 것에 축복을 주심(바울이 붙잡은 언약 - 행9:15, 고전2:2)
2) 하지만 개인과 교회가 말씀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위기(저주, 재앙, 실패)가 옴
a. 방자히 행하고(잠29:18),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자연계에 재앙이 오며(마24장), 교회 안에 문제가 생김(마25장)
b. 말씀을 무시(노아시대)하고 농담으로 여기면(창19:14, 소돔과 고모라) 우리도 모르게 저주와 재앙이 임함
c. 고통하는 가운데 틀린 관심을 가지고(딤후3:1)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며(딤후3:5) 거짓의 영에 사로잡힘(딤후3:6)
3) 자신의 수준과 모양, 환경과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잡아라!! (말씀의 흐름)
(2)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되어지는 것입니다.
1) 세상 사람들은 합리적, 객관적으로 최선을 다해 성공하지만, 어느날 한계 가운데 영적문제에 넘어짐
의인은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롬3:23) 사망이 오며(롬6:23) 결국은 멸망(요10:10)받음
2) 말씀을 놓치면 영적인 힘이 없고, 응답 없는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포기, 이 땅은 점점 흑암 가운데 빠짐
3)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말하는 복음운동, 말씀운동이 일어나는 것임
2. 말씀운동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1) 성경 - 사도행전의 역사
1) 초대교회가 행1:1,3,8의 약속을 잡고 전혀 기도하니(1:14) 성령이 임하고(2:1) 역사가 시작됨(2:42,46,47)
2)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3:1)가운데 유대인이 돌아오고, 베드로가 담대히 말씀을 전함(4:12,29,31)
3) 교회내 시험(5장)과 파당문제(6장), 순교의 핍박 가운데(7장)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8장) 바울이 회심함(9장)
4) 빌립보지역(16장)과 데살로니가지역(17장), 고린도지역(18장)과 에베소지역(19장)에 말씀 운동이 일어남
(2)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는 어떻게? - 말씀묵상, 말씀암송, 말씀기록
1)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천지창조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 안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남
2) 사업(학업)과 현장, 일에 연결되어짐으로 참된 성공과 유일성의 응답이 오게 됨(서밋의 자리에 서게 됨)
3) 하나님께서 맡기신 다락방과 지교회, 특별히 후대를 두고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에 헌신하라!!
결론: 왜 말씀 운동을 해야 합니까? 현장의 영적인 문제 해결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증거하는 말씀운동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해결 받고, 축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될 때 개인과 가정, 산업에 모든 응답 받습니다. 우리 인생의 평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때문에 세력을 얻는 이 일에 쓰임 받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하나교회는 오직 말씀 운동하는 교회가 되어, 모델적인 응답으로 훗날에 기억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 운동이 끊어져 저주와 재앙이 가득한 흑암시대와 현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약속을 붙잡길 소원합니다. 한주간 말씀 운동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개인과 만남과 가정, 전문성과 모든 지역에까지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응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행19:10-20)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19:10~20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도 흠모하는 일인데, 바로 화목케 하라는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이 말씀의 증인되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20절에 보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여기에 나오는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라는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른 교회도 훌륭한 교회들이 많지만 우리 하나교회가 하는 일이 있다면 말씀운동하는 교회입니다. 특별히 말씀운동하는 교회로 훗날에 기억될 교회로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데 말씀운동하는 교회의 모델적인 응답이 어떤 것인가, 그게 오늘 본문에 잘 나와 있는 부분입니다. 말씀운동하는 교회의 모델적인 응답의 축복, 바로 에베소 지역에 일어났던 이 응답입니다. 바로 우리가 받을 응답이고 우리 개개인, 우리 교회가 받을 응답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말씀운동을 하면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2년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가르쳤는데 10절에 보면 “아시아에 사는 자는... 다 듣더라.” 말씀했습니다. 2년 동안 제자를 말씀 운동 때문에 따로 세워, 그 제자들에게 집중했는데 그 결과가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말씀운동을 통해서 일어난 역사가 무엇인가? 그 다음에,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부분들입니다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이 다 증거되니 치유가 일어났는데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복음 증거하는 말씀운동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니 결국은 사이비 신앙들이 다 떠나게 되고 사이비 신앙, 폼을 잡고 흉내내는 사람조차 이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기적을 일으키니 그 바울을 모양 삼아 자기도 해 보겠다고 나서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질치게 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이후에 또한 지금까지 자기가 의지하고 살았던 귀신 섬기던 일들, 마술을 하면서 살았던 삶을 정리하면서 나왔는데 그게 바로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높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그런 문화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 지역에 일어났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운동하는 우리 교회, 말씀운동하는 교회 속에 몸담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응답이 이 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로 그냥 말씀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일으킬 것인가하는 모델을 우리가 붙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 약속의 말씀을 붙잡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역의 흑암의 세력을 꺾고 말씀이 확장되는 이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냥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흑암의 역사들을 다 꺾어 버리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말씀운동이 확장되는 이 일에 저와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목을 그래서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여기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흑암 세력이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세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이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흑암의 세력이 꺾였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지교회 운동을 한다, 말씀운동을 한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헌신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나의 현장에 말씀이 세력을 얻을 수 있도록 말씀이 흥왕하는 일에 내 인생이 쓰임 받는다는 것, 이것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한 번뿐인 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들로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참 행복을 가진 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말씀이 흥왕하는 이 일에 내 인생이 쓰임 받게 될 것인가? 정말로 한 번 뿐인 내 생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헌신해야 하는데 이 일을 위해서 먼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하는가?
그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운동이 왜 일어나야 하는가 그 이유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말씀운동이 끊어졌기 때문에 꿈도 비전도 사라지고 이 시대 자체가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은, 언약을 나의 말씀으로 붙잡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자들의 생과 일과 모든 것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언약을 성취하는 그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게 성경 전체의 기록입니다. 성경 전체의 기록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은 사람들이 어떤 응답을 받았는가, 그것을 증거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은, 이 약속을 언약의 말씀으로 붙잡은 주의 종들, 일과 생과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능력 있고 지식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돈 있고 훌륭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쓰시게 되어 있고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생, 모든 삶에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는 마가다락방, 초대교회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초대교회를 쓰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하다, 연약하다, 상관없었습니다.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졌는데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초대교회의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행전 9장 15절에 보면 이 바울에게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약속의 말씀을 자기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약속의 언약의 말씀을 바울이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붙잡힌 이 바울은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쓰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보면 또 바울이 위기 가운데 새로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약속을 붙잡은 바울을 하나님은 쓰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수준을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의 모양을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의 환경과 형편들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그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그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 우리 인생이 이 땅에 어떻게 해서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로 말미암아 일어난 상태가 어떤 상태이고 그 결과가 어떠하고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귀중한 답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축복이 무엇인가 이미 말씀을 통해서 다 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내게 주신 언약으로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시는데,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신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말씀을 붙잡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냥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손해 보는 것입니다.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지금 대구지회 집중 합숙이 계속 되어지고 있습니다. 내일 집중집회가 대구지역, 또 전체 사명자 중심으로 해서 우리 하나교회에서 집회가 진행됩니다만 이를 앞두고 금요일부터 집중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메시지와 함께 시간시간 간증자로 섰던 사람들, 하나같이 받은 응답들이 무엇이냐? 사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자기 수준과 상관없이 많은 전도의 문을 열어 가셔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역이 살아나고 직장이, 산업 현장이 복음 증거됨으로 말미암아 많은 응답들이, 문들이 열려진 사실을 간증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자들의 한결같은, 하나같은 공통적인 간증이 무엇이었냐? 여러분, 뭐라고 들렸습니까? 참여하신 여러분들, 뭐라고 들었습니까? 한 분 한 분 하나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자세히 내게 주신 약속으로 붙잡고 실현 속에 들어가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이런 문들을 여셨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것들을 우리가 다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내게 주신 언약의 말씀으로 붙잡게 될 때 누가 그 언약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느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취시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과 내 생을 통해서, 나의 모든 것을 통해서 그 말씀을 성취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맛보게 된다면 세상의 그 어느 곳에서도 올 수 없는 참된 행복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에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이 일에 쓰임 받는 참된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말씀 안에 모든 답을 주셨는데 문제는 이 말씀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고 이 말씀을 우리 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로 세상에 어려움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위기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잠언서 29장 1절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했습니다. 여러분, 방자히 행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닌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묵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좌충우돌하면서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기준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땅의 문제는 다른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그 언약을 놓쳐 버렸기 때문에 지금 세상은 흔들리고 있고 저주 가운데, 재앙 가운데 빠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 빠지는 것은 세상에 대한 책임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왜 인생의 문제가, 이 땅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 모릅니다. 그래서 어려움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속에 말씀을 통해서 이 귀중한 답들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귀중한 말씀에 대한 축복을 놓치고 있으니까 세상이 저주와 재앙 가운데 결국 백성들이 방자히 행하면서 실패하는 삶 속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놓쳐 버렸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땅에 결과가 저주와 재앙과 실패의 역사가 이 땅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말세 때 일어나는 일들을 마태복음 24장, 25장, 디모데후서 3장, 계시록에 죽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4장에 보면 말세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 적그리스도가 일어나서 많은 영적인 문제가 올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말세 때에 자연계에도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적으로 자연계에 일어나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을 보십시오.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은 다 시험에 들어서 무너지고 결국은 핍박받는 일에 있어서 완전히 잡혀가는 ,죽게 되는 어려움까지 처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24장에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말세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교회 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염소들이 들어와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일컫는 것이지요.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분열시키고,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중요한 생명운동을 놓쳐버리고 다른 것 한다고 거기에 모든 시간과 모든 돈들을 다 소비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마지막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세 때에 일어날 일들로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오늘날이 말세 때이고,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일이고, 세상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회가 놓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저주와 재앙 가운데 ...심지어 교회 안에조차도 어려움들이 올 수 밖에 없는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시대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세상적이 되었고, 육신적이 되었고 타락에 빠졌습니다. 거기에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말씀을 무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 고모라 시대에 롯이 자기의 가족들에게 다 이야기 했습니다. 곧 멸망 받을 것이다고.. 그런데 창세기19장을 보면 롯의 사위들은 그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니까 결국은 시대가 어려움에 빠지고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요즘 복음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말씀을 계속 붙잡으면서도, 너무 이 귀한 말씀을 귀한 말씀으로 보지 못하는 제 마음의 영적사실을 보게 되요. 아! 내가 이 엄청난 축복의 메시지를 갖고 있음에도 이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뭔가 이 복음의 메시지 앞에서 우리가 자꾸 너무나 귀하고 좋은 메시지인데, 진짜 시대에 없었던 원색적인 복음 메세지를 우리가 받고 있고, 또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자신도 모르게 점점 무디어 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자신을 보면서, 제 자신을 보면서, 저는 제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답을 말씀에 주셨는데 그 말씀을 놓쳐버리게 될 때에, 그 말씀에 무지하고, 농담으로 여기고 그 말씀에 무디어지게 될 때에 우리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저주와 재앙입니다. 실패의 역사입니다. 디모데후서3:1절에 보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 했습니다. 그 고통 하는 때에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진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말씀을 놓쳐버리니까 관심이 달라지는 거예요. 어떻게 관심이 달라지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이것이 세상 밖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의 모습 이예요. 우리도 모르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갈급해요. 또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 갈급하고, 쾌락에 대해서 갈급해요. 그것이 말세의 특징 이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놓쳐버리니까, 말씀을 모르니까, 그러면서 디모데후서3:5절에 보면 말세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은 능력은 부인한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짜 말씀을 내게 주신 언약으로 붙잡게 될 때에 그 속에 참된 능력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다 놓쳐 버리니까 모양은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경건의 모양으로 저주와 재앙의 문제, 사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아십니까? 천만에요. 그 어떤 모양으로도 사탄의 세력을 꺽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경건의 모양을 갖춘다 할지라도 사탄은 여러분 모양 앞에 쫓겨 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을 꺽을 수 있는 엄청난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다 놓치고 있으니까 모양만 가지고 살아가요. 이것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닌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런 결과로 결국 디모데후서3:6절에 보면 어떻습니까? 교회 구석구석에 거짓의 영이 자리 잡아서 진리를 진리 아닌 것으로 바꾸어 버리고, 완전히 교회에 힘을 다 빼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말세 때에 일어날 일들이 지금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것.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인데...그렇잖아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고요, 이것은 모든 것 다 가진 것이고, 다 되어질 수 밖에 없는 축복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뭐냐? 그것이 구원 받은 것이고, 복음 아는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사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리도 모르게 영적인 힘이 전혀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생활, 종교생활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원받았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확실히 차이가 나게 되어 있어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세상 속에서 합리적이고, 뭔가 좀 객관적이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이 옵니다. 그런데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들의 거기에는 한계가 오게 되어 있어요. 왜 한계 올 수 밖에 없느냐? 성경에 로마서3: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다고 했어요.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로마서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어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그 죄의 값으로 로마서6:23에 바로 사망이 왔다 말씀 했습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인생에서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는 신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도, 모든 사람이 예외 없어요. 하나님을 떠나 있다면 분명히 한계가 오고 그 한계 속에 영적문제 올 수 밖에 없고, 나름대로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성공하고 훌륭한 자리를 가집니다마는 그러나 결국은 악한 사탄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멸망입니다. 사탄이 하는 짓이 그래요. 아무리 지금 잘 되어도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결과는 뭐냐? 멸망입니다. 요한복음10:10절에 뭐라 했습니까? 바로 악한 사탄의 정체를 말씀하고 있지요. 죽이는 것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빠져 나왔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을 가졌어요. 복음을 가졌다는 말은 복음 그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에 결국 그 복음이 우리를 변화 시키게 되어 있어요. 나의 모든 삶을 변화 시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빌립보1:6절에 “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지마는 저와 여러분은 달라요. 시간가면 갈수록 결국은 생명으로, 구원의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생명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멸망 받게 되어 있지마는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되고, 생명을 누리게 되어 있어요. 혹이나 이 자리에 오늘 처음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주인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멸망 속에서 빠져 나와서 생명 얻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졌다, 구원을 받았다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축복을 놓치고 이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교회를 다녀도 그냥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하고요.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고요. 이 구원의 엄청난 축복을 놓치고 영적인 힘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이 어마어마한 줄 알면서 왜 못 누리는 줄 아십니까? 영적인 힘이 없으니까 그래요. 왜 영적인 힘이 없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분명히 사탄을 꺽는 권세가 있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왜 우리가 기도하면 모든 문제 기도 통해서 응답 받는 줄 알면서도 기도가 안 되느냐? 영적인 힘이 없어서 그래요. 영적인 힘이 있어야 기도도 하게 되어 있고,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도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영적인 힘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힘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응답도 받지 못한 체, 응답 없는 열심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 나중에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이 땅은 점점 흑암가운데 빠져버린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말씀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먼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인생에게 문제가 오게 되었고요. 그래서 성공해도 성공이 아닙니다. 결국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 서 있게 되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말세 때 일어날 모든 문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부분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말하는 말씀운동, 복음운동이 현장에서 일어나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현장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말씀운동, 복음운동이 저와 여러분의 현장 속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옥의 배경을 바꾸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말씀운동, 그것이 현장 속에 일어나야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로 나타나면서 거기에 흑암이 꺽여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저주와 재앙이 떠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이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가 이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었어요. 비록 보잘 것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마는 여러분 성경에 초대교회를 보면 집에 대해서 나오지요. 지역이 나오고, 제자가 나옵니다. 성경을 보세요. 무엇 했다는 말입니까? 그 집 중심으로 해서 제자들이, 지역 중심으로 제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말하는 복음운동, 말씀운동을 했다라는 사실이예요. 그러니까 그 지역 지역마다 역사하는 흑암이 꺽여지고 큰 복음의 문들이 열려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리라.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어떤 사람으로 축복 받길 원하시느냐? 현장에서 여러분 때문에, 하나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이 힘을 얻는, 세력을 얻는 역사들로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 받는다 가장 귀중한 축복된 역사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락방 한다, 지교회한다. 딴게 아닙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일에 우리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할 때 우리의 모든 것 책임져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말씀이 세력을 얻는 그 축복된 증거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운동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두 번째입니다. 말씀운동과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우리가 이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알게 되어 있어요. 말씀운동을 할 때 일어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 성경에 사도행전을 보면 전부 그 역사를 말씀하고 있죠. 사도행전 1장 1절 그리스도, 3절에 하나님나라, 8절에 성령충만함, 이 약속을 붙잡은 초대교회가 1장 12-14절에 보면 전혀 오로지 기도 속에 들어갔어요. 그때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바람 같은 불 같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된 것이죠. 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초대교회가 사도행전 2장 42절에 무엇을 했느냐? 거기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교제하며 떡을 떼며..” 무슨 말입니까? 또 말씀운동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그 결과로 47절에 보면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졌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이죠. 어떤 현장에?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하는 그 말씀운동이 일어나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운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현장에 일어나기를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다른게 아닙니다. 이미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모든 유대인들은 다 아는 사람입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이미 이 사람이 누구였던가를 다 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많은 유대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 하나님의 역사죠. 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때문에 베드로가 종교법정에 서게 되었어요. 사도행전 4장입니다. 거기에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게 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베드로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이 베드로가 뭐라고 했느냐? 사도행전 4장 29절에 보면 베드로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핍박을 없애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보시고 이 사건을 통해서 주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였습니다. 이미 베드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안 것이죠. 그러니까 사도행전 4장 31절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했습니다. 여기에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의 역사속에 세워지게 된 것이죠. 사도행전 5장에 교회 안에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 말씀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회에 시험이 오게 되어 있고 그 시험이 오게 될 때 복음의 비밀을 가지지 못하면 거기에 걸려들게 되어 있어요. 정말 여러분 성령으로 복음으로 충만한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 안에 시험이 들어왔을때에 복음에 결론 내리지 않고 복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기에 걸려든 거에요 그래서 하루아침에 같이 죽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초대교회에 부부가 같이 죽게 되었다, 엄청난 큰 일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말씀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초대교회는 큰 일이 큰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말씀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안 일어나고 있다, 그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교회 안에 말씀운동이 일어나면 일이 일어나도 문제가 터져도 일이 일이 안되고 문제가 문제가 안 되어져요. 그런데 교회 안에 말씀운동이 사라지면 일이 아닌 것도 일이 되고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가 되어가지고 교회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라는 사실이에요. 진짜 말씀운동이 교회 속에 일어날 때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안되어지는 축복이 바로 초대교회 안에 있었어요. 2명이 동시에 죽는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문제가 안 되었어요. 왜냐? 이미 초대교회는 말씀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교회 안에 파당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제 문제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인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죠. 그때 사도들이 눈치채고 오히려 이 말씀운동을 더욱 더 증거하기 시작했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느냐?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하나님의 역사죠. 여러분 제사장 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어떻게? 말씀운동이 일어나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거기에 제사장들의 무리가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7장에 스데반이 순교했습니다만, 그 순교로 말미암아 전도자 바울이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고 8장에 빌립으로 말미암아 전혀 문들이 닫혀 있던 사마리아성에 문이 열리게 되고 말씀운동이 일어나니까 다메섹에서 핍박자 사울이 대전도자로 바뀌는 이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메섹에서 핍박자 사울을 꺾기 위해 기도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말씀운동이 계속 일어나니까 그 핍박자 사울이 그 자리에서 꺾어지고 전도자로 바뀌어 지는 그 응답을 주셨다는 것. 우리 가정에 우리 지역에 말씀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거기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 일을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사탄의 역사를 겁낼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역사하기 때문에 큰 문들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 17장에 데살로니가, 18장에 고린도, 19장에 에베소 지역에 말씀운동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에 가장 중요한 응답의 모든 문들이 다 열려졌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 어떤 역사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를 위해서 내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내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 어떻게 누릴 것인가?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시고요, 또 된다면 말씀을 암송해 보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기록해 보십시오. 시편 1편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했어요.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느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하는(시편 1:3) 그 응답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말씀 묵상 속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잘못 각인된 부분들을 치유하면서 영육 간에 병든 부분들을 치유하는 그 증거를 주시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말씀에 대한 암송, 류광수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복음성구 30가지가 저절로 외워 졌는데 그때부터 모든 응답의 문들이 다 열려졌다고 하셨어요. 성경구절 가운데도 복음의 핵심적인 성구가 있잖아요. 그게 저절로 어쩌다보니까 외워졌는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응답의 문들을 하나님께서 다 여셨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 대한 암송, 이 말씀에 대해서 암송할 때 우리도 모르게 우리안에 큰 영적인 힘들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시편의 150편 가운데 다윗이 기록한 시가 73편입니다. 거의 절반 가량이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시편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냐? 다윗은 이미 말씀에 대한 많은 암송들이 되어졌다라는 것. 그 속에 나온 것이 시편이었어요. 여러분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로스비, 어릴 때 잘못 치료를 해서 실명이 되어버렸잖아요. 너무 가난하니까 부모님은 자녀를 놔두고 돈벌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주말마다 올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할머니가 크로스비에게 어릴 때 하나님 말씀을 계속 암송시킨 겁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와서 또 그 부분을 확인하고.. 그런데 크로스비에게서 지은 찬송, 시대를 한번 보세요. 많은 영혼들을 오고오는 세대속에서 가장 귀중하게 불려지고 있는 찬양이 뭐냐? 크로스비가 지은 찬양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이 모든 찬양들 우리에게 가장 은혜를 주는 찬양 중에 하나가 바로 크로스비가 지은 찬양입니다. 그게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암송 속에서 나온 시들이었어요.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된다면 여러분 조금 기록하세요. 저는 집회에 가면 말씀 들을 때에 어떻게 하든지 한 자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다 씁니다. 다른 분들이 제 노트를 보면 못 봅니다. 전부 지렁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어요. 그러나 저는 보면 압니다. 왜 그렇게 빨리 쓰느냐? 사실 제가 어려울 때 말씀을 녹취를 했었어요. 테이프를 계속 들으면서 녹취를 한 동안 계속 했어요. 심지어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차를 세워놓고 계속 녹취했어요.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설교를 하면, 다른 분들이 타이핑 치면 5백타, 7백타를 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만큼은 안 되지만 거의 다 빠뜨리지 않고 다 적어요. 그때 녹취하는 그 습관이 되어가지고 그냥 쓴다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쓰면서 그 녹취된 부분들을 보면서 동그라미 치면서 또 말씀에 대한 은혜를 받고 또 말씀을 각인시키고 그런 가운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모든 부분들이 치유되어지는 것을 체험했어요.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기록하고 암송하고 묵상하게 될 때 이 말씀자체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 안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여러분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기록하는 부분을 조금 연습들 해보세요. 그러면 그것들을 통해서 내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끝나는게 아닙니다. 내 개인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면 그것이 내 사업과연결되어지고 내 현장과 연결되어지고 내 하는 일과 연결되어지고 학생들은 학업과 연결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거기서 나오는 성공이 진짜 성공이고 거기서 나오는 응답이 유일성의 응답이에요. 그러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은 바벨탑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말씀이 세력을 얻는 가운데서 그 속에서 여러분 사업이 연결되어지고 그 속에서 여러분 직장이 연결되어지고 그 속에서 여러분 학업이 되어지고 그게 유일성의 응답으로 가는 길이고 거기에서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서는 길이 되어진다는 사실이에요.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여러분 우리가 다락방 하는 것도 내 자신에게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고, 현장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이고 지교회를 하는 것도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입니다. 왜 우리가 후대, 렘넌트를 자꾸 이야기 합니까?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이 역사를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말씀운동을 하라고 하시느냐? 이 말씀운동은 그냥 성경 공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이 말씀운동, 오직 그리스도 증거 하는 말씀운동 복음운동,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축복하시고 책임 지시는데 사실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 말씀운동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될 때 그때부터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산업에 모든 응답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와 함께 여러분 평생 동안에 삶의 현장에서 말씀이 여러분 때문에 세력을 얻는 역사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이 일에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9월 1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
(행19:10-20)
서론: 하나교회는 훗날의 기억될 교회로 말씀운동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운동을 하는 교회의 모델적인 응답이 어떤 것인지 증거할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 지역에 일어난 응답은 우리 개개인과 교회가 받을 응답입니다. 말씀의 증거되니 치유가 일어나고 사이비 신앙이 무너지며 예수 믿는 문화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말씀 운동하는 것 아니라 모델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으니라”는 지역의 흑암세력 꺾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말씀 운동이 확산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나의 현장에 말씀이 흥왕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한번 뿐인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응답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하는가?
(1) 말씀운동이 끊어지면 꿈과 비전이 사라지고, 시대 자체가 흑암 가운데 사로잡힙니다.
1)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잡은 자의 생과 일, 모든 것에 축복을 주심(바울이 붙잡은 언약 - 행9:15, 고전2:2)
2) 하지만 개인과 교회가 말씀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위기(저주, 재앙, 실패)가 옴
a. 방자히 행하고(잠29:18),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자연계에 재앙이 오며(마24장), 교회 안에 문제가 생김(마25장)
b. 말씀을 무시(노아시대)하고 농담으로 여기면(창19:14, 소돔과 고모라) 우리도 모르게 저주와 재앙이 임함
c. 고통하는 가운데 틀린 관심을 가지고(딤후3:1)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며(딤후3:5) 거짓의 영에 사로잡힘(딤후3:6)
3) 자신의 수준과 모양, 환경과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잡아라!! (말씀의 흐름)
(2)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되어지는 것입니다.
1) 세상 사람들은 합리적, 객관적으로 최선을 다해 성공하지만, 어느날 한계 가운데 영적문제에 넘어짐
의인은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롬3:23) 사망이 오며(롬6:23) 결국은 멸망(요10:10)받음
2) 말씀을 놓치면 영적인 힘이 없고, 응답 없는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포기, 이 땅은 점점 흑암 가운데 빠짐
3)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말하는 복음운동, 말씀운동이 일어나는 것임
2. 말씀운동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1) 성경 - 사도행전의 역사
1) 초대교회가 행1:1,3,8의 약속을 잡고 전혀 기도하니(1:14) 성령이 임하고(2:1) 역사가 시작됨(2:42,46,47)
2)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3:1)가운데 유대인이 돌아오고, 베드로가 담대히 말씀을 전함(4:12,29,31)
3) 교회내 시험(5장)과 파당문제(6장), 순교의 핍박 가운데(7장)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8장) 바울이 회심함(9장)
4) 빌립보지역(16장)과 데살로니가지역(17장), 고린도지역(18장)과 에베소지역(19장)에 말씀 운동이 일어남
(2) 개인과 삶에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는 어떻게? - 말씀묵상, 말씀암송, 말씀기록
1)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천지창조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 안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남
2) 사업(학업)과 현장, 일에 연결되어짐으로 참된 성공과 유일성의 응답이 오게 됨(서밋의 자리에 서게 됨)
3) 하나님께서 맡기신 다락방과 지교회, 특별히 후대를 두고 말씀이 세력을 얻는 역사에 헌신하라!!
결론: 왜 말씀 운동을 해야 합니까? 현장의 영적인 문제 해결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증거하는 말씀운동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해결 받고, 축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될 때 개인과 가정, 산업에 모든 응답 받습니다. 우리 인생의 평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때문에 세력을 얻는 이 일에 쓰임 받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하나교회는 오직 말씀 운동하는 교회가 되어, 모델적인 응답으로 훗날에 기억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 운동이 끊어져 저주와 재앙이 가득한 흑암시대와 현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약속을 붙잡길 소원합니다. 한주간 말씀 운동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개인과 만남과 가정, 전문성과 모든 지역에까지 말씀이 세력을 얻는 응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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