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2015-03-1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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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요1:4~16)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와KTdmsl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4~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 일을 마치십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드린 것처럼 오늘 이 한날 예배가 은혜 위에 은혜, 더 충만한 역사로 우리 가운데 채워지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똑같은 데서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몰라 당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교를 가지고 또 우상숭배하고 점치고 굿하는 것으로, 부적을 붙이는 것으로 위안을 받고, 그래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났는데, 다 해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잘 알아야 하고 가장 잘 누려야 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신자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장의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냥 돈 벌고 그 번 돈으로 세상을 즐기다 그렇게 가면 되는 거고, 그렇게 가고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런데 신자들은 그리스도 복음을 알고 있다 하면서도 그 사실을 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실, 돈도 그렇고 또 세상 즐거움, 세상 재미도 못보고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어떤 규칙들을 규범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매여,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답답한 사람으로 보이면서 실제로 본인이 고생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러냐? 가장 잘 알아야 할 복음, 가장 잘 누려야 할 그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놓쳐 버리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 승리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부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큰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 되었던 역사이고 거기서 빠져나온 역사가 성경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아놓고도 복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를 통해 힘을 얻지 못하면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믿는다 하면서도 신자라 하면서도 노예로 포로로 속국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과 신자들의 문제는 진짜 근원적인 부분인데 그것은 바로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면 똑같이 고생하고 똑같이 실패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복음을 모르면 똑같이 고생하고 똑같이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누리는 것,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그것을 알 때 모든 것이 해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을 안다, 어느 정도 축복받았느냐 하면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라는 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 망하려야 망할 수 없는 소속과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입니다. 세상과 마귀와 저주와 운명을 이기는 권세, 그게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바로 그 권세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소속과 신분이 달라지고 세상에 눌리고 끌려가던 사람이 오히려 세상을 정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을 모르면, 이 복음의 역사를 모르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은 마귀의 자녀로, 사단의 자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그 신분이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로 살아가면서 타고나면서 갖고 있는 저주와 운명 가운데 시달리면서 눌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우리의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 또 내게 숨은 문제들, 남이 알지 못하는 숨은 문제들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복음의 역사를 믿기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셨는데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이라고 하는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장 1절에 보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있게 될 때 실제로 보면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범사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일, 모든 사건, 모든 만남, 모든 사람 관계, 모든 환경, 그게 범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을 주시겠다고요? 총명을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총명을 주신다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우리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당장 있는 문제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를 받음으로 그 문제가 오히려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총명을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이 하나님이 주신 총명이 있게 될 때 사업이 안 되겠습니까? 이 하나님이 주신 총명이 있게 될 때 가정이 안 되겠습니까? 우리 학생들, 이 하나님이 주신 총명이 있게 될 때 우리의 학업이 안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총명, 이 축복된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복음을 바로 알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와 함께 모든 세상에서 범사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 누릴 수 있도록 총명함을 주시게 되어 이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치 못하는 것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에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누려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리스도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바로 예수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직분을 말하고 그 이름이 예수인데 예수,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예수가 누구인가 이 사실을 아는 데서부터 우리 신앙 생활이 출발됩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수가 누구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는 분들 보면 전부 다 인간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좀 남다른 훌륭한 인간이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한 좀 더 나은 인간이다, 어떤 면에서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랍비여 하면서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선생인 줄 믿습니다. 지식인 니고데모 아닙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하나님께로 부터 온 선생인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아닌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모두가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내게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이 내려지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비로소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의 사업과, 학업과 모든 것에 성공이 따라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아무리 열심히 나와서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내게 누구이신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으면 신앙생활 그 자체가 어렵고 힘듦이 되어지는 것이고요, 신앙생활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인생자체가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이 부분들을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합니다.
1. 성경 - 그리스도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러면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도록 나타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요한복음1:1~3절에서 말씀이 나옵니다마는 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처음부터 계셨고 또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어졌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 저주,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부분들을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당장 2장에 보면 물이 포도주 되는 사건이 나와요. 아니 물은 물이지 어떻게 포도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세계적인 한국의 석학 과학자가 이 부분들을 놓고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답을 얻었어요. 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 그보다 더한 일도 하나님이시라면 하실 수 있다 라는 것. 그 사실을 과학자이니까 과학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나중에 깨달은 거예요. 아! 하나님이시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하나님이시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신앙이 들어와서 믿음생활이 시작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마는 여러분 가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어지니까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어요. 이것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에 거듭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거듭남의 역사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니고데모가 아니 그럼 우리가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입니까? 지식인이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거듭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 운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 아닙니까? 그 운명, 실패 가운데 살아가는 그 인생의 운명을 바꾼 예수님. 결국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 가운데 38년 된 병자가 나옵니다. 뻔히 연못에 들어가면 나을 줄 알고 있으면서도 답은 알고 있어도 그런데 정작 본인은 해결 받지 못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니까 그 병자가 치유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창조주 하나님 이십니다. 혹이나 우리 가운데 우리의 오래된 체질들이 있잖아요. 30년 살아오고, 40년 살아오고, 60년, 70년 살아왔습니까?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아니하면 살아온 그대로 살아가다가 저주가운데 그대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그 예수님을 나의 창조주로 영접하게 될 때에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고질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온 만큼 영적인 부분들을 갖고 있잖아요. 거기에 또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영원전의 문제까지 있습니다. 그 문제도 바꾸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기적들을 보시면 전부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이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나, 또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이나,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사마리아 성 여자 운명에 빠진 인생에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하시는 것. 하나같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창조주로 모시게 될 때에 내 안에서 누가 역사하시느냐?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성도는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내 삶을 사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보세요. 하나님이 내 안에 하나님이 사십니까? 전부 내가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창조주 하나님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삶을 대신 사시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내가 나를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살아가면서도 내가 나를 잡고 있는 이상, 나의 한계, 나의 무능에 빠질 수밖에 없고요. 결국은 내가 나를 잡고 있는 이상 그래서 인생들이 고달픈 인생들을 사는 것이고, 수고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고, 어려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 되시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창세기1:27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이 인간을 축복하셨다 그 말씀도 맞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만드셨어요. 너희가 한번 힘내서 살아봐라. 우리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힘내서 살아봐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또 타락이후에도 타락 전에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가지고 그 복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사실 이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힘을 가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 라는 사실 이예요. 그러면 타락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두셨다는 사실 이예요. 그런데 문제는 자꾸 내가 살아나요. 그것이 창세기 3장의 영향을 받아서 그래요. 정말로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놓고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누구시냐? 이 예수님은 생명이시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성경 요한복음1:4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바로 예수님은 생명이요 빛이십니다. 창세기1:20절에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2:7절에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습니다. 육체가운데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짐으로 말미암아 생령, 산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3장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근원이 짤리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뿌리 뽑힌 나무가 되어진 것이고요, 그리고 뿌리 뽑혀지고 가지가 꺽여진 거기에 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뿌리가 뽑혀졌으니까 가지가 말라 비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뿌리 뽑혀진 곳은 시간 가면 갈수록 결국은 시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관계가 잘려진 인간의 부분들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육신의 생명을 갖고 있으니까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생명과 함께 영혼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바로 실상은 살아있지만 죽은 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서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 육신적인 생명이 있는데 우리의 육신 가운데 영혼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살아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육신 속에 함께 있는 영혼이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을 가지고 죽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육신의 생명은, 우리의 육신은 시간가면 갈수록 병들게 되어 있고, 시간가면 갈수록 부패하게 되어 있고, 시간 가면 갈수록 저절로 낡고 병들게 되어 있어요. 60,70세 된 분들이 지금 10대 나는 아이들과 마라톤 하면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60,70대 되는 분들이 살아가면서 온갖 아픈 부분들 있잖아요. 관절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그것은 당연한 거예요. 육신의 부분들은 시간 가면 갈수록 늙고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전도서12:7절에 보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했습니다. 영혼의 생명이 따로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뭐냐? 바로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생명이 참 생명이기 때문에 이 영혼의 생명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지금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누구 안에?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또한 요한복음14: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11:25~26절에 보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했어요. 우리에게 이 생명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부활로 지금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생명의 역사의 비밀을 누리면 누릴수록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나를 살리게 되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창세기1:27~28절 생명의 역사를 누리게 될 때에 28절의 응답 정복하고 다스리는 응답이 온다는 사실 이예요. 생명의 비밀을 누리면 누릴수록, 풍성한 비밀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 속에 세상 현장 속에 정복하고 다스림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하면 이 생명의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면 다스림 당하고 세상에 끌려가야 됩니다. 돈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돈에 끌려가는 인생이 되어요. 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우리가 분위기에 끌려가고 환경에 끌려가고 사람 말에 끌려가고 그래서 염려하고 불평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 생명은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어요. 빼앗아 갈 수 없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역사들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럼으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이 좋아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환경 속에서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참된 생명의 역사들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어요. 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기도 중에 기도가 있다면 뭐냐? 이 생명의 역사를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생명은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성령이라고 하고 있어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그 반대로 성령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막을 수도 없지만) 악한 사탄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생명을 누리는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흑암이 꺾어지는 응답들이 와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이고 빛이다” 했습니다. 빛은 뭡니까? 흑암이 저절로 물러가는 겁니다.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빛이 비치면 그 캄캄함이 물러가는 것처럼 생명,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될 때에 저절로 흑암이 꺾어지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거기에서 이뤄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게 바로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누리게 될 때 오신 부분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가정을 놓고 여러분의 자녀를 놓고 교회현장을 놓고 여러분의 지역 현장을 놓고 기도하십시오. 진짜 우리 가정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생명의 역사를 누리고 생명의 역사를 증거 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흑암이 꺾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 1장 14절 ~ 16절에 보면 바로 충만함입니다. 14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 예수그리스도, 충만합니다. “충만” 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꽉 찼다’ 라는 말이에요. 모자라지 않고 부족하지 않고 완전하고 또 온전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그 이름에 모든 것 다 담아 두셨어요. 그게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왜 사람들이 갈급합니까? 왜 사람들이 이리저리 방황합니까? 사실 그리스도, 충만한 분으로 충분한 분으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갈급하고 또 세상 것으로 채우게 되어 있어요. 세상 것을 채우면 채울수록 오히려 거기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더 갈급함 속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에게 충만함으로 주셨습니다. 바울이 이 복음을 알고 나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 어떤 형편이든지 자기는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어요. 12절에 보면 빈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어요. 이게 뭡니까? 여러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어요. 일체의 비결이라는 말은 어디에 갖다 놔도 스스로 만족하고 충만하고 풍족함을 누릴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게 충만함입니다. 전도자 바울이 고백한 내용이에요. 그리고 빌립보서 4장 13절에 모자람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어요. 여러분 그리스도로 충만한 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말씀을 살펴봤잖아요. 골로새서 2장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세움을 입음으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리스도로 충분하니까 그 안에서 행하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앞으로 영원까지 우리가 가야 될 길, 우리가 평생 의지해야 될 길,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는 길, 그리스도 그 안에 다 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 안에서 행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세움을 입어서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로 충분하니까.. 여러분 정말 이 축복의 역사들 여러분 걸음과 현장 속에 체험되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분함을 누리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세상 것 따라가게 되어 있고요, 그 세상과 타협하게 되어 있고 물질 따라가게 되어 있고 성공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그게 네피림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게 결국 바벨탑 사건을 가져오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고 그리스도는 오늘 본문에 은혜 위에 은혜로 주셨는데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말씀했습니다.
2. 복음 바로 알고 누리기 위해
그러면 두 번째,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접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은혜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충만함은 영접하게 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으로 주어지는 겁니다. 영접하게 될 때.. 물론 영접은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영접하는 것 한번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일들과 문제와 사건들을 당하게 될 때에 그 일들과 사건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창조주가 되시도록, 예수그리스도가 생명이 되시도록, 예수그리스도가 충만함이 되시도록 영접하면 됩니다.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현장에서 불신자를 전도해서 영접 시킬 때 잘 사용하는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영접 시킬 때도 필요한 말씀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생명 가진 자, 그 생명의 역사들을 놓치고 있으니까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데 그 두드리는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 다음 말이 나오죠. 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영접, 구원 받을 때 처음 한 번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와 사건이 있으면 날마다 날마다 주예수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찬송도 있잖아요. 주예수 내 맘에 오심, 주예수 내 맘에 오심~ (찬송가 289장). 늘 항상 우리가 영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안에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고, 생명으로 역사하는 것이고, 모자람이 없는 충만함으로 역사하게 되어 있어요. 불신자들이 있는 장례식에 가거나 또 믿는 자들이 있는 장례식에도 가면 반드시 영접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때 제가 안내를 하면서 이 자리에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신 분들이 계시지만 아직까지 영접하지 못한 분들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인으로 영접하시고 또 지금 당한 이 슬픔, 이 사건, 이 문제에 주인이 되시도록 영접하십시다 하고 영접기도를 초청해요. 여러분 영접은 천번 만번해도 괜찮아요. 주님이 먹고 마시겠다는데 그 주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인데 여러분 정말로 예수그리스도 영접함으로 날마다 먹고 마시는 귀한 축복된 역사들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알고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누리느냐? 강단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누리고 또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그 문제와 사건 속에서 여러분 생각과 여러분의 기준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지 마시고 빌립보서 1장 9-10절의 말씀처럼 어떤 것이 복음에 유익한 것인가 그것을 좀 생각하시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 것일까? 저렇게 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 것일까? 그걸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먼저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이게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성도들만이 갖고 있는 평안이요, 기쁨입니다. 이때 내가 바뀌어져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그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게 될 때 그 속에서 그때 내가 바뀌어 져요. 그게 바로 복음을 누리는 속에서 오는 변화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해서 이야기 했어요. 내가 너희에게 간절히 나아가기를 원하는데 그를 위해서 밤낮 눈물로 기도한다고 했어요. 아니, 로마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는데 이미 로마교회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로마교회를 위해서 밤낮 눈물로 기도하며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느냐? 로마서 1장 11절을 보면 “신령한(좋은)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다시 말하면, 복음을 너희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바울은 간절함으로 로마교회를 향한 기도가 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안 믿는 사람만 복음이 필요한 줄 알고 있습니다만,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에게도 사실은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교회, 복음 받은 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이 좋은 것 이를 위해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원하노라 했어요.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복음이에요. 이 복음의 역사를 알고 누리게 될 때 그게 능력 있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러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이 복음의 역사를 미련하고 어리석게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을 알고 누림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도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3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요1:4-16)
서론: 모든 사람의 문제는 똑같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몰라서 당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신자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어려운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포로,속국이 됨)을 보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누려야할 비밀로써, 복음을 모르면 신자든 불신자든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인으로 영접만 하면(요1:12) 소속과 신분이 바뀌고 세상을 정복하고 리더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또한 모든 일과 사건, 만남과 관계, 환경에까지 총명을 주십니다(딤후2:1). 혹시 문제와 어려움이 오더라도 지혜를 주셔서 축복으로 인도하심으로 범사에 승리하게 하십니다.
1. 성경 - 그리스도를 무엇이라 말하는가?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요1:1-3)
1)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도록 나타나신 분이심
2) 처음부터 계셨고, 모든 만물을 지으셨으며, 죄와 저주와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분이심
3)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창1:27-28)
(2)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요1:4)
1)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됨으로(창3장) 육신의 생명이 있지만, 영혼의 생명이 죽음(엡2;1)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참 생명으로 오신 분이심(부활의 생명)
3) 이 생명(롬8:2)의 역사를 놓고 기도함으로 흑암이 결박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받으라
(3) 예수님은 충만함이십니다(요1:14,16)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완전하고 온전하며 충만한 분이심(빌4:11~13)
2)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뿌리 내리며, 세움을 입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3)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을 다 담아주심(14절 은혜와 진리가 충만, 16절 은혜 위의 은혜)
2. 복음 바로 알고 누리기 위해
(1) 문제와 사건 앞에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됨(계3:20)
(2) 어떻게 누림? 강단 말씀 잡고, 문제와 사건 속에서 복음에 유익한 것을 생각하라(빌1:9-10)
결론: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대하여 너희에게 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복음을 알고 있는 로마교회에게 좋은 은사를 나눠주기 위해(롬1:12, 복음 나누기 위해) 밤낮 눈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만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복음을 알고 누릴 때, 능력 있는 삶(롬1:16)이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한주간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도자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가장 정확히 알고 누림으로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참된 하나님 되시고 생명 되시며 충만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만남과 현장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세상을 정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주간 강단 말씀을 붙잡고 복음에 유익한 것을 생각함으로 범사에 총명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요1:4~16)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와KTdmsl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4~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 일을 마치십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드린 것처럼 오늘 이 한날 예배가 은혜 위에 은혜, 더 충만한 역사로 우리 가운데 채워지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똑같은 데서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몰라 당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교를 가지고 또 우상숭배하고 점치고 굿하는 것으로, 부적을 붙이는 것으로 위안을 받고, 그래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났는데, 다 해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잘 알아야 하고 가장 잘 누려야 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신자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장의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냥 돈 벌고 그 번 돈으로 세상을 즐기다 그렇게 가면 되는 거고, 그렇게 가고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런데 신자들은 그리스도 복음을 알고 있다 하면서도 그 사실을 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실, 돈도 그렇고 또 세상 즐거움, 세상 재미도 못보고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어떤 규칙들을 규범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매여,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답답한 사람으로 보이면서 실제로 본인이 고생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러냐? 가장 잘 알아야 할 복음, 가장 잘 누려야 할 그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놓쳐 버리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 승리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부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큰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 되었던 역사이고 거기서 빠져나온 역사가 성경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아놓고도 복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를 통해 힘을 얻지 못하면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믿는다 하면서도 신자라 하면서도 노예로 포로로 속국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과 신자들의 문제는 진짜 근원적인 부분인데 그것은 바로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면 똑같이 고생하고 똑같이 실패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복음을 모르면 똑같이 고생하고 똑같이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누리는 것,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그것을 알 때 모든 것이 해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을 안다, 어느 정도 축복받았느냐 하면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라는 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 망하려야 망할 수 없는 소속과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입니다. 세상과 마귀와 저주와 운명을 이기는 권세, 그게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바로 그 권세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소속과 신분이 달라지고 세상에 눌리고 끌려가던 사람이 오히려 세상을 정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을 모르면, 이 복음의 역사를 모르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은 마귀의 자녀로, 사단의 자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그 신분이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로 살아가면서 타고나면서 갖고 있는 저주와 운명 가운데 시달리면서 눌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우리의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 또 내게 숨은 문제들, 남이 알지 못하는 숨은 문제들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복음의 역사를 믿기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셨는데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이라고 하는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장 1절에 보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있게 될 때 실제로 보면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범사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일, 모든 사건, 모든 만남, 모든 사람 관계, 모든 환경, 그게 범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을 주시겠다고요? 총명을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총명을 주신다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우리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당장 있는 문제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를 받음으로 그 문제가 오히려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총명을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이 하나님이 주신 총명이 있게 될 때 사업이 안 되겠습니까? 이 하나님이 주신 총명이 있게 될 때 가정이 안 되겠습니까? 우리 학생들, 이 하나님이 주신 총명이 있게 될 때 우리의 학업이 안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총명, 이 축복된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복음을 바로 알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와 함께 모든 세상에서 범사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 누릴 수 있도록 총명함을 주시게 되어 이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치 못하는 것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에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누려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리스도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바로 예수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직분을 말하고 그 이름이 예수인데 예수,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예수가 누구인가 이 사실을 아는 데서부터 우리 신앙 생활이 출발됩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수가 누구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는 분들 보면 전부 다 인간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좀 남다른 훌륭한 인간이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한 좀 더 나은 인간이다, 어떤 면에서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랍비여 하면서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선생인 줄 믿습니다. 지식인 니고데모 아닙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하나님께로 부터 온 선생인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아닌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모두가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내게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이 내려지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비로소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의 사업과, 학업과 모든 것에 성공이 따라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아무리 열심히 나와서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내게 누구이신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으면 신앙생활 그 자체가 어렵고 힘듦이 되어지는 것이고요, 신앙생활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인생자체가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이 부분들을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합니다.
1. 성경 - 그리스도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러면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도록 나타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요한복음1:1~3절에서 말씀이 나옵니다마는 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처음부터 계셨고 또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어졌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 저주,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부분들을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당장 2장에 보면 물이 포도주 되는 사건이 나와요. 아니 물은 물이지 어떻게 포도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세계적인 한국의 석학 과학자가 이 부분들을 놓고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답을 얻었어요. 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 그보다 더한 일도 하나님이시라면 하실 수 있다 라는 것. 그 사실을 과학자이니까 과학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나중에 깨달은 거예요. 아! 하나님이시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하나님이시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신앙이 들어와서 믿음생활이 시작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마는 여러분 가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어지니까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어요. 이것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에 거듭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거듭남의 역사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니고데모가 아니 그럼 우리가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입니까? 지식인이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거듭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 운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 아닙니까? 그 운명, 실패 가운데 살아가는 그 인생의 운명을 바꾼 예수님. 결국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 가운데 38년 된 병자가 나옵니다. 뻔히 연못에 들어가면 나을 줄 알고 있으면서도 답은 알고 있어도 그런데 정작 본인은 해결 받지 못합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니까 그 병자가 치유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창조주 하나님 이십니다. 혹이나 우리 가운데 우리의 오래된 체질들이 있잖아요. 30년 살아오고, 40년 살아오고, 60년, 70년 살아왔습니까?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아니하면 살아온 그대로 살아가다가 저주가운데 그대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그 예수님을 나의 창조주로 영접하게 될 때에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고질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온 만큼 영적인 부분들을 갖고 있잖아요. 거기에 또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영원전의 문제까지 있습니다. 그 문제도 바꾸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기적들을 보시면 전부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이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나, 또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이나,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사마리아 성 여자 운명에 빠진 인생에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하시는 것. 하나같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창조주로 모시게 될 때에 내 안에서 누가 역사하시느냐?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성도는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내 삶을 사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보세요. 하나님이 내 안에 하나님이 사십니까? 전부 내가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창조주 하나님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삶을 대신 사시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내가 나를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살아가면서도 내가 나를 잡고 있는 이상, 나의 한계, 나의 무능에 빠질 수밖에 없고요. 결국은 내가 나를 잡고 있는 이상 그래서 인생들이 고달픈 인생들을 사는 것이고, 수고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고, 어려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 되시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창세기1:27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이 인간을 축복하셨다 그 말씀도 맞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만드셨어요. 너희가 한번 힘내서 살아봐라. 우리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힘내서 살아봐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또 타락이후에도 타락 전에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가지고 그 복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사실 이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힘을 가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 라는 사실 이예요. 그러면 타락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두셨다는 사실 이예요. 그런데 문제는 자꾸 내가 살아나요. 그것이 창세기 3장의 영향을 받아서 그래요. 정말로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놓고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누구시냐? 이 예수님은 생명이시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성경 요한복음1:4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바로 예수님은 생명이요 빛이십니다. 창세기1:20절에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2:7절에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습니다. 육체가운데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짐으로 말미암아 생령, 산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3장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근원이 짤리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뿌리 뽑힌 나무가 되어진 것이고요, 그리고 뿌리 뽑혀지고 가지가 꺽여진 거기에 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뿌리가 뽑혀졌으니까 가지가 말라 비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뿌리 뽑혀진 곳은 시간 가면 갈수록 결국은 시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관계가 잘려진 인간의 부분들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육신의 생명을 갖고 있으니까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생명과 함께 영혼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바로 실상은 살아있지만 죽은 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서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 육신적인 생명이 있는데 우리의 육신 가운데 영혼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살아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육신 속에 함께 있는 영혼이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을 가지고 죽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육신의 생명은, 우리의 육신은 시간가면 갈수록 병들게 되어 있고, 시간가면 갈수록 부패하게 되어 있고, 시간 가면 갈수록 저절로 낡고 병들게 되어 있어요. 60,70세 된 분들이 지금 10대 나는 아이들과 마라톤 하면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60,70대 되는 분들이 살아가면서 온갖 아픈 부분들 있잖아요. 관절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그것은 당연한 거예요. 육신의 부분들은 시간 가면 갈수록 늙고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전도서12:7절에 보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했습니다. 영혼의 생명이 따로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뭐냐? 바로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생명이 참 생명이기 때문에 이 영혼의 생명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지금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누구 안에?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또한 요한복음14: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11:25~26절에 보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했어요. 우리에게 이 생명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부활로 지금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생명의 역사의 비밀을 누리면 누릴수록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나를 살리게 되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창세기1:27~28절 생명의 역사를 누리게 될 때에 28절의 응답 정복하고 다스리는 응답이 온다는 사실 이예요. 생명의 비밀을 누리면 누릴수록, 풍성한 비밀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 속에 세상 현장 속에 정복하고 다스림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하면 이 생명의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면 다스림 당하고 세상에 끌려가야 됩니다. 돈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돈에 끌려가는 인생이 되어요. 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우리가 분위기에 끌려가고 환경에 끌려가고 사람 말에 끌려가고 그래서 염려하고 불평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 생명은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어요. 빼앗아 갈 수 없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역사들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럼으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이 좋아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환경 속에서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참된 생명의 역사들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어요. 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기도 중에 기도가 있다면 뭐냐? 이 생명의 역사를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생명은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성령이라고 하고 있어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그 반대로 성령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막을 수도 없지만) 악한 사탄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생명을 누리는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흑암이 꺾어지는 응답들이 와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이고 빛이다” 했습니다. 빛은 뭡니까? 흑암이 저절로 물러가는 겁니다.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빛이 비치면 그 캄캄함이 물러가는 것처럼 생명,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될 때에 저절로 흑암이 꺾어지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거기에서 이뤄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게 바로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누리게 될 때 오신 부분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가정을 놓고 여러분의 자녀를 놓고 교회현장을 놓고 여러분의 지역 현장을 놓고 기도하십시오. 진짜 우리 가정이 생명의 역사를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생명의 역사를 누리고 생명의 역사를 증거 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흑암이 꺾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 1장 14절 ~ 16절에 보면 바로 충만함입니다. 14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 예수그리스도, 충만합니다. “충만” 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꽉 찼다’ 라는 말이에요. 모자라지 않고 부족하지 않고 완전하고 또 온전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그 이름에 모든 것 다 담아 두셨어요. 그게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왜 사람들이 갈급합니까? 왜 사람들이 이리저리 방황합니까? 사실 그리스도, 충만한 분으로 충분한 분으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갈급하고 또 세상 것으로 채우게 되어 있어요. 세상 것을 채우면 채울수록 오히려 거기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더 갈급함 속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에게 충만함으로 주셨습니다. 바울이 이 복음을 알고 나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 어떤 형편이든지 자기는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어요. 12절에 보면 빈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어요. 이게 뭡니까? 여러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어요. 일체의 비결이라는 말은 어디에 갖다 놔도 스스로 만족하고 충만하고 풍족함을 누릴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게 충만함입니다. 전도자 바울이 고백한 내용이에요. 그리고 빌립보서 4장 13절에 모자람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어요. 여러분 그리스도로 충만한 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말씀을 살펴봤잖아요. 골로새서 2장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세움을 입음으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리스도로 충분하니까 그 안에서 행하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앞으로 영원까지 우리가 가야 될 길, 우리가 평생 의지해야 될 길,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는 길, 그리스도 그 안에 다 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 안에서 행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세움을 입어서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로 충분하니까.. 여러분 정말 이 축복의 역사들 여러분 걸음과 현장 속에 체험되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분함을 누리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세상 것 따라가게 되어 있고요, 그 세상과 타협하게 되어 있고 물질 따라가게 되어 있고 성공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그게 네피림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게 결국 바벨탑 사건을 가져오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고 그리스도는 오늘 본문에 은혜 위에 은혜로 주셨는데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말씀했습니다.
2. 복음 바로 알고 누리기 위해
그러면 두 번째,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접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은혜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충만함은 영접하게 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으로 주어지는 겁니다. 영접하게 될 때.. 물론 영접은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영접하는 것 한번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일들과 문제와 사건들을 당하게 될 때에 그 일들과 사건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창조주가 되시도록, 예수그리스도가 생명이 되시도록, 예수그리스도가 충만함이 되시도록 영접하면 됩니다.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현장에서 불신자를 전도해서 영접 시킬 때 잘 사용하는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영접 시킬 때도 필요한 말씀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생명 가진 자, 그 생명의 역사들을 놓치고 있으니까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데 그 두드리는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 다음 말이 나오죠. 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영접, 구원 받을 때 처음 한 번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와 사건이 있으면 날마다 날마다 주예수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찬송도 있잖아요. 주예수 내 맘에 오심, 주예수 내 맘에 오심~ (찬송가 289장). 늘 항상 우리가 영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안에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고, 생명으로 역사하는 것이고, 모자람이 없는 충만함으로 역사하게 되어 있어요. 불신자들이 있는 장례식에 가거나 또 믿는 자들이 있는 장례식에도 가면 반드시 영접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때 제가 안내를 하면서 이 자리에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신 분들이 계시지만 아직까지 영접하지 못한 분들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인으로 영접하시고 또 지금 당한 이 슬픔, 이 사건, 이 문제에 주인이 되시도록 영접하십시다 하고 영접기도를 초청해요. 여러분 영접은 천번 만번해도 괜찮아요. 주님이 먹고 마시겠다는데 그 주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인데 여러분 정말로 예수그리스도 영접함으로 날마다 먹고 마시는 귀한 축복된 역사들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알고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누리느냐? 강단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누리고 또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그 문제와 사건 속에서 여러분 생각과 여러분의 기준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지 마시고 빌립보서 1장 9-10절의 말씀처럼 어떤 것이 복음에 유익한 것인가 그것을 좀 생각하시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 것일까? 저렇게 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 것일까? 그걸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먼저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이게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성도들만이 갖고 있는 평안이요, 기쁨입니다. 이때 내가 바뀌어져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그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게 될 때 그 속에서 그때 내가 바뀌어 져요. 그게 바로 복음을 누리는 속에서 오는 변화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해서 이야기 했어요. 내가 너희에게 간절히 나아가기를 원하는데 그를 위해서 밤낮 눈물로 기도한다고 했어요. 아니, 로마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는데 이미 로마교회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로마교회를 위해서 밤낮 눈물로 기도하며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느냐? 로마서 1장 11절을 보면 “신령한(좋은)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다시 말하면, 복음을 너희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바울은 간절함으로 로마교회를 향한 기도가 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안 믿는 사람만 복음이 필요한 줄 알고 있습니다만,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에게도 사실은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교회, 복음 받은 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이 좋은 것 이를 위해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원하노라 했어요.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복음이에요. 이 복음의 역사를 알고 누리게 될 때 그게 능력 있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러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이 복음의 역사를 미련하고 어리석게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을 알고 누림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도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3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요1:4-16)
서론: 모든 사람의 문제는 똑같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몰라서 당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신자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어려운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포로,속국이 됨)을 보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누려야할 비밀로써, 복음을 모르면 신자든 불신자든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인으로 영접만 하면(요1:12) 소속과 신분이 바뀌고 세상을 정복하고 리더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또한 모든 일과 사건, 만남과 관계, 환경에까지 총명을 주십니다(딤후2:1). 혹시 문제와 어려움이 오더라도 지혜를 주셔서 축복으로 인도하심으로 범사에 승리하게 하십니다.
1. 성경 - 그리스도를 무엇이라 말하는가?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요1:1-3)
1)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도록 나타나신 분이심
2) 처음부터 계셨고, 모든 만물을 지으셨으며, 죄와 저주와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분이심
3)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창1:27-28)
(2)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요1:4)
1)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됨으로(창3장) 육신의 생명이 있지만, 영혼의 생명이 죽음(엡2;1)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혼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참 생명으로 오신 분이심(부활의 생명)
3) 이 생명(롬8:2)의 역사를 놓고 기도함으로 흑암이 결박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받으라
(3) 예수님은 충만함이십니다(요1:14,16)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완전하고 온전하며 충만한 분이심(빌4:11~13)
2)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뿌리 내리며, 세움을 입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3)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을 다 담아주심(14절 은혜와 진리가 충만, 16절 은혜 위의 은혜)
2. 복음 바로 알고 누리기 위해
(1) 문제와 사건 앞에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됨(계3:20)
(2) 어떻게 누림? 강단 말씀 잡고, 문제와 사건 속에서 복음에 유익한 것을 생각하라(빌1:9-10)
결론: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대하여 너희에게 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복음을 알고 있는 로마교회에게 좋은 은사를 나눠주기 위해(롬1:12, 복음 나누기 위해) 밤낮 눈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만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복음을 알고 누릴 때, 능력 있는 삶(롬1:16)이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한주간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도자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가장 정확히 알고 누림으로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참된 하나님 되시고 생명 되시며 충만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만남과 현장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세상을 정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주간 강단 말씀을 붙잡고 복음에 유익한 것을 생각함으로 범사에 총명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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