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절대주권(박지온p)
2015-07-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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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하나님의 절대주권”
(엡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3~14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원로목사님 나오셔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주실 때에 큰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축복의 자리에 하나님 그 은혜의 계획 속에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고 흑암의 세력이 떠나가고 가장 이 땅에서 높은, 존귀의 자리에 역사하시고 인도받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특히, 신봉준 목사님, 남미에서 피곤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받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영육간에 강건케 하시고 하나님이 말씀의 역사 속에 있게 하실 때마다 엘리사에게 주셨던 갑절의 은혜와 또 능력과 도단성의 불말과 불병거의 역사로 하나님이 현장에 축복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주의 종들의 마음과 생각을 여시사 깨닫는 영을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고 특별히 맥추감사절에 주의 종들이 전심을 다하여 진정 하나님 앞에 구원의 감사와 함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축복으로 덧입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두 번째 섰는데 제가 설 때마다 늘 옛날에는 무얼 할까 고민을 했던 것이 설교의 고민이었는데 요즘은 설 때마다 이걸 어떻게 짧게 단축을 좀 할까 하는 이런 고민이 많습니다. 왜? 조금만 긴장을 풀면 길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또 너무 짧다고 해서 오늘 좀 길어도 괜찮지 싶어서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절대 길게 안 합니다. 11절의 말씀을 보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그 다음에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아멘. 계속 보면 ‘그 안에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안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면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계획 안에서와 다 통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약속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특별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안에서 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성령의 역사. 그래서 이 성령의 역사. 오늘 제목이 “하나님의 주권”인데 뒤에 반드시 붙이고 싶었지만 너무 길었던 제목이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주권이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안 믿고 천국 못 간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믿기는 믿어도 어딜 가기 쉬우냐면 갈릴리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주권이 확인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갈릴리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왜?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기 때문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 서게 되는 순간부터 뭐가 나오느냐 하면 지난 주에 이미 다섯 가지 칼빈주의 기둥, 구원의 기둥을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이것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칼빈주의의 구원의 다섯 기둥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전부가 구원의 역사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가 나의 구주로, 그리고 예수가 나의 모든 것이라는 축복의 역사가 믿어지는 순간 구원받았습니다. 그 때 뭐가 나오느냐 하면 우리도 모르게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믿어지면 순간순간 사건마다 뭐가 나옵니까? 아, 또 하나님이, 또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 축복의 역사가 확실히 믿어지는 만큼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추수 때는 이렇게 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추수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어려운 중에서 인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지는 만큼 반드시 나오는 것이 평화와 감사입니다. 여러분, 평안이 없으면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내 안에 평안이 있고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믿어지지 않으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하느냐, 그러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무엇 중에? 병 중에서, 실패 중에서, 어려움 중에서도 지금 역사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반드시 이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믿는다는 것은 되는데 감사가 잘 안 나옵니다. 제가 초기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 때 뭐 영접인지 무엇인지 모르고 그리스도로 확인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믿어졌을 때 범사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뭐가 나한테 이루어졌느냐면 헌금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헌금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 이것은 응당 드리는 것이고 의무라기보다는 저절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헌금이고, 그 다음 두 번째는 그 때는 선교헌금이라고 선교하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두 번째로는 응당 십의 이조를 떼어서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그때는 학생들을 많이 도왔습니다. 전도사일 때부터 내가 은혜를 받는 순간부터 나의 헌금이 나오는데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다음에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좀 부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부산 임마누엘 교회에서 헌금에 대해서 조금 얘기를 했더니만 교인들이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전도는 하고 했는데 나의 헌금이란 것이 잘 확인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멍하게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 그 다음에 십사조 까지는 안 되어도 십삼조라는 말에 벌써 멍해집니다. 왜? 그게 나의 헌금이라는 확증이 아직 안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런 말씀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헌금을 은혜 받은 즉시, 그 때부터 목회생활도 그렇고 내 개인 생활도 그렇고 지금까지 헌금하면서 나의 경제 생활이 실패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든 목사님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보고 이런 교회에 이런 축복을 받는 원로목사는 99.9%가 한국에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왜? 나는 99.9%가 없는 중에 유일한 원로목사라는 뜻입니다. 경제도 재정도 모든 것이. 그런데 내가 헌금했다고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은 하나님이 나중에, 여러분, 이걸 또 조건으로 헌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내게, 나의 헌금을 은혜 받는데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내가 변하고 싶어서 변화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의 헌금으로 하나님이 은혜로 확정지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하면서 경제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여러분, 어렵다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받고 누린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못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재어 놓고 쌓아 놓고 헌금하는 것은 큰 위험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돈을 쌓아 놓으면 걱정이 많습니다. 그리고 혹시 밤에 뭐가 들어올까 염려가 많습니다. 저는 쌓아놓고 있는것도 아닌데도 우리 집에서 늘 뭐라고 하느냐 하면 통장 몇 개 있는 것을 이불 밑에 넣었다가, 또 러닝셔츠 밑에 넣었다가 그 다음에 또 흔적도 없이 어디 갔는지 없다가 요즘 또 제가 입고 있는 러닝셔츠 밑에 또 넣어 놓았습니다. 왜 그러냐? 혹시 사람이 오면. 근심하지 마라. 가져가면 가져가는 것이고 또 그것도 누가 와서. 저는 벌써 도적을 맞은 횟수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왜 그러냐? 목사라고, 대형교회 목사라고 돈이 있는 줄 알고 왔다가 와보니 별거 없으니 수없이 도적들이 들어오다가 소문이 났는가 봅니다. 그 목사는 돈이 없다. 요즘은 일체 안 들어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일체 안 들어옵니다.
여러분, 우리는 쌓아놓으면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빚진 인생입니다. 하나님께 빚지고 여러 선배들에게 빚지고 우리 모든 사회에 빚지고.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사는 건데 내가 모든 것을 쌓아놓고 있다면 늘 양심에 가책이 되고 이 돈을 어디에 기부를 해야 하겠나, 어디에 드려야 하겠나, 돈 없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없는데 어디에 기부하고 어디에 무엇을 합니까? 그때그때 하나님이 살아가기 꼭 알맞도록, 그날 필요할 때 늘 주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고 삽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도 빚진 인생이고 만약에 빚을 안 진다면 그 사람의 삶은 죽은 것입니다. 빚져야 살아 역사하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엉터리같이 남의 돈을 끌어다 쓰고 이거는 또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때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십니다. 채우시되 넘치도록 필요하면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도 다른 교회에서 보면 우리 교회가 굉장히 돈이 많은 줄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도 늘 빚으로 삽니다. 왜? 교회에 돈 재놓고 사는 교회는 일 안 하는 교회입니다. 돈을 재어 놓고 살 시간이 없습니다. 왜? 너무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서 늘 빚지고 사는 교회가 일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아무렇게나 빚지고 그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늘 쓰다 보면 빚을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채워 주십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이라 해서 특히 돈 얘기가 좀 나왔는데 왜 이 돈 얘기가 나왔느냐? 지금 우리 삶이 각박합니다. 특히 메르스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경제가 되니 안 되니, 상관없습니다. 너무 평안했습니다, 저는. 메르스가 오면 뭐 일찍 하나님께 가면 되는 거고. 그렇다고 일부러 그 병 걸려서 주위 사람들에게 경계를 받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메르스라도 걸려서 가게 하시는 것이고 아니면 모르겠습니다, 아직 얼마나 살지 저는 모릅니다. 곧 죽어간다고 몇 번이나 강단에서 얘기해 놓고는 아직까지 살아 있는데 나도 언제 죽는다, 자신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니까. 필요한 때 불러 가십니다.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지금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절대주권 속에서 필요하면 불러 가실 것입니다. 그 동안 여기 앉아 있는 자체가 복이요, 뭐라고요? 기도의 응답입니다. 왜? 이 자리가 천국이요 이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요, 지난 주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늘에 앉히신, 여러분과 저를, 하나교회에 있는 여러분,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이미 하늘에 앉혔습니다. 하늘 나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총회신학교에서도 배운 것이지만 처음에는 그 전천년설도 생각하고 했지만 지난 주에 말씀한 것처럼 무천년설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여러분께 제가 가르친 것도 그것입니다. 왜? 지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천년왕국입니다. 지금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지금 하나님의 축복 속에, 응답 속에, 은혜 속에 세우셨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응답입니다. 자꾸 다른 응답 찾으면 다른 것을 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우상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여기에 앉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서 하나님 이 자리에 앉은 내게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해야 됩니까? 소명, 사명을 깨달아 가는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의 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내 안에 있습니다. 다입니다. 그런데 지금 뭘 또 자꾸 구합니까? 이미 다 주셨는데 이제는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진짜 믿습니까? 그러면 다된 것입니다. 뭘 자꾸 구할 것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차영배 교수가 한국에서인지 세계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성령론의 대가라고 그럽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너무 기도 오래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구요. 다 주셨는데 할 것이 무엇 있느냐고 ...그래서 강단의 기도가 제가 늘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3분이상 하지 마라...그런 소리 안 해도 기도 간단히 하고 내려와라. 거~룩 거~룩 ...거룩할 것 뭐 있냐 아버지 하면 되지..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끝난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만 계속 부르짖는데 하나님 보다도 더 좋은 더 아름다운 관계가 아버지. 아버지..오늘도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입니다. 오늘도 이 장소에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전도와 선교의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러다가 5가지 기본도 못하고 지나가겠습니다. 그러나 한번 상기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여러분들이 주권인데 무슨 주권입니까? 나의 주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거의 안 믿고 사는 것이 오늘 우리의 인생의 삶입니다. 창세기 3장의 가장 무서운 범죄의 배경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내가 결정을 하고, 내가 인도를 받고, 그래서 나라는 놈이,,..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장소든, 어떤 문제든, 내가 문제입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문제입니다. 단체에서도 내가 문제요.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은혜 입으면 내가 없어지는 것 아니라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되어 있어요. 저희 집사람이 저한테 늘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당신은 늘 말이 많아요’그래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그런 것 같아요...자꾸 내가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 덜 되었구나 사람이 덜된 것이 아니고 인간이 덜 되었구나.. 내가 나올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따라가면 되어요. 사람 만났다하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설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고, 조급할 것도 없어요. 조금 늦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조금 부지런하면 되어요.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이 있어요. 교회도 습관적으로 늦게 오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도 아마 여기 오신 분들은 거의 다 시간 안에 오신 것 같은데 습관적으로 늦는 분이 있어요. 자꾸 그렇게 늦지는 마세요. 하나님의 은혜 입어서 시간 안에 오면 절대 조급하지 않습니다. 늦게 오는 사람들이 빨리 오고 싶어서 조급하고, 운전도 빨리 운전하다가 사고 나고 하지요. 하나님의 절대주권.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누가 계세요? 하나님이 계세요.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십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주권 그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섰을 때 첫 번째 5대 교리 중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지요. 그 다음에 또 문제가 완전타락 아닙니까. 로마서1장 후반부에 보면 우리 마음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기마음대로 하도록...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욕심 속에 하고 싶은 것이 여러 가지 있어요. 그런데 로마서 하반부에 보면 희안한 일들도 하고 싶어요. 여기를 따라가면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에 완전히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도, 마음도, 뜻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절대로 조용히 밤에 눈을 감고 있으면 다른 것이 왔다 갔다 합니다. 왜냐하면 타락해서 입니다. 그런데 저는 특별히 요즘은 나이가 많으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젊을 때에 혼자 사택에 누워 있으면 별 희한한 생각들이 다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간단해요. 그때도 믿었으니까 저는 절대주권을 믿은 지가 좀 오래 됩니다. 다락방에 와서 확인되었을 뿐이지요. 원래 장로교의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장로교에 와서 이 절대 주권을 안 믿는다면 장로교인이 아니예요. 그러나 여기에 장로교인 아닌 사람도 왔습니다. 제가 동료들 모인 자리에서 감리교, 성결교 많이 왔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미 나는 칼빈주의자가 다 되었다 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이 절대주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칼빈주의라는 말을 자꾸 하느냐 하면 성경을 가장 성경적으로 조직해 내신 분이, 조직해서 성경을 깨달은 분이 칼빈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장로교, 칼빈주의자라고 합니다. 칼빈주의자가 성경을 앞서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칼빈주의가 가장 이성에 맞도록 인간의 조직력에 맞도록 해석한 분이라 그런 뜻입니다. 칼빈주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완전타락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어요. 여러분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이 벌써 축복입니다. 저는 장로아들입니다.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믿었습니다. 특별히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다녔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믿었지만 조금 크니까 딴생각하고 절대로 목사를 못한다고 변절을 하더라고요. 가만히 제 속에 말씀대로 한다면 제가 성령의 감화밖에 못 받은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옛날부터 창세전에 이미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한 사람들을 그러니까 내가 뭘 하고, 뭘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가 선택받을 수 있는 조건은 조금도 없습니다. 여러분 과거를 한번 살펴보시고 이 자리에 와서 살아오는 지금도 살펴보세요. 선택받을 조건이 없어요. 성질 더럽지, 조급하지, 그다음에 말 많지, 성 잘 내지, 잘 미워하지 온갖 더러운 것은 다 있거든요.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 ‘내가 선택받을 자격있다’아무도 없어요. 자격이 있는 분 아무도 없어요. 나도 없어요. 여러분 내 속이 지금 양복 있고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딱 열었다 하면 여러분 다 도망갔어요. 그런데 상태와 상관없이 선택했어요. 이것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완전타락인데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냥 두면 안 되니까 선택했는데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어떤 조건에 따른 선택이 아닙니다. 이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믿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선택한 사람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거든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더럽고 추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속죄해 주셔야 됩니다. 죄를 완전히 씻어 주셔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은혜로...속죄해 주셔야 하는데 이것을 가지고 아무나 속죄하는 것 아닙니다. 선택한 여러분들을 속죄해 주십니다. 제한적인 속죄입니다. 이곳에 오셨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라고 말할 수 없어요. 깜짝 놀라 자빠져야 합니다. 진짜 깨달은 순간 깜짝 놀라야 합니다. 너무 엄청난 은혜입니다. 속죄해 주셨다면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은혜 주셔야 됩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십니다. 쉽게 말해서 믿지 않으면 안 되도록... 그 중에 똑바로 말해서 장로들도 있더라고요. 장로 받아 놓고 엉뚱한 짓 하고, 집사 받아도 그렇고요. 엉뚱한 데로 다 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불러야 되니까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시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보면 경제적 실패가 많아요. 그 다음에 더 많은 것은 육체적 고통입니다. 저는 아마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아무도 이유 없이 오신 분들이 없어요.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에서, 아니면 어떤 순간 헷가닥 갈려서 하나님 은혜를 찾아왔고, 어떤 중에는 실패해서, 어떤 중에는 병중에서 하나님이 이 자리에 오지 않으면 안 될 수 밖에 없도록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그럽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내 힘으로 오신 분들은 없어요. 완전히 끌고 왔지, 불러왔지, 안 그러면 속된 말로 귀를 끌고 데려왔지..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도 이 자리에 섰다. 그냥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 못된 사람일수록 이 자리에 오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성질 더러운 자일 수록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질 좋은 사람일수록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으면서 더러운 사람 더 힘들어요. 얌전하면서도 성질 더러운 자 더 힘듭니다. 이것 아니면 이 자리에 못 와요. 그래서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예수 믿게 하고 그때부터 확실하게 이 순간이 될 때에 여러분들이 성령의 역사를 거의 많은 경우 체험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때에 거의 영접하는 단계가 이때가 많아요. 내가 어려움 중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습니까 그러면 네 그럽니다. 그래서 영접하면 어떤 사람은 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평안이 오도록 하고 변화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이 성령의 세례가 임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무엇을 줍니까? 절대적으로 여러분과 저를 영원토록 인도함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때부터 책임지시니까요. 이때부터는 다른 길을 가고 싶어도 못가요 왜냐하면 가고 싶을 리가 없으니까 이때부터는 오직의 힘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확인되는 순간에 오직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오직의 힘을 주옵소서. 이 뭐라고 할까요. 전체를 가지고 구원이라고 했거든요.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 조금만 하고 끝을 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지루해 지는데 지금 벌써 많이 갔어요. 이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절대적인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영원토록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나도 모르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겠습니다 하고 결단하는 순간을 보통 우리가 영접이라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때 영접할 때는 거의 성령의 세례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체험되는 만큼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때에 받는 성령의 세례는 처음에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성령의 감화만 받아도 예수 믿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어디로 가기 쉬워요? 베드로처럼 ‘우리가 고기 잡으러 가자’하며 옛날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베드로를 끌고 와서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의 세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순간에 성령의 세례가 확실히 임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2:1절부터 나오는 각 사람위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어요. 베드로가 이 체험 후에 이것은 요엘서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성령이 각 사람위에, 많은 사람들, 아니 온 사람들 위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시겠다. 믿는 사람에게,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시겠다. 이 세례가 완전한 성령세례입니다. 오순절 이후에 나타나는 성령세례입니다. 그 전에는 세례가 있기 있었습니다마는 다윗에게도 성령이 임했어요.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순간부터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세례 후에 확실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에 보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난 후에 회개하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나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지 마옵소서”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왔다 갔다 했어요. 불완전한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짐승의 피로 속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그리스도로 단번에 대제사장의 임무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성령과 신약시대의 오순절 이후의 성령세례가 구약과 신약의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감동감화 받았다 상관없이 영접하고 하나님의 평안이 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믿어졌다면 확실합니다. 죽을 때까지 다른 길 안갑니다. 성령세례로 확실하게 임하셨습니다. 이때 누가 옵니까? 이때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와 함께 임하신 순간에 영원토록 안가십니다. 염려 마십시오. 혹시 감화 받고 또 갈까봐 염려하지 마세요. 영접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역사를 그리고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평안이 오면서 감사가 나옵니다. 이때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이 날 버리고 안가십니다. 하나님 성령으로 또 다시 오시옵소서. 기도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왔습니다. 이때부터 하는 기도는 뭡니까? “하나님 나에게 능력 주시고 성령충만하게 하게 하옵소서” 그러면 기도하는 만큼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증거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전도와 선교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앉는 자리가 전도의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 10가지 발판 속에 보면 여러분이 처한 곳에, 사업장에, 직장에 있는 장소에서 뭐합니까? 장소가 바로 선교지라, 전도지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지난달에 조금 많이 했습니다마는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지는 것입니다. 선교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영원토록 주님 오시는 그날, 하늘나라 그날 아니 그 이후에 영원토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감사와 기쁨으로 여기에 모든 진정한 감사가 구원의 감사가 물질과 더불어 나와 내 인생을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15년 7월 5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역사
(엡1:3-14)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 나의 모든 것이라는 축복의 역사가 믿어지는 순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인하고 믿지 않으면, 예수를 믿어도 베드로처럼 갈릴리로 되돌아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순간순간 평안과 감사가 나오게 되고, 이때부터 헌금도 달라집니다(나의 헌금).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히신 것으로 지금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 은혜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응답을 찾는 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미 다 주셨기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구하고 천명, 소명, 사명을 깨달아가는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을 열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 - 칼빈의 5대 강령
가. 완전타락 (하나님을 바라볼수도, 생각할 수도, 섬길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존재)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롬1장의 망하는 삶)
나. 무조건적 선택 (창세전에 이미 계획 속에서 선택을 받은 것)
온갖 더러운 내 모습과 상관없이, 선택받을 조건이 전혀 없는 가운데 선택을 받은 것임
다. 제한적 속죄 (선택한 자들에 대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속죄해 주심)
아무나 속죄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자체가 엄청난 은혜 (내 힘이 아님)
라. 불가항력적 은혜 (믿을 수 밖에 없는 자리로 이끌어가심)
은혜 떠나면 엉뚱한 곳(육체적 고통, 경제적 실패)으로 가버리기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라
마. 성도의 견인 (영원토록 인도함을 받도록 책임지심)
절대주권이 확인되는 순간 오직의 힘이 여기서 나오게 됨
2. 성령 세례
가. 절대주권이 확인된 영접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행2:1~4 각 사람 위의 성령역사)
1) 감화로 인한 영접 후 흔들릴 수 있는 것(베드로의 갈릴리행, 다윗왕의 밧세바 사건)과는 다른 것임
2) 구약시대의 떠나가실 수 있는 성령(짐슴의 피로 속죄했기에)과는 다른 것임
3) 신약시대(오순절)이후 영접함으로 평안이 임하고 절대주권이 믿어졌다면, 죽을 때까지 절대 다른 길로 가지 않음
나.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도와 선교는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6번째 발판: 내가 있는 장소가 선교지)
결론: 우리는 모든 일을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습니다(11절). 그리고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13절).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고, 특별한 축복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됩니다. 이제 구원의 감사와 함께 맥추절의 감사가 나올 줄 믿습니다. 모든 만남과 현장 가운데 사실적인 믿음을 체험하고, 한주간 어느 자리에 계시든 기쁨으로 충만한 자리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완전히 타락한 존재인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셔서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축복의 역사가 믿어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서 완전히 책임지시는 인도를 받으며, 성령세례를 체험하고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주간 모든 만남과 사건과 현장이 기쁨으로 충만한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절대주권”
(엡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3~14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원로목사님 나오셔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주실 때에 큰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축복의 자리에 하나님 그 은혜의 계획 속에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고 흑암의 세력이 떠나가고 가장 이 땅에서 높은, 존귀의 자리에 역사하시고 인도받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특히, 신봉준 목사님, 남미에서 피곤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받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영육간에 강건케 하시고 하나님이 말씀의 역사 속에 있게 하실 때마다 엘리사에게 주셨던 갑절의 은혜와 또 능력과 도단성의 불말과 불병거의 역사로 하나님이 현장에 축복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주의 종들의 마음과 생각을 여시사 깨닫는 영을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고 특별히 맥추감사절에 주의 종들이 전심을 다하여 진정 하나님 앞에 구원의 감사와 함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축복으로 덧입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두 번째 섰는데 제가 설 때마다 늘 옛날에는 무얼 할까 고민을 했던 것이 설교의 고민이었는데 요즘은 설 때마다 이걸 어떻게 짧게 단축을 좀 할까 하는 이런 고민이 많습니다. 왜? 조금만 긴장을 풀면 길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또 너무 짧다고 해서 오늘 좀 길어도 괜찮지 싶어서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절대 길게 안 합니다. 11절의 말씀을 보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그 다음에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아멘. 계속 보면 ‘그 안에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안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면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계획 안에서와 다 통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약속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특별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안에서 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성령의 역사. 그래서 이 성령의 역사. 오늘 제목이 “하나님의 주권”인데 뒤에 반드시 붙이고 싶었지만 너무 길었던 제목이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주권이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안 믿고 천국 못 간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믿기는 믿어도 어딜 가기 쉬우냐면 갈릴리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주권이 확인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갈릴리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왜?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기 때문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 서게 되는 순간부터 뭐가 나오느냐 하면 지난 주에 이미 다섯 가지 칼빈주의 기둥, 구원의 기둥을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이것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칼빈주의의 구원의 다섯 기둥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전부가 구원의 역사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가 나의 구주로, 그리고 예수가 나의 모든 것이라는 축복의 역사가 믿어지는 순간 구원받았습니다. 그 때 뭐가 나오느냐 하면 우리도 모르게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믿어지면 순간순간 사건마다 뭐가 나옵니까? 아, 또 하나님이, 또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 축복의 역사가 확실히 믿어지는 만큼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추수 때는 이렇게 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추수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어려운 중에서 인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지는 만큼 반드시 나오는 것이 평화와 감사입니다. 여러분, 평안이 없으면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내 안에 평안이 있고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믿어지지 않으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하느냐, 그러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무엇 중에? 병 중에서, 실패 중에서, 어려움 중에서도 지금 역사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반드시 이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믿는다는 것은 되는데 감사가 잘 안 나옵니다. 제가 초기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 때 뭐 영접인지 무엇인지 모르고 그리스도로 확인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믿어졌을 때 범사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뭐가 나한테 이루어졌느냐면 헌금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헌금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 이것은 응당 드리는 것이고 의무라기보다는 저절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헌금이고, 그 다음 두 번째는 그 때는 선교헌금이라고 선교하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두 번째로는 응당 십의 이조를 떼어서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그때는 학생들을 많이 도왔습니다. 전도사일 때부터 내가 은혜를 받는 순간부터 나의 헌금이 나오는데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다음에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좀 부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부산 임마누엘 교회에서 헌금에 대해서 조금 얘기를 했더니만 교인들이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전도는 하고 했는데 나의 헌금이란 것이 잘 확인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멍하게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 그 다음에 십사조 까지는 안 되어도 십삼조라는 말에 벌써 멍해집니다. 왜? 그게 나의 헌금이라는 확증이 아직 안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런 말씀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헌금을 은혜 받은 즉시, 그 때부터 목회생활도 그렇고 내 개인 생활도 그렇고 지금까지 헌금하면서 나의 경제 생활이 실패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든 목사님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보고 이런 교회에 이런 축복을 받는 원로목사는 99.9%가 한국에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왜? 나는 99.9%가 없는 중에 유일한 원로목사라는 뜻입니다. 경제도 재정도 모든 것이. 그런데 내가 헌금했다고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은 하나님이 나중에, 여러분, 이걸 또 조건으로 헌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내게, 나의 헌금을 은혜 받는데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내가 변하고 싶어서 변화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의 헌금으로 하나님이 은혜로 확정지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하면서 경제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여러분, 어렵다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받고 누린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못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재어 놓고 쌓아 놓고 헌금하는 것은 큰 위험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돈을 쌓아 놓으면 걱정이 많습니다. 그리고 혹시 밤에 뭐가 들어올까 염려가 많습니다. 저는 쌓아놓고 있는것도 아닌데도 우리 집에서 늘 뭐라고 하느냐 하면 통장 몇 개 있는 것을 이불 밑에 넣었다가, 또 러닝셔츠 밑에 넣었다가 그 다음에 또 흔적도 없이 어디 갔는지 없다가 요즘 또 제가 입고 있는 러닝셔츠 밑에 또 넣어 놓았습니다. 왜 그러냐? 혹시 사람이 오면. 근심하지 마라. 가져가면 가져가는 것이고 또 그것도 누가 와서. 저는 벌써 도적을 맞은 횟수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왜 그러냐? 목사라고, 대형교회 목사라고 돈이 있는 줄 알고 왔다가 와보니 별거 없으니 수없이 도적들이 들어오다가 소문이 났는가 봅니다. 그 목사는 돈이 없다. 요즘은 일체 안 들어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일체 안 들어옵니다.
여러분, 우리는 쌓아놓으면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빚진 인생입니다. 하나님께 빚지고 여러 선배들에게 빚지고 우리 모든 사회에 빚지고.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사는 건데 내가 모든 것을 쌓아놓고 있다면 늘 양심에 가책이 되고 이 돈을 어디에 기부를 해야 하겠나, 어디에 드려야 하겠나, 돈 없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없는데 어디에 기부하고 어디에 무엇을 합니까? 그때그때 하나님이 살아가기 꼭 알맞도록, 그날 필요할 때 늘 주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고 삽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도 빚진 인생이고 만약에 빚을 안 진다면 그 사람의 삶은 죽은 것입니다. 빚져야 살아 역사하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엉터리같이 남의 돈을 끌어다 쓰고 이거는 또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때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십니다. 채우시되 넘치도록 필요하면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도 다른 교회에서 보면 우리 교회가 굉장히 돈이 많은 줄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또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도 늘 빚으로 삽니다. 왜? 교회에 돈 재놓고 사는 교회는 일 안 하는 교회입니다. 돈을 재어 놓고 살 시간이 없습니다. 왜? 너무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서 늘 빚지고 사는 교회가 일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아무렇게나 빚지고 그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늘 쓰다 보면 빚을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채워 주십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이라 해서 특히 돈 얘기가 좀 나왔는데 왜 이 돈 얘기가 나왔느냐? 지금 우리 삶이 각박합니다. 특히 메르스라든가 이런 것 때문에 경제가 되니 안 되니, 상관없습니다. 너무 평안했습니다, 저는. 메르스가 오면 뭐 일찍 하나님께 가면 되는 거고. 그렇다고 일부러 그 병 걸려서 주위 사람들에게 경계를 받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메르스라도 걸려서 가게 하시는 것이고 아니면 모르겠습니다, 아직 얼마나 살지 저는 모릅니다. 곧 죽어간다고 몇 번이나 강단에서 얘기해 놓고는 아직까지 살아 있는데 나도 언제 죽는다, 자신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니까. 필요한 때 불러 가십니다.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지금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절대주권 속에서 필요하면 불러 가실 것입니다. 그 동안 여기 앉아 있는 자체가 복이요, 뭐라고요? 기도의 응답입니다. 왜? 이 자리가 천국이요 이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요, 지난 주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늘에 앉히신, 여러분과 저를, 하나교회에 있는 여러분,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이미 하늘에 앉혔습니다. 하늘 나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총회신학교에서도 배운 것이지만 처음에는 그 전천년설도 생각하고 했지만 지난 주에 말씀한 것처럼 무천년설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여러분께 제가 가르친 것도 그것입니다. 왜? 지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천년왕국입니다. 지금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지금 하나님의 축복 속에, 응답 속에, 은혜 속에 세우셨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응답입니다. 자꾸 다른 응답 찾으면 다른 것을 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우상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여기에 앉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서 하나님 이 자리에 앉은 내게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해야 됩니까? 소명, 사명을 깨달아 가는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의 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내 안에 있습니다. 다입니다. 그런데 지금 뭘 또 자꾸 구합니까? 이미 다 주셨는데 이제는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진짜 믿습니까? 그러면 다된 것입니다. 뭘 자꾸 구할 것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차영배 교수가 한국에서인지 세계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성령론의 대가라고 그럽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너무 기도 오래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구요. 다 주셨는데 할 것이 무엇 있느냐고 ...그래서 강단의 기도가 제가 늘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3분이상 하지 마라...그런 소리 안 해도 기도 간단히 하고 내려와라. 거~룩 거~룩 ...거룩할 것 뭐 있냐 아버지 하면 되지..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끝난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만 계속 부르짖는데 하나님 보다도 더 좋은 더 아름다운 관계가 아버지. 아버지..오늘도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입니다. 오늘도 이 장소에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전도와 선교의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러다가 5가지 기본도 못하고 지나가겠습니다. 그러나 한번 상기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여러분들이 주권인데 무슨 주권입니까? 나의 주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거의 안 믿고 사는 것이 오늘 우리의 인생의 삶입니다. 창세기 3장의 가장 무서운 범죄의 배경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내가 결정을 하고, 내가 인도를 받고, 그래서 나라는 놈이,,..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장소든, 어떤 문제든, 내가 문제입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문제입니다. 단체에서도 내가 문제요.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은혜 입으면 내가 없어지는 것 아니라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되어 있어요. 저희 집사람이 저한테 늘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당신은 늘 말이 많아요’그래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그런 것 같아요...자꾸 내가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 덜 되었구나 사람이 덜된 것이 아니고 인간이 덜 되었구나.. 내가 나올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따라가면 되어요. 사람 만났다하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설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고, 조급할 것도 없어요. 조금 늦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조금 부지런하면 되어요.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이 있어요. 교회도 습관적으로 늦게 오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도 아마 여기 오신 분들은 거의 다 시간 안에 오신 것 같은데 습관적으로 늦는 분이 있어요. 자꾸 그렇게 늦지는 마세요. 하나님의 은혜 입어서 시간 안에 오면 절대 조급하지 않습니다. 늦게 오는 사람들이 빨리 오고 싶어서 조급하고, 운전도 빨리 운전하다가 사고 나고 하지요. 하나님의 절대주권. 내가 아닙니다. 내 안에 누가 계세요? 하나님이 계세요.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십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주권 그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섰을 때 첫 번째 5대 교리 중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지요. 그 다음에 또 문제가 완전타락 아닙니까. 로마서1장 후반부에 보면 우리 마음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기마음대로 하도록...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욕심 속에 하고 싶은 것이 여러 가지 있어요. 그런데 로마서 하반부에 보면 희안한 일들도 하고 싶어요. 여기를 따라가면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에 완전히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도, 마음도, 뜻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절대로 조용히 밤에 눈을 감고 있으면 다른 것이 왔다 갔다 합니다. 왜냐하면 타락해서 입니다. 그런데 저는 특별히 요즘은 나이가 많으니까 말할 것도 없지만 젊을 때에 혼자 사택에 누워 있으면 별 희한한 생각들이 다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간단해요. 그때도 믿었으니까 저는 절대주권을 믿은 지가 좀 오래 됩니다. 다락방에 와서 확인되었을 뿐이지요. 원래 장로교의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장로교에 와서 이 절대 주권을 안 믿는다면 장로교인이 아니예요. 그러나 여기에 장로교인 아닌 사람도 왔습니다. 제가 동료들 모인 자리에서 감리교, 성결교 많이 왔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미 나는 칼빈주의자가 다 되었다 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이 절대주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칼빈주의라는 말을 자꾸 하느냐 하면 성경을 가장 성경적으로 조직해 내신 분이, 조직해서 성경을 깨달은 분이 칼빈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장로교, 칼빈주의자라고 합니다. 칼빈주의자가 성경을 앞서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칼빈주의가 가장 이성에 맞도록 인간의 조직력에 맞도록 해석한 분이라 그런 뜻입니다. 칼빈주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완전타락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어요. 여러분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이 벌써 축복입니다. 저는 장로아들입니다.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믿었습니다. 특별히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다녔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믿었지만 조금 크니까 딴생각하고 절대로 목사를 못한다고 변절을 하더라고요. 가만히 제 속에 말씀대로 한다면 제가 성령의 감화밖에 못 받은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옛날부터 창세전에 이미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한 사람들을 그러니까 내가 뭘 하고, 뭘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가 선택받을 수 있는 조건은 조금도 없습니다. 여러분 과거를 한번 살펴보시고 이 자리에 와서 살아오는 지금도 살펴보세요. 선택받을 조건이 없어요. 성질 더럽지, 조급하지, 그다음에 말 많지, 성 잘 내지, 잘 미워하지 온갖 더러운 것은 다 있거든요.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 ‘내가 선택받을 자격있다’아무도 없어요. 자격이 있는 분 아무도 없어요. 나도 없어요. 여러분 내 속이 지금 양복 있고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딱 열었다 하면 여러분 다 도망갔어요. 그런데 상태와 상관없이 선택했어요. 이것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완전타락인데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냥 두면 안 되니까 선택했는데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어떤 조건에 따른 선택이 아닙니다. 이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믿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선택한 사람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거든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더럽고 추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속죄해 주셔야 됩니다. 죄를 완전히 씻어 주셔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은혜로...속죄해 주셔야 하는데 이것을 가지고 아무나 속죄하는 것 아닙니다. 선택한 여러분들을 속죄해 주십니다. 제한적인 속죄입니다. 이곳에 오셨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라고 말할 수 없어요. 깜짝 놀라 자빠져야 합니다. 진짜 깨달은 순간 깜짝 놀라야 합니다. 너무 엄청난 은혜입니다. 속죄해 주셨다면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은혜 주셔야 됩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십니다. 쉽게 말해서 믿지 않으면 안 되도록... 그 중에 똑바로 말해서 장로들도 있더라고요. 장로 받아 놓고 엉뚱한 짓 하고, 집사 받아도 그렇고요. 엉뚱한 데로 다 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불러야 되니까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시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보면 경제적 실패가 많아요. 그 다음에 더 많은 것은 육체적 고통입니다. 저는 아마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아무도 이유 없이 오신 분들이 없어요.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에서, 아니면 어떤 순간 헷가닥 갈려서 하나님 은혜를 찾아왔고, 어떤 중에는 실패해서, 어떤 중에는 병중에서 하나님이 이 자리에 오지 않으면 안 될 수 밖에 없도록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그럽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내 힘으로 오신 분들은 없어요. 완전히 끌고 왔지, 불러왔지, 안 그러면 속된 말로 귀를 끌고 데려왔지..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도 이 자리에 섰다. 그냥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 못된 사람일수록 이 자리에 오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성질 더러운 자일 수록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질 좋은 사람일수록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으면서 더러운 사람 더 힘들어요. 얌전하면서도 성질 더러운 자 더 힘듭니다. 이것 아니면 이 자리에 못 와요. 그래서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예수 믿게 하고 그때부터 확실하게 이 순간이 될 때에 여러분들이 성령의 역사를 거의 많은 경우 체험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때에 거의 영접하는 단계가 이때가 많아요. 내가 어려움 중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습니까 그러면 네 그럽니다. 그래서 영접하면 어떤 사람은 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평안이 오도록 하고 변화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이 성령의 세례가 임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무엇을 줍니까? 절대적으로 여러분과 저를 영원토록 인도함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때부터 책임지시니까요. 이때부터는 다른 길을 가고 싶어도 못가요 왜냐하면 가고 싶을 리가 없으니까 이때부터는 오직의 힘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확인되는 순간에 오직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오직의 힘을 주옵소서. 이 뭐라고 할까요. 전체를 가지고 구원이라고 했거든요.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 조금만 하고 끝을 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지루해 지는데 지금 벌써 많이 갔어요. 이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절대적인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영원토록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나도 모르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겠습니다 하고 결단하는 순간을 보통 우리가 영접이라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때 영접할 때는 거의 성령의 세례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체험되는 만큼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때에 받는 성령의 세례는 처음에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성령의 감화만 받아도 예수 믿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어디로 가기 쉬워요? 베드로처럼 ‘우리가 고기 잡으러 가자’하며 옛날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베드로를 끌고 와서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의 세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순간에 성령의 세례가 확실히 임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2:1절부터 나오는 각 사람위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어요. 베드로가 이 체험 후에 이것은 요엘서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성령이 각 사람위에, 많은 사람들, 아니 온 사람들 위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시겠다. 믿는 사람에게,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시겠다. 이 세례가 완전한 성령세례입니다. 오순절 이후에 나타나는 성령세례입니다. 그 전에는 세례가 있기 있었습니다마는 다윗에게도 성령이 임했어요.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순간부터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세례 후에 확실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에 보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난 후에 회개하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나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지 마옵소서”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왔다 갔다 했어요. 불완전한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짐승의 피로 속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그리스도로 단번에 대제사장의 임무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성령과 신약시대의 오순절 이후의 성령세례가 구약과 신약의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감동감화 받았다 상관없이 영접하고 하나님의 평안이 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믿어졌다면 확실합니다. 죽을 때까지 다른 길 안갑니다. 성령세례로 확실하게 임하셨습니다. 이때 누가 옵니까? 이때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와 함께 임하신 순간에 영원토록 안가십니다. 염려 마십시오. 혹시 감화 받고 또 갈까봐 염려하지 마세요. 영접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역사를 그리고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평안이 오면서 감사가 나옵니다. 이때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이 날 버리고 안가십니다. 하나님 성령으로 또 다시 오시옵소서. 기도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왔습니다. 이때부터 하는 기도는 뭡니까? “하나님 나에게 능력 주시고 성령충만하게 하게 하옵소서” 그러면 기도하는 만큼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증거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전도와 선교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앉는 자리가 전도의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 10가지 발판 속에 보면 여러분이 처한 곳에, 사업장에, 직장에 있는 장소에서 뭐합니까? 장소가 바로 선교지라, 전도지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지난달에 조금 많이 했습니다마는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지는 것입니다. 선교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영원토록 주님 오시는 그날, 하늘나라 그날 아니 그 이후에 영원토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감사와 기쁨으로 여기에 모든 진정한 감사가 구원의 감사가 물질과 더불어 나와 내 인생을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15년 7월 5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역사
(엡1:3-14)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 나의 모든 것이라는 축복의 역사가 믿어지는 순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인하고 믿지 않으면, 예수를 믿어도 베드로처럼 갈릴리로 되돌아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순간순간 평안과 감사가 나오게 되고, 이때부터 헌금도 달라집니다(나의 헌금).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히신 것으로 지금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 은혜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응답을 찾는 것은 우상이 됩니다. 이미 다 주셨기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구하고 천명, 소명, 사명을 깨달아가는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을 열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 - 칼빈의 5대 강령
가. 완전타락 (하나님을 바라볼수도, 생각할 수도, 섬길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존재)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롬1장의 망하는 삶)
나. 무조건적 선택 (창세전에 이미 계획 속에서 선택을 받은 것)
온갖 더러운 내 모습과 상관없이, 선택받을 조건이 전혀 없는 가운데 선택을 받은 것임
다. 제한적 속죄 (선택한 자들에 대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속죄해 주심)
아무나 속죄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자체가 엄청난 은혜 (내 힘이 아님)
라. 불가항력적 은혜 (믿을 수 밖에 없는 자리로 이끌어가심)
은혜 떠나면 엉뚱한 곳(육체적 고통, 경제적 실패)으로 가버리기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라
마. 성도의 견인 (영원토록 인도함을 받도록 책임지심)
절대주권이 확인되는 순간 오직의 힘이 여기서 나오게 됨
2. 성령 세례
가. 절대주권이 확인된 영접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행2:1~4 각 사람 위의 성령역사)
1) 감화로 인한 영접 후 흔들릴 수 있는 것(베드로의 갈릴리행, 다윗왕의 밧세바 사건)과는 다른 것임
2) 구약시대의 떠나가실 수 있는 성령(짐슴의 피로 속죄했기에)과는 다른 것임
3) 신약시대(오순절)이후 영접함으로 평안이 임하고 절대주권이 믿어졌다면, 죽을 때까지 절대 다른 길로 가지 않음
나.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도와 선교는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6번째 발판: 내가 있는 장소가 선교지)
결론: 우리는 모든 일을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습니다(11절). 그리고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13절).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고, 특별한 축복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됩니다. 이제 구원의 감사와 함께 맥추절의 감사가 나올 줄 믿습니다. 모든 만남과 현장 가운데 사실적인 믿음을 체험하고, 한주간 어느 자리에 계시든 기쁨으로 충만한 자리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완전히 타락한 존재인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셔서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축복의 역사가 믿어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서 완전히 책임지시는 인도를 받으며, 성령세례를 체험하고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주간 모든 만남과 사건과 현장이 기쁨으로 충만한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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