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원한 계획(박지온 원로목사)
2016-09-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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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롬16:25~27)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롬16:25~27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을 있게 하시고 이 오늘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 축복하심을 감사합니다. 세계복음화의 언약 잡고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에게 언약으로 약속하신 바 모든 것을 예배 속에서 회복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 말씀 한 군데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 1장 11절, 12절입니다. 우리 합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 12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오늘 말씀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그런데 여기다 덧붙이면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영원하신 계획, 그렇게 붙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설교 시간이 되면 사실 내가 준비하는 것보다 우리 아내의 준비가 더 겁납니다. 나는 다 됐다 싶은데 항상 준비 안 한다고 그래서 어제도 종일 시달리다가 오늘 아침까지. 그런데 더군다나 이번에는 감기가 심해서 준비는 누워서도 하고 일어나서도 하고 그런데 꼭 거기는 책상에 앉아서 무얼 써야 준비하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도 오늘 준비를 아침까지 다 마치고 섰습니다. 내가 늘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잡고 깨닫고 그 방향을 향해서 따라간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요, 또 내 개인에게는 참 평안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늘 조급합니다.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아닌 것 같고, 또 이것도 긴 것 같고 저것도 긴 것 같고. 늘 방황하게 되는데 나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내가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여러분과 제게 약속되어 있고 또 지금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계획이라 말씀합니다만 사실 우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 할 때에 우리에게는 참 맞는 말이고 늘 들었기 때문에 각인되어 있고 그렇다 싶은 말인데 그것을 믿는 사람만큼 주권이 안 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왜? 개성이 강하고 성질이 별날수록 주권을 강조합니다. 왜? 자기가 안 되니까. 늘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들은 주권이 강조되면 자기 것이 강조되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보다 자기의 주권이 더 강조되는 것, 이것이 주권에 대한 약점입니다. 그래서 이 주권을 확실히 깨닫고 주권 속에 살도록 되는 일에는 은혜로 되지 결단한다고 되고 결심한다고 되고 오늘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주권 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속에서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영원히 살아갑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이 늘 오늘도 이루어지고 내일도 이루어지고, 또 하나님의 그 주권 속에서 인도 받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성령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잘못 각인된 우리의 중심에서 나오는 이 잘못된 것이 바로 내가 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그 속에 나의 역사로 인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복음 들을 때에 복음 속에 인도 받는 역사를 믿을 때에 정말 참된 복음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거짓된 복음을 따라가느냐, 이것이 우리가 늘 보고 느끼고 깨닫고 살아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 이 복음의 흐름이 크게 세 가지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와 여러분의 개인 속에서도 이렇게 세 가지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흐름이 아니고 그것은 내 개인적인, 나의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런 흐름이 있습니다. 그 흐름이 옛날 우리가 어릴 때는 신신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요즘은 자유주의 신학, 요즘은 이것을 하나의 종교로 빠지게 되는 흐름이기도 합니다만 뭐든지 내가 내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려고 한다니 이상하지만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하는 그런 흐름이 우리의 원래의 흐름입니다. 우리 인간의 흐름. 이것이 종교를 낳게 되고 이것이 나도 모르게 선행을 낳게 되고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심리적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이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흐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주 이름 있는 사람들로 명작을 남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자기 행동으로 무언가 하나님을 증명하려 하는 이런 흐름이 옛날부터 그 전체적인 흐름 속에 어떤 종교라는 배경을 가지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아주 흔한 얘기입니다만, 우리가 아르메니안 주의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흐름 속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다락방에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감리교 소속의 교리적인 배경, 성결교 교단의 교리적인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신인합동설이라 합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그 위에 인간의 노력이 따라가야 복음이 완성된다는 그런 식입니다, 신인합동설. 예,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의 합작이지 전혀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는 다른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처음 기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만인구원설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말은 맞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이 믿게 하셔야 믿는 것이지, 은혜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은 그 방편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을 때에 알게 하실 때에 그 때 믿음이 오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이걸 가지고 주로 장로교에서 많이 얘기하는 것입니다만 또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교회가, 또 제가 함께 믿고 있는 그런 배경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이 믿게 하셔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이 믿게 하시고 눈을 뜨게 하지 않으시면 할 수가 없습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으로 제가 살아온 과정에서 너무 그런 적나라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너무 살아갈수록 더 여러분 앞에서 강조하기도 하고 아마 우리 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귀가 따갑도록, 그래서 아마 각인되어 있다고 할 만큼. 그래서 제가 하나 잘했다는 것이 있다면 복음을 절대적인 주권으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잘한 것이 아니냐, 절대로 못했다고는 생각이 안 됩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사람은 무언가 확신이 있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고집이 있기 때문에, 또 성격이 별나고 고집이 셉니다. 하나교회 교인들 특징이 고집이 셉니다. 절대로 남에게 안 집니다. 왜? 절대로 믿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절대로 나는 승리하기 때문에. 절대 나는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나는 축복을 받기 때문에. 이래서 고집이 셉니다. 한 번 아니라고 하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한 번 맞다고 하면 맞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잘못 돌아가면 이 배경에서 나의 고집이 절대 주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주 주의해야 할 문제인데 그것 또한 은혜로 인도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좋습니다. 절대 주권.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장로 가정에서 자랐고, 또 철저한 복음주의, 보수주의 신학의 배경을 갖고 살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장로이고 어머니가, 어머니는 직책이 없었습니다. 권사도 아니고. 그런데도 권사 이상으로 살았습니다. 그 때는 주동장로에게는 직분을 안 주었는가 봅니다. 그런 것을 제가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하면, 지금까지 저는 신앙 배경이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의 배경이 많다기보다 절대적인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절대적인 신앙 배경으로 어머니가 새벽 기도 다녀오시면 제 등 있잖아요, 등 뒤에다 손을 넣으면, 특히 겨울에, 여름에는 잘 모르겠는데 겨울에는 손이 차지 않습니까? 차가운 손을 등 밑에다 넣으니까 내가 안 깰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기도를 나를 위해 해 주시고 그 어머니가 내게 늘 소원을, 목표를, 목사가 되라.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목사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도 첫 번째 목표가 목사이고, 두 번째도 목사이고, 세 번째도 목사이고,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렇게 자랐는데 철이 들어가니까 제일 하기 싫은 게 또 목사입니다. 그러니 갈등이 와서 견디기 힘들었던 갈등의 시간입니다. 이게 언제부터인가 하면 고등학교 2학년. 1학년이 지나서 2학년 때부터 갈등이 오기 시작하는데, 참 감당할 수 없도록 갈등이 오는데 그 갈등과 함께 내가 또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락, 타락하니까 뭐 곁길로 가고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불신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곱게 타락을 했습니다. 불신자가 볼 때 타락한 것은 타락이 아니고 아주 곱게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그리고 참 신앙인으로 보면 그것은 타락 중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 성도들의 타락이 불신자의 타락보다 더 무섭습니다. 조용히 표 안 나게 타락하는 것 , 그것 진짜 못 갈거든요. 그건 내게 있어서 행동적인 것 보다도 영혼의 타락이예요. 그러니까 갈등이 일어나서 막 방황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확실히 믿는 신자인데 확실히 안 믿어요. 그러니까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주지 않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저는 어릴 때부터 겪었거든요. 결국은 견딜 수 없어서 갈등을 겪다가 겪다가 이래 살 것 같으면 진짜 큰일 나겠다 싶어서 제가 여러 번 말씀 드렸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아닌가 그것부터 내가 확인하고 죽어야 되겠다 싶어 첫 번째 삼각산에 올라가서 첫 번째 기도한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 정말 있나 없나 좀 말해다오 이런식입니다. 밤새도록 3일간 하나님 앞에 요즘 생각해보면 미안하지만 미안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하나님 있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려고 하니깐 생지옥이거든요. 하나님 없는 게 있는 척 해가지고 내 인생을 버려놓았다고 덤벼들고 그랬던 배경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도 순간입니다. 내 맘에 각인되는데 그 순간 그렇게 많던 고민, 좌절. 불신앙, 불행 답답함이 순간에 싹 사라지는 겁니다. 제가 늘 아침 해가 돛을 때 만물 신선함과 같이 아침 해가 돛을 때 만물 신선함 같이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에 해가 돛아 오는데 그때 하나님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존이 내 가슴속에 부딪히는 겁니다. 그러니깐 살아계신다는 확인이 살아계신다 이것도 아니도 내 중심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다는 게 확인되고 각인되는 순간에 싹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갈등과 근심 염려가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내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하나님 주권.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 그러면 다 해결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나는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이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잘 깨닫습니다. 성질 더러운 사람이 자기 주권 내걸고 자꾸 자기 뜻을 가지고 주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참 우리 교인들 또 내 자신부터 나를 닮아가지고 주권 강조하지만 진짜 주권을 제일 못하는 것이 우리 교인들이구나. 지금 여러분이 어떤 면에서 주권으로 제일 평안함을 얻지만 정말 객관적으로 볼 때에 어떤 면에서 주권을 제일 못하는 게 아니냐? 그래서 거짓 평안이 아니냐는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서 오늘도 내가 착각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말씀을 또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또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은 하나님의 주권의 배경이어야 확실한 배경이 내게 여러분에게 이루어져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확인될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이 살아지게 되면 다른 것으로는 아닙니다. 아무리 내가 훌륭하고 내가 아무리 위대하다 그래도 하나님이 하지 아니 하시면 신앙생활은 안 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어제 저녁쯤 되어서 제가 누군가 여러 가지 책자를 뒤져보는 중에 맥아더의 기도의 역사라던가 그 책이 있더라고요 역시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게 있구나. 그 사람이 첫 번부터 그랬던 게 아니더라고요 맥아더가 부모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인천상륙작전의 주인 아닙니까? 그랬던 배경도 전부 하나님이 절대적 나와 함께 하시는 믿음이 그를 진짜 용기입니다. 이것이 확신될 때 다섯 가지 확신이거든요 이게 나올 때에 두려움이 없어요. 심지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데 뭐가 두렵고 떨립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이 사실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여러분과 제게 오는 여러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만 첫 번째로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말씀의 확인입니다. 여러분 저는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나에게 각인 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에게 확신되는 순간에 믿어지는 순간에 성령께서 내안에 임하십니다. 여러분이 영접하는 것이 거짓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영접하면, 영접하는 순간에 누가 와요 성령께서 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이 내안에 오시게 되어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과 제게는 확신이 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인도하시는구나. 그때부터 그 인도하신 방법이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확인해 가는 길이 말씀입니다. 그때 말씀이 들려지기 시작해요 여러분 은혜 받고 나면은 첫 번째로 부딪혀 오는 것이 말씀이더라고요 설교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말씀이 기다려집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생전 해보지 않은 그런 짓을 합니다. 뭐냐 고개가 끄덕거려집니다. 성경말씀 읽으면서 고개가 이건요 쉬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절대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고개 끄덕인데 아무나 끄덕이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부모의 신앙 밑에서 철저하게 자랐는데도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시간이 많이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랜 후에야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고함 칠 정도로 기쁨이 와진 후에 그리고 성경 말씀을 보면서 고개가 끄덕거려 지더라고요 여러분 지금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고개가 끄덕 거려 집니까? 축복입니다. 축복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 시간이 그렇게 순간 오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일 있어도 내게는 극적인 순간이지만은 오랜 시간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이 눈이 열리더라고요.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 깨달아지는 시간 설교가 기다려지고 어떤 말씀에 장소에서도 기다려지는 이런 어떤 역사 너무 귀중한 역사죠. 그래서 여러분 교회 와서 설교 시간에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다. 진짜 회개해야 되는 겁니다. 다른 것 회개한다. 그 말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요 말씀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처럼 말씀이 내 것으로 아 맞구나 깨달아지는 은혜가 제일 큰 축복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나의 잘잘 못이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전도를 한다. 못한다. 상관없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사실 그 메시지 속에서 깨닫는 만큼 내 삶이 그때부터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내 삶이 자연적으로 강단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 붙잡고 여러분 살아가게 되요 그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 나아가서 본부의 말씀의 흐름이라는 것이 저절로 느껴지게 되는 것 뿐 아니라 잡게 되는 겁니다. 훈련 하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본부의 훈련 아무렇지도 않게 가치 없이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못가더라도 좋습니다. 그 훈련 동안에 나온 말씀을 참 귀한 것으로 잡고 나갈 때 다 그 속에 있습니다. 말씀의 흐름이 그 속에 있습니다. 본부의 말씀의 흐름이 있고 강단 말씀 흐름이 내게 깨달아지고 이것이 생활과 삶이 되어진 것 이것이 너무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훈련에 못간 사람들 있잖아요. 직장이라던가. 이런 것 때문에 못가잖아요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본부에 흐름에 대한 말씀은 강단에서, 새벽기도에서 다 같이 나옵니다. 그 흐름을 잡고 새벽기도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 잡고 걸음 속에 말씀을 잡고 그 말씀을 깨닫고 인도 받는다 다 되는 겁니다. 그 속에 다 있어요. 그래서 말씀의 인도 받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함께 축복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으로 내가 또 우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느 방향을 향해서 가는지 눈을 뜨게 되는 배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참 떠날 때에 물론 이 갈등이 오래진 않았습니다마는 지금까지도 더러 갈등할 때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메시지를 받고 하나님 절대 주권 속에 인도 받고 오면서도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이 늘 부족한 것이거든요 전도가 안 된다는 배경 속에 오늘 내 제자가 얼마나 있느냐? 그래서 나는 나의 제자가 없구나. 그럴 때 몇 분 그런 고백을 교회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러니깐 어느 누구가 목사님 제가 목사님 제자 아닙니까? 몇 번 들었어요 처음에는 무심히 전하는데 몇 번 듣고 나니깐 아 맞다 진짜 제자 많구나. 우리 교인들이 제 제자입니다. 그런 확신 오니깐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목사는 살아계실 때 제자 남기게 해주옵소서. 이제 부끄럽지 않아요. 왜 제가 이 방향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이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나의 제자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큰지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목사님 살아 계실 동안에 제자 남기게 해주옵소서. 이것 생각하면 부끄럽지 않아요. 나도 아멘 그럽니다. 옛날에는 그게 아멘이라고 확실하게 잘 안 나왔는데 요즘은 살아갈수록 그렇게 나와요 하나님이 이 속에 이 흐름 속에 이 강단 속에 나를 세워서 여러분과 저를 함께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게 하시고 그 열매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제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배경이요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또 한 번이 시점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지금 뭘 해야 될 것인가 깨닫는 것 여러 가지 할 필요 없어요.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주의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구나 이 일에 주님이 오늘도 제가 쓰임 받고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담력을 가지고 내가 지금 쓰임 받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가지고 나가는 속에 여러분의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확인되는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6년 9월 18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롬16:25-27)
서론: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1-12)”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바로 잡고 깨달으며 그 방향을 향해 따라간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요, 참 평안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늘 조급해지고 방황하게 됩니다. 나에게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되어있고 지금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그것이 바로 절대주권입니다.
1. 잘못된 복음의 흐름
가. 나의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흐름이 있습니다.
1) 나의 결단이나 결심, 노력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함
2) 이것은 선행으로 나타나 결국 하나의 종교로 빠지게 됨 (신신학, 자유주의 신학)
나. 하나님의 은혜 주셨지만 그 위에 인간의 노력이 따라야한다는 흐름이 있습니다.
1)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 구원을 받는다에서 출발했음 (만인구원설, 신인합동설, 알미니안, 감리교, 성결교)
2)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심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임
2. 절대주권 속에서 말씀을 확인하라!
가. 구원받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시는 동시에, 내게는 확신이 옵니다.
1) 그 인도하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것을 확인하는 길은 말씀임
2) 그러기에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며, 강단설교가 기다려지고 전체흐름이 붙잡힘 (은혜 중 은혜)
나.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삶이 시작됩니다.
1) 자신이 누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깨닫게 되는 삶임
2) 주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그 걸음 속에서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삶임
결론: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할 때, 자기의 것을 절대주권이라고 강조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믿고 고백하면서도, 나의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인도받을 때도 있습니다. 절대주권과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결단이나 결심,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인되어야 할 것이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된 복음이냐 거짓된 복음이냐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고집과 개성을 절대주권이나 성령역사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의 확인 속에서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한주간의 모든 만남과 사건이, 말씀 속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롬16:25~27)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롬16:25~27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을 있게 하시고 이 오늘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 축복하심을 감사합니다. 세계복음화의 언약 잡고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에게 언약으로 약속하신 바 모든 것을 예배 속에서 회복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 말씀 한 군데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 1장 11절, 12절입니다. 우리 합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 12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오늘 말씀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그런데 여기다 덧붙이면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영원하신 계획, 그렇게 붙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설교 시간이 되면 사실 내가 준비하는 것보다 우리 아내의 준비가 더 겁납니다. 나는 다 됐다 싶은데 항상 준비 안 한다고 그래서 어제도 종일 시달리다가 오늘 아침까지. 그런데 더군다나 이번에는 감기가 심해서 준비는 누워서도 하고 일어나서도 하고 그런데 꼭 거기는 책상에 앉아서 무얼 써야 준비하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도 오늘 준비를 아침까지 다 마치고 섰습니다. 내가 늘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잡고 깨닫고 그 방향을 향해서 따라간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요, 또 내 개인에게는 참 평안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늘 조급합니다.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아닌 것 같고, 또 이것도 긴 것 같고 저것도 긴 것 같고. 늘 방황하게 되는데 나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내가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여러분과 제게 약속되어 있고 또 지금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계획이라 말씀합니다만 사실 우리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 할 때에 우리에게는 참 맞는 말이고 늘 들었기 때문에 각인되어 있고 그렇다 싶은 말인데 그것을 믿는 사람만큼 주권이 안 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왜? 개성이 강하고 성질이 별날수록 주권을 강조합니다. 왜? 자기가 안 되니까. 늘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들은 주권이 강조되면 자기 것이 강조되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보다 자기의 주권이 더 강조되는 것, 이것이 주권에 대한 약점입니다. 그래서 이 주권을 확실히 깨닫고 주권 속에 살도록 되는 일에는 은혜로 되지 결단한다고 되고 결심한다고 되고 오늘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주권 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속에서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영원히 살아갑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이 늘 오늘도 이루어지고 내일도 이루어지고, 또 하나님의 그 주권 속에서 인도 받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성령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잘못 각인된 우리의 중심에서 나오는 이 잘못된 것이 바로 내가 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그 속에 나의 역사로 인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복음 들을 때에 복음 속에 인도 받는 역사를 믿을 때에 정말 참된 복음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거짓된 복음을 따라가느냐, 이것이 우리가 늘 보고 느끼고 깨닫고 살아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 이 복음의 흐름이 크게 세 가지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와 여러분의 개인 속에서도 이렇게 세 가지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흐름이 아니고 그것은 내 개인적인, 나의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런 흐름이 있습니다. 그 흐름이 옛날 우리가 어릴 때는 신신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요즘은 자유주의 신학, 요즘은 이것을 하나의 종교로 빠지게 되는 흐름이기도 합니다만 뭐든지 내가 내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려고 한다니 이상하지만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하는 그런 흐름이 우리의 원래의 흐름입니다. 우리 인간의 흐름. 이것이 종교를 낳게 되고 이것이 나도 모르게 선행을 낳게 되고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심리적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이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흐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주 이름 있는 사람들로 명작을 남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자기 행동으로 무언가 하나님을 증명하려 하는 이런 흐름이 옛날부터 그 전체적인 흐름 속에 어떤 종교라는 배경을 가지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아주 흔한 얘기입니다만, 우리가 아르메니안 주의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흐름 속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다락방에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감리교 소속의 교리적인 배경, 성결교 교단의 교리적인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신인합동설이라 합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그 위에 인간의 노력이 따라가야 복음이 완성된다는 그런 식입니다, 신인합동설. 예,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의 합작이지 전혀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는 다른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처음 기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만인구원설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말은 맞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이 믿게 하셔야 믿는 것이지, 은혜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은 그 방편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을 때에 알게 하실 때에 그 때 믿음이 오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이걸 가지고 주로 장로교에서 많이 얘기하는 것입니다만 또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교회가, 또 제가 함께 믿고 있는 그런 배경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이 믿게 하셔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이 믿게 하시고 눈을 뜨게 하지 않으시면 할 수가 없습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으로 제가 살아온 과정에서 너무 그런 적나라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너무 살아갈수록 더 여러분 앞에서 강조하기도 하고 아마 우리 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귀가 따갑도록, 그래서 아마 각인되어 있다고 할 만큼. 그래서 제가 하나 잘했다는 것이 있다면 복음을 절대적인 주권으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잘한 것이 아니냐, 절대로 못했다고는 생각이 안 됩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사람은 무언가 확신이 있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고집이 있기 때문에, 또 성격이 별나고 고집이 셉니다. 하나교회 교인들 특징이 고집이 셉니다. 절대로 남에게 안 집니다. 왜? 절대로 믿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절대로 나는 승리하기 때문에. 절대 나는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나는 축복을 받기 때문에. 이래서 고집이 셉니다. 한 번 아니라고 하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한 번 맞다고 하면 맞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잘못 돌아가면 이 배경에서 나의 고집이 절대 주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주 주의해야 할 문제인데 그것 또한 은혜로 인도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좋습니다. 절대 주권.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장로 가정에서 자랐고, 또 철저한 복음주의, 보수주의 신학의 배경을 갖고 살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장로이고 어머니가, 어머니는 직책이 없었습니다. 권사도 아니고. 그런데도 권사 이상으로 살았습니다. 그 때는 주동장로에게는 직분을 안 주었는가 봅니다. 그런 것을 제가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하면, 지금까지 저는 신앙 배경이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의 배경이 많다기보다 절대적인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절대적인 신앙 배경으로 어머니가 새벽 기도 다녀오시면 제 등 있잖아요, 등 뒤에다 손을 넣으면, 특히 겨울에, 여름에는 잘 모르겠는데 겨울에는 손이 차지 않습니까? 차가운 손을 등 밑에다 넣으니까 내가 안 깰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기도를 나를 위해 해 주시고 그 어머니가 내게 늘 소원을, 목표를, 목사가 되라.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목사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도 첫 번째 목표가 목사이고, 두 번째도 목사이고, 세 번째도 목사이고,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렇게 자랐는데 철이 들어가니까 제일 하기 싫은 게 또 목사입니다. 그러니 갈등이 와서 견디기 힘들었던 갈등의 시간입니다. 이게 언제부터인가 하면 고등학교 2학년. 1학년이 지나서 2학년 때부터 갈등이 오기 시작하는데, 참 감당할 수 없도록 갈등이 오는데 그 갈등과 함께 내가 또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락, 타락하니까 뭐 곁길로 가고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불신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곱게 타락을 했습니다. 불신자가 볼 때 타락한 것은 타락이 아니고 아주 곱게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그리고 참 신앙인으로 보면 그것은 타락 중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 성도들의 타락이 불신자의 타락보다 더 무섭습니다. 조용히 표 안 나게 타락하는 것 , 그것 진짜 못 갈거든요. 그건 내게 있어서 행동적인 것 보다도 영혼의 타락이예요. 그러니까 갈등이 일어나서 막 방황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확실히 믿는 신자인데 확실히 안 믿어요. 그러니까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주지 않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저는 어릴 때부터 겪었거든요. 결국은 견딜 수 없어서 갈등을 겪다가 겪다가 이래 살 것 같으면 진짜 큰일 나겠다 싶어서 제가 여러 번 말씀 드렸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아닌가 그것부터 내가 확인하고 죽어야 되겠다 싶어 첫 번째 삼각산에 올라가서 첫 번째 기도한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 정말 있나 없나 좀 말해다오 이런식입니다. 밤새도록 3일간 하나님 앞에 요즘 생각해보면 미안하지만 미안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하나님 있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려고 하니깐 생지옥이거든요. 하나님 없는 게 있는 척 해가지고 내 인생을 버려놓았다고 덤벼들고 그랬던 배경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도 순간입니다. 내 맘에 각인되는데 그 순간 그렇게 많던 고민, 좌절. 불신앙, 불행 답답함이 순간에 싹 사라지는 겁니다. 제가 늘 아침 해가 돛을 때 만물 신선함과 같이 아침 해가 돛을 때 만물 신선함 같이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에 해가 돛아 오는데 그때 하나님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존이 내 가슴속에 부딪히는 겁니다. 그러니깐 살아계신다는 확인이 살아계신다 이것도 아니도 내 중심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다는 게 확인되고 각인되는 순간에 싹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갈등과 근심 염려가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내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하나님 주권.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 그러면 다 해결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나는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이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잘 깨닫습니다. 성질 더러운 사람이 자기 주권 내걸고 자꾸 자기 뜻을 가지고 주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참 우리 교인들 또 내 자신부터 나를 닮아가지고 주권 강조하지만 진짜 주권을 제일 못하는 것이 우리 교인들이구나. 지금 여러분이 어떤 면에서 주권으로 제일 평안함을 얻지만 정말 객관적으로 볼 때에 어떤 면에서 주권을 제일 못하는 게 아니냐? 그래서 거짓 평안이 아니냐는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서 오늘도 내가 착각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말씀을 또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또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은 하나님의 주권의 배경이어야 확실한 배경이 내게 여러분에게 이루어져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확인될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이 살아지게 되면 다른 것으로는 아닙니다. 아무리 내가 훌륭하고 내가 아무리 위대하다 그래도 하나님이 하지 아니 하시면 신앙생활은 안 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어제 저녁쯤 되어서 제가 누군가 여러 가지 책자를 뒤져보는 중에 맥아더의 기도의 역사라던가 그 책이 있더라고요 역시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게 있구나. 그 사람이 첫 번부터 그랬던 게 아니더라고요 맥아더가 부모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인천상륙작전의 주인 아닙니까? 그랬던 배경도 전부 하나님이 절대적 나와 함께 하시는 믿음이 그를 진짜 용기입니다. 이것이 확신될 때 다섯 가지 확신이거든요 이게 나올 때에 두려움이 없어요. 심지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데 뭐가 두렵고 떨립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이 사실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여러분과 제게 오는 여러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만 첫 번째로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말씀의 확인입니다. 여러분 저는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나에게 각인 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에게 확신되는 순간에 믿어지는 순간에 성령께서 내안에 임하십니다. 여러분이 영접하는 것이 거짓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영접하면, 영접하는 순간에 누가 와요 성령께서 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이 내안에 오시게 되어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과 제게는 확신이 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인도하시는구나. 그때부터 그 인도하신 방법이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확인해 가는 길이 말씀입니다. 그때 말씀이 들려지기 시작해요 여러분 은혜 받고 나면은 첫 번째로 부딪혀 오는 것이 말씀이더라고요 설교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말씀이 기다려집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생전 해보지 않은 그런 짓을 합니다. 뭐냐 고개가 끄덕거려집니다. 성경말씀 읽으면서 고개가 이건요 쉬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절대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고개 끄덕인데 아무나 끄덕이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부모의 신앙 밑에서 철저하게 자랐는데도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시간이 많이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랜 후에야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고함 칠 정도로 기쁨이 와진 후에 그리고 성경 말씀을 보면서 고개가 끄덕거려 지더라고요 여러분 지금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고개가 끄덕 거려 집니까? 축복입니다. 축복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 시간이 그렇게 순간 오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일 있어도 내게는 극적인 순간이지만은 오랜 시간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이 눈이 열리더라고요.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 깨달아지는 시간 설교가 기다려지고 어떤 말씀에 장소에서도 기다려지는 이런 어떤 역사 너무 귀중한 역사죠. 그래서 여러분 교회 와서 설교 시간에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다. 진짜 회개해야 되는 겁니다. 다른 것 회개한다. 그 말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요 말씀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처럼 말씀이 내 것으로 아 맞구나 깨달아지는 은혜가 제일 큰 축복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나의 잘잘 못이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전도를 한다. 못한다. 상관없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사실 그 메시지 속에서 깨닫는 만큼 내 삶이 그때부터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내 삶이 자연적으로 강단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 붙잡고 여러분 살아가게 되요 그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 나아가서 본부의 말씀의 흐름이라는 것이 저절로 느껴지게 되는 것 뿐 아니라 잡게 되는 겁니다. 훈련 하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본부의 훈련 아무렇지도 않게 가치 없이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못가더라도 좋습니다. 그 훈련 동안에 나온 말씀을 참 귀한 것으로 잡고 나갈 때 다 그 속에 있습니다. 말씀의 흐름이 그 속에 있습니다. 본부의 말씀의 흐름이 있고 강단 말씀 흐름이 내게 깨달아지고 이것이 생활과 삶이 되어진 것 이것이 너무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훈련에 못간 사람들 있잖아요. 직장이라던가. 이런 것 때문에 못가잖아요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본부에 흐름에 대한 말씀은 강단에서, 새벽기도에서 다 같이 나옵니다. 그 흐름을 잡고 새벽기도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 잡고 걸음 속에 말씀을 잡고 그 말씀을 깨닫고 인도 받는다 다 되는 겁니다. 그 속에 다 있어요. 그래서 말씀의 인도 받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함께 축복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으로 내가 또 우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느 방향을 향해서 가는지 눈을 뜨게 되는 배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참 떠날 때에 물론 이 갈등이 오래진 않았습니다마는 지금까지도 더러 갈등할 때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메시지를 받고 하나님 절대 주권 속에 인도 받고 오면서도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이 늘 부족한 것이거든요 전도가 안 된다는 배경 속에 오늘 내 제자가 얼마나 있느냐? 그래서 나는 나의 제자가 없구나. 그럴 때 몇 분 그런 고백을 교회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러니깐 어느 누구가 목사님 제가 목사님 제자 아닙니까? 몇 번 들었어요 처음에는 무심히 전하는데 몇 번 듣고 나니깐 아 맞다 진짜 제자 많구나. 우리 교인들이 제 제자입니다. 그런 확신 오니깐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목사는 살아계실 때 제자 남기게 해주옵소서. 이제 부끄럽지 않아요. 왜 제가 이 방향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이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나의 제자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큰지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목사님 살아 계실 동안에 제자 남기게 해주옵소서. 이것 생각하면 부끄럽지 않아요. 나도 아멘 그럽니다. 옛날에는 그게 아멘이라고 확실하게 잘 안 나왔는데 요즘은 살아갈수록 그렇게 나와요 하나님이 이 속에 이 흐름 속에 이 강단 속에 나를 세워서 여러분과 저를 함께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게 하시고 그 열매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제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배경이요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또 한 번이 시점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지금 뭘 해야 될 것인가 깨닫는 것 여러 가지 할 필요 없어요.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주의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구나 이 일에 주님이 오늘도 제가 쓰임 받고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담력을 가지고 내가 지금 쓰임 받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가지고 나가는 속에 여러분의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확인되는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6년 9월 18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롬16:25-27)
서론: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1-12)”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바로 잡고 깨달으며 그 방향을 향해 따라간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요, 참 평안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늘 조급해지고 방황하게 됩니다. 나에게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되어있고 지금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그것이 바로 절대주권입니다.
1. 잘못된 복음의 흐름
가. 나의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흐름이 있습니다.
1) 나의 결단이나 결심, 노력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함
2) 이것은 선행으로 나타나 결국 하나의 종교로 빠지게 됨 (신신학, 자유주의 신학)
나. 하나님의 은혜 주셨지만 그 위에 인간의 노력이 따라야한다는 흐름이 있습니다.
1)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 구원을 받는다에서 출발했음 (만인구원설, 신인합동설, 알미니안, 감리교, 성결교)
2)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심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임
2. 절대주권 속에서 말씀을 확인하라!
가. 구원받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시는 동시에, 내게는 확신이 옵니다.
1) 그 인도하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것을 확인하는 길은 말씀임
2) 그러기에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며, 강단설교가 기다려지고 전체흐름이 붙잡힘 (은혜 중 은혜)
나.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삶이 시작됩니다.
1) 자신이 누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깨닫게 되는 삶임
2) 주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그 걸음 속에서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삶임
결론: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할 때, 자기의 것을 절대주권이라고 강조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믿고 고백하면서도, 나의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인도받을 때도 있습니다. 절대주권과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결단이나 결심,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인되어야 할 것이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된 복음이냐 거짓된 복음이냐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고집과 개성을 절대주권이나 성령역사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의 확인 속에서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한주간의 모든 만남과 사건이, 말씀 속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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