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
2017-03-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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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
(창9:8~19)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창9:8~19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오늘도 새로운 응답이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매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는데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실 때는 새로운 계획과 새로운 축복과 새로운 응답, 그것도 완전한 응답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축복의 역사를 오늘 또 확인하고 누리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 장로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또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의 중요한 부분들을 두고 함께 포럼하면서 기도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우리 모든 성도님들, 우리 중직자분들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하겠고 또 앞서 계신 우리 장로님들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장로님들에게 나타난 응답은 하나님의 보이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된 자리에 세우셔서 먼저 우리 장로님들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는데 우리 장로님들, 중직자분들이 축복 받아야 교회가 살고 그 배경 속에서 우리 후대가 살아나게 되어 있고 진짜 참된 전도 운동하는 교회가 되면서 그 일에 헌신할 수 있는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의 응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정말로 귀중한 말씀 속에서, 훈련 속에서, 귀한 응답들을 찾아내어 정말 한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인들로, 나타내 보여주는 증인들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은 “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입니다. “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영적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들을 두고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또 그것 때문에 갈급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육신적인 것과 신령한 것,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어야 하는데 사실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지 못해서 성도들이 많은 갈등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육신의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소진되게 되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중요치 않게 되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은 디모데전서 4장 8절에 보면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 정말로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영육간에 유익함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고,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 속에서 어제보다는 오늘, 1년 전보다는 지금, 10년 전보다는 지금 더 행복하고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날로 새로워”지는 응답이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려움과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창세기 3장의 현장 속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어려움과 문제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과 문제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은 더 큰 축복과 응답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애굽의 왕궁에 있으면서 사실은 살인자라는 부분을 가지고 미디안 광야로 쫓긴 바 되고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비록 나이가 팔십이었지만 하나님의 새로운 응답의 역사를 위해서 나아가게 되는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에게 있어서도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는, 아들에게 배신당하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만 그것이 오히려 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된 것이고 다른 축복된 역사가 시작된 사실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난과 문제를 당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그것을 기회로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노아가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노아 시대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육신이 되어버린 시대에, 네피림 시대에, 타락의 시대에 그로 말미암아 홍수라는 재앙이 노아 시대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 홍수라는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위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노아가 받은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해야 할 응답들입니다. 참된 축복이 다시 한 번 더 찾아지고 발견되면서 새로운 시작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아담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주심 - 제2의 인류의 조상
그러면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어떤 축복이냐? 먼저 첫 번째로 아담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노아에게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제 2의 인류의 조상이 노아가 된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노아 홍수 때에 다 죽게 되었으니까 노아 홍수를 통해서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서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19절에 보면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 바로 노아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창세기 9장 오늘 본문을 죽 읽어 보면 우리가 늘 쉽게 접하는 익숙한 말씀이 있습니다.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 하시면서 노아에게 축복을 선언하셨는데 9장 1절에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누구에게 주신 축복이었습니까? 예? 창세기 1장에서 아담에게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가진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아담에게 주셨던 축복을 그대로 노아에게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실 차이가 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담의 때는 죄가 들어오지 않은 때에 그냥 모든 천지만물을 아담의 본성적인 권위 속에서 복종해서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사야서 65장에 보면 죄가 없는 상태의 짐승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제목을 붙여 놓은 부분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짐승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무지한, 죄가 없는 상태의 짐승들은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나오는데 17절부터 25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에 특히 2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그래서 서로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했습니다. 타락 이전에, 죄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고 해하거나 상함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이 땅에 들어오고 그 때부터 생겨난 것이 있다면, 사실은 오늘 읽지 않은 본문 2절을 보면 모든 동물들에게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2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저는 이 본문을 죽 묵상하면서 여기서도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서로 사실은 죽이고 살리는 시대 속에서 사실 짐승조차도 헐벗게 되고 배가 고프게 되면 사람을 공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데 아예 짐승의 본능적인 그 중심에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지금도 짐승들은 여러분,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 짐승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왜냐? 그들 중심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심어 주셨습니다. 짐승들 중심에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땅의 제일 무서운 것이 사자나 맹수가 아니라, 누가 제일 무섭다고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여러분, 짐승에게도 사람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짐승들이 사람의 손에서 지배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사실은 노아 이전에는 식물과 채소를 주로 먹었다면 타락 이후로, 노아 시대 때부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동물들을 먹이로 주신 사실이 성경 3절~5절에 나옵니다. 특히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4절에도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일단은 고기를 먹는, 동물을 먹는 축복을 사람에게 허락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전에는 주로 채소, 식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 때부터 동물을, 산 동물을 먹게 되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동물들을 먹기는 먹되 피째 먹지 말라 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피는 바로 생명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피째 먹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인간의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주인이, 원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피째 먹지 말라 말씀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든 여러분, 성경에 보면 계속해서 구약 시대에 말씀하고 계신 것이 바로 피는 그냥 피가 아니고 우리의 영원한 죄를 속죄하는, 우리의 영원한 죄를 속죄하는 그 일에 쓰임 받았던 부분이 바로 피에 대한 부분입니다. 피는 바로 생명인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 나아갈 때마다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느냐? 피를 가지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를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라 처음 복음을 주시면서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이 창세기 3장 21절에 보면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짐승을 잡았다는 말입니다. 피를 흘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벨의 제사는 양의 첫새끼를 드리는 피의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7장 11절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아갈 때마다 피를 가지고, 반드시 피를 가지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로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이후로 신약 시대에, 지금까지, 여러분, 피를 자기고 나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물이 되시사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끝내셨기 때문에 더 이상 피를 가지고 나아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2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속죄가 되시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피를 가지고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피는 이제는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학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피를 먹는 것은 건강에 그렇게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떠하든 피를 먹든 안 먹든 상관없어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니까 영원한 속죄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원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 받게 되어요. 요5:24 절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할렐루야!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운명, 모든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것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실은 여기에 피 채 먹지 말라 노아에게 하신 이 중요한 언약 속에는 결국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사실은 홍수 이후에 아담의 축복을 다시 회복한 사실들을 오늘 우리 본문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심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노아가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게 8절부터 17절에 나와 있는 부분들인데요. 여러분 언약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을 가지고 언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사람과의 약속을 맺지요. 쌍방 간에 약속을 맺는데 이것은 언약이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과 맺는 약속은 우리가 아무리 도장을 찍고 해도 쉽게 배신하고 쉽게 약속을 깨트리고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은 언약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그 언약과 다른 거예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와 맺으시는 언약이예요. 왜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나갈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약속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인 것입니다. 사실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해 버렸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약속, 언약, 이것은 은혜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오늘 9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세우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 중요합니다마는요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언약을 붙잡아야 될 존재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약만 붙잡으면 됩니다. 여러분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언약은 절대,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은 절대 변하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수기23: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 하잖아요. 또 우리는 뭔가 계획해 놓고도 열심히 해 놓고도 늘 후회하는 인생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다 그냥 거짓말 안한다, 후회가 없다 그 말씀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다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아니하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언약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의 백성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마태복음24:35절에 보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13: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말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으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데 그 언약이 변함없이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그 언약을 주시고 약속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이루어 가느냐?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약속만 잡으면 됩니다. 비록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어요. 낙심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언약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언약만 붙잡으면 회복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창세기21: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셨잖아요. 사실은 아들을 주겠다 씨를 주겠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안 믿었잖아요. 그런데 창21:1~3절에 보면 말씀하신 대로 권고하셨고, 말씀하신대로 행하셨으므로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낳았다 했어요. 그래서 예레미야33:2절에 보면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했어요. 거기에 반드시 말씀했습니다. 일을 행하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고린도전서15:3~4절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 그것도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성경대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성경대로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언약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지만 낙심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 붙잡으면 그 약속 통해서 모든 것 회복되어지는 축복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매 시간마다 하나님이 내 개인에게 주신 약속을 붙잡는 언약의 백성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시간 시간 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붙잡고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 증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노아시대 노아에게 어떤 언약을 주셨느냐? 언약을 나타내어 보이셨는데 실물교육을 시킨 것이지요. 무지개. 여러분 물론 그 전에는 무지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일단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가지고 노아에게 말씀했습니다. 다시는 물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 했어요. 그래서 무지개를 바라볼 때 마다 아무리 비가 오고 홍수가 인다 할지라도 물로, 홍수로 심판받지 않는다 이 믿음을 가지는 것, 이것을 노아에게 주신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이 본문에 보면 13~16절에 무지개를 언약으로 나와 내 백성과 언약으로 주셨다하면서 그 무지개 때문에 그 언약을 이루신다 했어요.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에게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것은 딴 것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끝냈어요.
여러분 혹시나 지난 과거의 실패와 여러 가지 안 좋은 경험들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과거들에 사로잡혀서 불안할 수 있어요. 그게 사탄의 속이는 전략이예요. 과거의 안 좋은 경험들, 실패했던 것들 가지고요, 지금 일어나는 문제 속에 조금만 안 좋은 것들 있으면 혹이나 내가 과거에 이런저런 실패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어려움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들 있잖아요. 그게 악한 사탄이 속이는 거에요.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끝났어요. 어느 정도이냐? 고후5:17절에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어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했어요.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그 축복 가운데 세웠다라고 로마서8:1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로마서7장에 보면 바울이 죄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민하게 되지요. 하나님 말씀 따라 살려고 하는 그런 몸부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도 원치 않게 죄의 세력 앞에 끌려가는 부분들 보면서 고민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가운데서 거기에 주어진 답이었어요. 로마서8:1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거기 보면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너무나 죄에 대한 고민과 갈등감 가운데서 그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그 속에서 주어진 말이예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우리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무지개를 바라보고 언약을 기억하셨다 했어요. 오늘 13~16절에 계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또 거기 보면 나와 내 백성, 그리고 내가 무지개를 기억하고 다시는 무지개 때문에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시 말하면 노아시대에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재앙의 역사, 물로 심판하시는 재앙의 역사를 내리지 않았다면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 붙잡고 그리스도 바라보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담대하게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실 이유는 딴 이유가 없어요. 오직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라는 사실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열심히 살고, 경건하게 살고, 바르게 살아야 되지요. 여러분 직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대한 규모들이 없어서 오히려 복음의 문들을 막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요. 물론 규모도 필요하고 열심히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보시는 것이 뭐냐? 우리 안에 정말 언약인 그리스도가 있느냐 그것 밖에 안 본다는 거예요. 노아시대 때에 무지개를 기억하셨다 무지개를 통해 그것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셨다 했어요. 그러면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들을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깊이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 이 그리스도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느냐? 오늘 그 다음에 나오는 노아와 그의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완전 복음, 완전 복음으로, 그리스도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악한 사탄이 여러분 노아 홍수 때의 사탄이 다 죽은 것 아닙니다. 죽지 않고 지금도 빨빨 살아가지고 믿는 자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리스도로 완전 각인 되고, 복음으로 완전 각인, 뿌리, 체질 내리지 아니하면 노아시대 보세요. 노아시대에 방주 안에 나와 가지고도요 또 실패를 하게 되고, 또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한번 보십시다. 노아가 실수하게 되는데 방주 안에 나와 가지고 농사지어서 포도나무를 통해 포도주를 얻게 됩니다. 그 포도주를 얼마나 먹었든지 이성이 마비되어서 집 안에서 다 벌거벗게 되어요. 아니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당대의 의인이라고 하는 노아, 당대의 완전한 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런 노아가 방주를 몇 년 동안 만들었습니까? 그리고 또 방주 안에 들어갔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겪었다면 쉽게 우리가 체질들이 바뀌어 질것 아닙니까? 사실 바뀌어지는 게 아니예요. 노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근본 뿌리에 있는 근본 각인들이 안 바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완전히 마비되어서 포도주 마시고 옷 벗고 자녀들 저주하고 축복하는 부분이 나와요. 우리가 늘 그리스도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 본문에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노아가 가나안의 아버지 함을 저주하거든요. 함이 어떤 일을 했느냐? 노아의 벌거벗음을 보고,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보고 그것을 밖에 나가서 그냥 떠벌렸어요. 이 말은 그냥 함이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드러냈다 그 정도가 아니예요. 그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낸 것보다 더 큰 실수를 함이 한 거예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언약의 역사를 이어갈 사람으로 노아를 세웠는데 그 사실을 크게 보지 못하고 노아의 실수를 더 크게 본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뿌리내리고 오직 복음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지 아니하면 결국 우리 안에는 우리도 모르게 다른 것이 들어와요. 율법적인 것, 종교적인 것들이 들어와서 세상적인 기준이 들어와서 그것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이렇게 되어져요. 여러분 그리스도로 완전 뿌리내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비록 연약하고 실수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나의 연약한 부분, 실수하는 부분들, 또 세상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보다도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놓고 이루어 가시는 그 언약이 더 크게 보여질 정도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지시길 바랍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을 저주했는데 그대로 되었어요. 사실은 함의 모든 자녀들 다 저주 받았다 그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23절에 보면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함의 자녀 중 일부입니다. 가나안, 여러분 가나안 족속 여러분 아시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붙잡고 나가는 일에 있어서 끝까지 그 언약의 역사에 방해하는 족속이 가나안 족속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언약을 우습게 알고 언약을 희미하게 알고 희미하게 붙잡은 족속이 가나안 족속이었어요.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 열 명의 정탐꾼이 보고할 때에 거기에 나오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본 가나안 족속들, 거대하고 창대했다 했어요. 결국은 노아가 저주한 그대로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강대국들에게 늘 종의 신분으로 나왔던 것이 가나안 족속이었어요. 그런데 노아가 샘과 야벳은 축복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샘과 야벳이 아버지의 실수, 허물을 보고 그냥 허물을 덮어 버렸기 때문에 노아를 통해서 샘과 야벳을 축복했느냐 그게 아닙니다. 이 샘과 야벳은 부모의 실수를 보기 이전에 자기 아버지가 언약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샘이 어떠한 축복을 받게 되느냐?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되는데 결국은 선민, 히브리, 샘의 족속들입니다. 그 샘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옵니다. 그리스도가 샘의 혈통으로 오게 되었어요.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 것이 샘이지요. 그와 더불어 야벳, 영적인 축복도 받았지만 육신적인, 물질적인 창대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 야벳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전부 야벳의 그 혈통들, 후대들로 이어지고 있어요. 한마디로 육신적으로 창대한 민족을 이룬 것이 야벳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부모 된 자로서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서 맘껏 축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관계된 모든 현장의 사람들을 여러분이 믿는 사람으로서 맘껏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 그렇게 할 권세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서 12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9절에 보면 은 욕을 욕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오히려 복을 빌라 이를 위해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현장에 내보내시면서 마태복음 10장 1절에,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보면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했고요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권세를 주었다 말씀이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 말씀했습니다. 권세 가진 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그리스도를 고백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말씀하시면서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권세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녀들을 마음껏 축복하시고 여러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마음껏 축복하는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축복된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오늘 새벽에도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만 정말 우리 자녀들 위해서 축복하고 보호하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 하나하나 다 간섭할 수 없지만은 기도로 말미암아 축복하면서 우리 자녀들을 축복하고 우리자녀들을 보호하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니까요 그래서 위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선지자 권을 가지고 언약을 계속 심는 것입니다.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언약을 계속 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헤매다가도 하나님 만나는 길을 알고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권이 뭡니까?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었잖아요.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은 실수할 수 있지만은 일단은 해방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 모신 자는 그렇다면 은 제사 장권을 가지고 축복을 선언하는 겁니다. 그리고 왕권입니다. 악한 사탄이요 우리 자녀들 배후에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을 벌여나갈지 모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은 24시간 하나님이 24시간 역사하시지만 악한 사탄도 24시간 살아있어요 이 존재가 우리 후대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언제 어떻게 우리 후대를 공격해올지 몰라요 그들을 정말로 우리가 기도로써 왕적인 권세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세력을 계속 꺾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정말 축복 받고 응답 받고 참된 보호받으면서 참된 시대 살릴 주역들로 세워져나갈 수 있도록 자녀들 위해서 마음껏 축복하시고 오늘 노아가 그냥 축복하고 저주한 것 그대로 이루어진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로 주어진 권세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현장에 진짜 현장에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축복과 저주가 노아로 통해서 나타났는데, 그 세 형제들이 그러나 더불어 함께 있게 되었어요. 어디에, 셈의 장막에 함께 머물렀어요. 이게 중요합니다. 야벳은 창대케 하셔가지고 셈의 장막에 머물도록 하셨고요 또 가나안은 종으로써 셈의 장막에 머물도록 하셨어요. 27절이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기 보면 축복과 저주의 조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 형제가 더불어서 함께 거하는 축복을 누렸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생명의 장막에서 여기에 셈의 장막은 무엇을 말씀하는 줄 아십니까? 메시아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민족과 모든 족속이 셈의 장막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의 비밀 안에 있으면, 모든 것 회복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언어도 다를 수 있고 인종도 다를 수 있고 피부색도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영적인 문제는 어느 민족이나 다 같아요. 그래서 복음은 완전한 것이고 복음은 충복한 것이고 복음은 모든 것인데, 그리스도 복음만 증거되어지면 거기에 모든 것 다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원래 제가 제목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라고 잡으려고 생각했어요. 왜냐 그 속에서 모든 것 살아나니깐 그리스도 비밀 깨달을 때에 모든 것 회복될 것이니까 사도행전 2장 38절 39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39절에 보면 이 약속은 이 약속이 뭡니까? 금방 제가 읽은 38절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은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니라. 모든 민족, 모든 족속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살아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한 주간 셈의 장막에 거하는 그 축복 가운데 여러분이 자신이 살고 여러분 통해서 이 땅에 회복되어지는 그 일에 증인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3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환난 이 후에 오는 축복
(창9:8-19)
서론: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영적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육신적인 부분을 두고 갈등 하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적인 부분과 신령한 부분에 답을 내지 못 하기 때문에 갈등합니다. 육신적인 것은 소진 되어지지만 신령한 것은 범사에 유익합니다(딤전4:8). 복음의 비밀을 누리게 될 때 새로워지는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고후4:16).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더 큰 은혜와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 아담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주심
가. 노아에게서부터 인류가 다시 시작 됨
1) 노아와 가족들 – 생육,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축복을 주심(1)
아담의 때 – 본성적, 권위적으로 다스리게 하심(사65:17-25 죄가 없는 상태의 짐승의 모습)
노아의 때 – 사람들을 두려워 하도록 해서 다스리게 하심(2)
2) 타락 이 후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심(3-5)
피 채 먹지 말도록 하심(사람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피는 생명을 의미 – 구약시대(짐승의 피로 생명의 속죄를 주심), 신약시대(그리스도가 영원한 속죄물이 되심)
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원죄,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요5:24)
2.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심
가. 언약 –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시는 약속, 일방적으로 맺으신 약속(9)
1) 하나님이 반드시 언약을 이루시기 때문에 언약만 붙잡으면 됨(민23:19)
2) 언약은 없어지지 않음(마24:35),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심(히13:8),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심(렘33:2), 성경대로 죽으시고 살아나심(고전15:3-4)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모든 것이 회복 됨
나. 언약을 주신 증거 – 무지개를 통해 홍수가 다시는 없을 것을 약속(13)
1) 내 안의 그리스도 때문에 반드시 언약을 이루심 - 속지마라
2)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다 끝내심 – 새로운 피조물(고후5:17), 정죄함이 없음(롬8:1)
3)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를 책임, 축복 하심
다. 완전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
1) 노아의 실수 – 포도주를 마시고 취함(자녀들을 축복, 저주)
2) 함의 실수(가나안 족속의 시작 –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힘, 언약을 우습게 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복),
셈(신령한 축복 – 메시야), 야벳(창대한 축복)
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들을 축복할 권세를 주심(벧전3:9, 벧전2:9, 마16:19)
- 마음껏 자녀들을 축복하라(제사장, 왕, 선지자적 권세)
결론: 축복과 저주가 노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 형제들을 셈의 장막에서 머물도록 하셨습니다(야벳 – 부요, 가나안 – 종). 셈의 장막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과 족속이 셈의 장막에 거하면 모든 것이 회복 됩니다. 그리스도 복음만 증거하고 깨달으면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셈의 장막에 거하는 가운데 내가 살고 모든 것을 회복하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
(창9:8~19)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창9:8~19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오늘도 새로운 응답이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매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는데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실 때는 새로운 계획과 새로운 축복과 새로운 응답, 그것도 완전한 응답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축복의 역사를 오늘 또 확인하고 누리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 장로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또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의 중요한 부분들을 두고 함께 포럼하면서 기도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우리 모든 성도님들, 우리 중직자분들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하겠고 또 앞서 계신 우리 장로님들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장로님들에게 나타난 응답은 하나님의 보이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된 자리에 세우셔서 먼저 우리 장로님들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는데 우리 장로님들, 중직자분들이 축복 받아야 교회가 살고 그 배경 속에서 우리 후대가 살아나게 되어 있고 진짜 참된 전도 운동하는 교회가 되면서 그 일에 헌신할 수 있는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의 응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정말로 귀중한 말씀 속에서, 훈련 속에서, 귀한 응답들을 찾아내어 정말 한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인들로, 나타내 보여주는 증인들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은 “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입니다. “환난 이후에 오는 축복.”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영적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보이는 육신적인 것들을 두고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또 그것 때문에 갈급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육신적인 것과 신령한 것,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어야 하는데 사실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지 못해서 성도들이 많은 갈등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육신의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소진되게 되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중요치 않게 되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은 디모데전서 4장 8절에 보면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 정말로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영육간에 유익함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고,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 속에서 어제보다는 오늘, 1년 전보다는 지금, 10년 전보다는 지금 더 행복하고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날로 새로워”지는 응답이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려움과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창세기 3장의 현장 속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어려움과 문제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과 문제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은 더 큰 축복과 응답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애굽의 왕궁에 있으면서 사실은 살인자라는 부분을 가지고 미디안 광야로 쫓긴 바 되고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비록 나이가 팔십이었지만 하나님의 새로운 응답의 역사를 위해서 나아가게 되는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에게 있어서도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는, 아들에게 배신당하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만 그것이 오히려 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된 것이고 다른 축복된 역사가 시작된 사실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난과 문제를 당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그것을 기회로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노아가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노아 시대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육신이 되어버린 시대에, 네피림 시대에, 타락의 시대에 그로 말미암아 홍수라는 재앙이 노아 시대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 홍수라는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위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노아가 받은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해야 할 응답들입니다. 참된 축복이 다시 한 번 더 찾아지고 발견되면서 새로운 시작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아담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주심 - 제2의 인류의 조상
그러면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어떤 축복이냐? 먼저 첫 번째로 아담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노아에게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제 2의 인류의 조상이 노아가 된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노아 홍수 때에 다 죽게 되었으니까 노아 홍수를 통해서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서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19절에 보면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 바로 노아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창세기 9장 오늘 본문을 죽 읽어 보면 우리가 늘 쉽게 접하는 익숙한 말씀이 있습니다.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 하시면서 노아에게 축복을 선언하셨는데 9장 1절에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누구에게 주신 축복이었습니까? 예? 창세기 1장에서 아담에게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가진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아담에게 주셨던 축복을 그대로 노아에게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실 차이가 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담의 때는 죄가 들어오지 않은 때에 그냥 모든 천지만물을 아담의 본성적인 권위 속에서 복종해서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사야서 65장에 보면 죄가 없는 상태의 짐승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제목을 붙여 놓은 부분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짐승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무지한, 죄가 없는 상태의 짐승들은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나오는데 17절부터 25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에 특히 2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그래서 서로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했습니다. 타락 이전에, 죄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고 해하거나 상함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이 땅에 들어오고 그 때부터 생겨난 것이 있다면, 사실은 오늘 읽지 않은 본문 2절을 보면 모든 동물들에게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2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저는 이 본문을 죽 묵상하면서 여기서도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서로 사실은 죽이고 살리는 시대 속에서 사실 짐승조차도 헐벗게 되고 배가 고프게 되면 사람을 공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데 아예 짐승의 본능적인 그 중심에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지금도 짐승들은 여러분,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 짐승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왜냐? 그들 중심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심어 주셨습니다. 짐승들 중심에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땅의 제일 무서운 것이 사자나 맹수가 아니라, 누가 제일 무섭다고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여러분, 짐승에게도 사람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짐승들이 사람의 손에서 지배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사실은 노아 이전에는 식물과 채소를 주로 먹었다면 타락 이후로, 노아 시대 때부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동물들을 먹이로 주신 사실이 성경 3절~5절에 나옵니다. 특히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4절에도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일단은 고기를 먹는, 동물을 먹는 축복을 사람에게 허락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전에는 주로 채소, 식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 때부터 동물을, 산 동물을 먹게 되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동물들을 먹기는 먹되 피째 먹지 말라 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피는 바로 생명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피째 먹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인간의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주인이, 원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피째 먹지 말라 말씀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든 여러분, 성경에 보면 계속해서 구약 시대에 말씀하고 계신 것이 바로 피는 그냥 피가 아니고 우리의 영원한 죄를 속죄하는, 우리의 영원한 죄를 속죄하는 그 일에 쓰임 받았던 부분이 바로 피에 대한 부분입니다. 피는 바로 생명인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 나아갈 때마다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느냐? 피를 가지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를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라 처음 복음을 주시면서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이 창세기 3장 21절에 보면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짐승을 잡았다는 말입니다. 피를 흘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벨의 제사는 양의 첫새끼를 드리는 피의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7장 11절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아갈 때마다 피를 가지고, 반드시 피를 가지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로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이후로 신약 시대에, 지금까지, 여러분, 피를 자기고 나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물이 되시사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끝내셨기 때문에 더 이상 피를 가지고 나아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2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속죄가 되시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피를 가지고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피는 이제는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학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피를 먹는 것은 건강에 그렇게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떠하든 피를 먹든 안 먹든 상관없어요.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니까 영원한 속죄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원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 받게 되어요. 요5:24 절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할렐루야!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운명, 모든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것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실은 여기에 피 채 먹지 말라 노아에게 하신 이 중요한 언약 속에는 결국 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사실은 홍수 이후에 아담의 축복을 다시 회복한 사실들을 오늘 우리 본문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심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노아가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게 8절부터 17절에 나와 있는 부분들인데요. 여러분 언약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을 가지고 언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사람과의 약속을 맺지요. 쌍방 간에 약속을 맺는데 이것은 언약이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과 맺는 약속은 우리가 아무리 도장을 찍고 해도 쉽게 배신하고 쉽게 약속을 깨트리고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은 언약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그 언약과 다른 거예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와 맺으시는 언약이예요. 왜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나갈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약속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인 것입니다. 사실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해 버렸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약속, 언약, 이것은 은혜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오늘 9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세우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 중요합니다마는요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언약을 붙잡아야 될 존재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약만 붙잡으면 됩니다. 여러분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언약은 절대,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은 절대 변하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수기23: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 하잖아요. 또 우리는 뭔가 계획해 놓고도 열심히 해 놓고도 늘 후회하는 인생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다 그냥 거짓말 안한다, 후회가 없다 그 말씀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다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아니하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언약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의 백성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마태복음24:35절에 보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13: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말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으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데 그 언약이 변함없이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그 언약을 주시고 약속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이루어 가느냐?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약속만 잡으면 됩니다. 비록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어요. 낙심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언약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언약만 붙잡으면 회복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창세기21: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셨잖아요. 사실은 아들을 주겠다 씨를 주겠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안 믿었잖아요. 그런데 창21:1~3절에 보면 말씀하신 대로 권고하셨고, 말씀하신대로 행하셨으므로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낳았다 했어요. 그래서 예레미야33:2절에 보면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했어요. 거기에 반드시 말씀했습니다. 일을 행하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고린도전서15:3~4절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 그것도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성경대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성경대로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언약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지만 낙심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 붙잡으면 그 약속 통해서 모든 것 회복되어지는 축복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매 시간마다 하나님이 내 개인에게 주신 약속을 붙잡는 언약의 백성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시간 시간 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붙잡고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 증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노아시대 노아에게 어떤 언약을 주셨느냐? 언약을 나타내어 보이셨는데 실물교육을 시킨 것이지요. 무지개. 여러분 물론 그 전에는 무지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일단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가지고 노아에게 말씀했습니다. 다시는 물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 했어요. 그래서 무지개를 바라볼 때 마다 아무리 비가 오고 홍수가 인다 할지라도 물로, 홍수로 심판받지 않는다 이 믿음을 가지는 것, 이것을 노아에게 주신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이 본문에 보면 13~16절에 무지개를 언약으로 나와 내 백성과 언약으로 주셨다하면서 그 무지개 때문에 그 언약을 이루신다 했어요.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에게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것은 딴 것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끝냈어요.
여러분 혹시나 지난 과거의 실패와 여러 가지 안 좋은 경험들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과거들에 사로잡혀서 불안할 수 있어요. 그게 사탄의 속이는 전략이예요. 과거의 안 좋은 경험들, 실패했던 것들 가지고요, 지금 일어나는 문제 속에 조금만 안 좋은 것들 있으면 혹이나 내가 과거에 이런저런 실패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어려움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들 있잖아요. 그게 악한 사탄이 속이는 거에요.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끝났어요. 어느 정도이냐? 고후5:17절에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어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했어요.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그 축복 가운데 세웠다라고 로마서8:1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로마서7장에 보면 바울이 죄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민하게 되지요. 하나님 말씀 따라 살려고 하는 그런 몸부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도 원치 않게 죄의 세력 앞에 끌려가는 부분들 보면서 고민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가운데서 거기에 주어진 답이었어요. 로마서8:1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거기 보면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너무나 죄에 대한 고민과 갈등감 가운데서 그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그 속에서 주어진 말이예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우리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무지개를 바라보고 언약을 기억하셨다 했어요. 오늘 13~16절에 계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또 거기 보면 나와 내 백성, 그리고 내가 무지개를 기억하고 다시는 무지개 때문에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시 말하면 노아시대에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재앙의 역사, 물로 심판하시는 재앙의 역사를 내리지 않았다면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 붙잡고 그리스도 바라보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담대하게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실 이유는 딴 이유가 없어요. 오직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라는 사실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열심히 살고, 경건하게 살고, 바르게 살아야 되지요. 여러분 직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대한 규모들이 없어서 오히려 복음의 문들을 막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요. 물론 규모도 필요하고 열심히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보시는 것이 뭐냐? 우리 안에 정말 언약인 그리스도가 있느냐 그것 밖에 안 본다는 거예요. 노아시대 때에 무지개를 기억하셨다 무지개를 통해 그것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셨다 했어요. 그러면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들을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깊이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 이 그리스도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느냐? 오늘 그 다음에 나오는 노아와 그의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완전 복음, 완전 복음으로, 그리스도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악한 사탄이 여러분 노아 홍수 때의 사탄이 다 죽은 것 아닙니다. 죽지 않고 지금도 빨빨 살아가지고 믿는 자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리스도로 완전 각인 되고, 복음으로 완전 각인, 뿌리, 체질 내리지 아니하면 노아시대 보세요. 노아시대에 방주 안에 나와 가지고도요 또 실패를 하게 되고, 또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한번 보십시다. 노아가 실수하게 되는데 방주 안에 나와 가지고 농사지어서 포도나무를 통해 포도주를 얻게 됩니다. 그 포도주를 얼마나 먹었든지 이성이 마비되어서 집 안에서 다 벌거벗게 되어요. 아니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당대의 의인이라고 하는 노아, 당대의 완전한 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런 노아가 방주를 몇 년 동안 만들었습니까? 그리고 또 방주 안에 들어갔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겪었다면 쉽게 우리가 체질들이 바뀌어 질것 아닙니까? 사실 바뀌어지는 게 아니예요. 노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근본 뿌리에 있는 근본 각인들이 안 바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완전히 마비되어서 포도주 마시고 옷 벗고 자녀들 저주하고 축복하는 부분이 나와요. 우리가 늘 그리스도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 본문에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노아가 가나안의 아버지 함을 저주하거든요. 함이 어떤 일을 했느냐? 노아의 벌거벗음을 보고,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보고 그것을 밖에 나가서 그냥 떠벌렸어요. 이 말은 그냥 함이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드러냈다 그 정도가 아니예요. 그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낸 것보다 더 큰 실수를 함이 한 거예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언약의 역사를 이어갈 사람으로 노아를 세웠는데 그 사실을 크게 보지 못하고 노아의 실수를 더 크게 본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뿌리내리고 오직 복음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지 아니하면 결국 우리 안에는 우리도 모르게 다른 것이 들어와요. 율법적인 것, 종교적인 것들이 들어와서 세상적인 기준이 들어와서 그것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이렇게 되어져요. 여러분 그리스도로 완전 뿌리내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비록 연약하고 실수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나의 연약한 부분, 실수하는 부분들, 또 세상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보다도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놓고 이루어 가시는 그 언약이 더 크게 보여질 정도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지시길 바랍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을 저주했는데 그대로 되었어요. 사실은 함의 모든 자녀들 다 저주 받았다 그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23절에 보면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함의 자녀 중 일부입니다. 가나안, 여러분 가나안 족속 여러분 아시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붙잡고 나가는 일에 있어서 끝까지 그 언약의 역사에 방해하는 족속이 가나안 족속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언약을 우습게 알고 언약을 희미하게 알고 희미하게 붙잡은 족속이 가나안 족속이었어요.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 열 명의 정탐꾼이 보고할 때에 거기에 나오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본 가나안 족속들, 거대하고 창대했다 했어요. 결국은 노아가 저주한 그대로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강대국들에게 늘 종의 신분으로 나왔던 것이 가나안 족속이었어요. 그런데 노아가 샘과 야벳은 축복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샘과 야벳이 아버지의 실수, 허물을 보고 그냥 허물을 덮어 버렸기 때문에 노아를 통해서 샘과 야벳을 축복했느냐 그게 아닙니다. 이 샘과 야벳은 부모의 실수를 보기 이전에 자기 아버지가 언약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샘이 어떠한 축복을 받게 되느냐?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되는데 결국은 선민, 히브리, 샘의 족속들입니다. 그 샘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옵니다. 그리스도가 샘의 혈통으로 오게 되었어요.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 것이 샘이지요. 그와 더불어 야벳, 영적인 축복도 받았지만 육신적인, 물질적인 창대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 야벳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전부 야벳의 그 혈통들, 후대들로 이어지고 있어요. 한마디로 육신적으로 창대한 민족을 이룬 것이 야벳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부모 된 자로서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서 맘껏 축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관계된 모든 현장의 사람들을 여러분이 믿는 사람으로서 맘껏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 그렇게 할 권세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서 12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9절에 보면 은 욕을 욕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오히려 복을 빌라 이를 위해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현장에 내보내시면서 마태복음 10장 1절에,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보면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했고요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권세를 주었다 말씀이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 말씀했습니다. 권세 가진 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그리스도를 고백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말씀하시면서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권세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녀들을 마음껏 축복하시고 여러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마음껏 축복하는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축복된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오늘 새벽에도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만 정말 우리 자녀들 위해서 축복하고 보호하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 하나하나 다 간섭할 수 없지만은 기도로 말미암아 축복하면서 우리 자녀들을 축복하고 우리자녀들을 보호하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니까요 그래서 위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선지자 권을 가지고 언약을 계속 심는 것입니다.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언약을 계속 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헤매다가도 하나님 만나는 길을 알고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권이 뭡니까?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었잖아요.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은 실수할 수 있지만은 일단은 해방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 모신 자는 그렇다면 은 제사 장권을 가지고 축복을 선언하는 겁니다. 그리고 왕권입니다. 악한 사탄이요 우리 자녀들 배후에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을 벌여나갈지 모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은 24시간 하나님이 24시간 역사하시지만 악한 사탄도 24시간 살아있어요 이 존재가 우리 후대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언제 어떻게 우리 후대를 공격해올지 몰라요 그들을 정말로 우리가 기도로써 왕적인 권세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세력을 계속 꺾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정말 축복 받고 응답 받고 참된 보호받으면서 참된 시대 살릴 주역들로 세워져나갈 수 있도록 자녀들 위해서 마음껏 축복하시고 오늘 노아가 그냥 축복하고 저주한 것 그대로 이루어진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로 주어진 권세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현장에 진짜 현장에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축복과 저주가 노아로 통해서 나타났는데, 그 세 형제들이 그러나 더불어 함께 있게 되었어요. 어디에, 셈의 장막에 함께 머물렀어요. 이게 중요합니다. 야벳은 창대케 하셔가지고 셈의 장막에 머물도록 하셨고요 또 가나안은 종으로써 셈의 장막에 머물도록 하셨어요. 27절이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기 보면 축복과 저주의 조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 형제가 더불어서 함께 거하는 축복을 누렸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생명의 장막에서 여기에 셈의 장막은 무엇을 말씀하는 줄 아십니까? 메시아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민족과 모든 족속이 셈의 장막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의 비밀 안에 있으면, 모든 것 회복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언어도 다를 수 있고 인종도 다를 수 있고 피부색도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영적인 문제는 어느 민족이나 다 같아요. 그래서 복음은 완전한 것이고 복음은 충복한 것이고 복음은 모든 것인데, 그리스도 복음만 증거되어지면 거기에 모든 것 다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원래 제가 제목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라고 잡으려고 생각했어요. 왜냐 그 속에서 모든 것 살아나니깐 그리스도 비밀 깨달을 때에 모든 것 회복될 것이니까 사도행전 2장 38절 39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39절에 보면 이 약속은 이 약속이 뭡니까? 금방 제가 읽은 38절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은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니라. 모든 민족, 모든 족속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살아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한 주간 셈의 장막에 거하는 그 축복 가운데 여러분이 자신이 살고 여러분 통해서 이 땅에 회복되어지는 그 일에 증인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3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환난 이 후에 오는 축복
(창9:8-19)
서론: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영적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육신적인 부분을 두고 갈등 하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적인 부분과 신령한 부분에 답을 내지 못 하기 때문에 갈등합니다. 육신적인 것은 소진 되어지지만 신령한 것은 범사에 유익합니다(딤전4:8). 복음의 비밀을 누리게 될 때 새로워지는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고후4:16).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더 큰 은혜와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 아담에게 주신 축복을 다시 주심
가. 노아에게서부터 인류가 다시 시작 됨
1) 노아와 가족들 – 생육,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축복을 주심(1)
아담의 때 – 본성적, 권위적으로 다스리게 하심(사65:17-25 죄가 없는 상태의 짐승의 모습)
노아의 때 – 사람들을 두려워 하도록 해서 다스리게 하심(2)
2) 타락 이 후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심(3-5)
피 채 먹지 말도록 하심(사람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피는 생명을 의미 – 구약시대(짐승의 피로 생명의 속죄를 주심), 신약시대(그리스도가 영원한 속죄물이 되심)
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원죄,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요5:24)
2.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심
가. 언약 –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시는 약속, 일방적으로 맺으신 약속(9)
1) 하나님이 반드시 언약을 이루시기 때문에 언약만 붙잡으면 됨(민23:19)
2) 언약은 없어지지 않음(마24:35),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심(히13:8),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심(렘33:2), 성경대로 죽으시고 살아나심(고전15:3-4)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모든 것이 회복 됨
나. 언약을 주신 증거 – 무지개를 통해 홍수가 다시는 없을 것을 약속(13)
1) 내 안의 그리스도 때문에 반드시 언약을 이루심 - 속지마라
2)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다 끝내심 – 새로운 피조물(고후5:17), 정죄함이 없음(롬8:1)
3)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를 책임, 축복 하심
다. 완전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
1) 노아의 실수 – 포도주를 마시고 취함(자녀들을 축복, 저주)
2) 함의 실수(가나안 족속의 시작 –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힘, 언약을 우습게 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복),
셈(신령한 축복 – 메시야), 야벳(창대한 축복)
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들을 축복할 권세를 주심(벧전3:9, 벧전2:9, 마16:19)
- 마음껏 자녀들을 축복하라(제사장, 왕, 선지자적 권세)
결론: 축복과 저주가 노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 형제들을 셈의 장막에서 머물도록 하셨습니다(야벳 – 부요, 가나안 – 종). 셈의 장막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과 족속이 셈의 장막에 거하면 모든 것이 회복 됩니다. 그리스도 복음만 증거하고 깨달으면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셈의 장막에 거하는 가운데 내가 살고 모든 것을 회복하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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