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의 기준
2017-08-20 00:00:00
관리자
조회수 63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8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공과 실패의 기준”
(창25:1~18)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17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1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 2부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주셨는데 한번 신앙의 고백을 하십시다. ‘당신은 언약의 백성입니다’‘우리는 언약의 백성입니다’오늘도 예배하는 가운데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붙잡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에 대한 답으로 주신 찬양이예요.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에 대한 답을 오늘 찬양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사실들이 우리 모두에게 확인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다시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창세기25장은 언약의 1세대인 아브라함이 이제는 죽게 되어지고 그 아브라함이 받아 누렸던 축복의 역사들이 이삭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그 본문이 오늘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아브라함이 17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어진 내용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후대들에게 오늘 아브라함이 죽고 난 이후에 이삭이 그 축복의 내용과 믿음과 모든 응답들을 이어 받았던 것처럼 우리 후대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중요한 언약을 붙잡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들 가운데 우리가 갈등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게 되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갈등하지 말라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 아니, 요셉이 그 환경 속에서 갈등하고 두려워했다면 사실 요셉은 벌써 정신병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환경들 속에서 갈등하고 염려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히려 그 환경을 응답으로 누렸고 승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훌륭해서냐, 요셉이 특별한 인격을 가져서냐, 그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은 신앙 생활을 하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이 바로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현장대로 살면 이렇게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장대로 산다면 찬송가 486장의 앞에 나와 있는 가사들이 맞는 것입니다. 찬송가 486장에 보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진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세상 현장을 본다면 우리 앞에는 근심된 일, 곤고한 일, 죄악된 일만 우리 앞에 쌓여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통계를 내었습니다. 사람이 약 16년 동안 살게 되는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말들을 듣는 것이 16만 3천 번 정도 된다고 합니다. 16만 3천 번. 그러면 하루에 30번 정도 됩니다. 그리고 또 긍정적인 말을 듣는 것이 16년 동안 약 만 6천 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루에 3번 정도는 긍정적인 말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말을 열 배 이상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절로 우리의 체질 자체가 부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꼭 듣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그래서 우리의 체질 자체가 부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적극적으로 살자 해도 우리 체질 자체가 늘 부정적인 것을 듣게 되고 보게 되니까, 또 우리 안에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나도 원치 않는 부분들이 자꾸 나오게 되니까 저절로 우리의 체질이 불신앙의 체질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 보면 참 긍정적이고 믿음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해 보면 금방 들통납니다. 체질들이 부정적인 것으로 꽉 싸여 있는 부분이 금방 들통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볼 때는 분명히 그냥 단순히 부정적이다, 그게 아니라 멸망 받을 세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떠나서 죽은 상태인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현장을 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여러분, 세상대로 살면 우리는 고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본 그 정도가 아니라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으로 멸망 가운데 있는 세상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똑같이 그런 생활 속에, 그런 환경 속에서 살면서 ,그런 세상 속에 살면서 바울의 고백은 달랐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17절, 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바울이 그러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바울이 전혀 그러한 삶을 살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동일하게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의 노력으로 될까요? 우리의 애씀으로 될까요? 우리가 많은 세상의 지식을 가진다고 그렇게 될까요? 세상의 많은 스펙을 쌓는다고 그렇게 될까요? 아닙니다. 언약 한 가지로만 어떤 환경과 사건과 일들 속에서도 바울처럼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약 한 가지로만 요셉 같은 환경 속에서도 요셉이 승리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누린 것처럼, 또 여러분, 에녹이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것처럼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하는 가운데 진짜 언약 회복하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함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정말로 승리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 다니면서도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인가? 첫 번째로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먼저 주어진 것임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건 없이 먼저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창세기 12장 1절~3절에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상 동네에서 우상 장사하면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던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면서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보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바로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이 언약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7장 1절~11절에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으로 언약부터 주셨습니다. 세계복음화의 언약입니다. 결국은 그 꿈대로, 언약대로 요셉이 자기 민족도 살리고 애굽조차 살리는, 세계를 복음화하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되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를 왕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왕 될 언약을 먼저 주신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고기 잡는 어부인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마태복음 4장 19절에 보면 먼저 언약을 말씀하셨는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언약을 가지고 찾아오셨는데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에 몸담고 신앙 생활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가지고 찾아오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언약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언약부터 주셨음을 알고 그 언약부터 확인하는 것이, 그것도 우리에게는 조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약을 붙잡을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먼저 언약을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약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당하지 않습니까? 문제와 사건들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우리가 흔들리게 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흔들리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악한 사단은 잘 압니다. 여러분이 낙심하고 있는지 흔들리고 있는지 믿음 가운데 있는지 말 안 해도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를 너무나 잘 압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분명히 언약의 백성임을 알면서도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그 문제와 사건 속에 흔들리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단은 그 흔들리고 낙심하는 자들, 절망하는 자들을 찾아와서 결국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악한 사단이 속이는 전략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다는 그 자체만 해도 엄청난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영적인 세계를 알면 이 자리에 아무나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사고가 나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게 사단의 역사 아닙니까? 그러면서 교회 나왔다면 일단은 은혜 받지 못하도록. 교회 나왔으니까 은혜 받지 못하도록 만들고 또 은혜는 받되 진짜 복음 붙잡고 기도해서 응답 받지 못하도록. 그래서 결국은 전도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사단의 속임수에 속아서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일에 여러분,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흔들렸습니다. 그러니까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갖기도 하고. 분명히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아들을 주겠다 약속하셨는데 거기서도 흔들렸지 않습니까? 흔들리면 누구 손해냐? 여러분, 자기 손해입니다. 사단에게 당하니까 자기 손해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니까 자기 손해입니다. 만약 여러분, 요셉이 그 환경들, 노예로 가고 감옥에 간 그 환경들, 그 속에 속았다면? 물론 하나님의 언약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로 들어간, 감옥에 들어간 그 삶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요셉이 세계복음화의 언약, 해와 달,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자기 별에게 절하는 세계복음화를 가졌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응답은 그 언약을 주셨다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장 요셉의 걸음 앞에는 노예라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라는 상황에 처하고 감옥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거기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모든 조건들을 하나님께서 언약의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일들로 바꾸어가시는 사실을 요셉은 본 것입니다. 왜냐?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 속에 서 있으니까. 여러분,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왕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러면 왕될 것이라 예언되었다면 그야말로 진짜 참된 응답의 문들이 열려야 할 것 아닙니까? 왕으로서 준비될 부분들이 다 열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울왕이 공격해와서 집중적으로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왕 될 것이라는 그 언약이 막혔습니까? 여러분, 막혔나요? 사울왕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방해했지만 그 언약의 역사를 막지를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들, 이런 저런 많은 일들, 왜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우리에게 주시느냐? 먼저 첫 번째는 내 자신에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있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실 사람으로서 나를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있는 다른 것들을 고쳐나가는 작업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냥 단순히 내 문제 해결 받는 그 정도가 아니라 세계를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세계 살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또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을 우리 앞에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통해서 세계 살릴 사람들을 감당하도록, 이해하도록, 수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보는 눈들이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은 그 어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있어도 여러분이 확신 가져야 할 것은 언약의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찬양 드렸지 않습니까? 주의 약의 역사 가운데 있는 언약의 백성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의 복음은 폐할 자가 없고 언약의 역사들, 언약 가진 사람들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가진 자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을 오늘 붙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사주팔자, 운명에서 해방했습니다. 그냥 망하게, 그냥 내버려둘 것이지 왜 해방하셨습니까? 로마서 8장 1절~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망할 사람 같으면 해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 사단의 문제 가운데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해방시켜주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5절~17절에 보면 세상의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 가진 자들이 나아가는 걸음 속에 히브리서 1장 14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늘 군대가 동원되고, 누가복음 10장 19절에 있는 말씀처럼 흑암의 역사가 무너지는 응답의 역사 속에 우리를 두셨습니다. 여러분, 결코 언약 가진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여러분,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뭐요? 멸망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할렐루야! 우리를 누가 붙잡고 계시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만물보다 크신 그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계시니까 그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빼앗아갈 것입니까? 아니, 하나님 능한 손을 비틀고 거기서 빼앗아가야 하는데,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손에서 누가 우리를 빼앗아갈 자입니까? 우리는 절대로 멸망 받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연약하고 부족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무엇을 이룬다고요?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실수하고 실패하는 자리에 이른다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승리를, 승리의 길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는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실수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불신자들을 벌 받도록 만든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확신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언약을 어김없이 이루어가고 계시고 일점일획도 다 성취된다, 마태복음 5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저와 여러분은 언약의 백성으로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이런저런 문제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계 살릴 수 있는 그릇들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들
두 번째입니다.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녀로 태어나고 함께 있었지만 응답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사람이지만 언약 성취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도 그 언약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크게 두 부류인데 그의 후처인 그두라와 함께 그의 자녀들, 열여섯 명 정도 됩니다. 그 당시에 그들의 문화 가운데 후처를 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불신앙의 자녀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이 당시에 그의 후처를 맞이해서 후처 이름이 그두라인데 그 자녀들이 열여섯 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뒤에 보면 하갈과 함께 이스마엘의 자녀들이 나오는데 이스마엘의 자녀들이 바로 열두 방백을 이루었다고 나옵니다. 그두라와 그의 자녀들이 차지한 것은 아라비아 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언약의 역사를 본 사람들이었지만 언약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당장 여러분, 롯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롯은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 자기 삼촌 아닙니까? 우상 동네에서 빠져나올 때에 언약을 받고 나오는 그 과정을 봤지 않습니까? 그리고 롯은 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좋은 땅 다 양보하고 그리고 단을 쌓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삼촌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는 것을 봤지 않습니까? 심지어 자기가 포로로 끌려갔을 때 자기 삼촌에 의해 구출되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다 본 것입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조차도 언약의 축복을 못 누린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창세기 15장 5절에 보면 하늘의 별을 보게 하면서 15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모든 것들을 롯도 보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약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롯. 그 다음 하갈과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면에서 아브라함의 집안에 있었던 사람들, 같이 있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7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꿉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17장 15절에도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그래서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열국의 어미 사라, 이름까지 바꾸고 18장 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이 모든 현장에 하갈과 이스마엘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속에 못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먼저 1절에 보면 그두라와 그의 자녀들이 한 열여섯 명 나오는데 그 자녀들 가운데서 이름을 죽 살펴보면 미디안이라는 족속이 나옵니다, 미디안. 여러분, 이 미디안은 우리가 익히 많이 듣던 족속입니다. 모세가 피해서 어디로 도망갔습니까? 미디안으로 도망가고 자기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해서 대적했던 족속이 민수기 22장에 보면 미디안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드온 삼백 용사가 나옵니다. 이 기드온 삼백 용사가 누구와 싸웠느냐? 미디안 족속과 싸웠습니다. 후대에게 언약이 전달되지 않은, 언약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이 전달되지 않은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갈과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갈과 이스마엘, 이스마엘이 결국은 열두 방백을 이루게 되고 이스마엘의 자녀들 가운데 결국 이슬람교가 나오게 되고 그들의 성지 메카가 지어지게 되고 지금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메카를 향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 어디에 흩어졌든지간에 메카 방향을 향해서 계속 그들을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들 또한 하나같이 아브라함 집에 있으면서 언약의 역사를 봤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 피의 비밀이 무엇이고 그 피의 언약을 붙잡을 때 저주가 물러가는 역사와 함께, 또 불신자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이제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서 아브라함을 내놓는 모습들 봤고요 또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맞이하는 모습도 백세에 아들이삭을 낳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안에 못 들어온 사람이에요 여기에 여러분 중요한 부분들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이 언약 안에 들어왔다는 이 자체가 은혜고 축복입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계속해서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교회는 다닌다 할지라도 이 언약에 대해서 모르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 언약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그두라와 그의 자녀들, 하갈과 이스마엘의 자녀들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가면 갈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평생을 신앙 생활했는데도 하나님 주시는 응답이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갈등해야 합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신앙생활하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 언약이 어떻게 전달되어질 것인가? 여기에 대한 생각이 없고 여기에 대한 기도가 없다면은 여러분 정말로 고민하면서 자녀들 위해서 울어야 돼요. 이 언약이 우리 자녀들과 후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이삭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지만은 그러나 함께 했던 그두라와 그의 후손들, 하갈과 이스마엘의 그의 후손들은 이 언약의 역사들을 몰랐다는 것.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은 하갈과 이스마엘, 27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했어요. 그렇다면 은 지금 말로 하면 27년 동안 합숙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과 전혀 상관없는 또 그두로와 그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3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했어요. 아브라함의 모든 삶을 봤어요. 여러분 심지어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다음에 나오는 부분인데 야곱과 에서가 나오잖아요. 여러분 야곱과 에서를 이삭이 몇 세에 낳은 줄 아십니까? 60세에 낳았습니다. 40세 때에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해서 20년 동안 아이가 없다가 60세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러면은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다 하잖아요. 야곱과 에서를 이삭이 60세에 낳았다면 은 계산해보면 15년 동안에 아브라함의 삶을 본겁니다. 에서조차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전혀 언약과 상관없는 물론 하나님이 택하신 언약의 백성 이삭이었지만은 그러나 이 부분을 그냥 볼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언약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이 사실 놓고 고민하고 이 사실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 가진 1세대로써 아무리 신앙생활에 축복을 누렸다 할지라도 내 후대에게 내 자녀에게 이 언약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실패한 겁니다. 그 후대가운데 미디안 족속 같은 이런 후대가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진짜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진짜 기도하고 눈물 흘려야 될 것은 내가 가진 복음의 언약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어떤 분은 자기 자녀들 결혼시키기 위해서 인사하러 와가지고 이야기해요 “목사님, 제가 아이를 신앙 안에서 바르게 키우지 못한 것 너무 죄송합니다.” 여러분 언약 안에서 언약의 가치를 보고 우리 자녀들 보니깐 그런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 고민, 갈등, 기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의 엄청난 축복된 역사들이 우리 당대 1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들이 계속 전달되어야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 전달되었고 이삭에게 주어진 언약이 야곱에게 전달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요셉에게 전달되니깐 세계복음화 역사가 일어났어요. 여러분 가진 언약이 후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이 축복된 역사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언약 밖에 있던 자들에게 아브라함이 많은 물질을 줬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언약의 축복을 놓쳐 버렸는데, 여러분 그두로와 그의 자녀에게도 아브라함은 재산을 줬습니다. 하갈과 그의 자녀들에게도 아브라함은 재산을 줬습니다. 여러분 육신적인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이 중요한 언약을 놓쳐 버리고 언약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육신적인 축복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가장 중요한 언약이 여러분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는데, 1부, 2부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 이제 본당에 예배드리는 자리들을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정말로 지금 한국 교회 문제가 있다면 후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유럽 교회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인이 뭐냐? 1950년대 1970년대에 주일학교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부흥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어요. 아니, 젊은이들이 50%이상이 나는 무종교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종교가 필요 없고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50%이상이 넘어섰어요. 또한 믿음의 가정 속에서 자녀들도 그냥 초등학교일 때 마지못해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니는데 어느 정도 자기 머리로 계산할 때가 되면 은 지금 믿음의 자녀들 조차고 한 20%이상이 부모만 믿는 신앙을 강요하지 말라고. 이렇게 보고가 나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가 후대를 기도에 담고 마음에 담고 인도 받지 않는다면 30년 후데 유럽교회처럼 된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3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와있는 겁니다. 오늘 주일 학교 데이를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서 알고 그들에 대한 기도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실제로 기도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은혜 받고 언약을 이루어 가는 이 일에 중심적인 자리에 우리 아이들을 쓰고자 합니다. 그래서 교회 모든 분위기들도 물론 장년들에 의해 돈이 나와요. 그러나 여러분 장년들은 발판되어지면 되고요 장년 중심해서 차세대로 교회 분위기도 바뀌어져야 되요. 그래야 한국 교회 미래가 있는 겁니다. 우리 어르신들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때문에 아이들이 복음을 가지게 되었고요. 이 복음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이 복음의 역사 가운데 세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발판입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 후대들이 이 언약 가운데, 세워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우리 대에 이 복음의 역사 언약의 역사가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 후대들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앞자리로 마련하려고 합니다. 앞에 나온다고 은혜 받느냐? 물론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아이들이 보면 은 전부다 사각지대에 있어요. 원래 저 나이 또래에 어둠침침한 것을 좋아 합니다. 또, 중고등부 예배 마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마치면 아마,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서 사이드로 자리 잡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부장 장로님들, 교사 분들 중심해서 아이들을 앞자리로 옮기세요. 앞자리에 아이들 앉아서 진짜 너무나 귀중한 것 아닙니까? 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민족들도 앞자리로 옮기고요 진짜 은혜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자리로 앉을 수 있도록. 이 부분을 운영 위원회에 말씀 드렸더니만 감사하게도 당회에 같이 말씀드려가지고 그렇게 하자고 하자라고 이야기 되었어요. 지금 보면 은 제 눈 안에 어느 분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다 들어와요. 그 자리를 사수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 자리로 오면 은 떠 밉니다. 이건 내 자리라는 것이지요. 안에 자리 있는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요. 그건 좋은 건데, 그런데 네 자리, 내 자리 없이 진짜 무론 장로님들도 앞자리에 앉으셔서 은혜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다민족들 은혜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한나라를 살리는 그 응답을 저들이 누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진짜 내가 말씀에 대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갈급한 마음으로 받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말씀 받을 수 있도록 자리들을 양보하고 그래서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그런 분위기를 통해서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 바른 언약이 전달되도록 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부분들 답을 가지세요. 지금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그 후대 자녀들을 보면서 우리가 결론으로 가져야 할 것이 뭡니까? 정말로 먼저 우리 자신들이 복음에 대한 언약에 대한 부분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시편34편 8절에 보면 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알고 믿음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그 사실 체험해야 합니다. 나는 복음을 가지고 믿음을 선택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응답을 주셨다. 여러분, 롯이 아브라함을 바라봤잖아요. 사실 아브라함은 복음가지고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가병 318명과 모든 축복을 다 쏟은 사실을 보게 되요. 그냥 단순히 복음알고 믿음 선택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어요. 복음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복음을 아는 것에 끝나지 말고, 여러분에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맛보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진짜 내가 복음 알고, 예배의 축복을 회복 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축복을 맛보는 것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주어진 말씀을 가지고, 말씀 붙잡고 오는 응답은 아무도 막을 수 없고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응답이 예배 통해서 주어진 말씀 붙잡고 응답 받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잖아요. 이 말씀 붙잡고 여러분 현장에서 말씀 따라 오면서 말씀 가지고 기도 하면서 응답 받는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예배의 축복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맛을 아는 증인으로 여러분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복음 알고, 현장에 인생의 12가지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여러분 현장에 숨겨진 문제, 창세기3,6,11장의 문제를 다 숨겨 놓고 있어요. 내 중심이고, 눈에 보이는 대로 물질 따라 살아가는데 다 그렇지 않다고 숨겨놓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신과 점술과 우상에 빠져서 무속인에게 돈 갖다 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 그리고 현장에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저주의 문제, 그 모든 현장에 12가지 인생의 문제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지는 그 사실을 체험하는 맛보아 깨닫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갈등하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체험 하도록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겠다. 하신 것입니다. 시편18편 1절~2절에 보면 은 다윗이 사망의 고통의 현장에서 임마누엘의 역사들을 체험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 1절에 보면 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사망의 고통가운데서 임마누엘을 누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죠 그러면서 2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이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로다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 어떤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의 비밀을 다윗이 누림 통해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에 서론 부분에 말씀했던 것처럼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냥 말한 것이 아니고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바울이 체험한 것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방법,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 사실들을 바울이 체험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약 그리스도 그 한 가지 붙잡는데 그 안에 모든 환경들, 상황들, 일들 이길 수 있는 그 축복된 역사들이 따라 옴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언약은 영적인 과학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그 약속 붙잡게 될 때, 그 하나 속에 모든 축복된 응답이 다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에 증인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고, 언약 안에 있으면서 갈등하거나 실패하지 말고 언약을 소유하고 누리면서 체험하면서 축복을 누리며 이일에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증인의 축복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언약, 그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이 언약이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저들 되게 하시고, 이 언약 하나 붙잡았는데, 여기에 모든 것 회복 되는 이 일에 증인 되어지는 귀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8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공과 실패의 기준
(창25:1-18)
서론: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 염려, 근심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갈등하지 말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아무 것도 염려 하지 않을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갈등과 염려 앞에서 응답으로 바꾸고 승리했습니다(요셉, 에녹). 하나님이 세상을 볼 때에는 멸망 받을 세상으로 봤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엡2:1, 마9:36). 열심, 노력,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 한 가지를 가지게 될 때 모든 환경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1.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 함
가.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확인(조건 없이 먼저 주신 것)
- 아브라함(창12:1-3), 요셉(창37:1-11), 다윗(삼상16:13), 베드로(마4:19), 오늘 날 우리(행1:8)
나. 여러가지 일들을 당함 - 언약 성취의 과정(흔들리지 말고 속지말라)
1) 사단의 속임수 - 교회 나가지 못 하도록, 은혜 받지 못 하도록, 기도응답 받지 못 하도록, 전도 하지 못 하도록
2) 아브라함(아들이 없음), 요셉(노예, 감옥), 다윗(기름 부음을 받은 후 사울의 방해) - 언약은 반드시 성취
다. 언약의 축복은 무엇인가?
1) 절대로 망하지 않음(요3:16, 요10:28-29)
2)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심(롬8:28)
3) 승리의 길로 인도(롬8:30)
2.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들
가. 그루라와 그 자녀들(미디안 족속 -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괴롭힘, 기드온 300 용사와 싸운 족속)
나. 하갈과 이스마엘 - 이슬람교가 나옴(지금까지도 분쟁)
다. 내게 주신 언약을 후대들에게 전달 - 반드시 열매 맺음
라. 반드시 체험 해야 할 복음의 맛 - 시34: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1) 복음을 알고 믿음을 선택 했을 때 응답 주시는 것을 체험
2) 복음을 누리며 예배의 축복을 체험
3) 인생의 12가지 문제의 현장을 체험
결론: 구원 받은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갈등하고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한 가지를 붙잡는데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축복이 따라 오게 됩니다. 그리스도 언약은 영적인 과학입니다. 그리스도 속에 모든 축복이 보장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증인으로 서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성공과 실패의 기준”
(창25:1~18)
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17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1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 2부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주셨는데 한번 신앙의 고백을 하십시다. ‘당신은 언약의 백성입니다’‘우리는 언약의 백성입니다’오늘도 예배하는 가운데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붙잡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에 대한 답으로 주신 찬양이예요.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에 대한 답을 오늘 찬양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사실들이 우리 모두에게 확인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다시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창세기25장은 언약의 1세대인 아브라함이 이제는 죽게 되어지고 그 아브라함이 받아 누렸던 축복의 역사들이 이삭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그 본문이 오늘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아브라함이 175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어진 내용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후대들에게 오늘 아브라함이 죽고 난 이후에 이삭이 그 축복의 내용과 믿음과 모든 응답들을 이어 받았던 것처럼 우리 후대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중요한 언약을 붙잡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들 가운데 우리가 갈등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게 되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갈등하지 말라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 아니, 요셉이 그 환경 속에서 갈등하고 두려워했다면 사실 요셉은 벌써 정신병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환경들 속에서 갈등하고 염려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히려 그 환경을 응답으로 누렸고 승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훌륭해서냐, 요셉이 특별한 인격을 가져서냐, 그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은 신앙 생활을 하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이 바로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현장대로 살면 이렇게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장대로 산다면 찬송가 486장의 앞에 나와 있는 가사들이 맞는 것입니다. 찬송가 486장에 보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진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세상 현장을 본다면 우리 앞에는 근심된 일, 곤고한 일, 죄악된 일만 우리 앞에 쌓여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통계를 내었습니다. 사람이 약 16년 동안 살게 되는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말들을 듣는 것이 16만 3천 번 정도 된다고 합니다. 16만 3천 번. 그러면 하루에 30번 정도 됩니다. 그리고 또 긍정적인 말을 듣는 것이 16년 동안 약 만 6천 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루에 3번 정도는 긍정적인 말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말을 열 배 이상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절로 우리의 체질 자체가 부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꼭 듣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그래서 우리의 체질 자체가 부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적극적으로 살자 해도 우리 체질 자체가 늘 부정적인 것을 듣게 되고 보게 되니까, 또 우리 안에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나도 원치 않는 부분들이 자꾸 나오게 되니까 저절로 우리의 체질이 불신앙의 체질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 보면 참 긍정적이고 믿음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해 보면 금방 들통납니다. 체질들이 부정적인 것으로 꽉 싸여 있는 부분이 금방 들통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볼 때는 분명히 그냥 단순히 부정적이다, 그게 아니라 멸망 받을 세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떠나서 죽은 상태인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현장을 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여러분, 세상대로 살면 우리는 고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본 그 정도가 아니라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으로 멸망 가운데 있는 세상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똑같이 그런 생활 속에, 그런 환경 속에서 살면서 ,그런 세상 속에 살면서 바울의 고백은 달랐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17절, 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바울이 그러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바울이 전혀 그러한 삶을 살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동일하게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의 노력으로 될까요? 우리의 애씀으로 될까요? 우리가 많은 세상의 지식을 가진다고 그렇게 될까요? 세상의 많은 스펙을 쌓는다고 그렇게 될까요? 아닙니다. 언약 한 가지로만 어떤 환경과 사건과 일들 속에서도 바울처럼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약 한 가지로만 요셉 같은 환경 속에서도 요셉이 승리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누린 것처럼, 또 여러분, 에녹이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것처럼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하는 가운데 진짜 언약 회복하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함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정말로 승리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 다니면서도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인가? 첫 번째로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먼저 주어진 것임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건 없이 먼저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창세기 12장 1절~3절에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상 동네에서 우상 장사하면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던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면서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보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바로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이 언약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7장 1절~11절에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으로 언약부터 주셨습니다. 세계복음화의 언약입니다. 결국은 그 꿈대로, 언약대로 요셉이 자기 민족도 살리고 애굽조차 살리는, 세계를 복음화하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되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를 왕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왕 될 언약을 먼저 주신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고기 잡는 어부인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마태복음 4장 19절에 보면 먼저 언약을 말씀하셨는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언약을 가지고 찾아오셨는데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에 몸담고 신앙 생활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가지고 찾아오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언약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언약부터 주셨음을 알고 그 언약부터 확인하는 것이, 그것도 우리에게는 조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약을 붙잡을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먼저 언약을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약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당하지 않습니까? 문제와 사건들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우리가 흔들리게 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흔들리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악한 사단은 잘 압니다. 여러분이 낙심하고 있는지 흔들리고 있는지 믿음 가운데 있는지 말 안 해도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를 너무나 잘 압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분명히 언약의 백성임을 알면서도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그 문제와 사건 속에 흔들리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단은 그 흔들리고 낙심하는 자들, 절망하는 자들을 찾아와서 결국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악한 사단이 속이는 전략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다는 그 자체만 해도 엄청난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영적인 세계를 알면 이 자리에 아무나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사고가 나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게 사단의 역사 아닙니까? 그러면서 교회 나왔다면 일단은 은혜 받지 못하도록. 교회 나왔으니까 은혜 받지 못하도록 만들고 또 은혜는 받되 진짜 복음 붙잡고 기도해서 응답 받지 못하도록. 그래서 결국은 전도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사단의 속임수에 속아서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일에 여러분,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흔들렸습니다. 그러니까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갖기도 하고. 분명히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아들을 주겠다 약속하셨는데 거기서도 흔들렸지 않습니까? 흔들리면 누구 손해냐? 여러분, 자기 손해입니다. 사단에게 당하니까 자기 손해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니까 자기 손해입니다. 만약 여러분, 요셉이 그 환경들, 노예로 가고 감옥에 간 그 환경들, 그 속에 속았다면? 물론 하나님의 언약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로 들어간, 감옥에 들어간 그 삶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요셉이 세계복음화의 언약, 해와 달,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자기 별에게 절하는 세계복음화를 가졌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응답은 그 언약을 주셨다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장 요셉의 걸음 앞에는 노예라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라는 상황에 처하고 감옥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거기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모든 조건들을 하나님께서 언약의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일들로 바꾸어가시는 사실을 요셉은 본 것입니다. 왜냐?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 속에 서 있으니까. 여러분,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왕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러면 왕될 것이라 예언되었다면 그야말로 진짜 참된 응답의 문들이 열려야 할 것 아닙니까? 왕으로서 준비될 부분들이 다 열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울왕이 공격해와서 집중적으로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왕 될 것이라는 그 언약이 막혔습니까? 여러분, 막혔나요? 사울왕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방해했지만 그 언약의 역사를 막지를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들, 이런 저런 많은 일들, 왜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우리에게 주시느냐? 먼저 첫 번째는 내 자신에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있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실 사람으로서 나를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있는 다른 것들을 고쳐나가는 작업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냥 단순히 내 문제 해결 받는 그 정도가 아니라 세계를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세계 살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또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을 우리 앞에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통해서 세계 살릴 사람들을 감당하도록, 이해하도록, 수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보는 눈들이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은 그 어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있어도 여러분이 확신 가져야 할 것은 언약의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찬양 드렸지 않습니까? 주의 약의 역사 가운데 있는 언약의 백성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의 복음은 폐할 자가 없고 언약의 역사들, 언약 가진 사람들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가진 자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을 오늘 붙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사주팔자, 운명에서 해방했습니다. 그냥 망하게, 그냥 내버려둘 것이지 왜 해방하셨습니까? 로마서 8장 1절~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망할 사람 같으면 해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 사단의 문제 가운데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해방시켜주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5절~17절에 보면 세상의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 가진 자들이 나아가는 걸음 속에 히브리서 1장 14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늘 군대가 동원되고, 누가복음 10장 19절에 있는 말씀처럼 흑암의 역사가 무너지는 응답의 역사 속에 우리를 두셨습니다. 여러분, 결코 언약 가진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여러분,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뭐요? 멸망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할렐루야! 우리를 누가 붙잡고 계시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만물보다 크신 그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계시니까 그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빼앗아갈 것입니까? 아니, 하나님 능한 손을 비틀고 거기서 빼앗아가야 하는데,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손에서 누가 우리를 빼앗아갈 자입니까? 우리는 절대로 멸망 받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연약하고 부족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무엇을 이룬다고요?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실수하고 실패하는 자리에 이른다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승리를, 승리의 길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는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실수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불신자들을 벌 받도록 만든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확신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언약을 어김없이 이루어가고 계시고 일점일획도 다 성취된다, 마태복음 5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저와 여러분은 언약의 백성으로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이런저런 문제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계 살릴 수 있는 그릇들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들
두 번째입니다.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녀로 태어나고 함께 있었지만 응답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사람이지만 언약 성취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도 그 언약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크게 두 부류인데 그의 후처인 그두라와 함께 그의 자녀들, 열여섯 명 정도 됩니다. 그 당시에 그들의 문화 가운데 후처를 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불신앙의 자녀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이 당시에 그의 후처를 맞이해서 후처 이름이 그두라인데 그 자녀들이 열여섯 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뒤에 보면 하갈과 함께 이스마엘의 자녀들이 나오는데 이스마엘의 자녀들이 바로 열두 방백을 이루었다고 나옵니다. 그두라와 그의 자녀들이 차지한 것은 아라비아 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언약의 역사를 본 사람들이었지만 언약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당장 여러분, 롯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롯은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 자기 삼촌 아닙니까? 우상 동네에서 빠져나올 때에 언약을 받고 나오는 그 과정을 봤지 않습니까? 그리고 롯은 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좋은 땅 다 양보하고 그리고 단을 쌓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삼촌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는 것을 봤지 않습니까? 심지어 자기가 포로로 끌려갔을 때 자기 삼촌에 의해 구출되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다 본 것입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조차도 언약의 축복을 못 누린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창세기 15장 5절에 보면 하늘의 별을 보게 하면서 15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모든 것들을 롯도 보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약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롯. 그 다음 하갈과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면에서 아브라함의 집안에 있었던 사람들, 같이 있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7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꿉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17장 15절에도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그래서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열국의 어미 사라, 이름까지 바꾸고 18장 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이 모든 현장에 하갈과 이스마엘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속에 못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먼저 1절에 보면 그두라와 그의 자녀들이 한 열여섯 명 나오는데 그 자녀들 가운데서 이름을 죽 살펴보면 미디안이라는 족속이 나옵니다, 미디안. 여러분, 이 미디안은 우리가 익히 많이 듣던 족속입니다. 모세가 피해서 어디로 도망갔습니까? 미디안으로 도망가고 자기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해서 대적했던 족속이 민수기 22장에 보면 미디안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드온 삼백 용사가 나옵니다. 이 기드온 삼백 용사가 누구와 싸웠느냐? 미디안 족속과 싸웠습니다. 후대에게 언약이 전달되지 않은, 언약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이 전달되지 않은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갈과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갈과 이스마엘, 이스마엘이 결국은 열두 방백을 이루게 되고 이스마엘의 자녀들 가운데 결국 이슬람교가 나오게 되고 그들의 성지 메카가 지어지게 되고 지금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메카를 향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전 세계 어디에 흩어졌든지간에 메카 방향을 향해서 계속 그들을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들 또한 하나같이 아브라함 집에 있으면서 언약의 역사를 봤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 피의 비밀이 무엇이고 그 피의 언약을 붙잡을 때 저주가 물러가는 역사와 함께, 또 불신자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이제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서 아브라함을 내놓는 모습들 봤고요 또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맞이하는 모습도 백세에 아들이삭을 낳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안에 못 들어온 사람이에요 여기에 여러분 중요한 부분들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이 언약 안에 들어왔다는 이 자체가 은혜고 축복입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계속해서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교회는 다닌다 할지라도 이 언약에 대해서 모르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 언약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그두라와 그의 자녀들, 하갈과 이스마엘의 자녀들처럼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가면 갈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평생을 신앙 생활했는데도 하나님 주시는 응답이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갈등해야 합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신앙생활하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 언약이 어떻게 전달되어질 것인가? 여기에 대한 생각이 없고 여기에 대한 기도가 없다면은 여러분 정말로 고민하면서 자녀들 위해서 울어야 돼요. 이 언약이 우리 자녀들과 후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이삭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지만은 그러나 함께 했던 그두라와 그의 후손들, 하갈과 이스마엘의 그의 후손들은 이 언약의 역사들을 몰랐다는 것.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은 하갈과 이스마엘, 27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했어요. 그렇다면 은 지금 말로 하면 27년 동안 합숙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과 전혀 상관없는 또 그두로와 그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3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했어요. 아브라함의 모든 삶을 봤어요. 여러분 심지어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다음에 나오는 부분인데 야곱과 에서가 나오잖아요. 여러분 야곱과 에서를 이삭이 몇 세에 낳은 줄 아십니까? 60세에 낳았습니다. 40세 때에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해서 20년 동안 아이가 없다가 60세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러면은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다 하잖아요. 야곱과 에서를 이삭이 60세에 낳았다면 은 계산해보면 15년 동안에 아브라함의 삶을 본겁니다. 에서조차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전혀 언약과 상관없는 물론 하나님이 택하신 언약의 백성 이삭이었지만은 그러나 이 부분을 그냥 볼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언약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이 사실 놓고 고민하고 이 사실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 가진 1세대로써 아무리 신앙생활에 축복을 누렸다 할지라도 내 후대에게 내 자녀에게 이 언약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실패한 겁니다. 그 후대가운데 미디안 족속 같은 이런 후대가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진짜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진짜 기도하고 눈물 흘려야 될 것은 내가 가진 복음의 언약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어떤 분은 자기 자녀들 결혼시키기 위해서 인사하러 와가지고 이야기해요 “목사님, 제가 아이를 신앙 안에서 바르게 키우지 못한 것 너무 죄송합니다.” 여러분 언약 안에서 언약의 가치를 보고 우리 자녀들 보니깐 그런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 고민, 갈등, 기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의 엄청난 축복된 역사들이 우리 당대 1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들이 계속 전달되어야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 전달되었고 이삭에게 주어진 언약이 야곱에게 전달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요셉에게 전달되니깐 세계복음화 역사가 일어났어요. 여러분 가진 언약이 후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이 축복된 역사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언약 밖에 있던 자들에게 아브라함이 많은 물질을 줬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언약의 축복을 놓쳐 버렸는데, 여러분 그두로와 그의 자녀에게도 아브라함은 재산을 줬습니다. 하갈과 그의 자녀들에게도 아브라함은 재산을 줬습니다. 여러분 육신적인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이 중요한 언약을 놓쳐 버리고 언약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육신적인 축복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가장 중요한 언약이 여러분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는데, 1부, 2부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 이제 본당에 예배드리는 자리들을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정말로 지금 한국 교회 문제가 있다면 후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유럽 교회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인이 뭐냐? 1950년대 1970년대에 주일학교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부흥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어요. 아니, 젊은이들이 50%이상이 나는 무종교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종교가 필요 없고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50%이상이 넘어섰어요. 또한 믿음의 가정 속에서 자녀들도 그냥 초등학교일 때 마지못해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니는데 어느 정도 자기 머리로 계산할 때가 되면 은 지금 믿음의 자녀들 조차고 한 20%이상이 부모만 믿는 신앙을 강요하지 말라고. 이렇게 보고가 나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가 후대를 기도에 담고 마음에 담고 인도 받지 않는다면 30년 후데 유럽교회처럼 된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3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와있는 겁니다. 오늘 주일 학교 데이를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서 알고 그들에 대한 기도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실제로 기도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은혜 받고 언약을 이루어 가는 이 일에 중심적인 자리에 우리 아이들을 쓰고자 합니다. 그래서 교회 모든 분위기들도 물론 장년들에 의해 돈이 나와요. 그러나 여러분 장년들은 발판되어지면 되고요 장년 중심해서 차세대로 교회 분위기도 바뀌어져야 되요. 그래야 한국 교회 미래가 있는 겁니다. 우리 어르신들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때문에 아이들이 복음을 가지게 되었고요. 이 복음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이 복음의 역사 가운데 세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발판입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 후대들이 이 언약 가운데, 세워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우리 대에 이 복음의 역사 언약의 역사가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 후대들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앞자리로 마련하려고 합니다. 앞에 나온다고 은혜 받느냐? 물론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아이들이 보면 은 전부다 사각지대에 있어요. 원래 저 나이 또래에 어둠침침한 것을 좋아 합니다. 또, 중고등부 예배 마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마치면 아마,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서 사이드로 자리 잡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부장 장로님들, 교사 분들 중심해서 아이들을 앞자리로 옮기세요. 앞자리에 아이들 앉아서 진짜 너무나 귀중한 것 아닙니까? 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민족들도 앞자리로 옮기고요 진짜 은혜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자리로 앉을 수 있도록. 이 부분을 운영 위원회에 말씀 드렸더니만 감사하게도 당회에 같이 말씀드려가지고 그렇게 하자고 하자라고 이야기 되었어요. 지금 보면 은 제 눈 안에 어느 분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다 들어와요. 그 자리를 사수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 자리로 오면 은 떠 밉니다. 이건 내 자리라는 것이지요. 안에 자리 있는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요. 그건 좋은 건데, 그런데 네 자리, 내 자리 없이 진짜 무론 장로님들도 앞자리에 앉으셔서 은혜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다민족들 은혜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한나라를 살리는 그 응답을 저들이 누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진짜 내가 말씀에 대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갈급한 마음으로 받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말씀 받을 수 있도록 자리들을 양보하고 그래서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그런 분위기를 통해서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 바른 언약이 전달되도록 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부분들 답을 가지세요. 지금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그 후대 자녀들을 보면서 우리가 결론으로 가져야 할 것이 뭡니까? 정말로 먼저 우리 자신들이 복음에 대한 언약에 대한 부분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시편34편 8절에 보면 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알고 믿음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그 사실 체험해야 합니다. 나는 복음을 가지고 믿음을 선택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응답을 주셨다. 여러분, 롯이 아브라함을 바라봤잖아요. 사실 아브라함은 복음가지고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가병 318명과 모든 축복을 다 쏟은 사실을 보게 되요. 그냥 단순히 복음알고 믿음 선택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어요. 복음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복음을 아는 것에 끝나지 말고, 여러분에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맛보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진짜 내가 복음 알고, 예배의 축복을 회복 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축복을 맛보는 것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주어진 말씀을 가지고, 말씀 붙잡고 오는 응답은 아무도 막을 수 없고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응답이 예배 통해서 주어진 말씀 붙잡고 응답 받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잖아요. 이 말씀 붙잡고 여러분 현장에서 말씀 따라 오면서 말씀 가지고 기도 하면서 응답 받는 것은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예배의 축복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맛을 아는 증인으로 여러분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복음 알고, 현장에 인생의 12가지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여러분 현장에 숨겨진 문제, 창세기3,6,11장의 문제를 다 숨겨 놓고 있어요. 내 중심이고, 눈에 보이는 대로 물질 따라 살아가는데 다 그렇지 않다고 숨겨놓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신과 점술과 우상에 빠져서 무속인에게 돈 갖다 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 그리고 현장에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저주의 문제, 그 모든 현장에 12가지 인생의 문제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지는 그 사실을 체험하는 맛보아 깨닫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갈등하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체험 하도록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겠다. 하신 것입니다. 시편18편 1절~2절에 보면 은 다윗이 사망의 고통의 현장에서 임마누엘의 역사들을 체험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 1절에 보면 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사망의 고통가운데서 임마누엘을 누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죠 그러면서 2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이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로다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 어떤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의 비밀을 다윗이 누림 통해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에 서론 부분에 말씀했던 것처럼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냥 말한 것이 아니고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바울이 체험한 것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방법,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 사실들을 바울이 체험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약 그리스도 그 한 가지 붙잡는데 그 안에 모든 환경들, 상황들, 일들 이길 수 있는 그 축복된 역사들이 따라 옴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언약은 영적인 과학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그 약속 붙잡게 될 때, 그 하나 속에 모든 축복된 응답이 다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에 증인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고, 언약 안에 있으면서 갈등하거나 실패하지 말고 언약을 소유하고 누리면서 체험하면서 축복을 누리며 이일에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증인의 축복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언약, 그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이 언약이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저들 되게 하시고, 이 언약 하나 붙잡았는데, 여기에 모든 것 회복 되는 이 일에 증인 되어지는 귀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8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공과 실패의 기준
(창25:1-18)
서론: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 염려, 근심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갈등하지 말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아무 것도 염려 하지 않을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갈등과 염려 앞에서 응답으로 바꾸고 승리했습니다(요셉, 에녹). 하나님이 세상을 볼 때에는 멸망 받을 세상으로 봤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엡2:1, 마9:36). 열심, 노력,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 한 가지를 가지게 될 때 모든 환경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1. 언약의 축복을 알아야 함
가. 언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확인(조건 없이 먼저 주신 것)
- 아브라함(창12:1-3), 요셉(창37:1-11), 다윗(삼상16:13), 베드로(마4:19), 오늘 날 우리(행1:8)
나. 여러가지 일들을 당함 - 언약 성취의 과정(흔들리지 말고 속지말라)
1) 사단의 속임수 - 교회 나가지 못 하도록, 은혜 받지 못 하도록, 기도응답 받지 못 하도록, 전도 하지 못 하도록
2) 아브라함(아들이 없음), 요셉(노예, 감옥), 다윗(기름 부음을 받은 후 사울의 방해) - 언약은 반드시 성취
다. 언약의 축복은 무엇인가?
1) 절대로 망하지 않음(요3:16, 요10:28-29)
2)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심(롬8:28)
3) 승리의 길로 인도(롬8:30)
2. 언약 속에 있으면서 언약을 놓친 사람들
가. 그루라와 그 자녀들(미디안 족속 -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괴롭힘, 기드온 300 용사와 싸운 족속)
나. 하갈과 이스마엘 - 이슬람교가 나옴(지금까지도 분쟁)
다. 내게 주신 언약을 후대들에게 전달 - 반드시 열매 맺음
라. 반드시 체험 해야 할 복음의 맛 - 시34: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1) 복음을 알고 믿음을 선택 했을 때 응답 주시는 것을 체험
2) 복음을 누리며 예배의 축복을 체험
3) 인생의 12가지 문제의 현장을 체험
결론: 구원 받은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갈등하고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한 가지를 붙잡는데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축복이 따라 오게 됩니다. 그리스도 언약은 영적인 과학입니다. 그리스도 속에 모든 축복이 보장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증인으로 서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