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교는 영적갈망에서(박창복 선교사)
2019-02-1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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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선교예배Ⅰ 박창복 선교사
“최고의 선교는 영적 갈망에서”
(시63:1~11)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시63:1~11
■ 여러분, 옆에 분들하고 또 앞뒤로 보시면서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고 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축복을 선포합니다. 당신은 복의 근원입니다.
1970년대 80년대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고 열망했던 것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오랜 군부독재를 통해서 억눌림 당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러한 가운데서 이러한 우리에게도 자유를 좀 달라 이런 민주화에 대한 갈망들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경제부흥에 대한 갈망들이 일어났습니다. 해년마다 보리고개를 넘었지 않습니까? 가난에 찌든 삶들이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한 번 잘 살아봐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런 경제부흥에 대한 갈망들이 또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갈망을 통해서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어졌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많이 미흡하겠지요. 그렇지만 인권에 대한 생각이나 흐름들이 상당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경제가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상당히 많은 진흥과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아마 이런 갈망과 열망들의 중요한 결과로 볼 수 있겠지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인생의 어떤 갈망들이 있습니까? 무슨 갈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고요, 어떤 분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잘 살아보고 싶은 그런 갈망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많은 갈망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영적인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영적인 부흥에 대한 목마름들이 있습니까? 세상 모든 좋은 갈망을 다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영적인 갈망이 없다면 그 인생은 죽은 인생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육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갈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잘 살아보고 싶고, 좀 더 재밌는 세상을 살아보고 싶고,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그런 갈망을 원하지만 영적인 부흥에 대해서는, 영적인 갈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도, 교회도 나도 점점 힘들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잘 들여다 보십시오. 저주와 재앙이 난무합니다. 수많은 고통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물질이 없어서일까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우리 인생들 속에 영적인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느냐 이 사실이 안 되면 우리의 삶 자체는 고통과 파멸 속으로 빠져갈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성도여러분 어떻게 하면 영적인 부흥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슬로건은 영적인 부흥을 내뱉고 있습니다. 또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적인 부흥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단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면 가장먼저 내 자신이 삽니다. 내가 살고 나면 가정이 살겠지요. 가정이 살면 교회가 살아납니다. 교회가 살아나면 세상이 살고, 모든 사회가 살아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미스바 부흥 운동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모든 백성들을 전부 다 미스바로 불러들였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너희 속에 있는 모든 우상 단지를 다 내어 던지고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 소위 말하는 영적인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영적인 부흥은 이스라엘 전체를 살리는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시아 왕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읽는 가운데서 옷을 찢고 마음을 찢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불신앙했습니다. 우리가 우상 숭배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갈망들이요 이스라엘 성전을 새롭게 바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무수한 핍박과 환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처절한 고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그 초대교회 안에 영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운동의 여파에는 결국에는 로마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 속에, 또 교회 속에, 내 삶 속에 영적인 부흥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오늘 영적인 부흥이라 했을 때에 무엇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될까요? 무조건 영적인 부흥이다. 그것은 아니겠지요. 뭔가 사실적인 응답들이 영적인 함께 따라와야 될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을 위해서는 요 가장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갈망
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될까요?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요, 가장 시급하고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야 되거든요. 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일까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정말로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참 주인이심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삶 속에 영적인 부흥이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창세기3장 문제이지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서,,,우리는 늘 사역을 하면서 창세기3장, 창세기3장 얼마나 부르짖어 왔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이 창세기3장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될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요. 교회 들어오실 때에 보면 넥타이 메고, 화장도 하고, 예쁜 옷도 입으시고 그러면 아! 저사람 참 잘 사네, 참 행복하겠네, 보십시오. 그 사람의 삶 깊은 곳에 들어가서 보면요 전부 곪아 터져 있습니다. 문제없는 가정, 문제없는 인생이 없더라고요, 어떤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아파트에 사시는데요, 얼마나 아파트가 큰지 저 끝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액자며, 소파며, 책장이며 너무 좋더라고요, 아! 참 잘 사시는구나 그런데 앉아서 대화를 시작하는데 목사님 나는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과거에 참 잘 났는데, 잘 살았는데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 속으로 그렇구나 이게 우리 인생들의 현실이구나, 다시 말씀 드립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참 화려합니다. 정치인들, 연예인들, 권력자들 보십시오. 얼마나 괴도를 누리고, 얼마나 힘을 사용하고, 얼마나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다 썩어 빠졌습니다. 우리 나아만 장군 잘 알지 않습니까? 갑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황금마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갑옷을 벗어 젖히는 순간에는 썩어져 가는 자기의 폐부가 들어났습니다. 자기의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최고로 성공을 했는데, 최고로 인기를 얻었는데요, 최고로 잘 살았는데, 그런데 더 이상 살 수 없는 가장 위기 속에 빠져가는 인생, 그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나아만 장군이었습니다. 누가복음16장에 보시면 부자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 부자에 대해서 서두에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날마다 호화로이 열락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잔치를 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쩌다 한번 잔치를 해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파티를 했다. 날마다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갈급했으면, 얼마나 그 인생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든지 날마다 잔치할 정도로 이게 인생들의 현 주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만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갈망하는 인생이 되어져야 되겠지요. 시편42:1~2절에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기자가 하는 말입니다. 내 영혼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여러분 그냥 바라보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갈망할 때에 우리의 모든 영들이 살아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시편63편1절에서 오늘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 하나이다” 오늘 다윗이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바라보나이다. 다윗은 순간적으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아니 하나님을 갈망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정도 하나님을 갈망하십니까? 우리 하루 24시간을 살잖아요. 그 24시간 중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갈망하십니까? 아니 어느 정도 하나님을 생각하십니까? 돈 버는 일에는요, 열심히, 아니 온 종일 투자를 합니다. 사람 만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즐거워하는 일에 대해서는요, 하루 종일 생각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24시간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생각하십니까? 어느 정도 하나님을 갈망 하십니까? 우리 류목사님 늘 말씀하시는 것이 24, 그 24시간 동안 얼마나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갈망하며, 얼마나 전적으로 바라보느냐 이 사실이 안 되면 절대로 영적인 부흥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첫째는 하나님을 갈망할 때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도록 되게 되어 있습니다.
2. 예배에 대한 갈망
두 번째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정말로 여러분 인생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갈망하셔야 되고요, 두 번째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반드시 일어나야 됩니다. 자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시편 5편입니다. 우리 63편 읽었는데요, 앞으로 조금만 넘어가시면 시편 5편이 나타나는데요, 그 5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5:7절입니다. 찾았으면 한 음성으로 합독을 할까요?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 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다윗의 모든 중심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내가 예배하리이다.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이지요. 예배를 갈망했다는 말입니다. 자 이제는 좀 넘어갈까요? 시편 84편으로 한번 넘어가겠습니다. 시편84편1~4절까지요. 자 여기보시면 고라 자손들이 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찾았으면 같이 한 음성으로 합독을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아멘. 자, 이 시편기자가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해 졌다고 했습니다.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로 이어졌다는 것이지요. 자, 다시 한번 여쭈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예배에 대한 갈망들이 얼마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예배는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고, 바쁘고 피곤하면 조금 뒤로 물러날 수도 있고, 혹시라도 그렇게들 생각을 하십니까? 착각에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배 없는 인생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예배에 대한 갈망이 없는 성도들, 절대로 믿음이 좋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미국에서 저희들 교회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기를 예배가 안 되면서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 젊었을 때 연인들을 만나지 않습니까? 하루종일 만납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그래서 헤어졌는데 돌아서고 나면 또 만나고 싶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루종일 만났는데. 돌아서면 또 만나고 싶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또 만나러 가고 싶고. 사랑하니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이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만나는 그 시간들보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그 예배 시간들이 더 갈망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내 삶 속에 예배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됩니까? 그게 개인 예배든지 공적 예배든지. 그렇다면 지금 내 신앙은 엉뚱한 길로 가고 있구나, 내가 하나님께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구나, 이 사실이 확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왜 예배의 축복을 놓쳤는지 아십니까? 언약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배의 축복을 놓쳤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그들은 주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몰록.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 이제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 풍성하게 결실을 얻어야 하지 않느냐, 그 마음 때문에. 결국에는 우상을 섬기는 일에 크게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 말은 주인을 놓쳤다는 말입니다. 그 절정의 사건이 갈멜 산상에서 나타납니다. 그 갈멜 산상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선지자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아합 왕, 이세벨 왕후, 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자리에 전부 다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들이 언제까지 두 사이에 끼어 있겠느냐?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어서 언제까지 머뭇머뭇하겠느냐? 쉽게 말하면, 언제까지 눈치만 보고 살겠느냐? 그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입니다.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여차하면 저 바알에게로, 또 상황이 안 되면 하나님에게로. 항상 두 가지 사이에 끼어서 머뭇머뭇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요구입니다. 언제까지 너희들이 이 두 가지 사이에 끼어서 머뭇하고 있겠느냐? 하나님을 택하든지 세상을 택하든지. 하나님을 택하든지 우상을 택하든지. 어떤 면에서 지금 오늘날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모습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하나님도 섬기고 때로는 세상 재미도 보고. 하나님만 섬기려고 하니 세상 재미가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세상으로 흘러가자니 하나님이 한 방 치실 것 같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늘 두 가지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인을 놓치면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만 섬기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늘 우리의 생각이 육신에, 세상에 머물러 있다 보니까 섬겨야 할 우리 하나님의 그 자리를 자꾸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을 달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자리에 있지도 못하면서 늘 우리는 복 받기를 또 원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신앙,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감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나는 얼마나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맞다면 그 인생은 예배에 성공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늘 세상으로, 육신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 신앙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배가 안 되면 여러분, 영적인 부흥? 절대로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말씀에 대한 갈망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적 부흥을 원하신다면 세 번째 도전해야 할 갈망은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왜냐 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천하없어도 말씀이 내 귀에 들리지 않으면 그 인생은 살 수가 없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성도님들이 앉아 계십니다. 똑같은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 있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그래, 맞아. 저 말씀은 내 말씀이야. 내가 사는 길이야. 아멘, 아멘. 또 어떤 분들은 똑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데 들리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뭐라 말씀합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다 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을 하느냐 하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귀에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들리는 인생은 그 영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그 영이 점차 죽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루는 우리 예수님께서 마리아, 마르다의 집에, 두 자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마르다가 얼마나 좋았던지. 언니이겠지요? 막 분주하게 설치면서 음식을 준비하고 장만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뭘 좋아하실까, 뭘 드시면 좋을까,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동생 마리아는 꼼짝을 하지 않고 예수님 턱 밑에 딱 앉아 있습니다. 아니, 음식을 만드는데 좀 도와줘야 하지 않습니까, 동생이? 그런데 예수님 턱 밑에 딱 앉아서 꼼짝을 안 합니다. 그래서 이제 마르다가 예수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지금 음식을 장만하는데 너무 바쁘고 분주합니다, 제 동생 마리아에게 좀 도와주라고 이야기를 한번 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을 했습니까? 놔둬라, 마리아는 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노라. 말씀 듣는 일에, 거기에 중심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시면 앞으로 나는 식당에 안 들어가도 되겠네, 하여튼 말씀을 이상하게 듣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뭐가 중요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엠마오로 간 두 제자, 낙심하고 너무 마음이 지금 떨어져 있습니다. 그때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할 때에 말씀을 풀어 주십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이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제 예수님이 떠났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예수님이 떠나시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마음이 뜨겁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주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때부터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모든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다윗이 성공했을까요, 여러분? 다윗이 성공할 수 있었던 최고의 비결이 있다면 말씀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을 다시 볼까요? 시63:6입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자, 오늘 이 6절에서 뭐라 말씀을 하지요? 내가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이 말은, 읊조린다는 말은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다윗이 성공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 성공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루가 종일 지나도 하나님 말씀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아니,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성공자 다윗을 보십시오. 새벽녘에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읊조렸다, 묵상했다고 합니다. 성령 인도 받겠지요. 모든 걸음걸음이 하나님의 인도로 채워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한 군데만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19편입니다. 자, 거기서는 또 뭐라 말씀을 하느냐? 시119:147~148 말씀, 두 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다윗이 했던 똑같은 말이 나타나는데 147절, 148절, 우리 두 절을 찾았으면 같이 한 음성으로 합독을 합니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에, 또 아침에 눈 뜨시면 가장 먼저 무얼 하십니까? 화장실 가기 바쁩니다. 냉장고 문 열어서 시원한 물을 마시는 분도 계십니다. 신문을 펼쳐 드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다윗도, 시편 기자도 새벽녘에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응답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꼭 갈망하십시오. 정말로 내가 사는 길이 무엇일까요? 돈을 좀 더 버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사업을 확장하는 것?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꼭 갈망하십시오. 그리 하면 반드시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제가 갈망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배에 대한 갈망, 말씀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왜 자꾸만 갈망이라는 말을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최고의 선교는 내가 먼저 사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천하없어도 내 영혼이 살지 못하면 내 인생 속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면 전도도 선교도 세계복음화도, 우리 늘 외치고 있는 237개 나라도 여러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죽어 있는데, 내 영혼이 너무 죽어 있는데 무슨 현장을 살려내겠습니까? 최고의 선교는 내 영이 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배에 대한 갈망,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갈망. 이 갈망들을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것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꾸만 사람 봅니다. 환경 바라봅니다. 물질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질도 사람도 환경도 절대로 우리 인생을 축복된 인생으로 이끌어나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갈망하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요 말씀이요 예배입니다. 이 갈망들이 일어날 때에 우리의 모든 영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만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옛날에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를 봤습니다. 사슴이 들판에서 열심히 뛰어놀았습니다. 한참 놀다 보니 목이 마르겠지요. 그래서 호숫가로 가서 물을 이제 마시는데, 보통 사슴들은 물을 마실 때 경계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슴은 얼마나 목이 말랐던지 별로 경계심도 없이 그냥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뒤편에서 몰래몰래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나레이터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 저 사슴 큰일 났군요. 사자가 뒤에서 다가오는 줄을 알지 못하고 있군요. 이게 나레이터가 한 말입니다. 끝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이 사슴이 사자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죽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봤습니다. 물론 사슴은 잡아먹혔지만 그 물 마시는 일에 모든 전력을 다했습니다.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이 뭘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참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것 바라보지 말아야 하겠구나. 정말로 갈망하며 살아가야 할 부분은 하나님밖에는 없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이 갈망이라는 이 현실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고 계십니까? 우리 세상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현장 살려야 합니다. 지금 부르짖고 있는 237개 나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는 내가 영적으로 살 때에 이 일이 하나씩 하나씩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살아가실 때, 또 남은 모든 인생 속에 하나님을 갈망하시고 예배 갈망하시고 말씀 갈망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에 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시고 세상 살리는 최고의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2월 17일 주일 2부 예배 박창복 선교사
최고의 선교는 영적갈망에서
(시63:1-11)
서론: 많은 사람들이 갈망 하는 것이 있습니다(자유, 경제). 하지만 영적 부흥에 대한 목마름, 갈망은 없습니다. 영적 갈망이 없다면 죽은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인 갈망이 있지만 영적인 갈망은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 갈망으로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나 자신이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적 갈망이 있어야 됩니까?
1.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함
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심
1) 모든 문제는 창3장 사건에서 시작
2)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모든 인생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나아만 장군, 부자와 나사로) - 인생의 현주소
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만나는 인생이 되어야 함
1)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시63:1)
2) 하나님을 갈망하며 살아갈 때 영적 부흥이 일어남
2.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함
가.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에 있어야 함
1)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시5:7)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시84:1-4)
나. 예배 없는 인생은 믿음이 없는 것임
1) 내 삶에서 예배가 되어지지 않는다면 내 신앙은 엉뚱한 길로 갈 수 밖에 없음
2) 주인을 놓침으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 - 예배가 안 되어짐
다.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사람은 예배에 성공 할 수 있음
3.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함
가. 말씀 -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최고의 방편
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최고의 응답 -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영이 죽게 됨
1) 모든 인생의 방향이 결정
2) 다윗은 말씀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음 -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시63:6, 시119:147-148)
다. 내가 사는 길 - 삶 속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는 것(영적부흥)
결론: 최고의 선교는 내가 먼저 사는 것에서 시작 됩니다. 내 영혼이 살아나지 못 하고, 내 영혼의 부흥이 되지 않으면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배에 대한 갈망, 말씀에 대한 갈망을 통해 내 영혼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 가지에 갈망함으로 인생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며 세상 살리는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최고의 선교는 영적 갈망에서”
(시63:1~11)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시63:1~11
■ 여러분, 옆에 분들하고 또 앞뒤로 보시면서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고 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축복을 선포합니다. 당신은 복의 근원입니다.
1970년대 80년대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고 열망했던 것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오랜 군부독재를 통해서 억눌림 당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러한 가운데서 이러한 우리에게도 자유를 좀 달라 이런 민주화에 대한 갈망들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경제부흥에 대한 갈망들이 일어났습니다. 해년마다 보리고개를 넘었지 않습니까? 가난에 찌든 삶들이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한 번 잘 살아봐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런 경제부흥에 대한 갈망들이 또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갈망을 통해서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어졌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많이 미흡하겠지요. 그렇지만 인권에 대한 생각이나 흐름들이 상당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경제가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상당히 많은 진흥과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아마 이런 갈망과 열망들의 중요한 결과로 볼 수 있겠지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인생의 어떤 갈망들이 있습니까? 무슨 갈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고요, 어떤 분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잘 살아보고 싶은 그런 갈망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많은 갈망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영적인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영적인 부흥에 대한 목마름들이 있습니까? 세상 모든 좋은 갈망을 다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영적인 갈망이 없다면 그 인생은 죽은 인생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육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갈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잘 살아보고 싶고, 좀 더 재밌는 세상을 살아보고 싶고,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그런 갈망을 원하지만 영적인 부흥에 대해서는, 영적인 갈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도, 교회도 나도 점점 힘들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잘 들여다 보십시오. 저주와 재앙이 난무합니다. 수많은 고통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물질이 없어서일까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우리 인생들 속에 영적인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느냐 이 사실이 안 되면 우리의 삶 자체는 고통과 파멸 속으로 빠져갈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성도여러분 어떻게 하면 영적인 부흥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슬로건은 영적인 부흥을 내뱉고 있습니다. 또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적인 부흥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단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면 가장먼저 내 자신이 삽니다. 내가 살고 나면 가정이 살겠지요. 가정이 살면 교회가 살아납니다. 교회가 살아나면 세상이 살고, 모든 사회가 살아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미스바 부흥 운동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모든 백성들을 전부 다 미스바로 불러들였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너희 속에 있는 모든 우상 단지를 다 내어 던지고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 소위 말하는 영적인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영적인 부흥은 이스라엘 전체를 살리는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시아 왕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읽는 가운데서 옷을 찢고 마음을 찢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불신앙했습니다. 우리가 우상 숭배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갈망들이요 이스라엘 성전을 새롭게 바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무수한 핍박과 환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처절한 고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그 초대교회 안에 영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운동의 여파에는 결국에는 로마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 속에, 또 교회 속에, 내 삶 속에 영적인 부흥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오늘 영적인 부흥이라 했을 때에 무엇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될까요? 무조건 영적인 부흥이다. 그것은 아니겠지요. 뭔가 사실적인 응답들이 영적인 함께 따라와야 될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을 위해서는 요 가장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갈망
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될까요?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요, 가장 시급하고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야 되거든요. 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일까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정말로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참 주인이심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삶 속에 영적인 부흥이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창세기3장 문제이지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서,,,우리는 늘 사역을 하면서 창세기3장, 창세기3장 얼마나 부르짖어 왔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이 창세기3장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될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요. 교회 들어오실 때에 보면 넥타이 메고, 화장도 하고, 예쁜 옷도 입으시고 그러면 아! 저사람 참 잘 사네, 참 행복하겠네, 보십시오. 그 사람의 삶 깊은 곳에 들어가서 보면요 전부 곪아 터져 있습니다. 문제없는 가정, 문제없는 인생이 없더라고요, 어떤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아파트에 사시는데요, 얼마나 아파트가 큰지 저 끝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액자며, 소파며, 책장이며 너무 좋더라고요, 아! 참 잘 사시는구나 그런데 앉아서 대화를 시작하는데 목사님 나는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과거에 참 잘 났는데, 잘 살았는데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 속으로 그렇구나 이게 우리 인생들의 현실이구나, 다시 말씀 드립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참 화려합니다. 정치인들, 연예인들, 권력자들 보십시오. 얼마나 괴도를 누리고, 얼마나 힘을 사용하고, 얼마나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다 썩어 빠졌습니다. 우리 나아만 장군 잘 알지 않습니까? 갑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황금마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갑옷을 벗어 젖히는 순간에는 썩어져 가는 자기의 폐부가 들어났습니다. 자기의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최고로 성공을 했는데, 최고로 인기를 얻었는데요, 최고로 잘 살았는데, 그런데 더 이상 살 수 없는 가장 위기 속에 빠져가는 인생, 그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나아만 장군이었습니다. 누가복음16장에 보시면 부자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 부자에 대해서 서두에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날마다 호화로이 열락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잔치를 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어쩌다 한번 잔치를 해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파티를 했다. 날마다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갈급했으면, 얼마나 그 인생에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든지 날마다 잔치할 정도로 이게 인생들의 현 주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만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갈망하는 인생이 되어져야 되겠지요. 시편42:1~2절에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기자가 하는 말입니다. 내 영혼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여러분 그냥 바라보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갈망할 때에 우리의 모든 영들이 살아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시편63편1절에서 오늘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 하나이다” 오늘 다윗이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바라보나이다. 다윗은 순간적으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아니 하나님을 갈망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정도 하나님을 갈망하십니까? 우리 하루 24시간을 살잖아요. 그 24시간 중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갈망하십니까? 아니 어느 정도 하나님을 생각하십니까? 돈 버는 일에는요, 열심히, 아니 온 종일 투자를 합니다. 사람 만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즐거워하는 일에 대해서는요, 하루 종일 생각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24시간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생각하십니까? 어느 정도 하나님을 갈망 하십니까? 우리 류목사님 늘 말씀하시는 것이 24, 그 24시간 동안 얼마나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갈망하며, 얼마나 전적으로 바라보느냐 이 사실이 안 되면 절대로 영적인 부흥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첫째는 하나님을 갈망할 때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도록 되게 되어 있습니다.
2. 예배에 대한 갈망
두 번째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정말로 여러분 인생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갈망하셔야 되고요, 두 번째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반드시 일어나야 됩니다. 자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시편 5편입니다. 우리 63편 읽었는데요, 앞으로 조금만 넘어가시면 시편 5편이 나타나는데요, 그 5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5:7절입니다. 찾았으면 한 음성으로 합독을 할까요?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 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다윗의 모든 중심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내가 예배하리이다.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이지요. 예배를 갈망했다는 말입니다. 자 이제는 좀 넘어갈까요? 시편 84편으로 한번 넘어가겠습니다. 시편84편1~4절까지요. 자 여기보시면 고라 자손들이 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찾았으면 같이 한 음성으로 합독을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아멘. 자, 이 시편기자가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해 졌다고 했습니다.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로 이어졌다는 것이지요. 자, 다시 한번 여쭈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예배에 대한 갈망들이 얼마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예배는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고, 바쁘고 피곤하면 조금 뒤로 물러날 수도 있고, 혹시라도 그렇게들 생각을 하십니까? 착각에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배 없는 인생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예배에 대한 갈망이 없는 성도들, 절대로 믿음이 좋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미국에서 저희들 교회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기를 예배가 안 되면서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 젊었을 때 연인들을 만나지 않습니까? 하루종일 만납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그래서 헤어졌는데 돌아서고 나면 또 만나고 싶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루종일 만났는데. 돌아서면 또 만나고 싶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또 만나러 가고 싶고. 사랑하니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이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만나는 그 시간들보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그 예배 시간들이 더 갈망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내 삶 속에 예배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됩니까? 그게 개인 예배든지 공적 예배든지. 그렇다면 지금 내 신앙은 엉뚱한 길로 가고 있구나, 내가 하나님께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구나, 이 사실이 확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왜 예배의 축복을 놓쳤는지 아십니까? 언약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배의 축복을 놓쳤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그들은 주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몰록.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 이제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 풍성하게 결실을 얻어야 하지 않느냐, 그 마음 때문에. 결국에는 우상을 섬기는 일에 크게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 말은 주인을 놓쳤다는 말입니다. 그 절정의 사건이 갈멜 산상에서 나타납니다. 그 갈멜 산상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선지자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아합 왕, 이세벨 왕후, 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자리에 전부 다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들이 언제까지 두 사이에 끼어 있겠느냐?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어서 언제까지 머뭇머뭇하겠느냐? 쉽게 말하면, 언제까지 눈치만 보고 살겠느냐? 그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입니다.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여차하면 저 바알에게로, 또 상황이 안 되면 하나님에게로. 항상 두 가지 사이에 끼어서 머뭇머뭇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요구입니다. 언제까지 너희들이 이 두 가지 사이에 끼어서 머뭇하고 있겠느냐? 하나님을 택하든지 세상을 택하든지. 하나님을 택하든지 우상을 택하든지. 어떤 면에서 지금 오늘날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모습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하나님도 섬기고 때로는 세상 재미도 보고. 하나님만 섬기려고 하니 세상 재미가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세상으로 흘러가자니 하나님이 한 방 치실 것 같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늘 두 가지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인을 놓치면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만 섬기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늘 우리의 생각이 육신에, 세상에 머물러 있다 보니까 섬겨야 할 우리 하나님의 그 자리를 자꾸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을 달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자리에 있지도 못하면서 늘 우리는 복 받기를 또 원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신앙,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감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나는 얼마나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맞다면 그 인생은 예배에 성공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늘 세상으로, 육신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 신앙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배가 안 되면 여러분, 영적인 부흥? 절대로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말씀에 대한 갈망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적 부흥을 원하신다면 세 번째 도전해야 할 갈망은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왜냐 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천하없어도 말씀이 내 귀에 들리지 않으면 그 인생은 살 수가 없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성도님들이 앉아 계십니다. 똑같은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 있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그래, 맞아. 저 말씀은 내 말씀이야. 내가 사는 길이야. 아멘, 아멘. 또 어떤 분들은 똑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데 들리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뭐라 말씀합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다 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을 하느냐 하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귀에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들리는 인생은 그 영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그 영이 점차 죽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루는 우리 예수님께서 마리아, 마르다의 집에, 두 자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마르다가 얼마나 좋았던지. 언니이겠지요? 막 분주하게 설치면서 음식을 준비하고 장만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뭘 좋아하실까, 뭘 드시면 좋을까,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동생 마리아는 꼼짝을 하지 않고 예수님 턱 밑에 딱 앉아 있습니다. 아니, 음식을 만드는데 좀 도와줘야 하지 않습니까, 동생이? 그런데 예수님 턱 밑에 딱 앉아서 꼼짝을 안 합니다. 그래서 이제 마르다가 예수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지금 음식을 장만하는데 너무 바쁘고 분주합니다, 제 동생 마리아에게 좀 도와주라고 이야기를 한번 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을 했습니까? 놔둬라, 마리아는 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노라. 말씀 듣는 일에, 거기에 중심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시면 앞으로 나는 식당에 안 들어가도 되겠네, 하여튼 말씀을 이상하게 듣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뭐가 중요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엠마오로 간 두 제자, 낙심하고 너무 마음이 지금 떨어져 있습니다. 그때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할 때에 말씀을 풀어 주십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이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제 예수님이 떠났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예수님이 떠나시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마음이 뜨겁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주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때부터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모든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다윗이 성공했을까요, 여러분? 다윗이 성공할 수 있었던 최고의 비결이 있다면 말씀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을 다시 볼까요? 시63:6입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자, 오늘 이 6절에서 뭐라 말씀을 하지요? 내가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이 말은, 읊조린다는 말은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다윗이 성공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 성공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루가 종일 지나도 하나님 말씀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아니,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성공자 다윗을 보십시오. 새벽녘에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읊조렸다, 묵상했다고 합니다. 성령 인도 받겠지요. 모든 걸음걸음이 하나님의 인도로 채워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한 군데만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19편입니다. 자, 거기서는 또 뭐라 말씀을 하느냐? 시119:147~148 말씀, 두 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다윗이 했던 똑같은 말이 나타나는데 147절, 148절, 우리 두 절을 찾았으면 같이 한 음성으로 합독을 합니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에, 또 아침에 눈 뜨시면 가장 먼저 무얼 하십니까? 화장실 가기 바쁩니다. 냉장고 문 열어서 시원한 물을 마시는 분도 계십니다. 신문을 펼쳐 드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다윗도, 시편 기자도 새벽녘에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응답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꼭 갈망하십시오. 정말로 내가 사는 길이 무엇일까요? 돈을 좀 더 버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사업을 확장하는 것?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꼭 갈망하십시오. 그리 하면 반드시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제가 갈망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배에 대한 갈망, 말씀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왜 자꾸만 갈망이라는 말을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최고의 선교는 내가 먼저 사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천하없어도 내 영혼이 살지 못하면 내 인생 속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면 전도도 선교도 세계복음화도, 우리 늘 외치고 있는 237개 나라도 여러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죽어 있는데, 내 영혼이 너무 죽어 있는데 무슨 현장을 살려내겠습니까? 최고의 선교는 내 영이 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배에 대한 갈망,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갈망. 이 갈망들을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것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자꾸만 사람 봅니다. 환경 바라봅니다. 물질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질도 사람도 환경도 절대로 우리 인생을 축복된 인생으로 이끌어나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갈망하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요 말씀이요 예배입니다. 이 갈망들이 일어날 때에 우리의 모든 영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만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옛날에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를 봤습니다. 사슴이 들판에서 열심히 뛰어놀았습니다. 한참 놀다 보니 목이 마르겠지요. 그래서 호숫가로 가서 물을 이제 마시는데, 보통 사슴들은 물을 마실 때 경계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슴은 얼마나 목이 말랐던지 별로 경계심도 없이 그냥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뒤편에서 몰래몰래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나레이터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 저 사슴 큰일 났군요. 사자가 뒤에서 다가오는 줄을 알지 못하고 있군요. 이게 나레이터가 한 말입니다. 끝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이 사슴이 사자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죽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봤습니다. 물론 사슴은 잡아먹혔지만 그 물 마시는 일에 모든 전력을 다했습니다.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이 뭘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참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것 바라보지 말아야 하겠구나. 정말로 갈망하며 살아가야 할 부분은 하나님밖에는 없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이 갈망이라는 이 현실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고 계십니까? 우리 세상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현장 살려야 합니다. 지금 부르짖고 있는 237개 나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는 내가 영적으로 살 때에 이 일이 하나씩 하나씩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살아가실 때, 또 남은 모든 인생 속에 하나님을 갈망하시고 예배 갈망하시고 말씀 갈망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에 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시고 세상 살리는 최고의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2월 17일 주일 2부 예배 박창복 선교사
최고의 선교는 영적갈망에서
(시63:1-11)
서론: 많은 사람들이 갈망 하는 것이 있습니다(자유, 경제). 하지만 영적 부흥에 대한 목마름, 갈망은 없습니다. 영적 갈망이 없다면 죽은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인 갈망이 있지만 영적인 갈망은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 갈망으로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나 자신이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적 갈망이 있어야 됩니까?
1.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함
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심
1) 모든 문제는 창3장 사건에서 시작
2)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모든 인생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나아만 장군, 부자와 나사로) - 인생의 현주소
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만나는 인생이 되어야 함
1)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시63:1)
2) 하나님을 갈망하며 살아갈 때 영적 부흥이 일어남
2.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함
가. 모든 삶의 중심이 예배에 있어야 함
1)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시5:7)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시84:1-4)
나. 예배 없는 인생은 믿음이 없는 것임
1) 내 삶에서 예배가 되어지지 않는다면 내 신앙은 엉뚱한 길로 갈 수 밖에 없음
2) 주인을 놓침으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 - 예배가 안 되어짐
다.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사람은 예배에 성공 할 수 있음
3.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함
가. 말씀 -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최고의 방편
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최고의 응답 -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영이 죽게 됨
1) 모든 인생의 방향이 결정
2) 다윗은 말씀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음 -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시63:6, 시119:147-148)
다. 내가 사는 길 - 삶 속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는 것(영적부흥)
결론: 최고의 선교는 내가 먼저 사는 것에서 시작 됩니다. 내 영혼이 살아나지 못 하고, 내 영혼의 부흥이 되지 않으면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갈망, 예배에 대한 갈망, 말씀에 대한 갈망을 통해 내 영혼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 가지에 갈망함으로 인생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며 세상 살리는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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