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나의 면류관, 화관
2019-06-2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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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나의 면류관, 화관”
(사28:1~8)
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 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 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 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 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 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 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사28:1~8
■ 할렐루야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정말로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기쁨이요, 전부요, 자랑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지금 통역부스에서 통번역부에서 동시통역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영어로, 중국어로, 베트남어로, 또 일본어로, 스페니쉬어로 다섯 개 국의 언어로 지금 통역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격려의 박수를 한번 주십시다.
너무나 수고가 많으시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237나라를 살리는 귀중한 응답의 주역들로 저분들이 서 있습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우리 다민족부가 함께 예배에 참여했는데 다민족 가운데 참된 제자가 세워지고, 또 중직자가 세워지고, 참된 목회자가 세워져서 더 정확한 복음을 가지고 각 나라들을 살리는 그런 응답들이 있도록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 메시지 방에 들어오셨으면 아셨습니다 마는 지금 우리 하나교회 예배 내용들이 스페니쉬로, 영어로, 중국어로 지금 통역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어에서도 지금 진행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마는 정말로 하나님 주시는 복음의 역사들을 237나라를 향해서 마음껏 증거 하는 이 일에 여러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여러분이 그 일에 주역으로 인도받는 그런 축복이 있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 나의 면류관, 나의 화관이다 라고 이야기 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어져야 된다 라는 겁니다.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어지는 만큼 여러분 모든 환경과 현장들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으라는 것이고, 그게 첫 번째 뜻이고요, 두 번째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제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리게 된다 라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느냐 창세기1: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목적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26절에 보면 세상을,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우리를 세우셨다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8:4~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 한 이후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 붙잡은 자들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창세기12:3절에 보면 마지막 12:3절에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주변 환경과 주변의 여러 가지 사람들 탓할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여러분을 통하여 주변을 변화시키고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조건에 있든지 간에 여러분 힘을 얻으시기를 바라고요, 여러분 어떤 조건에 있든지 간에 그 조건들을 탓하지 말고, 어떤 환경들에 있든지 간에 그 환경들을 탓하지 말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예요. 하나님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먼저 복을 주셔서 그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명감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회복하고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 산업선교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 그 환경 속에 누가 서 있느냐 그게 중요하다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영적 서밋에 사람들이 서 있는 그 현장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수도가 되어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조건, 이런 환경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 맞는 말이예요.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하는 말들이고요, 다 들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세상을 살릴 수가 없어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런 모든 조건과 그런 모든 환경들, 그런 모든 여건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는 일에 조건이 되어질 수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 새로운 힘과 새로운 은혜를 입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실패(고난)당하는 신자.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실패하는 신자들, 고난당하는 신자들 우리에게 모델로 보여주면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실패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사야서28장은 북쪽 이스라엘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이 죽고 난 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이고요, 남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입니다. 북이스라엘은 10개 지파를 이루고 있고요, 남 유다는 2개 지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마리아의 교만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하게 될 때에 이런 일들을, 이런 저런 일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말씀하고 있으면서, 반면에 겸손한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하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여기에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다 했어요. 여기에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파입니다.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파인데, 그들이 술 취했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 축복을, 너무 많아가지고, 축복이 너무 많아서 그 축복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 축복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지요. 어떤 면에서 우리도 다락방에서 계속해서 그리스도, 그리스도 계속해서 듣다 보니까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우리 자신들 조차도 그리스도를 놓쳐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에브라임이 술 취했다 라고 비교한 것은, 술 취했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감각이 없다 라는 말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엄청스럽게 받았으면서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감각을 잃어 버렸다 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왜 구원 받았는지, 내게 하나님께서 왜 언약을 주셨고, 내게 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지, 그 사실을 잃어버렸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교만한 면류관이다 이야기하지요. 면류관은 머리에 쓰는 나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면류관은 자랑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교만한 면류관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바꾸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축복 자체에 취해 가지고 비틀거리니까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라고 오늘 성경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절에서 2,3,4절 계속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1절 마지막에 보면 어떻게 간섭하시느냐?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2절에 보면 ‘보라’ 이야기 하지요. ‘보라’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강조할 때도 ‘보라’ 라고 이야기하지만, 경고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결국 경고하는 부분들인데,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강풍같이, 큰 물결이 넘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진다. 앗수르 강대국을 통해서 그 면류관을 완전히 땅에 던진다, 짓밟게 된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3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다. 4절 마지막에 보면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무슨 말입니까? 빨리 망한다 라는 사실을, 무화과는 열매가 맺혀지자 말자 사람들이 빨리 취해서 따 먹습니다. 그래서 더 큰 무화과들이 익어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빨리 맏 물은 빨리 따서 먹습니다. 그만큼 빨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축복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과 은사는 수단과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정말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역사들을 너무 누리다 보니까 무감각함 속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적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무감각해 지면 먼저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게 되어지는 결과가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오늘 말씀을 무시하는 성도의 모습이 나오는데 9절을 보세요.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무슨 말입니까? 언제까지 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겁니까? 이 말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감각함 속에 빠지면서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이런 부분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하지요. 젖 떨어진 아이처럼 이래라 저래라 언제까지 그렇게 우리에게 할 것입니까? 이 말이예요. 그러면서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무슨 말이예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왜 자꾸 어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합니까? 여러분 실패하는 신자의 모습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어요. 말씀이 농담으로 여겨지고, 말씀에 대한 무감각함 속에 빠지면서 설교말씀 들어도 또 했던 말이네, 지난 주에 했던 말이네, 늘 그렇게 빠지게 됩니다. 그게 뭐냐 실패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호흡이 있고 맥박이 있잖아요. 각자 호흡과 맥박이 다릅니다. 그렇잖아요. 또 어떤 흥분된 일을 만나면 우리도 모르게 맥박이 빨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호흡이 끊어지고 맥박이 멈추었다 결국 죽은 것 아닙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에 호흡과 맥박은 계속해서 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그런 것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해서, 계속해서 증거 되어져야 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4: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익숙해지도록 하라는 말씀이예요. 빌립보3:1절에 보면 전도자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전도자 바울도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늘 같은 말을 했다 했어요. 복음의 메시지를 반복했다는 말이지요. 사실은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예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안다면 복음의 말씀이 반복되어지지 않고서는, 그 복음이 각인되어지고 뿌리내려지고 체질되어져서 우리를 바꿀 수 있어야 되는데 반복되어지지 않고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어떻게든지 복음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각인, 뿌리, 체질되지 못하도록 사탄이 막고 있는 것이지요. 왜 우리가 복음을 각인, 뿌리, 체질을 반복해서 내려야 되느냐?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악한 사탄의 궤계로 말미암아 복음을 변질시키고 약화 시키고 상실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늘 항상 우리가 구원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계속해서 증거 되어져야 하고, 그 사실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 우리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호흡이 숨을 쉬고 있다 라는 말이고요, 맥박이 뛰고 있다 라는 말처럼 구원 받았다는 것은 말씀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우리에게 들려진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 하시리라” 무슨 말입니까? 구원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말씀에 무감각해 지니까 어떠한 결과가 오느냐? 이 말씀을 듣기 싫어 하니까 알아듣지도 못하는 앗수르 나라의 포로가 되어 가지고 그들의 많은 말들을 듣게 하겠다 했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한 말들을 듣게 하겠다 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자세가 늙어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자세도 늙어지면 안 되어요. 특별히 여러분 말씀을 그냥 지나쳐서 들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붙잡고 그 말씀을 체험해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체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일 날 강단 말씀을 붙잡고 포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주일날,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됨을 알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포럼 되게 되어 있어요. 그 말씀이 포럼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체험되어지게 되고요, 말씀이 체험되어지게 될 때에 그 속에서 그 말씀의 체험 속에서 행동으로 나오게 되고, 그 말씀의 체험 속에서 그게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으면서 거기에 우리의 모든 판단과 결정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날마다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고린도전서1:18절에 있는 말씀처럼 말씀을 체험하기 이전에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말씀을 체험하게 될 때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이 됨을 깨닫게 되어 있어요. 고린도전서 1:18에 뭐라 했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진짜 여러분,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면 말씀 들으면 들을수록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진짜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이 말씀이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문들을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 핵심 전에 RUTC 뉴스 마지막 부분에 한 자매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혹시 보셨습니까? 18살 소녀로서 서울대학원에 들어간 자매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이 자매가 자기 분야 속에서 교수들도 그 분야를 잘 모르고 학생들도 몰라서 주위에서 지금 나와 있는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많은 그 자료들, 정보들을 가지고 그대로 만들어내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정말로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 일을 감당했는데 하나님께서 문들을 여시는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매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주일날 강단을 통해서 주신 약속은 한주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기 때문에 그 약속들을 우리는 꼭 붙잡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강단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한 주간 내게 주시는 약속으로 붙잡히면 그 말씀 붙잡고 포럼 되게 되어 있습니다. 포럼 하면 할수록 그 말씀이 사실적으로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체험되는 그때부터 나의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날마다 참된 시작과 참된 성공의 시작이 말씀에 대한 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체험. 말씀은 닫는 것이 아니라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말씀은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수준이라면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2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이 전해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희의 안식함이다, 너희의 상쾌함이다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안 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는 것이 진짜 우리에게 안식함이 됩니까? 진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상쾌함이 됩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까? 그게 정상적인 신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신앙 생활하면서도 껍데기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하나님의 성도들이 실패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물론 여러 가지 형태,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근본 이유 중의 한 가지가 있다면 말씀에 무감각해지고 말씀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실패하는 성도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면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냐?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세상의 것들이 자꾸 들어오고 세상의 것이 나의 기준이 되고 결국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서 세상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느냐? 세상의 종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1부 때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자매가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받다가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이 있으니까 마음에 많은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 해서 말씀을 내팽개치고 일주일 동안 말씀 듣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말씀을 듣지도 않고 내팽개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가만히 거울을 보니까 자기가 너무 못생겨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할까, 그래서 성형수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형할 것이 대해서 마음을 가지고 한번 인터넷에 들어가서 견적을 뽑아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 800만 원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에게 돈이 없다는 것. 돈이 없다는. 그러니까 너무 우울하더라는 겁니다. 한 예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말씀과 멀어지면 우리 안에 세상의 기준이 가득 차게 되고 결국 세상 기준 따라가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 세상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주의 종들이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 속에 인도받지 못하고 말씀 속에 있는 응답을 확인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앞서서 일하는 주의 종들도 내 배경과 내 연약함이 더 크게 보이면서 내가 왜 이럴까, 그래서 힘 빠지게 되고 낙심 가운데 빠지게 되고.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실 속에 빠진 경우들을 체험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나의 모든 환경을 보면 순간 어디에? 영적 서밋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성도들의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유들 중의 가장 중심에는 말씀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씀과 멀어지면 결국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껍데기로 신앙 생활하게 됩니다. 껍데기로. 마16:13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거기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껍데기입니다. 그것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그것으로는 우리의 현장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러한 부분들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뭔가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롯이 나옵니다. 그런데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살면서, 창세기 19장을 자세히 보면 롯이 소돔, 고모라 사람들의 윤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9장을 자세히 보면. 그래서 결국은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결국은 비참하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홍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무슨 말입니까? 세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말씀을 놓쳐 버리고 말씀에 무감각하게 될 때 결국은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세상을 따라가게 될 때 나도 모르게 세상의 종노릇하게 되고 비참한 실패를 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로 실패하게 되느냐?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실패하지 말아야 하니까. 8절을 보십시오, 8절.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여러분, 상 위에 토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더러운 것이 가득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칠 때에, 또 구원 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약속의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게 될 때 세상에서도 더럽게 된다는 것, 상 위에 토해진 것같이 비참하게 실패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실패한 이스라엘을 들어서 택한 백성인 저와 여러분에게 실패하지 말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말씀 붙잡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내 마음과 생각이, 나의 자세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말씀에 내 생각과 자세가 늙어 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2.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입니다.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말하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응답을 계속 받음으로 살아가라 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무슨 말입니까? 모든 부분에 응답을 가지고 살아가라, 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에게 응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응답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가 훌륭하다, 훌륭하지 않다,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응답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연히 여러분에게 응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분에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특별히 단순한 응답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누가복음 11:1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준다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신다고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에게 최고의 응답 중의 응답이 무엇이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그게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기도, 저런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오늘도 여러분, 예배 드리러 왔습니다. 최고의 응답이요 최고의 축복이 뭐냐? 여러분, 기도할 때 이런 기도, 저런 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기도, 최고의 응답, 최고의 축복이 뭐냐? 바로 성령 충만함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다른 것 기도하지 말고 오직 성령 충만함을 구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 것이 아니라 로마서 8:32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것 다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성령 충만함 속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함을 누리느냐? 여러분,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무감각함 속에 빠지는 것이라면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말씀 붙잡고 말씀 속에서 기도제목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냥 기도 제목들을 찾아내고 만들어내지 마시고 반드시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의 묵상 속에서 기도제목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2 다시 읽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먼저 말씀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그 말씀을 포럼하고. 떡을 떼며, 그러면서 그 다음에 뭐라 했습니까?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무슨 말입니까? 말씀 묵상 속에서 기도 제목들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응답은 사람을 살리게 되고 그 응답은 모든 현장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말씀이 흥왕하며 힘을 얻게 되니까 거기 많은 종교인들이 치유 받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치유도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오늘,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시는 시간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문제 있습니까? 그 문제들을 여러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 문제들을 가지고 말씀에 집중해서 은혜 받는 중에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데 그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속에서 말씀을 놓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백이면 백. 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그대로 다 가지고 말씀에 집중해서 은혜 받는 일에 들어가면 말씀 듣는 중에 그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 받을 때 바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44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했습니다.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모든 스케줄도 말씀 속에서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내가 판단하고 내가 포기해야 할 것,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을, 내가 가야 할 길, 또 열어주시는 부분, 그 말씀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람은 현장에 부딪히지도 않고 현장에 부딪힐 때 그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데 미리 온갖 걱정을 다 하고 많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놓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나아가게 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열어야 할 부분들을 열어주시고 닫아야 할 부분들을 닫아주시고 선택해야 할 부분을 선택하게 하시고 포기할 부분을 포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깨달아지느냐? 요한복음 14:26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그냥 말씀을 받으면서 그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 놓으십시오. 그러면 순간순간 문제와 사건을 당할 때마다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누가? 성령 하나님께서. 그게 요한복음 14:26의 말씀입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담기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고 한주간 현장에 부딪힐 때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축복된 역사 속에 들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의 비밀을 맛보면 맛볼수록 그때부터 내 안에 뭐가 생기느냐? 아, 복음이면 다 되는구나. 복음이 최고구나. 복음에 모자람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구나. 여러분, 정말로 내가 만족함을 누리게 되면 만족함 때문에 다른 것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것으로 내가 만족하니까 내 모든 삶에 부족함이 없다 했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말씀했습니다. 빌립보서 4:10~12에 보면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하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만족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음을 최고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여러분, 복음은 정말로 그 맛을 보고 그 비밀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복음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오늘 5절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의 면류관, 나의 화관이라 말씀드렸는데 여기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된다, 무슨 말입니까? 면류관은 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화관은 꽃으로 만든 관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최고의 자랑거리가 바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되고 하나님이 또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실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은 자가 결국은 그것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그리스도를 나의 자랑으로, 나의 면류관으로, 나의 화관으로, 다시 말하면 나의 모든 자랑으로 여기고 나아갈 때 그들에게 주시는 복이 뭐냐? 6절입니다. 한 번 읽어봅시다. 6절. 같이 한번 읽읍시다. 시작.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여기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혜와 힘을, 능력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마지막 시대, 말세 때에 반드시 누려야 할 두 가지 축복입니다. 지혜와 능력입니다. 어떤 지혜냐? 왜 지혜를 누려야 하느냐? 이 마지막 시대에 악한 사단이 여러분을 혼미케 하는 역사로 지금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4에 보면 “이 세상의 신이 ... 혼미하게 하여”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44에 보면 악한 사단 마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악한 사단이 온통 거짓말로 혼미케 하는 역사로 가득 채우는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판단하지 않고 인도받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들이 거기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혼미케 하는 역사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참된 지혜를 복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주시겠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여기에 또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 힘이 되시리로다, 능력 주신다는 말입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정말로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사단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 힘을, 그 능력을 복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 사실입니다. 이번 한주간 정말로 그리스도가 나의 면류관, 나의 화관이 되는 그런 축복의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때 모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된 응답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이 나가는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가 자랑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통해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그 일에 주역 되는 전도자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6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 - 나의 면류관, 화관
(사28:1-8)
서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구원의 축복을 누림 / 구원 받은 자들은 승리). 창1:26절에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만물을 다스리고 정복). 모든 만물을 대리 통치하도록 축복 하셨습니다(시8:4-8).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통해 모든 환경과 여건을 변화시키고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만큼 모든 현장을 살릴 수 있습니다.
1. 실패(고난)당하는 신자
가. 사28장은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사마리아의 교만과 겸손한 자의 결과)
1) 솔로몬 이 후 북이스라엘(사마리아), 남유다(예루살렘)으로 나눠지게 됨
2)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 -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림
3) 교만한 면류관 -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자랑
4) 하나님이 간섭하심(사28:1-4)
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성도(사28:9-10)
1)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보게 됨
2) 그리스도 이야기를 반복 한다고 생각 함
3)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복해서 말씀을 들어야 함 - 딤전4:7(네 자신을 연단), 빌3:1(너희에게는 안전), 사28:11
다. 말씀을 무시하는 자, 겉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의 신앙상태
1) 예레미야, 엘리야, 세례요한, 선지자(마16:13) - 좋은 것, 겉으로 하는 것으로는 속(영적변화)을 변화 시킬 수 없음
2) 롯(창19장)
3) 노아 홍수 시대(창6장) - 세상의 흐름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음
라. 말씀을 듣고 체험
1) 말씀 포럼 - 강단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주심을 알게 될 때 포럼이 되어짐
2) 말씀을 듣고 체험할 때 행동, 생각, 결단이 나옴
3) 말씀을 체험할 때 능력이 됨(고전1:18)
4) 참된 시작, 참된 성공은 말씀 체험 - 말씀을 깨닫지 말고 받아라(행2:42, 사28:12)
2.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 하나님의 응답을 계속 받으며 살아감
1)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응답 받게 됨(히11:6, 히14:16)
2) 응답 중의 응답(눅11:3) - 성령충만
3) 무엇을 주시는 것이 아님, 그리스도를 주심(롬8:32)
나. 말씀 속에서 응답을 찾아라
1) 기도제목도 말씀 묵상 속에서 찾아라(행2:42) - 사도의 가르침, 서로 교제, 오로지 기도
2) 말씀의 능력으로 현장, 사람을 살리게 됨(행6:7) - 말씀 속에서 참된 치유
3) 문제, 어려움 - 말씀 받는 일에 집중(말씀 받는 중에 해결)
4)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이 임함(행10:44) - 말씀따라 인도(요14:26)
다. 복음을 최고의 비밀로 발견한 사람
1) 바울(빌3:8, 빌4:10), 다윗(시23:1), 요셉(창39장)
2) 복음의 맛을 보면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게 됨(사28:5) - 영화로운 면류관, 화관이 되심
3) 복음을 자랑거리로 삼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사28:6) - 판단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심
결론: 그리스도가 우리의 자랑이 된다면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면류관, 화관이 된다는 것은 나의 자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는 만큼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나의 면류관, 화관”
(사28:1~8)
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 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 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 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 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 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 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사28:1~8
■ 할렐루야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정말로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기쁨이요, 전부요, 자랑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지금 통역부스에서 통번역부에서 동시통역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영어로, 중국어로, 베트남어로, 또 일본어로, 스페니쉬어로 다섯 개 국의 언어로 지금 통역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격려의 박수를 한번 주십시다.
너무나 수고가 많으시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237나라를 살리는 귀중한 응답의 주역들로 저분들이 서 있습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우리 다민족부가 함께 예배에 참여했는데 다민족 가운데 참된 제자가 세워지고, 또 중직자가 세워지고, 참된 목회자가 세워져서 더 정확한 복음을 가지고 각 나라들을 살리는 그런 응답들이 있도록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 메시지 방에 들어오셨으면 아셨습니다 마는 지금 우리 하나교회 예배 내용들이 스페니쉬로, 영어로, 중국어로 지금 통역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어에서도 지금 진행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마는 정말로 하나님 주시는 복음의 역사들을 237나라를 향해서 마음껏 증거 하는 이 일에 여러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여러분이 그 일에 주역으로 인도받는 그런 축복이 있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 나의 면류관, 나의 화관이다 라고 이야기 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어져야 된다 라는 겁니다.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어지는 만큼 여러분 모든 환경과 현장들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으라는 것이고, 그게 첫 번째 뜻이고요, 두 번째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제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리게 된다 라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느냐 창세기1: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목적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26절에 보면 세상을,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우리를 세우셨다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8:4~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 한 이후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 붙잡은 자들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창세기12:3절에 보면 마지막 12:3절에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주변 환경과 주변의 여러 가지 사람들 탓할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여러분을 통하여 주변을 변화시키고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조건에 있든지 간에 여러분 힘을 얻으시기를 바라고요, 여러분 어떤 조건에 있든지 간에 그 조건들을 탓하지 말고, 어떤 환경들에 있든지 간에 그 환경들을 탓하지 말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예요. 하나님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먼저 복을 주셔서 그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명감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회복하고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 산업선교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 그 환경 속에 누가 서 있느냐 그게 중요하다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영적 서밋에 사람들이 서 있는 그 현장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수도가 되어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조건, 이런 환경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 맞는 말이예요.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하는 말들이고요, 다 들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세상을 살릴 수가 없어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런 모든 조건과 그런 모든 환경들, 그런 모든 여건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는 일에 조건이 되어질 수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날 예배하는 가운데 새로운 힘과 새로운 은혜를 입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실패(고난)당하는 신자.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실패하는 신자들, 고난당하는 신자들 우리에게 모델로 보여주면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실패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사야서28장은 북쪽 이스라엘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이 죽고 난 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이고요, 남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입니다. 북이스라엘은 10개 지파를 이루고 있고요, 남 유다는 2개 지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마리아의 교만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하게 될 때에 이런 일들을, 이런 저런 일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말씀하고 있으면서, 반면에 겸손한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하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여기에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다 했어요. 여기에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파입니다.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파인데, 그들이 술 취했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 축복을, 너무 많아가지고, 축복이 너무 많아서 그 축복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 축복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지요. 어떤 면에서 우리도 다락방에서 계속해서 그리스도, 그리스도 계속해서 듣다 보니까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우리 자신들 조차도 그리스도를 놓쳐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에브라임이 술 취했다 라고 비교한 것은, 술 취했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감각이 없다 라는 말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엄청스럽게 받았으면서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감각을 잃어 버렸다 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왜 구원 받았는지, 내게 하나님께서 왜 언약을 주셨고, 내게 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지, 그 사실을 잃어버렸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교만한 면류관이다 이야기하지요. 면류관은 머리에 쓰는 나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면류관은 자랑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교만한 면류관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바꾸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축복 자체에 취해 가지고 비틀거리니까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라고 오늘 성경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절에서 2,3,4절 계속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1절 마지막에 보면 어떻게 간섭하시느냐?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2절에 보면 ‘보라’ 이야기 하지요. ‘보라’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강조할 때도 ‘보라’ 라고 이야기하지만, 경고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결국 경고하는 부분들인데,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강풍같이, 큰 물결이 넘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진다. 앗수르 강대국을 통해서 그 면류관을 완전히 땅에 던진다, 짓밟게 된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3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다. 4절 마지막에 보면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무슨 말입니까? 빨리 망한다 라는 사실을, 무화과는 열매가 맺혀지자 말자 사람들이 빨리 취해서 따 먹습니다. 그래서 더 큰 무화과들이 익어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빨리 맏 물은 빨리 따서 먹습니다. 그만큼 빨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그 축복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과 은사는 수단과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정말로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역사들을 너무 누리다 보니까 무감각함 속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적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무감각해 지면 먼저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말씀을 시시하게 여기게 되어지는 결과가 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오늘 말씀을 무시하는 성도의 모습이 나오는데 9절을 보세요.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무슨 말입니까? 언제까지 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겁니까? 이 말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감각함 속에 빠지면서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이런 부분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하지요. 젖 떨어진 아이처럼 이래라 저래라 언제까지 그렇게 우리에게 할 것입니까? 이 말이예요. 그러면서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무슨 말이예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왜 자꾸 어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합니까? 여러분 실패하는 신자의 모습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어요. 말씀이 농담으로 여겨지고, 말씀에 대한 무감각함 속에 빠지면서 설교말씀 들어도 또 했던 말이네, 지난 주에 했던 말이네, 늘 그렇게 빠지게 됩니다. 그게 뭐냐 실패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호흡이 있고 맥박이 있잖아요. 각자 호흡과 맥박이 다릅니다. 그렇잖아요. 또 어떤 흥분된 일을 만나면 우리도 모르게 맥박이 빨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호흡이 끊어지고 맥박이 멈추었다 결국 죽은 것 아닙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에 호흡과 맥박은 계속해서 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그런 것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해서, 계속해서 증거 되어져야 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4: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익숙해지도록 하라는 말씀이예요. 빌립보3:1절에 보면 전도자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전도자 바울도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늘 같은 말을 했다 했어요. 복음의 메시지를 반복했다는 말이지요. 사실은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예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안다면 복음의 말씀이 반복되어지지 않고서는, 그 복음이 각인되어지고 뿌리내려지고 체질되어져서 우리를 바꿀 수 있어야 되는데 반복되어지지 않고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어떻게든지 복음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각인, 뿌리, 체질되지 못하도록 사탄이 막고 있는 것이지요. 왜 우리가 복음을 각인, 뿌리, 체질을 반복해서 내려야 되느냐?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악한 사탄의 궤계로 말미암아 복음을 변질시키고 약화 시키고 상실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늘 항상 우리가 구원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계속해서 증거 되어져야 하고, 그 사실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 우리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호흡이 숨을 쉬고 있다 라는 말이고요, 맥박이 뛰고 있다 라는 말처럼 구원 받았다는 것은 말씀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우리에게 들려진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 하시리라” 무슨 말입니까? 구원 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말씀에 무감각해 지니까 어떠한 결과가 오느냐? 이 말씀을 듣기 싫어 하니까 알아듣지도 못하는 앗수르 나라의 포로가 되어 가지고 그들의 많은 말들을 듣게 하겠다 했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한 말들을 듣게 하겠다 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자세가 늙어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자세도 늙어지면 안 되어요. 특별히 여러분 말씀을 그냥 지나쳐서 들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붙잡고 그 말씀을 체험해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체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일 날 강단 말씀을 붙잡고 포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주일날,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됨을 알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포럼 되게 되어 있어요. 그 말씀이 포럼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체험되어지게 되고요, 말씀이 체험되어지게 될 때에 그 속에서 그 말씀의 체험 속에서 행동으로 나오게 되고, 그 말씀의 체험 속에서 그게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으면서 거기에 우리의 모든 판단과 결정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날마다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고린도전서1:18절에 있는 말씀처럼 말씀을 체험하기 이전에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말씀을 체험하게 될 때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이 됨을 깨닫게 되어 있어요. 고린도전서 1:18에 뭐라 했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진짜 여러분,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면 말씀 들으면 들을수록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진짜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이 말씀이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문들을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 핵심 전에 RUTC 뉴스 마지막 부분에 한 자매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혹시 보셨습니까? 18살 소녀로서 서울대학원에 들어간 자매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이 자매가 자기 분야 속에서 교수들도 그 분야를 잘 모르고 학생들도 몰라서 주위에서 지금 나와 있는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많은 그 자료들, 정보들을 가지고 그대로 만들어내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정말로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 일을 감당했는데 하나님께서 문들을 여시는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매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주일날 강단을 통해서 주신 약속은 한주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기 때문에 그 약속들을 우리는 꼭 붙잡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강단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한 주간 내게 주시는 약속으로 붙잡히면 그 말씀 붙잡고 포럼 되게 되어 있습니다. 포럼 하면 할수록 그 말씀이 사실적으로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체험되는 그때부터 나의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날마다 참된 시작과 참된 성공의 시작이 말씀에 대한 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체험. 말씀은 닫는 것이 아니라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말씀은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수준이라면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2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이 전해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희의 안식함이다, 너희의 상쾌함이다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안 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는 것이 진짜 우리에게 안식함이 됩니까? 진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상쾌함이 됩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까? 그게 정상적인 신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신앙 생활하면서도 껍데기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하나님의 성도들이 실패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물론 여러 가지 형태,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근본 이유 중의 한 가지가 있다면 말씀에 무감각해지고 말씀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실패하는 성도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면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냐?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세상의 것들이 자꾸 들어오고 세상의 것이 나의 기준이 되고 결국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서 세상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느냐? 세상의 종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1부 때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자매가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받다가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이 있으니까 마음에 많은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 해서 말씀을 내팽개치고 일주일 동안 말씀 듣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말씀을 듣지도 않고 내팽개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가만히 거울을 보니까 자기가 너무 못생겨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할까, 그래서 성형수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형할 것이 대해서 마음을 가지고 한번 인터넷에 들어가서 견적을 뽑아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 800만 원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에게 돈이 없다는 것. 돈이 없다는. 그러니까 너무 우울하더라는 겁니다. 한 예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말씀과 멀어지면 우리 안에 세상의 기준이 가득 차게 되고 결국 세상 기준 따라가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 세상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주의 종들이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 속에 인도받지 못하고 말씀 속에 있는 응답을 확인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앞서서 일하는 주의 종들도 내 배경과 내 연약함이 더 크게 보이면서 내가 왜 이럴까, 그래서 힘 빠지게 되고 낙심 가운데 빠지게 되고.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실 속에 빠진 경우들을 체험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나의 모든 환경을 보면 순간 어디에? 영적 서밋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성도들의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유들 중의 가장 중심에는 말씀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씀과 멀어지면 결국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껍데기로 신앙 생활하게 됩니다. 껍데기로. 마16:13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거기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껍데기입니다. 그것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그것으로는 우리의 현장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러한 부분들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뭔가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롯이 나옵니다. 그런데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살면서, 창세기 19장을 자세히 보면 롯이 소돔, 고모라 사람들의 윤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9장을 자세히 보면. 그래서 결국은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결국은 비참하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홍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무슨 말입니까? 세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말씀을 놓쳐 버리고 말씀에 무감각하게 될 때 결국은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세상을 따라가게 될 때 나도 모르게 세상의 종노릇하게 되고 비참한 실패를 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로 실패하게 되느냐?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실패하지 말아야 하니까. 8절을 보십시오, 8절.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여러분, 상 위에 토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더러운 것이 가득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칠 때에, 또 구원 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약속의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게 될 때 세상에서도 더럽게 된다는 것, 상 위에 토해진 것같이 비참하게 실패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실패한 이스라엘을 들어서 택한 백성인 저와 여러분에게 실패하지 말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말씀 붙잡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내 마음과 생각이, 나의 자세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말씀에 내 생각과 자세가 늙어 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2.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입니다.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말하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응답을 계속 받음으로 살아가라 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무슨 말입니까? 모든 부분에 응답을 가지고 살아가라, 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에게 응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응답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가 훌륭하다, 훌륭하지 않다,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응답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연히 여러분에게 응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분에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특별히 단순한 응답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누가복음 11:1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준다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신다고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에게 최고의 응답 중의 응답이 무엇이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그게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기도, 저런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오늘도 여러분, 예배 드리러 왔습니다. 최고의 응답이요 최고의 축복이 뭐냐? 여러분, 기도할 때 이런 기도, 저런 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기도, 최고의 응답, 최고의 축복이 뭐냐? 바로 성령 충만함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다른 것 기도하지 말고 오직 성령 충만함을 구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 것이 아니라 로마서 8:32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것 다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성령 충만함 속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함을 누리느냐? 여러분,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무감각함 속에 빠지는 것이라면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말씀 붙잡고 말씀 속에서 기도제목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냥 기도 제목들을 찾아내고 만들어내지 마시고 반드시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의 묵상 속에서 기도제목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2 다시 읽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먼저 말씀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그 말씀을 포럼하고. 떡을 떼며, 그러면서 그 다음에 뭐라 했습니까?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무슨 말입니까? 말씀 묵상 속에서 기도 제목들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응답은 사람을 살리게 되고 그 응답은 모든 현장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말씀이 흥왕하며 힘을 얻게 되니까 거기 많은 종교인들이 치유 받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치유도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오늘,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시는 시간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문제 있습니까? 그 문제들을 여러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 문제들을 가지고 말씀에 집중해서 은혜 받는 중에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데 그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속에서 말씀을 놓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백이면 백. 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그대로 다 가지고 말씀에 집중해서 은혜 받는 일에 들어가면 말씀 듣는 중에 그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 받을 때 바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44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했습니다.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모든 스케줄도 말씀 속에서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내가 판단하고 내가 포기해야 할 것,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을, 내가 가야 할 길, 또 열어주시는 부분, 그 말씀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람은 현장에 부딪히지도 않고 현장에 부딪힐 때 그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데 미리 온갖 걱정을 다 하고 많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채워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놓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나아가게 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열어야 할 부분들을 열어주시고 닫아야 할 부분들을 닫아주시고 선택해야 할 부분을 선택하게 하시고 포기할 부분을 포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깨달아지느냐? 요한복음 14:26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그냥 말씀을 받으면서 그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 놓으십시오. 그러면 순간순간 문제와 사건을 당할 때마다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누가? 성령 하나님께서. 그게 요한복음 14:26의 말씀입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담기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고 한주간 현장에 부딪힐 때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축복된 역사 속에 들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의 비밀을 맛보면 맛볼수록 그때부터 내 안에 뭐가 생기느냐? 아, 복음이면 다 되는구나. 복음이 최고구나. 복음에 모자람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구나. 여러분, 정말로 내가 만족함을 누리게 되면 만족함 때문에 다른 것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것으로 내가 만족하니까 내 모든 삶에 부족함이 없다 했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말씀했습니다. 빌립보서 4:10~12에 보면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하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만족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음을 최고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여러분, 복음은 정말로 그 맛을 보고 그 비밀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복음을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오늘 5절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의 면류관, 나의 화관이라 말씀드렸는데 여기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된다, 무슨 말입니까? 면류관은 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화관은 꽃으로 만든 관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최고의 자랑거리가 바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되고 하나님이 또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실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은 자가 결국은 그것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그리스도를 나의 자랑으로, 나의 면류관으로, 나의 화관으로, 다시 말하면 나의 모든 자랑으로 여기고 나아갈 때 그들에게 주시는 복이 뭐냐? 6절입니다. 한 번 읽어봅시다. 6절. 같이 한번 읽읍시다. 시작.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여기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혜와 힘을, 능력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마지막 시대, 말세 때에 반드시 누려야 할 두 가지 축복입니다. 지혜와 능력입니다. 어떤 지혜냐? 왜 지혜를 누려야 하느냐? 이 마지막 시대에 악한 사단이 여러분을 혼미케 하는 역사로 지금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4에 보면 “이 세상의 신이 ... 혼미하게 하여”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44에 보면 악한 사단 마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악한 사단이 온통 거짓말로 혼미케 하는 역사로 가득 채우는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판단하지 않고 인도받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들이 거기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혼미케 하는 역사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참된 지혜를 복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주시겠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여기에 또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 힘이 되시리로다, 능력 주신다는 말입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정말로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사단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 힘을, 그 능력을 복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 사실입니다. 이번 한주간 정말로 그리스도가 나의 면류관, 나의 화관이 되는 그런 축복의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때 모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된 응답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이 나가는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가 자랑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통해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그 일에 주역 되는 전도자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6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리스도 - 나의 면류관, 화관
(사28:1-8)
서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구원의 축복을 누림 / 구원 받은 자들은 승리). 창1:26절에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만물을 다스리고 정복). 모든 만물을 대리 통치하도록 축복 하셨습니다(시8:4-8).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통해 모든 환경과 여건을 변화시키고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만큼 모든 현장을 살릴 수 있습니다.
1. 실패(고난)당하는 신자
가. 사28장은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사마리아의 교만과 겸손한 자의 결과)
1) 솔로몬 이 후 북이스라엘(사마리아), 남유다(예루살렘)으로 나눠지게 됨
2)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 -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림
3) 교만한 면류관 -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자랑
4) 하나님이 간섭하심(사28:1-4)
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성도(사28:9-10)
1)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보게 됨
2) 그리스도 이야기를 반복 한다고 생각 함
3)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복해서 말씀을 들어야 함 - 딤전4:7(네 자신을 연단), 빌3:1(너희에게는 안전), 사28:11
다. 말씀을 무시하는 자, 겉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의 신앙상태
1) 예레미야, 엘리야, 세례요한, 선지자(마16:13) - 좋은 것, 겉으로 하는 것으로는 속(영적변화)을 변화 시킬 수 없음
2) 롯(창19장)
3) 노아 홍수 시대(창6장) - 세상의 흐름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음
라. 말씀을 듣고 체험
1) 말씀 포럼 - 강단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주심을 알게 될 때 포럼이 되어짐
2) 말씀을 듣고 체험할 때 행동, 생각, 결단이 나옴
3) 말씀을 체험할 때 능력이 됨(고전1:18)
4) 참된 시작, 참된 성공은 말씀 체험 - 말씀을 깨닫지 말고 받아라(행2:42, 사28:12)
2. 모든 일에 참된 응답으로 살아가라
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 하나님의 응답을 계속 받으며 살아감
1)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응답 받게 됨(히11:6, 히14:16)
2) 응답 중의 응답(눅11:3) - 성령충만
3) 무엇을 주시는 것이 아님, 그리스도를 주심(롬8:32)
나. 말씀 속에서 응답을 찾아라
1) 기도제목도 말씀 묵상 속에서 찾아라(행2:42) - 사도의 가르침, 서로 교제, 오로지 기도
2) 말씀의 능력으로 현장, 사람을 살리게 됨(행6:7) - 말씀 속에서 참된 치유
3) 문제, 어려움 - 말씀 받는 일에 집중(말씀 받는 중에 해결)
4)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이 임함(행10:44) - 말씀따라 인도(요14:26)
다. 복음을 최고의 비밀로 발견한 사람
1) 바울(빌3:8, 빌4:10), 다윗(시23:1), 요셉(창39장)
2) 복음의 맛을 보면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게 됨(사28:5) - 영화로운 면류관, 화관이 되심
3) 복음을 자랑거리로 삼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사28:6) - 판단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심
결론: 그리스도가 우리의 자랑이 된다면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면류관, 화관이 된다는 것은 나의 자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는 만큼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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